30일 오후 서울 양천구 SBS사옥에서월화드라마<육룡이 나르샤>제작발표회가 출연배우들이 참석해 열리고 있다.

지난 2015년 9월 30일 오후 서울 양천구 SBS 사옥에서 월화드라마 <육룡이 나르샤> 제작발표회가 출연 배우들이 참석해 열리고 있다. ⓒ 이희훈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이 있다. 역사드라마도 마찬가지다. 늘 주인공들은 왕이나 위인들이고 오직 그들만의 세상을 이야기한다. 왕위를 둘러싼 모략과 정변, 배신과 음모, 내명부에서 일어나는 암투들 등 이야깃거리는 부지기수다. 하지만 그 아귀다툼 같은 윗것들의 세상 아래에 있는 백성들은 어떻게 살아가는지는 잘 보여주지 않는다.

<육룡이 나르샤>가 기존 역사드라마와 다른 점은 백성을 대변하는 인물들이 전면에 배치됐다는 것이다. 용비어천가에 등장하는 실제 육룡은 이성계와 그의 윗세대 4명(이성계의 고조, 증조, 조부, 부)과 이방원을 가리키지만, 드라마에서는 이성계, 정도전, 이방원, 이방지. 무휼, 분이로 각색됐다.

중요한 것은 허구적 인물들이 모두 백성으로서 아랫것들도 저마다의 목소리로 역사를 만드는 과정에 참여시켰다는 것이다. 분이는 정도전과 이방원에게 끊임없이 정치에 백성을 빼지 말 것을 요구한다. 이방지는 정치가 휘두르는 칼날보다 더 강력한 칼날을 정도전의 목을 겨누며 언제까지 백성들이 피를 흘리게 할 것이냐고 겁박한다.

이제 역사적 사건은 선죽교의 탄생 직전까지 왔다. 필자는 결말이 미리 정해져 있는 실제 이야기들보다는 어떻게 결말이 날지 모르는 허구적 이야기에 관심이 더 쏠린다. 정도전의 개혁과정도 흥미롭지만, 필자에게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을 안겨주는 것은 약자들의 절규와 비장함이다. 처음에는 분이와 이방지가 그 역할을 했고 다음에는 연희가 그런 역할을 했다.

이서군은 이방지와 분이 그리고 연희의 고향이자 비극이 시작된 곳이기도 하다. 홍인방이 땅을 빼앗는 과정에서 이방지와 연희는 그곳을 떠날 수밖에 없었고 분이는 거기에 홀로 남게 됐다. 분이는 끊임없는 권문세족의 수탈 속에서 꿋꿋이 견디며 민중의 리더로 성장한다. 그러나 주민들을 규합하여 황무지를 개간하고 곡식을 거두는 데까지 성공하지만, 그조차도 윗것들은 허락하지 않았다.

또다시 겪게 되는 좌절 속에서 그녀는 투사처럼 분연히 다시 일어서는데 그 모습이 가히 영웅적이다. 황무지에서 거둔 곡식을 모두 빼앗기고 그 과정에서 같이 지내던 어린 여자아이가 목숨을 잃는다. 이에 분이는 슬픔을 뒤로하고 빼앗긴 곡식이 있던 관청으로 가서 곡식에 불을 지른다. 터벅터벅 그을음을 뒤집어쓴 채 걸어 나오는 분이 뒤로 시커멓고 빨간 화염이 이글거린다. 분이가 늘 하는 말이 있다. "살아있으면 뭐라도 해야 되는 거잖아!" 절망했다고 이대로 죽을 것인가? 분이가 낭만적인 것은 바로 이런 생각 때문이다.

이방지(땅시)와 연희는 극 전체로 봤을 때 가장 안타까운 러브스토리의 주인공들이다. 칠월칠석날 견우와 직녀로 만나던 날 홍인방의 가노들에 의해 오작교는 무너져 내렸고 연희는 가노에게 겁탈을 당한다. 그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한없이 약했던 땅새. 그런 자신을 탓하며 낭떠러지로 몸을 던지지만 장삼봉을 만나면서 간신히 목숨을 부지한다. 중국의 고수인 장삼봉의 제자로 8년 동안 지내면서 그는 '까치독사'로 성장하고, 연희는 화사단의 악명 높은 자객 '자일색'으로 성장한다.

이렇게 다르게 성장한 두 연인이 서로를 마주 보며 서 있는 장면에는 나약함을 극복하기 위해 자기 자신과 극렬하게 쟁투했던 그 모진 세월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그 세월이 얼마나 가혹했을까. 정도전의 밀본에서 다시 만난 두 연인은 동료로서만 머무를 수밖에 없다. 대신에 이방지는 정도전의 목에 칼을 겨누며 내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세상을 바꾸는 일에 동참하겠다고 말한다.

필자는 이 드라마가 앞서 말한 세 명의 이야기가 더 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왜냐하면, 이들은 저마다 마음속에 상처를 가지고 있으며 과거에 약자였지만 이를 극복하고 힘을 가지게 된 인물들이다. 요즘 유행하는 성공담을 보고 서민들이 힘을 얻듯이 이방지, 분이, 연희가 윗것들에게 던지는 말들에 공감했으면 싶다.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누구나 길을 잃을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새로운 길을 찾아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사회적 약자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이 캐릭터들이 매력적인 이유는 약자이면서도 고난을 스스로 극복하고 자신의 길을 개척해 나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윗것들에게 말한다. 내게 소중한 것들을 빼앗아가지 말라고.

요즘 우리 사회는 개인에게 책임을 묻는 경향이 있다. 자살을 실업을 해고를 실패를 개인의 의지박약이나 나약함 탓으로 돌린다. 지금의 위정자들에게 묻고 싶다. 자본주의의 승자독식 시스템 속에서 살아가는 국민을 위해 네가 잘했어야 한다며 핀잔을 주는 것보다는 그들에게 기회를 더 주고 방향을 제시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노철중 시민기자의 다음블로그(http://blog.daum.net/almadore)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육룡이나르샤 리뷰 낭만분이 이방지 연희 정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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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땐 영문학 전공, 대학원땐 영화이론 전공 그런데 지금은 회사원... 이직을 고민중인 안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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