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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가 꺾인 백합이 드디어 추운 겨울에 꽃을 피웠다.
▲ 아름다운 백합 허리가 꺾인 백합이 드디어 추운 겨울에 꽃을 피웠다.
ⓒ 신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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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중순, 우리집 마당에 나리꽃이 피었다. 저 꽃이 품종개량되어 백합이 되었단다. 우리집 주변에 야생하고 있는 백합을 옮겨 심었는데, 이쁜 꽃을 피운 것이다.

흰 바탕에 붉은 기운이 감도는 게 여간 이쁘지 않다. 함께 자란 다른 꽃은 모두 져서 사라진 이 겨울에 어떻게 저렇게 이쁘게 피었을까?

여름에 저 나리는 나에게 밟혀 중간 줄기가 부러져 버렸다. 뽑아버릴까 하다 귀찮아서 놓아 두었더니 동료들이 사라진 뒤에도 여전히 튼튼하게 견디고 있었다. 그런데 그저께 갑자기 신기하게도 꽃대가 보였다. 

줄기가 껶여져 짧달막한 백합이 엄동설한에 피었다.
▲ 키가 유난히 작은 겨울에 핀 백합 줄기가 껶여져 짧달막한 백합이 엄동설한에 피었다.
ⓒ 신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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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갑자기 백합이 이쁘게 피었다.
▲ 겨울에 핀 백합 어느날 갑자기 백합이 이쁘게 피었다.
ⓒ 신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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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히 보니 꺾여진 줄기 윗부분이 세 갈래로 나눠져 꽃대 마다 꽃을 피워내고 있었다. 이 겨울에 자란 수선화들 옆에서 외로이 혼자서 꽃을 피우고 있었다.

대단하다. 줄기를 높이 세워 키운 것은 오로지 꽃을 피워 씨앗을 만들기 위한 것. 줄기가 꺾여졌다고 숭고한 임무를 포기할 순 없다. 남은 줄기를 더욱 튼튼히 키워 때늦은 지금에야 꽃을 피우고 말았다. 여름에 핀 동료들의 꽃 못지 않은 화려하고 고결한 백합꽃을 피웠다.

사실 백합은 씨앗으로 번식하지 않는단다. 씨앗이 별로 번식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뿌리가 여러 조각으로 나눠 또 다른 개체로 늘어난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착같이 꽃을 피워야 하는 이유는 또 무엇일까?

어쨋거나 끝내 사명을 완수한 저 나리에게 찬사를 보낸다. 나, 이 집 주인으로서 나리에게 자신의 존재 임무를 완전하게 수행했음을 인정하노라.


태그:#백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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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서 살고 있습니다. 낚시도 하고 목공도 하고 오름도 올라가고 귤농사도 짓고 있습니다. 아참 닭도 수십마리 키우고 있습니다. 사실은 지들이 함께 살고 있습니다. 개도 두마리 함께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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