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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원제는 <In Defense of a Liberal Education>이다. 우리말로 하면 <교양교육을 위한 변호> 정도 되겠다. <하버드 학생들은 더 이상 인문학을 공부하지 않는다>는 한국어 제목은 책의 본의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다분하다.

오히려 이 책은 첨단 테크놀로지 시대에 필요한 교양교육의 재정립과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제목에 대한 논란은 접어두고 내용에만 집중해서 보면, 책은 21세기 교육의 진로에 관해 대단히 유의미한 고민을 던져준다.

교양교육은 여섯 번째 직업에 도움 줄 수 있어야

<하버드 학생들은 더 이상 인문학을 공부하지 않는다> 표지
 <하버드 학생들은 더 이상 인문학을 공부하지 않는다> 표지
ⓒ 사회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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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현재 직업이 무엇이든 간에 당신이 대학에서 전공이라고 배운 학문은 졸업 후에 생계를 위해 얻은 직업과 별다른 관계가 없을 것이다. 설령 전공인 직업과 관련이 있더라도 그 관련성은 변하기 마련이다. 예컨대 10년 전에 컴퓨터 언어를 작성하는 법을 배운 사람도 이제는 완전히 다른 애플리케이션의 세계와 모바일 기기를 맞닥뜨려야 한다.

우리가 습득한 기능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터득한 방법론은 그대로 유지된다. 따라서 오늘날 산업과 직업의 세계가 순식간에 변한다는 걸 고려하더라도 우리는 지금까지 몸에 익힌 기능과 방법론을 새로운 과제에 적용할 수밖에 없다. 학습과 재학습, 설비와 재설비는 현대 경제학의 핵심이다. 드류 파우스트 하버드 대학교 총장도 이런 맥락에서 교양 교육은 "첫 직업이 아니라 여섯 번 째 직업을 준비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해주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96쪽)

아이 키우는 입장에서 이 대목은 공감과 당혹감을 동시에 준다. 돌이켜보면 대학 1학년 때 수강했던 컴퓨터 관련 교양과목, '포트란'이나 'C 언어' 같은 것들은 지금 하등 쓸모가 없다. 외계어처럼 낯선 컴퓨터 언어를 배운답시고 시간을 보내느니 글쓰기 강좌나 어학 강좌를 듣는 편이 더 나았을 것이다.

이건 순전히 현재 시점에서의 이야기이고, 컴퓨터와 인터넷이 대중화되는 초창기였던 당시에는 그런 과목을 들어줘야 미래에 뒤처지지 않는 것처럼 여겨졌다. 그런 측면에서 지금 배우는 지식이 몇 십년 후, 아니 당장 몇 년 후에도 필요한 지식인지에 대해서는 확신하기 어렵다.

저자가 지적하듯이 새로운 직업과 별다른 관련이 없을지도 모른다. 세상은 정말 너무나 빨리 변하고 있다. 그 변화를 추동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첨단과학기술 혁명이다.

그러나 당황스럽기도 하다. 첫 번째 직업이 아니라 여섯 번째 직업을 준비하라니? 이 말은 대략 두 가지 의미를 함축한다. 첫째, 안정적인 정규직 기반의 완전고용시대, 평생직장시대가 끝나고 단기적인 일자리 위주로 고용 구조가 바뀔 것이라는 점이다. 둘째, 성장과 고용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전혀 다른 시대의 도래에 걸맞게 교육도 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 다 복잡한 쟁점들을 포함하는 내용이지만, 여기서는 책의 주제인 교육 문제에만 초점을 맞추도록 하자.

어쨌거나 학부모 입장에서 볼 때 지금 교육은 매우 혼란스럽다. 기존의 교육제도와 커리큘럼을 무작정 신뢰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대안학교와 같은 다른 길을 찾는 것도 쉬운 선택은 아니다. 공교육이건 대안교육이건 '21세기 첨단과학기술 시대의 관점에서 본 교육'이라는 측면에서는 양자가 다 속시원한 전망을 제시하고 있지 못하다.

또한 인문학 위주의 교육이 첨단과학기술 시대의 요구에 부합하지 못하고 복고적인 경향에 머무르고 있다는 비판과 입시 위주, 기능 위주의 교육을 중시한 나머지 인문학 교육을 소홀히 하는 풍조에 대한 비판이 혼재되어 있다.

이 책의 저자인 파리드 자카리아는 "교양교육을 도구적 관점에서 이해하는 쪽과 그 자체로 목적이라 생각하는 쪽 간의 논쟁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며 "교양교육은 언제나 두 접근법, 즉 실리적인 접근법과 철학적인 접근법을 결합해왔다"고(48쪽) 설명한다.

