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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이름은 밝히지 않겠지만 독자님 두 분에게 특히 감사의 마음 전합니다. 이제부터 시작할 이야기에 댓글로 영감을 주셨기 때문인데요.

지난 5일 소개한 "국민이란 말을 쓰면 안 된다. 민주주의적 시민이란 말을 써야 한다"는 리영희 선생 말씀에 <오마이뉴스> 페이스북 댓글로 공감을 표시해 준 분들이 있었는데요. 그 중에서 특히.

"국민이란 단어는 전체주의 국가에서만 사용하는 표현이다. 국민이란 단어를 외국어 사전에서 찾아보라. 당장 영어로 표현해 보라. 우리가 어디에 사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댓글, "국민학교는 군국학교나 다름없었죠. 얼마 전까지 존재했던 질서와 기강 확립을 가르치는 교련 수업은 또 어떠한가."

[관련기사] "한국은 파시즘 초기" 리영희의 예언은 탁월했다

"국민학교는 군국학교나 다름없었다"는 댓글 덕분에...

2012년 SK 텔레콤의 '나란히 앞으로' 캠페인 광고 중 한 장면
 2012년 SK 텔레콤의 '나란히 앞으로' 캠페인 광고 중 한 장면
ⓒ 영상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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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댓글들을 보면서 물음표 하나가 되살아났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바로 옆에 살고 있는데요. 종종 이런 구령 소리를 들을 수 있었거든요. 차렷! 경례! 앞으로∼ 나란히! 어떤 특정 선생님의 취향 탓은 아닌 듯 했습니다. 때로는 젊은 여자 선생님 목소리, 또 때로는 굵은 남자 선생님 목소리, 그랬거든요.

'아직도 저런 걸 하네?', 그냥 이렇게 무심히 흘렸었는데 앞서 소개한 독자님 댓글을 보면서 이런 물음표가 생기기 시작했죠. 다른 학교들에서도 많이 할까? 우선 함께 일하는 팀원들에게 물어봤습니다. 너희 때도 했니? 2001년 초등학교에 입학한 20대 친구나 1991년 입학한 30대 친구나 한결같이 돌아온 대답은 "예".

그래서 현직 선생님에게 여쭤보기로 했습니다. 시흥시 승지 초등학교 선생님 두 분을 추천 받았는데요. 지난 9월 혁신학교로 지정된 승지 초등학교는 '배움 중심 수업' 등 어린이들과 눈높이를 맞추려고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학교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권수 선생님(남·45)은 올해로 21년, 남궁경 선생님(여·50)은 25년, 각각 오랫동안 교직에 몸을 담고 계신 분들입니다. 두 분 모두 평소 교내 군사문화에 대한 문제의식이 깊다고 했고요. 또 이 선생님의 경우는 현재 시 교육 지원 센터에 파견을 나가 있는 관계로 현재 다른 학교를 둘러볼 기회가 많은 분이었습니다. 남궁 선생님은 승지 초등학교로 오신 지 3년 됐다고 하셨습니다.

차렷이나 앞으로 나란히보다 더 무서운 '손 머리'

1959년 3월 20일자 <경향신문>에 실린 '앞으로 나란히'. '앞으로 나란히'가 언제부터 어떻게 시작됐는지는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1959년 3월 20일자 <경향신문>에 실린 '앞으로 나란히'. '앞으로 나란히'가 언제부터 어떻게 시작됐는지는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 <경향신문> 네이버뉴스라이브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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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가요. 요즘도 차렷이나 앞으로 나란히, 이런 거 많이 하나요?
이권수 "많이 하는 정도가 아니라 일상화죠. 예를 들어 현장 학습 가서 아이들 모이잖아요. 그럼 선생님이 이렇게 딱 손가락 열 개를 세워요. 그리고 10, 9, 8, 7... 애들이 파다닥 모인 다음에 하나, 둘, 셋,  군대에서 하는 앉아 번호 있잖아요. 선착순을 하는 초등학교도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남궁경 "제가 25년 있으면서 안 써 본 학교가 단 한 군데도 없었거든요. 차렷, 경례 같은 경우는 어떤 행사가 있을 때 다 한다고 보시면 돼요. 앞으로 나란히는 99.9%? 심지어 교직원 회의 할 때도 '차렷, 경례'를 하는 학교도 있어요. 그만큼 일상화돼 있다는 얘기죠. '앞으로 나란히'를 하는 경우가 그래도 적은 것은 운동장 조회가 많이 줄었잖아요. 운동장 조회를 할 때 안 쓰는 학교는 아마 없을 거예요."

