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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사고 싶으면 어디로 가야할까? 요즘은 선택의 자유가 없다. 대형서점 아니면 온라인에서 구매를 해야 한다. 예전 같으면 동네 서점에 걸어서 갔다. 책방 주인에게 "좋은 책 추천해주세요" 질문을 던졌을지도 모른다.

1998년에 개봉한 영화 <유브 갓 메일>에서 캐슬린(맥 라이언)은 동네의 작은 아동 전문서점 주인이었다. 죠(톰 행크스)는 맨해튼의 대형 체인서점 '폭스 북스'의 사장이었다. PC통신 메일을 주고 받으며 서로에게 호감을 갖던 시절의 이야기다. 이들처럼 장문의 편지 글을 '읽던' 시대에서, 단문과 이모티콘 그림을 '보는' 시대로 바뀌었다. 사랑과 이별도 빠르게 소비된다. 완전히 바뀐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책과 글에서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동네 서점이 하나 둘 사라지더니 급기야는 지하철에서 책을 읽는 문화도 없어졌다. 스마트폰에서 전자북을 읽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책을 읽으면 깊은 사고를 할 수 있고, 생각의 폭과 넓이를 키우게 된다. 

생각하는 힘을 키워야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통찰하게 된다. 어떻게 살 것인지의 인생지도를 만들 수 있다. 컴퓨터가 사람의 뇌를 대체하는 시대를 살면서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다. 집 근처의 괜찮은 책방들이 사라진 요즘, 그래서 나는 인심 좋은 서점주인 아저씨처럼 말을 건네고 싶어졌다. "요즘, 고민이 많으세요? 이런 책이 있는데 한번 읽어보지 않겠어요?"

'아, 사는게 힘들다. 어떻게 살까?' 이런 질문을 품고, 일주일에 한두 번은 서점에 간다. 다양한 책의 장르 속에서 '우리도 행복하게 먹고 사는 문제의 답을 책에서 찾고 싶었다' 그런 주제와 내용을 가진 책을 찾아보기로 결심했다. 홍대의 인디서점, 강남 또는 광화문의 대형서점, 중고책방을 방문하기 시작하면서 읽기로 끝나지 않고, 괜찮은 책은 권해주고 싶어졌다. 

지하철에서도 책을 읽는 풍경이 되살아나기를 바란다. 내가 사는 지역에도 걸어서 갈 수 있는 서점과 도서관이 문을 열었으면 한다. 옛날처럼 책만 팔아서는 밥벌이가 안 된다. 다행히도 그런 고민을 품고, 여러가지의 독창적인 아이디어로 무장한 작은 책방이 곳곳에서 문을 열고 있어서 감사하게 생각한다. 지속 가능한 생존으로 밤 하늘의 별빛처럼 동네마다 환한 불을 다시 켰으면 한다. 

서울, 어느 동네에서 퇴근하는 길에
 서울, 어느 동네에서 퇴근하는 길에
ⓒ 황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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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어느 동네다. 서점이나 문화공간은 찾아볼 수 없다. 성미산 마을 정도는 아니어도 주민이 모여서 책을 읽고, 다양한 행사를 진행하면서, 더불어 즐길 수 있는 교육 문화가 만들어지는 꿈을 가진다. <동네도서관이 세상을 바꾼다. 이소이 요시미쓰>의 기적을 만들고 싶었다. 시골의 사람 사는 감성과 문화를 삭막한 도심의 이곳저곳에 입혀주고 싶다. 

귀농과 귀촌이 붐을 일으킨다고 하지만, 시골생활을 꿈꾸는 사람이 가족이 데리고 내려가는 결단을 하기란 쉽지 않다. 농사의 어려움은 논과 밭에서 일해본 사람은 안다. 주말농장에서 딸기를 따는 체험활동과 생계를 유지하는 문제는 다르다. 그래서 나는 시골로 내려가지 않더라도 큰 도시의 어느 자리에서 '사람 사는 느낌을 체험할 수 없을까?', '우리 아이도 즐겁게 뛰어 놀 수 있는 자유로운 공간은 없을까?' 하는 고민을 품게 되었다. 그런 마음으로 서점을 찾게 되었고, 눈에 띄는 몇 권의 책을 집어 든다.

<시골생활 : 지리산에서 이렇게 살 줄 몰랐지?> 겉표지.
 <시골생활 : 지리산에서 이렇게 살 줄 몰랐지?> 겉표지.
ⓒ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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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자락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의 이야기를 담은 책 <시골생활 : 지리산에서 이렇게 살 줄 몰랐지?>(문학과지성사 펴냄)는 저자인 정상순 님이 지리산에서 직접 느끼고 경험한 것과 변화의 움직임을 책으로 담았다.

