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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이나 제주에서 서울보다 가까운 곳. 짧으면 50분, 길어도 1시간 20분가량 비행기를 타면 도착할 수 있는 외국의 대도시. 일본 규슈(九州)의 관문인 후쿠오카는 이처럼 한국과 가깝다.

규슈는 일본의 4개 큰 섬 가운데 최남단에 있다.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땅 크기는 42%, 인구는 29% 수준이다. 지난 2010년 처음으로 100만 명을 돌파했던 외국인 관광객 수는 올해 10월 200만 명을 넘었다. 최근 10년 동안 최저치였던 지난 2009년 60만 명에 비하면 3배가 넘는다. 외국인 관광객의 절반을 차지하는 한국인 방문객도 올해 처음으로 100만 명을 넘어섰다.

외국인 관광객은 지난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최근 5년 동안 꾸준히 늘었다. 공교롭게도 규슈올레가 시작되고, 매년 코스를 늘려나간 기간과 겹친다. 규슈올레 연간 방문객은 지난 2012년 2만 명대로 시작해 올해 7만 명을 넘길 정도로 성장했다. 이 가운데 한국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60% 안팎이다. 새로 창출한 관광 수요인 데다 매년 늘어나고 있으니, 규슈올레의 활약상은 괄목할만하다.

2012년 시작된 규슈올레, 현재 17개 코스 196.5km

일본 규슈관광추진기구 해외유치추진부에서 일하는 유일한 한국인 이유미(36) 주임. 규슈올레의 전령사 역할을 맡고 있다.
 일본 규슈관광추진기구 해외유치추진부에서 일하는 유일한 한국인 이유미(36) 주임. 규슈올레의 전령사 역할을 맡고 있다.
ⓒ 이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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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슈올레는 지난 2012년 다케오, 오쿠분고, 아마쿠사·이와지마, 이부스키·가이몬 코스를 시작으로 매년 네 곳 정도의 새로운 길을 선보였다. 지난 11월에는 구루메·고라산과 미나미시마바라 코스를 개장해 현재 17개까지로 늘어났다. 전체 길이는 196.5km. 현재 추세라면, 몇 년 안에 멘토 역할을 했던 제주올레보다 더 많은 코스를 갖게 된다.

규슈올레를 성공적으로 안착시킨 1등 공신은 단연 규슈관광추진기구 해외유치추진부에서 일하는 유일한 한국인 이유미(36) 주임이다. 규슈관광추진기구(이사장 이시하라 스스무·전 JR규슈 회장)는 관광 활성화를 위해 규슈 7개 현과 약 160개의 민간 회원사가 참여해서 만든 단체다. 일본에 정착한 이듬해인 지난 2005년부터 이 기구에서 일하고 있는 이유미 씨가 '올레'에 필이 꽂힌 건 지난 2010년.

"둘째 아이를 낳고 육아휴직 중에 제주올레를 처음 알게 됐어요. 인터넷으로 새로운 여행 테마를 찾아보다 자주 방문하던 커뮤니티에서 제주올레 포스팅을 보게 된 거죠. 처음에는 제주올레를 잘 몰랐고, 막연하게 천천히 걷는 여행에 흥미를 갖게 됐어요. 규슈에도 올레길이 생기면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오래 머물 수 있겠다고 생각한 거죠."

육아휴직을 마치고 돌아온 이유미씨는 2011년 5월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 등 관계자들을 규슈에 초청해 상견례를 했다. 그해 8월 제주올레와 업무협약(MOU)을 맺었고, 이듬해인 2012년 3월 규슈올레의 첫 코스를 개장했다. 이렇게 시작된 제주올레와 규슈올레의 '멘토-멘티' 관계는 지금까지 끈끈하게 이어지고 있다. 한·일 양국 간의 역사적 앙금에도 불구하고, 두 단체가 인간적인 연대를 해왔던 데에는 이씨의 헌신적인 노력도 한몫했다.

까다로운 심사 과정, 후보군만 3~6배에 재수·삼수도

이유미씨가 지난 11월 21일 개장한 규슈올레 구루메·고라산 코스 개장 행사에서 실무 진행을 돕고 있다.
 이유미씨가 지난 11월 21일 개장한 규슈올레 구루메·고라산 코스 개장 행사에서 실무 진행을 돕고 있다.
ⓒ 이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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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슈올레 심사 과정은 생각보다 까다롭다. 매년 각 현에서 자체 심사를 통과한 한두 개 코스를 후보로 추천한다. 규슈관광추진기구에서 1차 심사를 한다. 이후 제주올레 관계자가 현지를 방문해 2차 심사로 걸러낸다. 3차 최종심사 때에는 안은주 제주올레 사무국장이 결합해 '눈물이 쏙 빠질 정도'로 혹독한 평가를 받는다. 매번 심사 때마다 현장 실사는 필수다.

