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세를 맞은 이차크 펄만이 지난 15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공연을 가졌다. 바이올린을 '가지고 노는' 특유의 밀고 당기기를 뽐냈으나, '봄 소풍'처럼 너무 가볍지는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사진은 지난 2007년 3월 10일, 미국 플로리다에서 러시아 국립 오케스트라단과 함께 공연하던 모습이다.

70세를 맞은 이차크 펄만이 지난 15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공연을 가졌다. 바이올린을 '가지고 노는' 특유의 밀고 당기기를 뽐냈으나, '봄 소풍'처럼 너무 가볍지는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사진은 지난 2007년 3월 10일, 미국 플로리다에서 러시아 국립 오케스트라단과 함께 공연하던 모습이다. ⓒ 연합뉴스/EPA


"An obstacle may be either a stepping-stone or a stumbling-block. (장애는 디딤돌이거나 장애물이거나 둘 중 하나일 겁니다.)"

그에게 소아마비라는 역경은 장애물이 아닌 디딤돌이었다. 목발로 세계 무대에 오르고 앉아서 솔로 연주를 할 영광을 누리기 위해서는 남다른 실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바이올린이 작게 느껴지는 투박한 손으로 펼쳐내는 섬세한 기교는 그의 역경이 디딤돌임을 증명해주었다. 그렇게 50년이 넘는 시간동안 이차크 펄만은 무대에 올랐다.

올해 일흔. 백발이 성성한 그에게 멋스러운 빨간 셔츠가 잘 어울렸다. 그는 지금 70세 기념 세계 투어 중이다. 한국에선 대전과 서울을 찾았다. 2013년 공연 이후 2년만의 방문. 스트라디바리우스로 빚어내는 선율로 지난 일요일(15일) 오후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을 가득 채웠다. 전동 휠체어를 타고 등장하자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르클레르 바이올린 소나타 3번을 시작으로 브람스 'F.A.E. 소나타' 중 스케르초,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제5번 '봄', 라벨 바이올린 소나타 2번을 연주했다. 그동안 그가 들려준 곡 해석과는 달랐다. 밀고 당기는 그만의 새로운 호흡이 연주곡 전반에 깔려있었다. 91년부터 함께 호흡을 맞춰왔다는 로한 드 실바의 피아노도 바이올린 선율에 지지 않고 두드러졌다. 평소 그의 반주를 좋아했던 이라면 팬심이 두터워지는 계기가 됐을 것이라 생각한다.

곡이 끝날 때마다 양철지붕을 두드리는 세찬 소낙비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 특히 앙코르 다섯 곡이 내리 이어지는 중간중간에는 탄성이 터져나오기도 했다. 프로그램 마지막 라벨의 곡 이후 선곡된 곡들에 대해 그는 연주 전 친절하게 곡명을 알려주었다. 공간 가득한 그의 목소리가 따뜻했다. 로한 드 실바가 악보를 찾지 못해 연주 시작이 늦어지자 펄만 특유의 쇼맨십으로 관객에게 웃음을 선물하기도 했다. 과연 베테랑다웠다.

그는 자유로웠다, 너무

칭찬은 여기까지다. 아쉬움이 많이 남는 공연이었다. 그는 자유로웠으나 너무 자유로웠다. '비르투오소'라는 타이틀에는 어울리지 않는 '봄 소풍' 같은 연주였다. 기교가 많아 음 이탈이 쉬운 악기 특성을 감안하더라도 실수는 심심치 않게 이어졌다. 바이올린과 피아노 달랑 두 개의 악기 연주에서는 둘의 조화가 중요한데, 피아노 소리는 강했고 바이올린 소리는 가벼웠다.

해석도 낯설어 마지막 곡에 이르러서야 그의 새로운 '밀고 당기기' 호흡에 적응할 수 있었다. 농익은 음악가들에게는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밀고 당기기'는 음악을 '갖고 놀 수 있을' 때 나오는 특권 같은 것이다. 토니베넷의 무대에서도, 이문세의 공연에서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밀고 당기기'의 전제는 곡 전체를 아우르는 균형과 탄탄한 기본에 있다. 기본이 충실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여유는 '불성실' 내지는 '소홀함'으로 비춰진다.

아쉽지만 그의 이번 연주는 나에게 마냥 발걸음만 가벼운 '봄 소풍' 정도였다. 그가 인터뷰에서 기억에 남는 공연이라고 말한 백악관 공연이나, 애착 가는 앨범으로 꼽은 보스톤 심포니와 협연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그의 특이한 호흡이, 음 이탈이, 피아노와의 아쉬운 연주 궁합이 실망감으로 다가왔다.

분야를 막론하고 거장들에게서 느낄 수 있는 소름끼치는 한 가지는 '균형과 조화'다. 음반으로 들으면 되는 걸 굳이 가서 듣는 이유는 그 거장의 소름끼치는 아우라를 느끼기 위해서다. 70년 인생의 대부분을 한 우물만 팠다는 것, 자신을 넘어 타인에게 오롯한 감동을 전한다는 것만으로 그는 인정받을 만한 거장이다. 하지만 다음 공연에서는 '이 시대 최고의 비르투오소'에 걸맞는 아우라와 함께 무대에 섰으면 한다. 연주를 보고 나오며 그의 스승의 음반을 찾아 듣지 않을 수 있도록. 표 삯 본전 생각이 나지 않도록 말이다.

봄 소풍처럼 들뜨지 않아도, 서늘한 골방 같은 공연이라도, 거장이 빚어내는 진실한 호흡에는 감동이 있는 법이니 말이다.

덧붙이는 글 위 기사는 임현희 기자의 네이버 블로그에도 게재되었습니다.
이차크 펄만 아이작 펄만 비루투오소 봄소풍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