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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순례자들이 힘겹게 산길을 오르고 있다.
 자전거 순례자들이 힘겹게 산길을 오르고 있다.
ⓒ 박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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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향하는 순례길은 모두 아홉 개이며, 어느 길을 걸어도 순례 인정을 해준다. 그리고 그 길은 걸어서 가도 되고, 말을 타고 가도 되고, 자전거를 타고 가도 된다.

그런데 또 인력거를 '끌며', '타며' 가도 된다는 걸 이날 알게 됐다. 아래 사진 속 노부부는 오스트리아에서 오신 분들인데, 걷기가 불편한 아내를 인력거에 태우고 백발의 남편이 그걸 끌며 순례를 하고 있었다.

도대체 이 할아버지는 젊은 시절 부인에게 무슨 잘못을 얼마나 많이 저질렀기에 이런 고행을 하고 있나 싶기도 했는데, 만약 그랬다 하더라도 죽기 전에 이런 특별한 순례를 함께 하게 됐으니 아내도 다 용서하지 싶다. 사실 웃고 이야기하는 이 노부부의 다정한 모습을 봤을 때, 이런 고행의 순례가 가능했던 건 '잘못'이 아니라 '사랑' 때문이란 걸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순례를 하면서 직접 만나지는 못했는데, 몸이 불편해 휠체어를 타고 순례를 하는 이들도 다수 있다고 한다. 두 발로 배낭 짊어지고 순례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휠체어를 타며 또 인력거를 끌며 순례길에 오른 이들에겐 경의를 표한다.

몸이 불편한 아내를 인력거에 태우고 백발의 남편이 인력거를 끌며 순례하고 있다.
▲ 오스트리아에서 온 부부 순례자 몸이 불편한 아내를 인력거에 태우고 백발의 남편이 인력거를 끌며 순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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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력거 끌고, 휠체어 타고 순례길 걷는 사람들

메스키리츠 봉을 넘고 12.5km를 걸어서야 점심을 먹을 마을, 헤레디아인(Guerediain)에 도착했다. 바스크어로는 마을 이름이 비스카렛(Biscarret)이다.

마을이 워낙 작다 보니, 식사를 할 수 있는 식당 겸 바(Bar)가 마을에 딱 하나 있다. 점심을 먹기엔 늦은 시간이었지만, 우리와 같은 처지에 있는 순례자들로 조그만 식당이 화장실 앞까지 북적댄다. 남편과 나는 햄이 들어간 바게트 샌드위치 하나를 나눠먹고 커피 두 잔을 마셨다. 가격은 모두 6.70유로. 정말 저렴하게 한 끼를 해결했다.

마을에 있는 유일한 식당에서 많은 순례자들이 점심식사를 해결했다.
▲ 헤레디아인 마을 마을에 있는 유일한 식당에서 많은 순례자들이 점심식사를 해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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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레디아인에서 2km를 걸어 또 하나의 작고 예쁜 산골마을인 린소아인(Linzoain)을 지나고, 또 다시 4.5km의 산길을 힘겹게 올라 오늘의 두 번째 깔딱 고개인 해발 810m의 에로 봉(Alto de Erro)에 도착했다.

이름이 살짝 웃겼지만, 그 풍경이 왠지 기대됐었는데 막상 도착한 에로 봉은 좀 허망했다. 큰 도로가 바로 옆을 지나는 것도 그렇고, 송전탑 아래 빨간 의자를 놓고 콜라를 파는 트럭도 그렇고. 발 아래로 스페인의 산자락이 멋지게 펼쳐진 산 정상일 거라는 기대가 확 무너졌다.

해발 810m의 봉우리인데, 풍경이 그리 아름답진 않다.
▲ 에로 봉(Alto de Erro) 해발 810m의 봉우리인데, 풍경이 그리 아름답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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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 봉을 지나 걷는 순례길 표지석이 소박하지만 예쁘게 장식돼 있다.
 에로 봉을 지나 걷는 순례길 표지석이 소박하지만 예쁘게 장식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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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 봉은 허망했지만, 에로 봉을 지나 걷게 된 숲길은 참 아름답고 상쾌했다.

5월 첫날, 갓 잎을 틔우기 시작한 스페인 산자락의 연두 빛깔 이파리들이 마음을 야들야들 부드럽게 만들었다. 12.5kg의 무거운 배낭 때문에 걸을 때마다 머리가 쿵쿵 울리고 어깨가 쪼개지는 것 같았지만, 거친 호흡을 따라 들어온 숲속 공기는 그 모든 힘겨움을 누그러뜨릴 '순수함'을 지니고 있었다.

