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방영된 <다큐멘터리 3일>(아래 <다큐 3일>)에서는 신선한 기획이 시도되었다. 세계를 주무르는 두 강대국인 미국과 중국, 지지 않는 해와 떠오르는 해와 같은 두 나라의 각각 한 장소를 배경으로 72시간의 다큐멘터리가 마련된 것이다. 또한 이 기획이 특별한 점은, 미국은 일본의 제작진이, 중국은 한국의 제작진이 참여했다는 점이다. 두 나라를 바라보는 일본과 한국의 관점의 묘한 이질감이, 똑같은 72시간이지만 전혀 다른 질감의 이야기를 탄생시켰다.

창사의 중식당과 뉴욕의 24시간 빨래방

 창사시에 있는 중국 최대 중식당

창사시에 있는 중국 최대 중식당 ⓒ KBS


우선 먼저 방영된 것은 한국의 <다큐 3일> 제작진이 마련한 기록이다. 이들은 중국 창사에 자리 잡은 중국 최대, 세계 최대의 중식당을 배경으로 삼았다. 그간 우리나라 예능을 통해 종종 얼굴을 비춘 이 후난성 창사시에 자리 잡은 세계 최대의 중식당은 자금성을 본 딴 엄청난 규모로, 연간 80여만 명의 손님이 찾아드는 성황리에 영업을 하는 중이다.

처음에는 비싼 가격으로 일부 부유층만을 상대로 하는 식당처럼 인식되었지만, 오히려 그런 인식이 경제 호황과 더불어 생활 수준이 높아진 중국인들의 '인기'를 얻었다. 이제는 결혼식을 비롯한 창사시 중국인들의 행사 전담 식당으로 거듭나고 있다.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결혼식 이벤트가 주말마다 벌어지며 해마다 이곳을 찾는 손님이 늘어나고 있는 이 식당. 요리, 서빙에서부터 설거지까지 450여 명의 직원이 곳곳에서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다.

한국의 제작진들이 중국의 가장 큰 식당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일본 NHK 제작진은 미국 뉴욕의 빨래방에 시선을 맞춘다. 뉴욕 퀸스 지역의 24시간 빨래방. 일찍이 신대륙의 자유를 찾아 대서양을 건넜던 유럽인들의 열망은 이제 아시아, 남아메리카, 중동 지역의 다양한 사람들로 퍼져 여전히 뉴욕을 '꿈'의 도시로 만든다. 그리고 그곳에서 빨랫감을 가지고 모여드는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은 그 여전한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이자, 현주소이다.

똑같이 '꿈'을 찾아 모여드는 사람들임에도 중국과 뉴욕이 전하는 정서는 다르다. 말이 '차이나'라는 한 나라지, 중국사는 중국이란 대륙의 구심점과 그 구심점에서 벗어나 각자 자신의 영역, 혹은 새로운 구심점을 생성하려는 무수한 민족의 쟁투이다. 중국의 역사 이래 가장 오랜 '한족'의 통치에 성공했다는 현 '차이나'에도 불구하고, 변방에서는 '한족'의 전횡에 맞서 자국의 독립을 원하는 티베트를 비롯한 다수의 소수민족이 존립한다.

그런 현대사의 구심점으로 이제 세계 경제 대국으로 세계 경제의 구심점으로 거듭나고 있는 중국. 그 차이나머니의 가장 큰 혜택을 받으며 성장한 창사시의 중식당에는, 차이나드림을 가지고 모여든 450명의 사람이 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을 72시간 지켜보는 중국의 가장 가까운 이웃 한국의 제작진들이 있다.

 창사 중식당의 10대 직원

창사 중식당의 10대 직원 ⓒ KBS


제작진에 눈에 비친 경제 호황 속의 중국, 그리고 그 증거인 창사시의 중식당은 몇천 명의 손님들을 끌어모아, 위안화를 뿌리며 거나하게 벌어지는 결혼식으로 보인다. 그런가 하면, 그런 경제 호황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서 일하는 450명의 직원은 마치 우리나라 경제 발전기 고향을 떠나 어려운 가족을 돕기 위해 일찍이 일터로 떠난 1960·1970년대의 젊은이들을 보는 시점과도 같다.

