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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개악'은 노동자 건강에도 참혹한 결과를 초래할 것으로 예상된다. 노동개악의 핵심 내용인 쉬운 해고와 비정규직 확대를 막기 위한 싸움은 우리의 몸과 건강, 마음과 삶을 지키기 위한 싸움이다. 그런 점에서 노동개악이 노동자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고자 한다. - 기자 말

이번 노동개악의 중요 내용 중 하나는 비정규직 확대다. 현행 기간제법은 비정규직으로 2년 이상 고용하면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 하지만 의도와 달리 2년 단위로 해고가 반복되자 정부는 "노동자의 고용 불안이 심화되고 있다"며 대책을 내놨다. 정규직 일자리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현행 비정규직 계약기간 2년에서 4년으로 늘리는 방안이다.

비정규직 확대는 그 자체로 노동자 건강에 적신호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정규직 노동자에 비해 건강하지 못하리라는 것은 수많은 연구에서 이미 드러난 바다. 국내 연구만 봐도,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는 정규직 여성 노동자보다 우울증 위험과 자살 생각 위험이 각각 1.6배 가량 높다.

남성의 경우 자살 생각 위험이 비정규직이 1.3배 정도 높았다.(Kim IH et al., Social Science and Medicine, 2006;63(3):566)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주관적으로 생각하는 건강상태도 정규직 노동자에 비해 뚜렷하게 나빴다. (손신영, 한국산업간호학회지, 2011;20(3), 346)

비정규직 노동자들, 더 아프다

<그림 : 불안정 노동과 건강 및 삶의 질, J. Benach et al., Annu. Rev. Public Health 2014. 35:229?53>
 <그림 : 불안정 노동과 건강 및 삶의 질, J. Benach et al., Annu. Rev. Public Health 2014. 35:229?53>
ⓒ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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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노동자의 건강이 나쁜 이유는 매우 다양하다. 비정규직의 낮은 소득과 고용 불안정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원인이다. 비정규직 근로자들은 고용 불안 때문에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노동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정규직 노동자보다 상대적으로 적은 임금을 받기 때문에 위험수당 등 경제적 요인을 위해 위험한 노동을 감수하는 경우도 많다. 저임금 노동은 장시간 노동의 주된 원인이기도 하다. 장시간 노동과 불규칙하고 비정상적인 노동시간 역시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 업무 재량권은 낮고, 노력에 비해 보상이 적어 직무스트레스도 높은 편이다.

그 외에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규직 노동자에 비해 전반적인 물리, 화학, 생물학적 작업 환경이 열악해 소음, 유해광선, 감염 위험 등 다양한 위험에 더 많이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비정규직 노동자의 건강 문제를 더 넓은 시각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비정규직이 증가하는 사회는 이와 함께 노동자의 정치적 영향력도 줄어든다. 자연스럽게 정부는 노동시장 정책 전반에서 노동안전 문제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는 등 친자본적인 경제정책을 펼친다.

친자본정책이 우세하면 복지는 축소된다. 이런 사회적 배경 속에 비정규직 등 불안정 노동자가 증가하며, 이들은 더 유해한 작업 환경에 노출된다. 또 임금이나 거주 환경 등 물질적인 측면에서 박탈을 경험하면서 삶의 질이 나빠지고 이는 건강 문제로 이어진다.

한국사회에서도 이번 정부의 노동개악이 불안정 노동을 증가시키고, 노동자들의 건강과 삶의 질을 하락시키는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주노총) 소속 조합원들이 지난 11울 1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노사정위원회의 비정규직법 개악 논의를 규탄하고 있다.
▲ "기간연장 파견확대, 평생 비정규직 거부한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주노총) 소속 조합원들이 지난 11울 1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노사정위원회의 비정규직법 개악 논의를 규탄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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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기간제법 개정안을 내며 정부와 새누리당은 국민의 생명·안전과 밀접하게 관련된 업무에는 정규직을 고용하겠다고 밝혔다. 선박, 철도, 항공기, 자동차를 이용하여 여객을 운송하는 사업 중 생명·안전과 밀접하게 관련된 업무에는 기간제근로자 사용을 제한한다고 한다.

그러나 국토교통부 산하의 공기업인 한국철도공사는 하루 15만 명을 수송하는 KTX 승무원을 정규직으로 고용하는 걸 거부하며 이들은 '안전업무를 하고 있지 않다, 안전업무는 철도공사 정직원인 팀장만 할 뿐'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또한 최근 대법원은 KTX 여승무원들이 낸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에서 한국철도공사 측의 손을 들어줬다. 이런 상황에서 생명·안전 업무에는 기간제 근로자 사용을 제한하겠다는 정부의 약속이 제대로 반영될지 미지수다.

위와 같은 선심성 개정안은 별 실효성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고용 불안과 노동자의 물질적 박탈은 확실해 보인다. 정부의 비정규직 대책에서 노동자 건강의 지옥문이 보인다.

덧붙이는 글 | 최민 기자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선전위원장이자 직업환경의학 전문의입니다. 이 글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발행하는 기관지 <일터>에도 연재한 글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쓴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합니다.



태그:#비정규직, #노동자 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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