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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 시절 우리들이 뼈와 살을 성장시켰던, 우리 모두의 제2의 고향 공주에서, 노을에 젖어, 비를 맞으며, 울고 웃으며 무수히 걸어 넘었던, 금강 철교의 야경을 바라보며, 그 시절을 함께 살았던 친구들이 모여 노래를 하고 시를 읽는 밤을 만들기 위해 공주대학교 동문들이 모였다.

제1회 '금강' 야경과 함께하는 '공민동' 시 콘서트가 15일 오후 8시 충남 공주시 '질리'라는 카페에서 공주민주동문회 주최, 공주참여자치시민연대 후원으로 열렸다. 이날 행사는 동문 30여 명이 모여서 노래, 시낭송, 대금연주, 기타공연 등 금강 야경을 바라보며 학창시절 금강을 회상하면서 시낭송이 이루어졌다.

학창시절 은사인 조재훈 선생님이 제자들을 격려하고 있다.
 학창시절 은사인 조재훈 선생님이 제자들을 격려하고 있다.
ⓒ 김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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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은사인 조재훈 선생님은 "각박하고 삭막한 세상에, 제자의 시는 요즘은 사라진 음유시인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에 행복하다. 이런 자리를 만들어 줘서 고맙다. 앞으로도 이런 행복한 시간이 지속되었으면 한다"고 제자들을 격려했다.

공주여고 1학년 이채현과 음정민 학생이 정희성 시인의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와 정호승 시인의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기타 연주에 맞춰 낭송으로 첫무대를 열었다. 이어 음악교육과 80학번 임혜옥씨가 30년 전에 선배가 작사·작곡한 자작곡인 '아마 난 널 사랑하나 봐'를 열창했다.

시낭송과 노래, 대금연주 등 공연에 참가한 사람들 조재훈, 이득우, 배현준, 신현수, 조갑식, 임혜옥, 류지남, 이주현, 정희숙, 신경섭, 임명판, 정형근
 시낭송과 노래, 대금연주 등 공연에 참가한 사람들 조재훈, 이득우, 배현준, 신현수, 조갑식, 임혜옥, 류지남, 이주현, 정희숙, 신경섭, 임명판, 정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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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명판씨는 민중시인 신동엽 시인이 1967년 동학혁명에서 민중들의 함성을 담고 있는 대표적인 민중서사시를 낭독했다.

"반도는, 가는 곳마다 가뭄과 굶주림, 땅이 갈라지고 서당이 금 갔다. 하늘과 땅을 후비는 흙먼지. 1862년 전봉준이 여덟 살 되던 해 경상도 진주에서 큰 농민반란이 일어났다. 세금, 이불채 부엌 세간, 초가집 다 팔아도 감당할 수 없는 세미, 군포, 마을 사람들은 지리산 속 들어가 화전민 됐지. 관리들은 버릇처럼 또 도망간 사람들 몫까지 멀리 도망간 사람들의 몫까지 이징, 족징했다. 총칼 앞세운 진주병사 백낙신 3천의 농민들이 대창 들고 관청에 몰려와 병사 내쫓고 아전 죽이고 노비 문서 불살라버렸다.

정부는 병사를 잡아 더 좋은 기름 고을 벼슬을 주고, 다음 해 윶놀이가 한창인 정월 대보름날 진주 농민 마흔 일곱 명을 묶어 교수했다. 1871년 경상도 문경에서 농민군 2천 명이 동학 교도 이필의 지휘로 관아를 습격, 죄수들을 석방하고 노비 문서 불사르고 창고를 때려 부숴 쌀을 꺼내다가 농민들에게 나눠줬다.

황해도, 평안도, 이곳저곳에서 농민반란은 터졌다. 마치 연주장처럼 걷잡을 수 없이, 팔도강산 이곳저곳에서 잇달아 터졌다."

시인이자 예산여고 신경섭 선생은 지난 민중대회에서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사경을 헤매고 있는 백남기 농민의 쾌유를 비는 시를 매일같이 SNS에 올리고 있다. 그는 자작시인 '이 강에 와서'를 낭독했다.

"바닷가가 고향인 엄마의 엄마인 외할머니, 젖을 먹고 자란 엄마 고향은 그 바닷가 기슭 그 핏줄을 이어받은, 나는 무한천이 뱀처럼 꾸불꾸불 예당평야를 기어서 아산만으로 흘러가는 것이 한눈에 훤히 내다보이는 모시밭골에서 태어났다 엄마와 엄마의 엄마는 혈액 순환계에 암이 생겨 돌아가셨다 외할머니는 항암 치료를 못 받고 돌아가셨고 엄마는 항암 치료를 받다 돌아가셨다...

천오백 리를 굽이굽이 휘감아 도는 맑은 물들이 썩어 들어가 그 위로 주검들이 둥둥 떠다녀 죽음의 강물이 될 수도 있다는 악몽보다 더 끔찍한 현실 누가 소월의 금모래를 파헤치는가 누가 신동엽의 금강을 역사 속으로 처박아 두려는가 누가 정희성의 삽자루를 빼앗아 분질러 버리고 포클레인을 투입시키는가 누가 정태춘의 북한강 새벽안개 자욱한 가을 들녘을 갈아엎었는가 누가 안치환의 소리 없이 다가와 두 손 내미는 영산강을 욕보이는가...누가 불생불멸의 설법을 수행하던 스님을 죽음으로 내몰았는가...