지리산을 품고 있는 3개 도(전북, 전남, 경남), 5개 시군(구례군, 남원시, 산청군, 함양군, 하동군)에 위치한 25개의 커뮤니티를 인터뷰하고 정리했다. 이 책에서는 도시와는 다른 삶의 방식을 찾아 나선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도시를 떠나도 새로운 가능성이 펼쳐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또는, 귀농과 귀촌을 결심하지 않더라도 내가 사는 지역에서 시작해볼 수 있는 아이디어들이 담겨 있어서,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마을이장이 구례 인근의 꽃나무 사진을 올리면 그 꽃향기가 못내 그리운 도시 투자자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꽃향기를 보내주세요'라는 댓글을 올린다. 며칠 후 도시 투자자에게 도착한 것은 감자와 오이와 산마늘과 놀랍게도 동백꽃 한 송이다."'(30쪽)

'아...!' 하는 감탄사가 저절로 나온다. 판매자와 소비자의 관계가 아니라, 사람이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정겨운 마음을 느꼈다. 고객을 감동시키는 '지리산 맨땅에 펀드' 사례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지리산에는 주민이 함께 만드는 마을 신문도 있다. 지리산의 신문배달 과정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마을 주민이 직접 신문을 배달하는데, 부모 손을 잡고 따라나서는 아이들도 있고 혼자 힘으로 신문을 돌리는 이른바 '배달의 기수'도 있다. 이렇게 신문을 배포하면 신문에 대한 반응을 체감할 수 있다. 신문을 건네며 주고 받는 이야기를 통해 기삿거리를 확보할 수 있다."(91쪽) 마을 신문을 통해서도 사람냄새를 체험한다.

도시에서는 옆 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른다. 일간신문의 상업적인 배달시스템과는 전혀 다르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매일 새벽마다 누군가가 배달해주는 신문에 감사한 적은 없었다. 아침에 현관문 앞에 놓여진 신문을 보면서 배달원에게 따뜻한 마음을 전해본 적도 없었다. '외롭다'는 느낌은 나만의 생각일까? 우리의 사는 이야기가 담긴 마을신문을 만들고, 책도 만들고, 다양한 문화행사를 함께 열면, 좀 더 살기 좋은 동네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전북 남원시 산내면에는 작은 식당도 있다. '살래 청춘식당 마지'는 20대 여성 주인이 5명이다. 젊은이들은 농촌에서 밥벌이를 하겠다는 꿈을 안고 시작했다. 방문하는 이들을 환대하고, 산내에 뿌리 내리기 위한 살래 청춘들의 프로젝트를 목표로 한다.

이들의 목표는 '적당히 벌고 아주 잘 살자'이다. 인근에서 구입한 식재료를 갖고 요리를 한다. 마을 주민과 소통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길을 모색하고 있다. 새로운 대안을 찾고 있는 지리산의 청춘들이 적당히 벌고 아주 잘 살아서 오래 오래 행복하기를 바래본다.

아쉬운 점은 지리산 자락에서 활동하는 많은 단체의 소개에 집중하다 보니, 내용에 대한 깊이의 부족함을 느꼈다. 그래서 시골의 감성을 품고, 도시에서 어떻게 살아낼 것인지의 또 다른 책을 기다리는 이유가 되었다.

내가 사는 동네의 변화를 꿈꾸고 있거나, 귀농 또는 귀촌을 준비하는 사람은 다양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 매일 아침, 출근 하는 길에 버스와 지하철을 타기 위해 달려가는 삶에 지쳤다면 지리산 사람들의 유쾌한 이야기가 담긴 이 책을 추천한다.

[정상순 작가소개]

서울에서 나고 자랐다. 서른이 넘어 내려간 지리산 자락에서 평화롭게 살고 있다. '조용하게 살기' 이것이 그녀가 10년 넘게 유지해온 시골살이의 전략이자 전술이었다. 저자는 "사람들과의 어울림보다는 도심의 북적대는 지하철 환승로에 멀미를 느껴서, 콘크리트 건물 사이에서 역겨운 냄새를 풍기며 썩어가는 음식물 쓰레기가 두려워서 결정한 시골행이었다." 고 말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황춘원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jejecafe.blog.me/)에도 실립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시골생활 - 지리산에서 이렇게 살 줄 몰랐지?

정상순 지음, 지리산 이음 기획, 문학과지성사(2015)


태그:#시골생활, #지리산, #작은서점, #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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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강원도 속초로 이사 온 가족의 따뜻한 일상으로 위로와 희망을 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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