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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다수 학생은 모두 대학에 가는 걸 강요당해요. 대학 진학이 선택이 아닌 필수인 상황에서, 그런 사회 구조와 입시 체제에 불편함을 느끼기 때문에 저는 대학에 안 가겠다는 거예요. (…) 무엇보다 지금 제 생애주기에서 꼭 대학이 필요하지 않거든요." 일산 중산고 3학년 양지혜 학생은 "대학을 가고 싶지 않은, 대학이 삶에 필요하지 않은 저 같은 사람도 있을 수 있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 남소연
"엄마, 저 대학 안 가려고요."

'대학에 가지 않겠다'는 딸의 말에 어머니는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딸의 장점을 꼽으며 그가 대학에 가면 얼마나 좋을지 설득하려 했다. 아버지는 그나마 덜 놀라는 편이었다. 수능 전날인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 카페에서 만난 양지혜(18, 여)씨는 대학에 가지 않겠다고 부모님께 알리던 때를 회상하며 멋쩍게 웃었다.

"그때 사실 부모님 반응을 보고 좀 놀랐어요. 대학에 가지 않겠다는 건 저의 선택이지 부모님이 받아들여야만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거든요. 저는 평소처럼, 마치 '빨간색 운동화를 사기로 했다'는 정도의 말이라고 생각했어요."

지혜씨는 흔히 말하는 '모범생'이었던 탓이다. 학내 토론·문예창작 동아리에서 활동했고, 선생님 말을 어기거나 지각을 한 적도 열 손 안에 꼽았다. 그런 그의 일상에 균열이 가게 한 것은 역설적이게도 교내 활동이었다. 교칙 위반 학생들과 만나 얘기를 들으며, 그들을 정상·비정상으로 가르는 기준 자체가 잘못됐다는 생각을 했다.

'대학 거부'라는 결론이 나기까지 그는 남을 설득하는 동시에 자신을 설득해야 했다. 지혜씨는 "모두가 대학을 가는 교실 안에서 그렇지 않은 존재로 살아야 한다는 것, 정해지지 않은 미래 속에서 '당연하지 않은 삶'을 산다는 게 많이 두려웠다"고 토로했다. 스스로 "이 길이 맞는 걸까"란 질문을 계속 던졌다고 했다. 

"대다수 학생은 모두 대학에 갈 걸 강요당해요. 대학 진학이 선택이 아닌 필수인 상황에서, 그런 사회 구조와 입시 체제에 불편함을 느끼기 때문에 저는 대학에 안 가겠다는 거예요. (…) 무엇보다 지금 제 생애주기에서 꼭 대학이 필요하지 않거든요."
일산 중산고 3학년 양지혜 학생이 수능 시험을 하루 앞둔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 남소연
지혜씨는 "대학을 가고 싶지 않은, 대학이 삶에 필요하지 않은 저 같은 사람도 있을 수 있는 것 아닌가"라 반문했다. 친구들이 한창 수능을 보고 있을 12일 오전 11시, 그는 또 다른 대학 거부자 4명과 함께 서울 광화문 파이낸스센터 빌딩 앞에 선다. '우리를 거부하는 대학을 거부한다'는 표어 아래 '투명 가방끈 모임'이 주최하는 입시거부 선언 참여를 위해서다.

인터뷰 말미, 지혜씨 눈가에 갑자기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제게는 너무나 소중한 친구들을, 대입(교육 과정)은 단지 수험번호로만 여길 뿐 중요하게 보지 않는다"라고 말하던 차였다. 그는 "수능이 끝나고 친한 친구와 만나기로 했는데, 그가 느꼈을 절망감을 어떻게 위로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며 "그래도 언젠가는 절망의 지점을 함께 나누고 깨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지혜씨와 한 인터뷰 내용 일문일답이다.

"친구가 죽어도 수업하는 학교, 인간답게 살수 있을까 두려웠다"

- 본인을 소개해달라.
"경기 고양시 일산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고, 인문계 고등학교 3학년 재학 중이다. 그 외 청소년 세미나모임(아래 세모)에서 공부하고 있다. 꿈은 문학 작가인데, 꼭 작가가 아니더라도 어떤 형태든 글 쓰는 일을 하고 싶다. 