그가 보기에 처음부터 교양교육의 중심에는 과학이 있었다. 고대 세계 이후 오랫동안 과학은 추상적인 지식을 향해 가는 지름길이었다. 반면에 언어, 역사와 같은 인문학은 정치가, 행정가, 법률가, 상인으로서의 준비를 갖추는 데 목적이 있었다.

근대 과학혁명기 이후 과학적 탐구는 끊임없이 종교와 충돌하며 갈등을 일으켰고, 과학은 과학자들의 몫으로 남겨졌다. 저자가 보기에 지난 세기에 교양교육에서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과학과 테크놀로지에 관련된 과목의 폄하였다. 특히 물리학에서 양자혁명이 일어난 후에는 일반인이 과학을 이해해서 다른 분야의 지식과 통합하기가 훨씬 어려워졌다.

그러나 저자는 역설적이게도 첨단과학기술의 발달이야말로 교양교육이 폭넓게 확대되는 시대를 열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새로운 테크놀로지는 오히려 지식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고 새로운 사고방식을 알려준다"며 "좋은 교육제도라면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현실적인 문제들을 직시하며 해결하는 방법을 가르치려고 애써야지, 그런 문제들이 존재하지 않은 것처럼 외면해서는 안된다"(72)고 지적한다.

첨단과학기술 혁명의 시대, 교양교육을 개혁하자

21세기 교양교육 혁신의 주목할 만한 기획으로 저자는 싱가포르의 '예일-NUS 칼리지'(Yale-NUS College)를 소개한다. '예일-엔유에스 칼리지'는 2011년 미국의 예일대학교와 싱가포르 국립대학교가 공동으로 설립한 새로운 형태의 교육기관으로 26국으로부터 157명의 학생을 모집했다.

양 대학의 교수들은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교양교육의 개념을 재점검하는 기회로 이 프로젝트를 활용했다. 이 학교의 커리큘럼에는 바람직한 전통을 계승하고, 어떤 부분에서는 과거의 전통을 개선하며, 어떤 부분에서는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 내겠다는 생각이 반영되어 있다.

2013년 4월, 이 프로젝트와 관련된 위원회는 보고서를 발행했는데 그 내용이 대단히 급진적이고 혁신적이었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학교는 학부생들의 교육에서 과학의 위치를 복원시킨다는 뜻에서 '리버럴 아츠 앤드 사이언스'(liberal arts and science)칼리지로 칭한다. 둘째, 학과가 이종교배, 즉 학제간 학습과 공동작업을 억제하는 칸막이벽이라 생각하며 학과를 구분하지 않는다. 셋째, 핵심교과과정은 학생들에게 다양한 사고법을 알려주는데 주된 목적이 있다. 학생이 궁극적으로 어떤 과목을 전공하든지 간에 과학이 어떤 것인지 깨닫도록 과학적 사실보다 과학적 방법론을 어떤 과정에서나 강조한다.' (79쪽)

저자는 "이 프로젝트의 교육자들은 예일-NUS가 지향해야 할 사명과 목표를 멋지게 고안해내며, 부활한 교양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까지 제시해주었다"며 "요컨대 엄밀한 교양 교육이라면 과학의 중요성을 재인식하며 과학의 본질을 가르치고, 핵심교과과정과 선택과목을 개방적으로 결합하며, 세계가 지향하는 방향을 반영하는 동시에 새롭게 부상하는 국가와 문화에 대한 학습이 어떤 형태의 교육에서든 필수적인 부분이 되어야 한다는게 예일-NUS의 목표"라고(82쪽) 평가했다.

교양교육은 과학교육과 대척점에 서 있는 것이 아니다. 스티브 잡스의 아이패드 성공이 보여주듯이 테크놀로지와 인문학의 결합은 창조의 원동력이 된다. 편향적인 지식의 습득이 아닌 융합적인 교육이 중요하다. 무엇보다 교양교육은 학생들의 머리에 고전적인 지식을 채워넣는 것이 아니다. 요점은 스스로 사고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다.

교양교육은 시야를 넓혀주고 더 나은 인간으로의 성장을 독려한다. '예일-NUS 칼리지' 프로젝트처럼 다양하게 생각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커리큘럼이 필요하다. 저자의 말처럼 "교양교육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다 낫고 좋은 교양교육을 실시하는 것"(127쪽)이다.

덧붙이는 글 | <하버드 학생들은 더 이상 인문학을 공부하지 않는다> (파리드 자카리아 지음 / 사회평론 펴냄 / 2015.11. / 1만3000원)

이 기사는 이민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yes24.com/xfile340)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하버드 학생들은 더 이상 인문학을 공부하지 않는다

파리드 자카리아 지음, 강주헌 옮김, 사회평론(2015)


태그:#인문학, #교양교육,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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