물론 옛날 같지는 않다고 합니다. 남궁 선생님은 "예전에는 '앞으로 나란히' 시킬 때 '내 앞에, 앞사람 뒤통수 안 보여야 하는 거야'란 식으로 강조하거나, '줄 안 맞아, 왼쪽 안 맞아, 오른 쪽 안 맞아"라고 지적하는 일이 있었지만 요즘은 그렇지는 않다"며 "그냥 간격 맞추기용"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남궁 선생님은 "사실 '차렷이나 앞으로 나란히'보다 더 무서운 건 '손 머리'"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손 머리'는 사실 굴욕이에요. 이게 포로가 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이걸 별 생각 없이 쓰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학교에서 쓰는 군대식 용어나 군대식 행동, 이런 부분에 대한 전체적인 점검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사회 생활의 기본을 배우는 곳이 학교지만

1970년 8월 27일자 <매일경제>에 실린 '앞으로 나란히'. '서툴러진 앞으로 나란히'라는 제목과 함께 "집에서 뛰놀던 버릇이 몸에 배어 '앞으로 나란히'마저 서툴러진 것 같다. 이번 개학엔 이런 어린이가 없도록 각 가정에서 학부형들이 미리 개학에 대비한 마음의 준비를 서둘러야겠다"고 전하고 있다
 1970년 8월 27일자 <매일경제>에 실린 '앞으로 나란히'. '서툴러진 앞으로 나란히'라는 제목과 함께 "집에서 뛰놀던 버릇이 몸에 배어 '앞으로 나란히'마저 서툴러진 것 같다. 이번 개학엔 이런 어린이가 없도록 각 가정에서 학부형들이 미리 개학에 대비한 마음의 준비를 서둘러야겠다"고 전하고 있다
ⓒ <매일경제> 네이버뉴스라이브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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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에 입학한 1학년 학생들이 학교에 들어와서 맨 처음 듣는 말이 무엇일까 '앞으로 나란히'다. 군대에서도 '앞으로 나란히'가 없는데 왜, 누가 '앞으로 나란히'를 만들어 학교에 보급시켰을까 이제, 정년을 1년 남짓 앞둔 시기에야 '앞으로 나란히'에 대한 교육적 반성을 하면서 우리 교육의 보수적인 문화풍토 속에서 자행되고 있는, 개선해야할 교육관행이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다." (2004년 5월 30일자 한겨레 독자마당, 당시 전남 여수 중흥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의 글)

초등학교에서도 군사 문화가 잘 없어지지 않는 이유, 선생님들은 크게 세 가지를 꼽아주셨습니다. 우선 편의성. 남궁경 선생님은 "그렇다고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존중하지 않는다거나 군인으로 생각한다거나 하는 건 아니다"며 "많은 학생들을 통솔하다보면 편의상 쓸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아이들 통솔하는 일, 힘들잖아요. 그 숫자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더 그럴 겁니다. 우리 동네 초등학교 선생님 목소리 톤이 점점 높아졌던 이유이기도 하겠죠.

여전히 군사 문화가 먹히는 '전통'도 한 몫 하는 듯 합니다. 이권수 선생님은 "나이 좀 든 사람이야 안 변한다 하지만, 젊은 선생님들이 그렇게 할 때 가슴이 가장 아프다"며 "반듯하게 줄을 서야 한다는 교육을 받고 큰 사람들이 또한 지금 현장의 교사들 아니겠나"라고 했습니다. 이어 이 선생님은 "학생들의 일사불란한 모습을 보고 또 어떤 사람들은 유능하다고 인정하는 것도 현실"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코흘리개 꼬마들이 엄마의 손에 끌려 학교에 처음 입학했을 때 선생님으로부터 듣는 첫 말씀이 '앞으로 나란히'이다. 차례대로 줄을 서는 것을 배운다는 말이다. 또 그것은 단순한 '줄서기'가 아니라 사회생활의 가장 기본이 되는 줄서기, 즉 질서를 배운다는 뜻도 된다." (1987년 5월 19일자 경향신문 논설)

이쯤에서 차렷이나 앞으로 나란히를 그렇게 꼭 '배배 꽈서 봐야겠느냐'는 이야기도 나올 만 합니다. 위에 소개한 글처럼 사회 생활의 기본을 배우는 곳이 또한 학교이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말입니다. 혁신 학교와 다른 학교 사이에 이런 군사 문화에 대해 일종의 '격차'가 생기고 있는 현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래 선생님들 말씀을 듣다보니 여러 생각이 들더군요.