'세모'는 대안교육 형태의 청소년 모임이다. 일산·용인 지역에 사는 비슷한 또래 친구들 6, 7명이 자발적으로 2주에 한 번씩 모여서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세미나를 한다. 최근엔 노동에 대해서 공부했고, 학생 인권과 신자유주의를 주제로 토론하기도 했다."

- 대학 입시 거부를 한다고 들었다. 참여하게 된 까닭은.
"사실 처음에는 대학을 갈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올해 3월에는 고민 끝에 수능특강 문제집을 사기도 했다. 그런데 자꾸 내가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 사이에 충돌이 생기더라. 또 현재 입시체제가 잘못됐으며 고쳐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시험 점수에 일희일비하고 1등급을 원하는 저 자신을 보면서 충격을 받았다.

결정적인 계기는 이거다. 학내 '자치법정'이라는 곳에서 활동하며 학교 규정을 위반한 친구들을 여럿 만났다. 그런데 교복 위에 크로스 백을 메는 것조차 금지하는 걸 보면서, 다양성을 하나의 획일적 기준으로 묶어두려는 학교가 학생들보다 문제라고 느꼈다. 그리고 깨달았다. 내가 소위 '모범생'으로서 당연히 누려왔던 게 실은 알량한 권력이었고, 입시 체제에 순응하는 데에서 오는 보상이었다는 걸."
인터뷰 말미, 양지혜 학생의 눈가에 갑자기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제게는 너무나 소중한 친구들을, 대입(교육 과정)은 단지 수험번호로만 여길 뿐 중요하게 보지 않는다"라고 말하던 차였다. 그는 "수능이 끝나고 친한 친구와 만나기로 했는데, 그가 느꼈을 절망감을 어떻게 위로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며 "그래도 언젠가는 절망의 지점을 함께 나누고 깨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 남소연
'대학 거부'라는 결론이 나기까지 그는 남을 설득하는 동시에 자신을 설득해야 했다. 양지혜 학생은 "모두가 대학을 가는 교실 안에서 그렇지 않은 존재로 살아야 한다는 것, 정해지지 않은 미래 속에서 '당연하지 않은 삶'을 산다는 게 많이 두려웠다"고 토로했다. 스스로 "이 길이 맞는 걸까"란 질문을 계속 던졌다고 했다. ⓒ 남소연
- 현 입시체제의 어떤 점이 가장 문제라고 봤나.
"입시 부조리는 사실 많은 사람이 알고 있다. 다들 '어쩔 수 없다'고 하는 것뿐이지. 제가 학교 현장에서 느꼈던 가장 큰 문제는 획일성이다. 하나의 가치로만 설명하는 것. 오늘도 '수능 출정식'이란 걸 해서 수능 볼 고3들에게 박수 치며 선물을 줬다. 하교 하면서 친구들과 얘기했다. '우리가 지냈던 3년이 내일 하나로 설명되는 건가?'

(현 교육 과정이) 대학 진학이 최고 목표이다 보니, 다른 가능성과 다른 꿈은 너무나 쉽게 박탈당한다. 사람들이 대학에 가는 건 결국 생존하기 위해서가 아닌가. 입시 경쟁을 뚫고 대학에 가서도 취업 경쟁은 계속된다. 열심히 해도 누군가는 결국 탈락하고 자살할 수밖에 없는 구조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작년에 제가 고2일 때 친구네 학교에서 1학년이 성적 비관으로 자살했다. 그런데 그 학교에서는 다음 날도 아무렇지 않은 듯 수업을 진행했다고 한다. 누군가 죽어가는 상황에서도 시험과 성적이 중요하다는 건데, 그 속에서 내가 인간답게 살 수 있을까 싶은 거다. 만약 제가 대학 입시를 계속 준비했다면 저도 이런 일을 대수롭지 않은 척 넘겼을 거다. 그렇지 않으면 못 견딜 테니까."

- 대학을 가지 않겠다고 했을 때 친구와 가족들 반응은 어땠나.
"친구들은 저를 지지해주는 편이었다. 가족들은 오히려 제가 놀랄 정도로 받아들이는데 힘들어하시더라. 엄마는 제 얘기를 듣고 우셨고, 아버지는 담담하셨다. 저로서는 (대학 거부가) '빨간색 운동화를 살 거예요' 정도라 생각했기 때문에 좀 놀랐다. 평소에 부모님이 제 선택을 믿어주시는 편이어서, 그렇게 큰 기대를 거는지 알지 못했다. 

