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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반 아이들이 큰 사고를 치고 말았다. 단체 메신저 방에서 근거도 없는 이상한 소문을 만들어 같은 반 친구 둘을 뒷담화 한 것.
 우리 반 아이들이 큰 사고를 치고 말았다. 단체 메신저 방에서 근거도 없는 이상한 소문을 만들어 같은 반 친구 둘을 뒷담화 한 것.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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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초등학교나 중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나면 '벌 받았던 썰(말씀을 뜻하는 '說(설)'에서 변화된 것으로, '이야기'라는 의미)'은 재밌는 이야깃거리이다. 무슨 잘못을 해서, 몇 대를 맞았는지 또 몇 장의 깜지(흰 종이에 글씨를 빽빽이 써넣어 흰 공간이 보이지 않도록 글을 쓰는 것)를 써서 냈는지가 여전히 핫이슈이기 때문이다.

아마,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의 학창시절에도 대부분 어떤 방법으로든 벌을 받았던 경험이 한 번쯤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럼, 그 벌의 아픈(지금은 즐거운지도 모르겠다) 기억을 떠올리면서 반성의 시간 동안 무슨 생각을 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시라. 모르긴 몰라도, 아마 열에 아홉은 주어진 반성의 시간에 정작 '반성'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정확히 이야기 하자면, 반성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못한 것'일지도 모른다. 반성의 시간에 진정한 의미의 반성 대신 선생님의 일방적인 꾸지람과 벌만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5학년 우리 반도 별반 다르지 않다. 잘못한 일이 생기면, 나에게 꾸중을 듣고 반성문을 쓴 뒤에, 부모님의 확인을 받은 후 내가 그때마다 내린 벌(청소하기, 명심보감 쓰기 등)을 받으면 되는 단순한 알고리즘 구조다.

그러나 일방적인 꾸지람과 벌만 있는 반성의 알고리즘에서는 어린 시절 우리가 그랬듯, 정작 해야할 반성을 하지 못한다. 꾸지람을 듣고 벌을 받기에도 힘겨운 시간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동안 아이들이 익숙해진 반성의 알고리즘을 깨보기로 했다. 반성의 시간 동안 아이들이 진짜 반성을 할 수 있도록 말이다.

기존의 반성의 시간에는 '대화'가 없었다. 그저 가만히 선생님이 쏟아내는 말들에 순응하면 됐다. 분명, 잘못을 했기에 묵묵히 반성을 하는 것도 맞을 수 있지만, 대화 없이 진행되는 반성의 시간이 과연 아이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갈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몇몇에게는 오히려, 반감을 가지게 할 수도 있는 아주 예민한 문제다.

또한, 기존의 반성의 시간에서는 '배움'이 없다. 대신 엄중한 벌이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벌은 문제 행동을 제거하는 것에는 분명 효과적이지만 반대로, 선한 행동을 불러일으키기에는 오히려 하나의 장애물이 될 수도 있다. 심지어, 자신의 문제 행동을 교정하는 일이 자신 스스로의 동기에 의한 것인지, 벌이 무서워 교정하는 척하는 것인지조차 확인이 불가능하다.

때마침(?), 우리 반 아이들이 큰 사고를 치고 말았다. 단체 메신저 방에서 근거도 없는 이상한 소문을 만들어 같은 반 친구 둘을 뒷담화 한 것. 그 과정에서 아이들이 이야기를 나누었던 단체 메신저방의 내용들은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을 정도였다.

아이들에게 '대화'와 '배움'이 있는 반성의 시간을 줄 수 있는 기회 아닌 기회가 왔다. 일단, 각 학부모님들께 양해를 구하는 편지를 보냈다. 방과후 시간을 이용해, 반성문과 벌 대신에 아이들과 함께 대화를 해볼 계획이었기 때문이었다. 무려 '4일 동안' 말이다.