스파르타식 심사 과정에서 아스팔트 길이 줄어들고, 발길이 끊겼던 옛길이 복원되기도 한다. 처음 제안했던 길과 최종 확정된 길이 확연히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최종 마무리 때까지 현지 담당 공무원들은 해당 코스를 10번 넘게 걷는다. 일부는 개장 후에도 수정·보완되며 완성도를 높여간다. 확정된 규슈올레 길에는, 한국에서 제작해온 간세와 다홍색 리본이 부착된다.

지난 2012년 4개의 규슈올레 코스를 처음 선정할 때 심사 대상만 24개 코스였다. 이듬해에는 현별로 제한을 두었는데도 21개 코스가 후보로 올라왔다. 경쟁률이 5대 1이 훌쩍 넘었다. 지금은 제한 규정을 더 엄격히 하고 있는데도, 3배수 정도의 후보군이 추천된다. 시간이 지나다 보니 재수·삼수를 통해 최종 코스로 선정되는 곳들도 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수정·보완은 필수. 올해 11월에 개장한 미나미시마바라 코스도 세 번이나 탈락한 끝에 규슈올레 대열에 합류한 곳이다. 그렇다면 규슈올레 선정 기준은 무엇일까?

"제일 중요한 것은 아스팔트 도로가 아닌 자연의 길을 어느 정도 잘 살려냈느냐에 있어요. 걷는 게 주목적이다 보니, 아무리 좋은 풍광도 아스팔트 길로 오래 걷게 되면 지칩니다. 지금은 걷지 않는 옛길을 찾아내는 일이 중요해요. 올레는 등산이 아니기 때문에 30분 이상 오르막길이 계속되는 건 적합하지 않아요. 어린이나 노약자도 걸을 수 있게끔 배려해야 하고, 문화유산을 볼 수 있는 포인트가 있으면 더욱 좋지요."

'규슈올레 전령사' 이유미씨, 4년 동안 3000km 넘게 걸어

규슈올레 개장 행사 때마다 이유미씨는 통역과 언론사 인터뷰 섭외 등 1인 다역을 하느라 바쁘다.
 규슈올레 개장 행사 때마다 이유미씨는 통역과 언론사 인터뷰 섭외 등 1인 다역을 하느라 바쁘다.
ⓒ 이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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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미씨가 지난 4년 동안 걸었던 규슈올레 길은 3000km가 넘는다. 심사 과정과 개장 행사 때는 물론 주말에도 시간이 날 때마다 아이들과 함께 올레 길을 걷는다. 규슈올레만 매달 60km가 넘게 걸었다. 매주 1개 코스 이상을 꾸준히 걸었던 셈이다. 제주올레도 지난 2011년 업무제휴 이후에 12번이나 방문해 15개 코스를 완주했을 정도로 걷는 게 일상이 됐다. 지난 11월 새로운 코스 개장 행사 때 발목에 붕대를 감고 걸었던 것도, 2년 전 코스를 심사하다 삐끗한 부위가 도졌기 때문이다.

규슈올레가 만들어지기 전과 후의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일까? 이유미씨는 "점의 여행에서 선의 여행으로 바뀐 것"을 꼽았다.

"규슈올레가 없었을 때 규슈관광은 '점'의 여행이었어요. 후쿠오카에 도착해서 아소산을 찍고 벳푸를 돌거나, 하우스텐보스를 방문하는 식의 골든 루트 위주의 관광 상품들이었습니다. 규슈올레가 생긴 뒤로는 한 곳에 오래 머물면서 천천히 걷고 즐기는 여행이 늘었습니다. 지금은 한국인뿐만 아니라 일본 내국인들도 걷기 위해 규슈를 찾고 있습니다."

서명숙 이사장이 규슈올레 첫 개장 행사 때 했던 이야기도 "한국인 관광객 유치보다 더 중요한 건 일본인들이 꾸준히 찾는 길이 돼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직은 한국인 방문객이 더 많지만, 일본인 방문객의 수가 점차 늘고 있다는 건 '청신호'라 할 수 있다. 서명숙 이사장이 말한 "길에는 좌우도 없고, 국경도 없다"는 명제가 제주에서 시작돼 규슈로 이어지고 있다. 이유미씨는 '올레 전령사'로 오늘도 현장을 누비고 있다.

규슈올레 길에도 한국에서 제작해온 올레의 상징 간세 표식이 부착된다.
 규슈올레 길에도 한국에서 제작해온 올레의 상징 간세 표식이 부착된다.
ⓒ 이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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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ㅣ김지현 기자



태그:#규슈올레, #이유미, #제주올레, #규슈관광추진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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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대한 기사에 관심이 많습니다. 사람보다 더 흥미진진한 탐구 대상을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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