혁신학교는 '옆으로 나란히' 추세

1992년 7월 23일자 <경향신문>의 '권위주의 책상배치 사라진다'는 제목의 기사. "일부 대기업을 중심으로 직급 간의 의자 구분을 없애고 '앞으로 나란히'식의 사무실 책상 배열을 '마주 보기'식으로 바꾸는 등 자유로운 사무실 배치가 시도되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1992년 7월 23일자 <경향신문>의 '권위주의 책상배치 사라진다'는 제목의 기사. "일부 대기업을 중심으로 직급 간의 의자 구분을 없애고 '앞으로 나란히'식의 사무실 책상 배열을 '마주 보기'식으로 바꾸는 등 자유로운 사무실 배치가 시도되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 <경향신문> 네이버뉴스라이브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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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권수 "혁신 학교 같은 곳에서는 군사 문화 같은 것들 굉장히 많이 없애고 있거든요. 그 자체가 아이들과 선생님 사이에 거리를 두게 되는 것이니까, 좀 더 그 관계를 수평적으로 놓으려고 하니까. 하지만 다른 학교에서는 이런 문제의식을 갖는다는 자체로 굉장히 이상한 사람이 되곤 하죠."

남궁경 "보통 혁신 학교에서들 많이 없애려고 노력하죠. '아이들을 어떻게 하면 존중할까, 아이들 눈높이에 어떻게 맞출까', 하다보면 '이건 아닌 것 같아', 그러면서 하나씩 없애는 거죠. 그런데 구조적으로도 그럴 수밖에 없어요. 혁신 학교는 호루라기 잘 안 씁니다. 학급당 인원이 작고 전체가 모이는 일이 별로 없으니까.

줄 안 세워도 그냥 줄이 세워지니까, 굳이 '앞으로 나란히'가 필요 없는 거죠. 전체가 모이는 기회도 상대적으로 적어요. 그러니까 꼭 '그걸 안 해야겠다'라서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는 거죠. 하지만 다른 학교에서 그렇게 하자고 하면, 미친 소리 한다고 하죠(웃음). 당장 나오는 이야기가 '그럼 너 그렇게 해서 시간 한 번 잡아먹어 봐, 이런 거죠."

그러면서 두 선생님 모두 근본적인 대책과 사회적 관심이 더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사실 군사문화 잔재는 아동 인권과 직결된 문제이기도 하니까요. 학교에 얼마나 이런 군사문화 잔재가 남아 있는지 조사해서 현황을 파악하고, 그 결과에 따라 아동 인권과 관련한 교사 직무 교육 강화 등 정책적인 대안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군대에서도 '앞으로 나란히' 없는데... 오늘은 세계 인권의 날

2012년 SK 텔레콤의 '나란히 앞으로' 캠페인 광고는 "우리는 앞으로 나란히 살아왔습니다. 성적순으로, 능력순으로, 줄을 서서 앞을 보며 달려왔습니다. 새로운 가능성을 생각해봅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 더 먼 길을 가게 해주는 나란히 앞으로"란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2012년 SK 텔레콤의 '나란히 앞으로' 캠페인 광고는 "우리는 앞으로 나란히 살아왔습니다. 성적순으로, 능력순으로, 줄을 서서 앞을 보며 달려왔습니다. 새로운 가능성을 생각해봅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 더 먼 길을 가게 해주는 나란히 앞으로"란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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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으로 인권에 대한 관심이 후퇴하다보면,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그 영향은 아이들에게 더 심각하게 전파되기 마련입니다. 얼마 전, 직장인보다 짧은 초등학교 학생들의 점심시간을 다룬 "15분 안에 밥 먹어요" 초등학생은 바쁘다란 기사가 떠올랐던 것도 그래서였습니다.

이권수 "억압되면 억압될수록, 결국은 약한 곳으로 가서 툭 터질 수밖에 없으니까요."

남궁경 "중등학교에 비해 초등학교는 상대적으로 학생 자치가 발전이 안 돼 있잖아요. 소리를 낸다고 해도 기껏해야 담임 선생님한테, 이 정도가 다죠. 내 소리를 내기 어려우니까 그만큼 더 취약할 수밖에 없죠."

오늘(12월 10일)은 1948년 UN 총회에서 세계 인권선언이 채택된 날입니다. UN 아동 권리 협약은 "아동을 단순한 보호대상이 아닌 존엄성과 권리를 지닌 주체로 봐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UN 아동권리 선언의 한 대목을 인용하며 마치겠습니다.

"아동은 특별히 보호받아야 하고, 자유와 존엄성이 보장되는 조건 속에서 건전하고 정상적인 방식으로 신체적·정서적·윤리적·정신적·사회적 측면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법률을 포함한 모든 수단에 의해 모든 기회와 편의가 모든 아동에게 제공되어야 한다."

○ 편집ㅣ이준호 기자

덧붙이는 글 | 이야기가 다소 길어졌네요.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주에 다시 뵙겠습니다.



태그:#앞으로 나란히, #차렷, #창원지방법원, #군사잔재, #아동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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