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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까지 나는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초등학교 앞에서 전단지 뿌리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리고 지금은 백수로 지내고 있다. 초등학생들이 방학을 했기 때문이다. 돈줄은 끊겼고 나이는 한 살을 더 먹었다. 

이 모든 것이 다 정치인들 때문이라고 주장한다면 정치인들은 뭐라고 반박할까. 다소 억지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최근까지 우리 정치인들이 보여준 모습을 떠올려 본다면 100% 틀린 주장은 아닐 것이다.

나는 아침 6시에 일어나 전단지 돌리는 일로 용돈을 마련하고, 다 돌리고 나면 밤늦은 시간까지 도서관에서 공부에 매진하지만, 앞날이 너무나도 캄캄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이 느낌, 나만 알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다니는 도서관에는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청년들이 너무나도 많다.

어디 그뿐인가. 우리동네 치킨집 사장님은 불경기 때문에 장사가 힘들다. 우리 부모님은 혹여나 올해에도 연말정산에서 '세금폭탄'을 맞지는 않을까 노심초사다.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하고 있다.

복잡하게 '수저 계급론'이며 'N포 세대'며 하는 어려운 말을 풀어서 쓸 필요도 없다. 그냥 '헬조선'이다. 김무성 대표는 젊은이들의 이러한 자학적 태도가 교과서 때문이라고 말한 적이 있지만 그렇지 않다. 헬조선은 정치인들 때문이다.

2012년 JTBC에서 방영한 <소녀시대와 위험한 소년들>화면 갈무리
 2012년 JTBC에서 방영한 <소녀시대와 위험한 소년들>화면 갈무리
ⓒ 주현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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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JTBC에서 방영한 <소녀시대와 위험한 소년들>의 한 장면이다. 이 방송은 걸그룹 소녀시대가 소위 '말썽 학생'으로 취급되는 학생들을 변화로 이끌어간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방송의 주인공 중 한 명인 황용현씨는 소녀시대와의 진로상담에서 국회의원이 되고 싶다는 당찬 포부를 밝혔는데, 그 이유를 '놀고먹는 것 같다'고 밝혀 웃음을 자아낸 바 있다.

말썽은 누가 부리고 있나

여야가 선거구 획정에 실패했다고,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고 뉴스에서 난리다.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들이 불법을 저질렀다며 곳곳에서 비난이 일고 있다. 동시에 감탄스럽다는 반응도 없지 않다. "어쩌면 저렇게 일을 열심히 할 수가 있을까"싶다고 해야하나. 본인들에게 무엇이 더 유리할지에 대한 고민은 기가 막히게 신중하고 열심인 모습이 감탄스럽기까지 하다는 것이다.

정부는 25년간 끌어온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불과 며칠 만에 마무리 지어 버렸고, 의회는 각각의 정치적 이기심에 매몰돼서 제때 할 일을 마무리 짓지 못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PSY 노래의 가사가 떠올랐다.

"맞다고 생각해도 누가 해라 하면 안 들어, 아니라고 생각해도 누가 맞다 하면 막 우겨
... 꼭 하지 말라는 짓 넌 어쩜 그리 골라하는지"
-PSY의 노래 '청개구리 中-

4일 오전에는 12월 임시국회를 나흘밖에 앞두지 않은 상황에서 노동개혁 5개 법안과 경제활성화 법안 처리를 위한 여야 간의 협상 움직임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단 한 곳의 상임위원회도 열리지 않았다는 뉴스가 나왔다. '개혁이니 추진하자'던 주장도, '개악이니 막아야 한다'던 주장들도 모두 부질없는 외침으로 남게 됐다. 정치인들의 관심사는 오로지 본인들에게 유리한 선거구 획정이다. 물론 그마저도 못해냈지만.

나는 헬조선의 '실체'를 보았다

김무성 대표는 "우리 청년들이 좌파 교과서 때문에 자학적 사고를 갖고 있다"는 발언으로 많은 사람들을 황당하게 만든 바 있다. 헬조선은 자학과 같은 정신적인 문제가 아니라 늘 우리 곁에서 '실체'로 존재해 왔는데 혼자서만 정답은 모르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김무성 대표가 당시에 했던 말들이 모두 틀린 내용은 아니다. 그의 말대로 대한민국은 충분히 자랑스러운 국가다. 학생들이 일으킨 혁명으로 독재정권을 무너트렸고 온 국민이 함께 나서서 직접선거를 쟁취한 한편, 부도위기에 빠진 국가도 금을 모아 살려낸 대단한 나라다.

