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잡아야 산다>의 배우 김정태가 6일 오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화 <잡아야 산다>에서 헛똑똑이 형사 도정택 역을 맡은 김정태. 그간 국내영화에선 뜸했던 버디 코미디물로 그의 입장에선 마치 전공 분야처럼 익숙한 장르물이기도 하다. ⓒ 이정민


모처럼 배우 김정태가 자신의 전공 분야를 살렸다. 코미디 장르 영화 <잡아야 산다>에서 형사 역을 맡아 관객을 만나게 됐다. 이야기에 양념을 치는 조연이 아니다. 김승우와 함께 영화의 전면에 나섰다. "올해 좋은 기운이 느껴진다"라고 조심스러우면서도 진지하게 그가 말할 수 있는 이유다.

지난 6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조폭과 형사를 오가는 배우', '코미디 전문 배우'라는 기자의 수식어를 애써 부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출연작들이 증명하고 있고 그게 내 정체성"이라며 "시나리오만 좋다면 뭐든 한다, 에로 영화까지..."라고 웃어 보였다.

"영화는 비판할 수 있어도, 열정은 비판 말라"

 영화 <잡아야 산다>의 한 장면.

영화 <잡아야 산다>의 한 장면. 도정택(김정태 분)과 '쌍칼' 김승주(김승우 분)는 뜻하지 않게 고등학생들에게 중요한 물건을 뺏기면서 그들을 뒤쫓기에 이른다. 빠른 전개와 함께 이들이 주고받는 코믹한 대사가 영화의 백미다. ⓒ 오퍼스픽쳐스


<잡아야 산다>는 기본적으로 버디 무비(동료 혹은 친구가 중심인물인) 장르를 표방한 코미디 액션물이다. 이야기 자체는 복잡하지 않다. 쌍칼로 불리는 젊은 CEO 승주(김승우 분)와 강력계지만 헛똑똑이 형사 정택(김정태 분)이 불량 고등학생들을 쫓게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두 배우가 소속한 회사가 제작한 작품이기도 하기에 책임감이 더 클 법했다. 게다가 아이돌그룹 빅스의 혁을 비롯해 신인배우 다수와 호흡을 맞춰야 했다. "(회사 작품이니) 출연할 수밖에 없었다"면서 웃던 김정태는 "그렇다고 대충할 수 없었다"고 사연을 전했다.

"우리 영화가 대작은 아니지만 정말 오래간만에 나오는 버디 코미디지 않나. 사실 제작 환경이 그리 좋진 못했다. 사전 기획 기간도 짧았고, 두 달도 안 되는 일정 안에 영화를 만들어야 했다. 그 중압감 때문에 승우 형과 매일 밤 펜을 들고 정말 독사처럼 대본을 붙들고 있었다.

언론 시사회 직후 승우 형이 영화에 대해 아쉬움을 표했듯 나 역시 그렇긴 하다. 배우 입장에서 100% 만족하는 영화가 어디 있을까. 다만 우리 입장에선 최선을 다했다. 영화를 비판할 수는 있어도 우리 열정에 대한 비판은 용납할 수 없다. 근데 개봉하면 배우의 의견은 별로 중요한 게 아니다. 관객이 택하는 거지. 마치 투표처럼."

애드리브에 대하여

흔히들 김정태를 두고 철저히 현장형 배우라고 한다. 주어진 대사에 갇히는 게 아니라 상황과 분위기에 맞게 즉흥연기를 하거나 적극적으로 아이디어를 보태기도 한다. 그래서 일각에선 '예민하고 까칠한 배우'라는 말도 듣는다. 김정태 역시 이를 잘 알고 있었다. <잡아야 산다>에 적용한 여러 애드리브를 전하며 그는 "현장을 많이 타는 편"이라고 자신을 설명했다.

"현장 소품과 동선을 일일이 점검하며 일하는 편인데, 무한정 촬영이 연기되거나 약속이 안 지켜지면 진이 빠지곤 한다. 그런 의미에서 현장을 타는 배우인 거다. 신마다 몇 번을 같은 내용을 가지고 연기하거든. 감독님이 그중 좋은 걸 택하는 거고. 근데 준비 과정에서 어그러지면 힘이 빠지는 거지. 엄밀히 말해 애드리브도 영화를 바라보는 시각과 태도가 서로 맞아야 가능한 거다.

특별히 애드리브를 의식하진 않는다. 연애할 때 마음으론 좋아하지만, 겉으로는 안 좋아하는 척 행동할 때가 있잖나. 그것과 비슷하다. 내 삶 속에 모든 애드리브가 숨어있다. 촬영장이라고 뭔가 고정된 의식을 갖는 것도 아니다. 자연스러운 연기가 최고의 경지는 아니지만 분명 미덕인 부분이 있거든. 그걸 녹여 내리려고 한다."