한편에서 휘황한 이벤트와 그 이벤트의 한 편에서 십 대의 어린 나이에도 공부를 접고 가족을 떠나 한 푼이라도 벌며 자신의 꿈을 기원하는 직원, 그리고 아이들은 물론, 부부마저 떨어져 살면서도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현실을 당차게 견뎌내는 또 다른 직원들. 다큐멘터리는 이들을 통해 경제 부흥과 그 경제 부흥기의 물결을 타고 저마다 자신의 분홍빛 미래를 꿈꾸는 중국인들의 허니문을 절묘하게 그려낸다.

중국과 미국, 그리고 그걸 바라보는 한국과 일본

 뉴욕 퀸스 타운

뉴욕 퀸스 타운 ⓒ NHK


그렇게 중국 창사의 대식당이 분명치는 않지만 그래도 '분홍빛 장밋빛 미래'의 꿈을 향한 72시간이었다면, 일터가 아닌, 빨래방이라는 정처 없는 공간에 카메라의 초점을 맞춘 뉴욕의 NHK 제작진이 보여준 '아메리칸 드림'은 어쩐지 삶의 '비상구'같은 느낌이 강하게 밀려온다.

폭력이 난무하는 자신들의 할렘가 주거 지역을 피해 그래도 안전한 빨래방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와 마음껏 놀게 해주는 흑인 할머니, 국가 부도 사태를 겪은 그리스를 피해 미국으로 돈을 벌기 위해 온 그리스인, 위험을 무릎 쓰고 미국으로 건너온 멕시코인. 하지만 그런 위험을 무릎 쓴 이주에도 불구하고 대학생이 되도록 여전히 미국 시민이 되지 못한 남미의 청년도 있다. 20여 년 뉴욕에 살면서 퀸스 지역의 변화를 몸으로 겪어낸 백인 원주민, 미국의 경제 위기 때 노숙자의 위기를 거쳐 다시 삶의 의지를 불태우는 가장까지.

불과 72시간이지만, 24시간 빨래방을 통해 좁게는 뉴욕 퀸스타운, 그리고 그곳을 통해 보이는 현재의 미국, 나아가 세계의 현실이 빨래하러 들르는 정처없는 이 공간을 통해 적나라하게 전달된다.

 뉴욕 퀸스 타운 24시간 빨래방

뉴욕 퀸스 타운 24시간 빨래방 ⓒ NHK


한국과 일본의 제작진이 사전에 상의하고 장소를 결정한 것인지, 아니면 각자 방송국의 결정이었는지 모르겠다. 절묘하게도 중국의 대식당은 이제 막 경제 대국으로 발돋움한 신흥 부국 중국의 흥분과 흥청거림, 설렘이 담겨있다. 반면 미국의 빨래방은 부유(浮流)하는 공간이다. 2001년 쌍둥이 빌딩 폭파 테러와 2008년의 경제 위기를 겪었음에도 여전히 세계 경제의 중심이다. 상대적으로 '자유'와 '부'에 대한 열망을 가질 수 있는, 꺼지지 않는 아메리칸 드림이 있다. 정처 없지만, 그런데도 포기할 수 없는 '자유'와 꿈을 찾아 날아드는 세계 각국 이민자들의 집합소 미국. 삭막한 24시간 빨래방을 통해 절묘하게 묘사된다.

또한, 어린 나이에 꿈을 찾아 식당의 궂은일을 마다치 않는 직원이나, 생이별을 마다치 않는 부부의 애틋한 사연에 초점을 맞춘 한국의 72시간은 한국식의 '정(情)'과 '신파' 사이의 절묘한 줄타기를 했다. 일본은 달랐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대한 까칠한 미국 중년의 질문마저 가감 없이 담아낸 NHK의 관찰자적인 시선은, 결코 녹록지 않을 아메리카 드림의 현주소인 양 거리감을 쉬이 접지 않는다. 어쩌면 한국이 바라보는 신흥 강대국 중국과, 일본이 바라보는 지지 않는 태양 미국에 대한 은밀한 속내가 은연중에 드러난 것일 지도 모른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다큐 3일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