현재도 대한민국은 충분히 멋진 나라다. 김연아와 박지성은 세계적 스타가 된 지 오래고,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를 본 수많은 외국인들은 우리의 치맥을 따라 먹는다. 한국 여배우가 쓰는 화장품을 사기 위해 국내로 관광을 오는가 하면 한국 아이돌 가수가 해외에서 공연할 때마다 구름관중들이 몰린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전 세계를 하나로 묶었다.

이처럼 "MADE IN KOREA"가 상품과 문화, 스포츠를 아우르며 세계적인 위상을 키워 나가는 동안 정치권은 여전히 후진적 수준에서 못 벗어나고 있다. 우리 국회의원들의 주먹질이 전 세계에 보도된 게 불과 몇 년 전이며 최근에는 국정원 댓글 조작, 세월호, 메르스, 국정화 교과서, 위안부 관련 졸속협상 등 수많은 사건들이 터지면서 외신들이 되려 우리 사회를 걱정하는 웃지못할 일들도 많이 발생했다. 그것도 모자라 우리 정부는 그러한 외신의 입을 막으려다가 더 큰 망신을 자초해 버리기까지 했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발전을 더디게 만들고 있는 것은 정치권이다. 민주노총이 우리 사회 발전을 더디게 만든다는 김무성 대표의 말은 또 틀렸다.

이러한 정치권의 무능으로 인해 우리 국민들은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그 피해를 감내할 수밖에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일자리 문제, 빈부격차, 금수저 논란 등으로 인한 사회적 불신 등 수많은 구조적 문제가 해결되질 않고 있으며 나아질 기미도 안 보인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정치인들은 어김없이 저들의 이기심만을 내세우며 싸우고 있는 중이다. 그들만의 리그에서 그들만의 밥그릇을 건 이 사투에서 나는 비로소 헬조선의 실체를 보았다.

다가오는 총선... 또 다시 차(次)악을 선택해야 되나요

한때 정치를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안철수가 대선후보 지지율 1위를 차지했던 것도, 지금 우리나라에 살고 있지도 않은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차기 대선후보 지지율 1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도 모두 '새정치'에 대한 국민의 갈망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처럼 국민의 갈망이 눈에 뻔히 보이는데도 현재의 우리 정치 현실은 참담하다. 정권을 견제하려 들면 '배신의 정치'로 낙인 찍히고, 더 큰 정치를 위해선 정권의 시녀 노릇을 해야 하는 것이 오늘날 우리 집권여당의 현실이다.

그렇다면 야당의 역할이 중요한데 야당 또한 불과 며칠 전까지 사용하던 당명이 무색하게 새정치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어김없이 분열과 갈등을 나타내는 한편 정권심판론은 또 등장했다. 그러면서도 정권을 심판한 그 이후에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에 대한 내용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이런 식이라면 국민들은 총선에서 '최악은 피하고 보자'는 식의 투표를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렇게 당선된 이들은 또다시 국회에서 본인들의 목소리를 '국민의 목소리'로 둔갑시키고 활동할 위험이 크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 사회는 결코 헬조선을 벗어날 수가 없을 것이다.

현재의 정치권 모습은 민심을 대변하는 모습이 아니다. 여당도 야당도 마찬가지다. 이번 선거구 획정 실패는 양쪽 모두 조금도 양보할 수 없다는 극단의 정치적 이기심이 초래한 결과다. 총선을 앞두고 있는 때일수록 정치인들은 더 반성해야 한다. 지금과 같은 모습을 보여놓고 "잘할 테니 뽑아 주십쇼"라고 외친다면 그 말을 믿을 국민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국민들은 바보가 아니다. 많은 국민들이 최악을 면하기 위해, 혹은 민주시민으로서의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 투표에 참여한다고들 말한다. 이는, 다시 말해 국민의 투표로 당선됐다는 이유만으로 정치인들의 모든 행동이 용서될 것이란 기대는 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다.

국민들이 바라는 것은 지금과 같은 현실에 마침표를 찍어줄 새정치의 모습이다. 저들의 밥그릇을 두고 싸우는 모습이 아니라, 우리의 밥그릇을 위해 일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하는 것이다.

따라서 정치인들은 지금 전략을 고민할 때가 아니라 잘못을 반성하고 국민들에게 어떻게 진심을 전달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될 때다. 진심만 전달 된다면 전략은 어떻게 짜든 무방하다.  


태그:#선거구 공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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