그 누가 총칼과 탱크대신 포클레인을 앞세워 강산의 젖줄을 들쑤셔 그 젖을 먹고 살아가는 것들을 학살하려 하는가 그 누가 용산의 보금자리를 빼앗는 것도 모자라 뭇 생명의 아기집을 파헤치고 도려내어 콘크리트를 쏟아 붓는가 그 누가 금강모래무지랑 수리부엉이 재두루미를 추방시키고 쑥부쟁이와 꾸꾸리를 몰살시키려 하는가...

뭇 생명의 터전을 파헤쳐 하느님의 섭리를 거스르며 생명을 멸종시킨 학살자로 역사에 남을 것인지 부처님이 죽어가는 중생들이 너무 슬퍼 고함을 치기 전에 덤프트럭을 멈추고 이 강에 와서 시인의 발자취를 걸어 보시오 성모 마리아가 채 잉태되지 못하고 죽어가는 것들을 위하여 성혈을 흘리기 전에 포클레인 엔진을 끄고 이 강에 와서 연인들의 속삭임을 들어보시오

하느님이 허락 없이 죽어가는 피조물을 가엾이 여겨 너무 많은 눈물을 흘리기 전에 콘크리트 펌프카를 멈추고 이 강에 와서 생명의 숨결을 느껴 보시오 나 살아서 그 썩은 강물위로 떠다니는 탐욕의 배 타지 않으리 그냥 그렇게 죄 없이 반만년 흐르고 앞으로도 반만년 넘게 반도 땅 삼천리 굽이굽이 흘러 만년 억년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시오..."

정희숙씨는 '겨울 공화국'을 낭독했다.

"바람이 불어옵니다. 살을 에이는 바람이 구석구석 파고들어 온기란 온기를 다 앗아 갑니다 잎이 진 나무는 앙상한 몰골로 밤새 흐느낍니다 우리의 희망에 찬 봄날이 언제였든 가요 한여름 밤의 그 황홀함과 울창한 숲이 그늘을 만들어주던 시절이 언제였든 가요 젊은 날 희망을 열어 제치던 어깨와 어깨를 단단하게 엮어 스크럼을 짜고 내달리던 거대한 벽을 허물던 그 시절이 추억이든 가요...

저들은 말합니다 세월호에 빠져죽은 사람들은 단순 사고였다고 시체장사로 언제까지 울궈먹을 작정이냐고 사고 당일 7시간의 대통령의 업무조치를 묻는 것은 헌법을 파괴하는 것이라고 물대포에 맞아 사경을 헤매는 칠순 농민 백남기 씨는 폭도였다고 저들은 말합니다...

매서운 칼바람이 몰아칩니다. 어두운 그림자가 산자락으로 내려옵니다. 겨울이라고  침묵하라고 서로의 눈빛만 응시합니다. 이제 우리가 답할 차례입니다 침묵의 얼음장을 깨트려야 봄이 온다고 거짓을 거부해야 진실을 지킬 수 있다고 흐르는 금강이 썩지 안 듯 우리는 함께 흘러야만 한다고" 

이주현씨는 박재삼 시인의 '천년의 바람'을 낭송했다.

"천 년 전에 하던 장난을 바람은 아직도 하고 있다. 소나무 가지에 쉴 새 없이 와서는 간지러움을 주고 있는 걸 보아라 아, 보아라 보아라 아직도 천 년 전의 되풀이다. 그러므로 지치지 말 일이다. 사람아 사람아 이상한 것에까지 눈을 돌리고 탐을 내는 사람아"

류지남씨는 자작시인 '등의 내력'을 선보였다.

"셋째 당숙이 손바닥만한 나무판자 조각으로 옛날식 장판 바닥 풀칠하듯 가만가만 땅을 고르고 나자 광목 줄 가마에 태워진 엄마의 몸이 참 오랜만에 아버지 왼쪽편에 가만히 누우셨다 조금 불룩한 등 쪽이 먼저 사뿐 닿았으리라 건너편 오른쪽 자리엔 얼굴도 모르는 성님이 먼저 누워 계시니 이제사 세분이 나란히 한 방에 눕게 되셨다...

그렇게 팔남매를 키우고도 어머닌 이틀 이상 당신의 둥지를 비우지 못했다 객지에 나간 자식들 집에 가시더라도 겨우 하룻밤이나 주무시고 나면 아침부터 엉덩이를 들썩거리시다가 어느새 쪼르륵 당신의 오랜 등 자리로 돌아오셔야 맘이 편하다 그러고 보니 당신은 자식들 껴안고 자는 법두 별루 없었다 어려서두 나는 눈이 먼 할머니 쪼글쪼글한 젖을 자주 만지고 자면서 등도 제법 긁어드렸는데, 참 오랜 세월 칠흑 갔았을 당신의 등 긁어드린 기억이 별로 없다..."

마지막까지 남은 동문들이 행사가 끝나고 학창시절 은사인 조재훈 선생님을 모시고 찍은 기념사진
 마지막까지 남은 동문들이 행사가 끝나고 학창시절 은사인 조재훈 선생님을 모시고 찍은 기념사진
ⓒ 김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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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득우씨는 정태춘의 '떠나가는배' 노래공연과 조갑식씨는 노래와 함께 대금연주, 배현준씨와 신현수씨는 기타연주로 젊은 여인들 등 노래를 이어갔다. 이들은 4대강 사업에 훼손된 금강을 안타까워하면서 금강이 내려다보이는 카페에서 노래를 이어갔다.


태그:#공주대민주동문회, #금강 성토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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