다시 출발점에 서다

 영화 <잡아야 산다>의 배우 김정태가 6일 오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년 전 6.4 지방선거에 출마한 한 후보 유세장에 나타난 일로 곤욕을 겪은 김정태는 그 후 대인 기피증을 앓으며 두문분출했다. 최근 MBC 예능 <복면가왕> 출연으로 본격적인 외부활동에 들어갔다. 가족을 비롯해 배우 김승우 등 소수의 지인들이 그의 곁을 지키며 힘을 보탰다. ⓒ 이정민


17년을 바라보는 경력이지만 최근 2년은 그에게 가장 힘들었던 때였다. 생계를 위해 20대 초부터 각종 아르바이트를 전전했던 때도 잘 버텼는데, 오히려 중년 시기에 큰 벽을 만났다. 연기자를 바라보는 대중과 자신 간의 시각차 때문이었다. 2011년 KBS 예능 <1박 2일> '명품조연' 특집에 출연해 급부상한 그는 2014년 KBS 예능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아들과 함께 출연하며 인기의 정점을 찍었다. 그러던 중 지방선거 기간 경남 양산시장 후보로 나온 새누리당 나동연의 유세장에 등장해 뭇매를 맞았고, 프로그램에서 자진 하차했다.

당시 일에 대해 적극적인 해명이 있었지만, 상처는 막을 수 없었다. '선거운동인지 모르고 개인적 약속이라 방문했던 차에 벌어진 일'이라는 설명은 부메랑이 돼 그는 물론이고 가족에까지 날아왔다. "하루아침에 새누리당 '빠'가 됐다"라며 "내 트위터를 보면 아시겠지만, 새누리당 지지자도 아니다"라고 그가 전제를 조심스럽게 밝혔다.

그때 이후 김정태는 전화번호부를 다 지웠고 가족과만 시간을 보냈다. "구차하게 설명하기 싫었고, 사람이 마냥 싫어졌다"던 그는 "소중한 사람들이 있기에 버틸 수 있었다, 다시 시작하자는 마음으로 생활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 이후 개인적인 일도 더 있었다. (어떤 일인지 묻는 말에 잠시 침묵) 아내가 옷 장사를 시작했다. (아내가) 건축학 박사인데 (돈을) 벌어보겠다고 일을 하더라. 너무 마음이 아팠고, 고마웠다. 그 당시 2년 간 한 번도 부부싸움을 안 했다. 어려울 때 안 싸우는 부부가 진짜 궁합이 좋은 거다. 다른 사람들은 왜 여러 일에 타협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나 역시 맞으면 맞고 아니면 아니라는 생각으로 사는 사람이라 어떤 타협을 잘 못 한다. 타협이란 것도 내가 유리할 때 해야 의미가 있지 불리할 때 하는 건 굴욕이잖나.

그 일 전까진 스스로 연예인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배우는 연기로 먹고사는 거지 대중의 관심을 먹고 사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 거지. 이젠 좀 더 조심해야 할 부분을 알게 됐고, 좀 세련돼져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단련

김정태에 대해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건 스스로 비좁은 자리를 넓혀온 투지의 배우라는 점이다. 영화 <친구>의 도루코 역으로 대중에게 각인된 이후 말 그대로 몸으로 부딪히고 조금씩 성장해왔다. 데뷔 초기 수년 간 철저히 깡패와 건달이었던 그가 형사 역할로 이름을 알렸고, 이젠 명실공히 코미디 영역에서 독보적인 개성을 인정받고 있다. 그는 수긍했다. "작품마다 내가 이 정도밖에 안 되나 자책하며 화를 내고 악을 써서 그 작은 구멍을 넓혀온 거라 할 수 있다"고.

왜 그렇게 고생하면서도 연기를 포기하지 않았는지 물으니 운명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14년 전 그를 소환했다. 영화 <해적, 디스코왕 되다>의 오른팔 역을 맡게 된 그는 계약금 600만 원을 받기 위해 고향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갔다. 간 쇼크로 투병 중이었던 그에게, 병원에선 그가 사망해도 자신들 책임이 아니라는 확인서까지 요구했다.

그의 눈시울이 눈에 띄게 붉어졌다. 당시 돌아가신 어머니를 곱씹으며 그가 말을 이었다.

"스트레스로 내 몸이 안 좋아지고 우리 어머니마저 편찮게 됐음에도 지금껏 배우를 하고 있다. 연기가 뭔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지만, 이게 내 운명이란 말밖엔 설명할 수 있는 단어가 없는 거 같다. 조연이라는 자리가 참 녹록지 않다. 이미지가 아닌 연기로 승부해야 하니까 악다구니도 생긴다. 그래서 한 편으론 관계자들에게 안 좋은 소리도 듣곤 했다. 신경이 쓰이지. 그런데 어쩌겠나. 이미지 메이킹이 물론 중요하지만, 악다구니를 부려서라도 성장하고 찾아 먹는 수밖에 없지 않나. 가만히 있어도 빛나는 친구들이 있다. 다이아몬드지. 반면 난 철광석이다."

녹이고 단련하는 과정을 거쳐 철광석은 쓸모 있는 도구가 된다. 그게 운명이라면 김정태는 기꺼이 스스로 불 속에 뛰어들 준비가 된 배우였다. 그렇다고 너무 그를 거친 남자로만 여기지 말자. 올해 안에 그의 첫 번째 시집이 나올 예정이니 말이다. 운문과 연기를 아끼고 가족을 사랑하는 그야말로 진짜 이 시대의 로맨티시스트다.

 영화 <잡아야 산다>의 배우 김정태가 6일 오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인터뷰 중 최영미, 마종기 시인 등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를 언급하던 그는 "운문이 연기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감정과 상황을 대사에 함축하는 요령을 시를 통해 배울 수 있다는 이유였다. 올 가을 무렵 김정태는 자신이 그간 써 온 습작을 모아 발표할 계획을 갖고 있었다.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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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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