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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에 오르는 아이들과 엄마
 기차에 오르는 아이들과 엄마
ⓒ 권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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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태어난 이후로 장거리 여행을 떠나 본 적이 없다. 큰아이를 임신했을 때, 기회가 생겨서 남편과 신혼 분위기 물씬 풍기며 제주도 여행을 다녀온 이후 약 3년 만에 가족여행을 떠나게 됐다. 부담 없는 당일치기 코스, 운전을 하지 않고 도란도란 시간을 보내기 좋을 만한 이동 수단은 단연코 기차였다.

기차 여행에 대한 낭만이라는 것이 어린애 둘을 데리고 가는 우리 가족에게도 통하리라는 기대는 애초부터 없었다. 그래도 바라는 게 있다면 목적지인 여수까지 가는 세 시간 동안 아이들이 보채지 않는 것. 아침 일찍 급하게 싼 김밥과 과일들을 풀어놓아 주구장창 먹으며 시간을 보낸 아이들은 여수까지 가는 동안 다행히도 많이 보채지는 않았다.

그러나 들뜬 마음으로 도착한 여수의 날씨는 들떴던 기분을 가라앉게 했다. 반갑지 않은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일치기 여행이라 그리 거창한 계획은 세워오지 않았지만, 갑자기 내리는 비 때문에 가려고 목표했던 몇몇 장소에 가지 못했다. 남은 장소는 딱 하나, 실내에서 자유로이 관람할 수 있는 여수 아쿠아플라넷이었다.

다시는 이곳에 오지 않으리라... 다짐하고 기차에 오르다

수조를 빙빙 돌기만 하는 상어와 유모차에 앉은 아이들
 수조를 빙빙 돌기만 하는 상어와 유모차에 앉은 아이들
ⓒ 권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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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인 데다가 비까지 와서 인지 관람객은 붐볐다. 기차에서 낮잠을 자리라 기대했던 아이들은 낮잠을 단 1분도 자지 않았기 때문에 여수에 도착했을 때엔 이미 피곤해져 있는 상태였다.

피곤해서 만사가 짜증인 아이들을 감당할 수 없어 유모차를 유상으로 두 대 대여했다. 여행이 아닌 과제를 치르는 듯 무거운 마음으로 두 녀석을 유모차에 태우고 관람을 시작했다. 어딜 가도 붐비는 그곳에서는 본래 가졌던 여행의 목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수조에 갇혀있는 상어가 건조한 눈으로 좁은 공간을 빙빙 돌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는데 그게 바로 우리 가족 모습 같았다. 목적을 잃은 채 그저 부유하는 상어의 슬픈 모습은 다시는 이곳에 오지 않으리라 다짐하게 된 계기가 됐다. 히터를 꽉 차게 켜 놓은 실내의 공기는 붐비는 사람들로 인해 더욱 갑갑한 느낌을 줬고, 아이들은 기차에서보다 더 보채다가 결국 유모차에서 잠이 들었다.

여수에서 대전까지 돌아오는 기차는 5시 50분에 출발하는 S트레인 4874호였다. 오전에 여수로 출발할 때도 S트레인을 탔었는데, S트레인은 관광열차답게 기존 열차보다 특색 있는 분위기였다.

오전엔 신청곡과 사연을 받아 승무원이 읽어주고, 신청곡도 틀어줬다. 라디오 공개방송 같은 분위기로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의 설렘을 더욱 고조시켜주기도 했다. 열차 내부의 일부 좌석은 가운데에 테이블이 있고 4인이 마주보며 앉아 갈 수 있게 돼 있기도 했다. 옛 추억을 떠올릴 수 있게끔 과거로 훌쩍 넘어간 듯 지나간 포스터들과 문구들로 장식된 스낵칸의 인테리어는 낯설다기보다 좀 더 편안한 느낌이었다.

돌아오는 기차에 타기 전 역내에서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간식을 배불리 먹었음에도 아이들은 기차에 타자마자 배고프다는 말부터 했다. 집에 도착해서 먹이려 했던 저녁은 열차 내에서 파는 도시락으로 대신했다. 아쿠아플라넷에서 내내 답답한 공기를 마시며 유모차에 앉아 잠깐 쪽잠을 잤던 아이들은 극도로 피곤해진 상태로 가만있지 않았다. 저녁 시간이라서 그랬는지 오전보다 기차는 더 적막에 가까운 분위기였다.

아이들이 울기 시작하면 일단 좌석을 떠나 문을 닫고 나와 통로에 안고 서 있어야 했다. 남편과 번갈아서 왔다갔다 하며 아이들을 달랬는데, 통로에 서 있으며 바라본 야경이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

다른 여행객들에게 폐가 될까봐 노심초사하는 마음으로 여행에 대한 후회가 들 때쯤, 여승무원 한 분이 오셔서 아이들에게 관심을 보였다. 자리에 앉아서 짜증내고 보챌 때에도 살포시 웃으며 아이들에게 말을 걸어줬고, 통로에 힘겹게 아이를 안고 서 있을 때에도 한참동안 아이와의 교감을 시도하는 성의를 보여줬다. 그러다 결국 사고 하나가 터졌다.