[반성 첫째날 – 배움] 마음 다스리는 시간

사건에 휘말린 다섯 명의 아이들은 첫 날, 명심보감을 받아들었다. 하지만, 그동안 '벌'의 일종으로 명심보감을 쓰던 것과는 조금 달랐다. 아이들은 열 개의 문장 중에서 자신의 마음에 가장 와 닿는 문장 세 개를 골라야 했다. 자신이 직접 고른 세 문장을 열 번씩 총 서른 번을 쓰면 되는 시간이다. 아이들은 자신이 직접 고른 문장을 쓰며, 스스로 마음을 다스리고 자신의 행동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처음 악의적인 소문을 만들어 퍼뜨렸던 A군은 '남의 착한 것을 보고서 나의 착한 것을 찾고, 남의 악한 것을 보고서 나의 악한 것을 찾을 것이니 이와 같이 함으로써 바야흐로 유익함이 있을 것이니라'라는 문장을 골랐고, 소문에 휩쓸렸던 B군은 '남의 허물을 듣거든 부모의 이름을 듣는 것과 같이하여 귀로 들을지언정 입으로는 말하지 말 것이니라'를 골랐다.

[반성 둘째 날 – 대화] 감정을 해소하는 시간

다섯 명의 아이들과 나는 서로 마주보며 모여 앉았다. 오늘은 서로에게 '미안함'을 전달하는 시간이다. 나를 포함한 우리 여섯 명은 서로의 감정을 해소할 필요가 있었다. 주고받은 말들과 욕들로 서로가 상처를 받았기 때문이다. 서로에게 사과하고 용서하며 자신에게 쌓여있는 감정들을 해소하는 것이 이번 시간의 목표였다. 내가 먼저 아이들에게 '미안함'을 전했다.

"선생님이 너희들을 혼내면서, 너무 화가 많이 났던 것 같아. 그래서 선생님도 모르게 너희들에게 상처가 되는 말도 했던 것 같고. 정말 미안하다."

내가 전달한 미안함에 아이들은 대답 대신 자신이 가지고 있던 미안한 마음들을 하나둘 털어놓았다. 주고받는 미안함에서 어느 정도 아이들도 나도 서로 묵혀두었던 감정들을 하나씩 해소하고 있었다.

"선생님, 속 썩여서 죄송해요."
"얘들아, 내가 이상한 소문 만들어 가지고 너네까지 괜히 혼나게 돼서 미안해."
"이상한 소문만 믿고 우리 반 친구의 뒷담화를 해서 미안해요."
"우리 때문에 마음 아파하고 있을 친구들에게 미안해요."
"내가 너네까지 메신저에 초대해 가지고 뒷담화하게 해서 미안해."
"메신저 방에서 너한테 욕해서 미안해."

둘째 날 소감문 중에서 - '미안해'라는 말이 가지는 의미가 뭘까?
'남이 잘못한 일을 이해해주고 나의 잘못을 스스로 깨우치는 것이다.'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을 전달하는 것이다.'

[반성 셋째 날 – 배움] 욕에 대해 이야기 하는 시간

방과 후 다섯 명의 아이들이 또 다시 모였다. 셋째 날은 자신이 했던 행동과 말을 스스로 돌아보는 날이다. 우선 단체 메신저 방을 뒤덮었던 '욕'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로 했다. 나도 꺼내기 어려운 이야기였지만, 아이들에게는 이미 습관이 되어 버린 욕은 분명, 꼭 대화가 필요한 부분이다. 나는 아이들에게 욕의 목적을 물었다. 돌아오는 대답은 "그냥요."

'그냥'이라. 추임새처럼 나오는 욕들에 대해 알려줄 필요가 있었다. 나는 아이들의 단체 메신저 방에서 가장 많이 등장했던 욕 세 가지의 숨은 뜻을 알려주었다. 아이들은 입을 벌린 채 내가 준비한 프레젠테이션을 보고만 있다. 아마도, 게임 속에서 혹은 메신저 방에서 너무나 쉽게 보낼 수 있는 욕들이 얼마나 힘겨운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처음 알게 된 순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그냥' 욕을 쓰기에는 너무 힘겨운 의미를 담고 있지? 그런데, 오늘 이 이야기를 듣고 오늘부터 나는 욕을 쓰지 않겠다고 다짐해도 그렇게 하지는 못 할 거야. 나는 너희들이 한 번에 변하기를 원하지 않아. 그럴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 더 잘 알기 때문이지. 하지만, 오늘이 계기가 되어서라도 스스로 변하기 위한 노력을 하면 좋을 것 같아."