중세시대엔 이 에로 숲이 순례자를 위협하는 도둑들의 보금자리였다지만, 지금은 그 흔적조차 찾을 수 없으니 겁먹지 말고 맘 편히 숲을 즐기면 된다.

에로 봉에서 산길 4km를 내려오면, 오늘의 목적지 수비리(Zubiri)가 나타난다.

마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고딕 양식의 중세다리를 건너야 하는데, 미치광이 병에 걸린 동물들이 이 다리의 중앙 기둥을 세 바퀴 돌면 병이 낫는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고 한다. 그래서 다리 이름도 스페인어로 '공수병'이란 뜻의 '라 라비아(La Rabia)'다.

순례자 위협하는 도둑들의 보금자리였던 에로 숲

'공수병'이란 뜻의 이 다리 기둥을 동물들이 세 번 돌면 미치광이 병이 낫는다는 전설이 있다.
▲ 수비리 마을 입구에 있는 라 라비아(La Rabia) 다리 '공수병'이란 뜻의 이 다리 기둥을 동물들이 세 번 돌면 미치광이 병이 낫는다는 전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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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창낭창~ 그렇게 걸으며 이 다리를 건널 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책에서는 론세스바예스에서 이곳 수비리까지 23km를 걷는 데 7시간이 걸린다고 했지만 우린 9시간이 걸렸다. 마을이 보이면 구경도 하고 성당이 있으면 요리조리 살펴도 보고, 이 지방 운동인 펠로타 경기장도 구경하고, 산길 어디서라도 힘들면 철퍼덕 앉아서 물도 마시고, 자연도 보고, 공기도 흠뻑 마시다 보니, 책에 적어 놓은 예상 시간보다 훨씬 많이 걸렸다. 그게 뭐 잘못인가?

잘못은 아닌데, 잘 몰랐던 건 맞다.

산티아고 순례길이 워낙 매스컴을 많이 타다 보니, 엄청 유명해졌고 그만큼 순례자가 많아졌다는 걸 뼈저리게는 몰랐다. 수비리는 그 많은 순례자들을 수용하기에 방이 부족한, 아주 작은 마을이라는 것도 몰랐다. 그래서 순례자들 중에 거의 꼴등으로 마을에 도착한 우리에게 잘 곳이 없을 수도 있다는 걸 몰랐다. 

수비리 입구에서부터 공립 알베르게(순례자 숙소)에 도착하기까지 호스텔, 호텔, 사립 알베르게, 심지어 펜션까지... 모든 숙박업소에서 우린 이 말을 들었다.

스페인 말로는 "콤플레또(completo)", 영어로는 "풀(full)", 우리말로 "방 없어"였다.

그래도 공립 알베르게엔 누울 자리가 남아 있었다. 딱 베드 3개가 남았단다. 20여 명이 함께 자는 큰 방에 베드 1개가 남았고, 4명이 한 방에서 자는 작은 방에 베드 2개가 있다고 했다. 그런데 4인실에 남은 두 베드는 같은 방에 있는 게 아니라 각기 다른 방에 하나씩 있다고 했다. 이래저래 이산가족이 될 판, 우리는 4인실 각각 다른 방에 겨우 잠자리를 정했다.

수비리 마을의 공립 알베르게 4인실 모습이다.
 수비리 마을의 공립 알베르게 4인실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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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게 앞 순례자들의 신발과 지팡이가 고된 하루를 보여준다.
 알베르게 앞 순례자들의 신발과 지팡이가 고된 하루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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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비리의 공립 알베르게 4인실 베드는 하나에 8유로였다.

4인실 보다 더 저렴한 다인실에 남아 있던 베드 하나도 금세 찼다. 그리고 이날 수비리의 모든 방은 "full"이 됐다. 더 늦게 도착한 순례자들은 이전 마을이나 다음 마을로 버스를 타고 가야 했다.

일찍 도착한 순례자들이 따뜻한 물을 다 써버려 찬 물에 겨우 씻은 것도 괜찮았다. 남편은 다른 방에 있고, 말 한 마디 통하지 않는 스페인 부부와 같은 방을 쓰는데 그 스페인 남편이 반 벗은 몸으로 같은 방에 있는 것도 뭐 괜찮았다. 거대한 덩치의 불가리아 아가씨가 내 아래 베드에서 밤새 뒤척여 부실한 2층 베드에 있던 내가 정말 한숨도 잠을 못잔 것도 괜찮았다.

하지만 한 가지.

'앞으로도 이런 일이 계속되면 어떡하지?'

두려움이 찾아왔다.



태그:#산티아고 순례, #카미노, #수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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