수족관의 물고기보다 풍선이 더 좋은 아이들

스낵칸에 앉아 도시락을 먹이는데 작은 아이가 생수병을 가지고 놀다 물을 쏟아버린 것이었다. 뚜껑이 잘못 닫혀있었는지 아이가 뚜껑을 열어버린 건지 원인을 파악할 새도 없이 물은 순식간에 다 쏟아졌다. 아이는 젖지 않았지만 아이를 안고 있던 내 바지 한 쪽은 다 젖었고 흘러내린 물은 흥건해져 건너편 자리 밑까지 차지해버렸다.

어른들 만류에도 고집스레 가지고 놀다가 쏟아버린 것도 모자라 내 바지까지 잔뜩 적시고 열차 바닥을 물바다로 만든 아이가 도저히 곱게 보이지가 않았다. 게다가 놀래서 울음까지 크게 터진 아이를 곱든 밉든 일단 달래긴 해야 했다. 내 표정을 빤히 읽고 있던 남편이 악쓰는 작은 아이를 들쳐 안고 통로로 나갔고, 큰아이는 자기도 데려 가라며 덩달아 울어버렸다.

말이 통하는 큰 아이를 제지한 뒤 젖어버린 바지와 흥건해진 바닥을 바라보다 휴지를 찾아 바닥을 닦고 있는데, 아이들에게 줄곧 다정했던 승무원이 다가와 걱정스레 물었다.

"어머니, 아이들 혹시 사탕 줘도 돼요?"
"네? 정말 죄송해요. 아…, 주시면 감사히 받을게요…."

사탕만 주는 줄 알았는데 곧이어 파란색 풍선을 가져와 남자아이인 큰애에게 쥐어주며 작은 막대사탕 두 개를 아이 몰래 내 손에 건네 주셨다.

"이건 비상용이에요" 하며 웃는 모습은, 마치 충치 때문에 아이들에게 사탕 먹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내 마음을 다 읽고 배려한 듯 느껴졌다. 곧이어 통로로 가서 남편과 함께 있던 작은 아이의 작은 손에도 핑크색 풍선을 쥐어주며 아이 울음을 단번에 그치게 하는 기적도 보여줬다.

부모로서 지치고 극한 상황에 처했던 터라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풍선으로 먼저 마음을 어루만져준 승무원의 센스와 배려는 몇 배는 더 감동이었다. '맘충'이라는 말만은 듣고 싶지 않아 시끄럽게 우는 아이들을 승객들 틈에서 데리고 나와 팔근육이 시큰거릴 정도로 안고 달랬다. 참다 못해 협박과 꾸중도 서슴지 않았다. 그럼에도 반대로 청개구리처럼 자주 울고 보채는 아이들에게, 눈총 한 번 주지 않고 따스히 대해준 승무원이 내겐 천사나 다름없었다.

풍선을 얻고 나서 자리에 앉아서 한참을 신나게 잘 놀던 아이들과 무사히 대전에 도착했다. 내려서 역내 출구로 향하려는데 풍선을 건네던 천사 같은 승무원을 또 마주쳤다. 바깥에 서서 내리고 타는 승객들의 안전을 살피던 승무원은 우리 아이들에게 또 한 번 활짝 웃어주며 인사를 했다. 천사의 미소였다.

종일 재잘대는 큰 아이는 집에 돌아와서 자기 전까지 그 날의 많은 일들을 이야기 했다.

"다음엔 여수는 가지 말자."
"왜?"
"재미 없었어."
"너 보고 싶어 하던 펭귄도 보고 상어도 보고 바다사자도 봤잖아."

"그래도 여수 안 가고 싶어~."
"그럼 기차도 타지 말까?"
"아니야. 기차는 또 타고 싶어."

엄마의 마음을 그대로 옮긴 듯, 내내 피곤하고 불편했던 여수에서의 시간이 아이도 같았던 것인지, 좋지 않았다는 감상만 읊어댔다. 그래도 기차는 또 타고 싶다는 아이의 그 한 마디 말은 자꾸만 예쁘고 친절했던 철도승무원을 떠올리게 한다. 그날 고맙다고 몇 번을 표했지만 지금 또 이렇게 말하고 싶다. 정말 고마웠다고.

덧붙이는 글 | 개인블로그 http://blog.naver.com/rnjstnswl3 중복게재



태그:#기차, #기차여행, #S트레인, #아이와 기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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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문화, 다양한 사회현상에 관해 공부하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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