셋째 날 소감문 중에서 - 욕에 대한 나의 생각이 어떻게 바뀌었나요?
'그 뜻을 알고 나니 너무 심해서 충격을 먹었다. 다른 욕들도 심한 뜻일 것 같다.'
'욕이 너무 싫어졌다. 한 번에 바뀔 수는 없겠지만, 노력하고 싶다.'
'욕을 아무렇지도 않게 얘기했었다. 절대 쓰지 않고 싶다.'

[반성 마지막 날 – 대화] 마음을 전달하는 시간

마지막 날. 아이들의 책상에는 편지지와 그동안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A4 용지 한 장이 놓였다. 편지지는 상처를 준 친구들을 위한 것이었고, A4 용지는 본인,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었다.

"편지지에는 내가 상처를 주었던 친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적어서 몰래 사물함에 넣어둬. 그리고 빈 종이에는 그동안의 시간을 떠올리면서, 자신의 소감을 스스로 정리해보면 돼. 강요는 절대 아니야. 여러분들이 전할 마음이 있다면 글에 담아서 보내면 되는 거야."

오늘 쓴 편지에 대해서는 내가 따로 확인을 하지는 않을 거라고 약속했다. 때문에, 아이들의 편지에 얼마나 진심이 담겨있는지는 여전히 확인할 방법이 없다. 다만, 아이들의 소감문을 통해서, 편지에 담겨 있을 진심도 조금은 엿볼 수 있었던 것 같다.

넷째 날 소감문 중에서 - 이번 일을 겪으면서 나 자신에게 편지 쓰기
'내 몸아 미안하다. 내가 잘못된 판단으로 이렇게 되었어. 대신, 기운 내자, 알겠지? 앞으로도 좋은 일 많이 생기자. 그러면 좋겠어.'
'이제부터는 욕도 많이 줄여가자. 그리고 화도 조절 잘하고 판단도 제대로 하자. 특히, 친구들에게 잘하자!'
'친구 몰래 뒷담화를 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거야. 다음부터는 신중하자!'
'정말 모두에게 미안하다. 나 자신에게도 후회가 된다. 지난 4일 동안 안 좋은 감정도 다 털어내서 마음도 한결 가벼워진 것 같다. 이 시간들이 하나도 아깝지 않다.'

4일이라는 시간 동안 아이들에게는 따로 '벌'도 없었고, '반성문'도 없었다. 대신 '대화'와 '배움'으로 채운 시간에서 나는 아이들 스스로 만든 작은 변화를 느끼기에 충분했다. 어쩌면, 4일이라는 긴 시간 동안 반성문을 적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반성의 시간을 단순하게 벌을 주는 시간으로 생각했던 나 자신에게도 그리고 잘못된 행동으로 친구와의 관계에서 문제를 일으켰던 아이들에게도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는 것이다.

아직 어리고 또 어린 아이들은 그냥 그렇게 잘못하고 반성하며 마음을 키워 가는 것이 해야 할 일이다. 대화와 배움이 있었던 반성의 시간이 훗날, 우리 반 아이들이 다시 만나 '벌을 받았던 썰' 대신 '생각이 바뀌었던 썰'로 서로 이야기하며 추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어제 잘못을 하면, 벌을 받는 것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고 미안함과 그런 말들로 풀어야 한다는 말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상담은 즐거웠고 이런 상담이라면 언제든지 할 수 있고 또 하고 싶기도 하다.' - 반성 마지막 날 아침 한 줄 글쓰기 중에서

○ 편집ㅣ최은경 기자

덧붙이는 글 | 2015년 3월 2일부터 시작된 신규교사의 생존기를 그리는 이야기입니다.



태그:#초등학교,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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