대학을 가지 않기로 했을 때부터는 교실 안에 앉아있는 게 불편해졌다. 한편으론 이도 저도 아니고(자퇴도 아니고) 어중간하게 있는 저 자신이 비겁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저는 제 생애주기에서 반드시 대학이 필요하다고 보지 않는다. 대학을 가고 싶지 않은, 필요하지 않은 저 같은 사람도 있을 수 있는 것 아닌가."

"흔들리고 겁나는 것도 사실... 그래도 주체적인 삶 살고 싶다"
일산 중산고 3학년 양지혜 학생은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잊지 않겠다는 '노란 리본'을 늘 지니고 다닌다. ⓒ 남소연
- 다른 길을 가는 게 두렵지는 않나
"부모님께 처음 얘기한 게 올해 2월인데 사실 그 후로도 흔들리고 겁이 났다. 친한 선생님과 친구들 얘기를 들으며 '이 길이 맞는 걸까' 그런 질문을 스스로 계속 던졌다. 그런 과정을 거치며 제가 꿈꾸는 삶이 어떤 건지 좀 구체화됐다. 돌아보면 올해는 참 실수가 잦았지만, 한 번 버텼으니 앞으로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저라는 사람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 대학에 가지 않고 어떻게 지낼 생각인지.
"지금은 제가 하고 싶은 일들, 또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이 정리된 상태다. 내일이 기대되고 오히려 '좀 더 빨리 결심했더라면' 하는 생각도 든다. '시간표가 없는 인생을 살고 싶다, 내가 자유롭게 선택한 것을 배우고 싶다'는 게 대학을 거부하는 이유였는데 요즘 그걸 느낀다. 학교에 가지 않아도 이만큼 행복할 수 있다는 걸 깨닫고 있다.

내년에 저는 청소년 시설 등에서 활동하며 경제적 자립을 준비해보려 한다. 동시에 청소년 빈곤과 주거권, 경제권 등 청소년 권리를 좀 더 연구해 볼 생각이다. 저는 기본소득 등 청소년들이 독립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 기반이 구조적으로 제공돼야 한다고 보고, 그래야만 그들이 강요된 삶이 아닌 주체적인 삶을 선택할 수 있다고 본다."

- 한국 교육에서 가장 바뀌었으면 하는 것이 있다면?
"입시 폐지를 비롯해 많은 게 바뀌어야 하겠지만 요즘 저는 특히 교육의 자유화에 대해 많이 생각 중이다. 저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가 학생들의 교육 주권이 사라진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본다. 안 그래도 획일적 가치를 배운 학생들에게, 국정 교과서는 국가가 보는 하나의 시각만을 가르치겠다는 얘기나 마찬가지다. 저는 학생도 교과서 선정에 참여할 수 있다고 본다. 학생이 주체성을 찾고, 학생이 주인공이 돼 이끌 수 있는 변화가 더 생겨나야 한다는 게 제 생각이다." 

- 일부에선 대학 거부자들의 미래를 걱정하기도 한다. 그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지금 우리가 딛고 있는 체제는 많은 이들의 희생과 죽음 위에서 굴러가는 체제다. 분명히 바뀌어야 하지만, 다들 체념하다 보니 그냥 굴러가는 것 아닌가. 그렇다 보니 학생들은 입시에서 탈락, 심지어는 회사에서도 '저성과자 해고'로 더 많은 이가 탈락하게 된다. 저는 점점 더 탈락이 줄어드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본다.

매년 대학 거부 슬로건이 바뀌는데, 이번 해는 '우리를 거부하는 교육을 거부한다'는 게 슬로건이다. 학생들이 주체적으로 나서서 탈락당하지 않겠다, 먼저 거부하겠다는 얘기다. 저 또한 그런 의미에서의 대학 거부다."
○ 편집ㅣ최은경 기자
태그:#대학 거부, #입시 거부, #투명가방끈, #투명가방끈 모임, #수능 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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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플러스 에디터. 여성·정치·언론·장애 분야, 목소리 작은 이들에 마음이 기웁니다. 성실히 묻고, 세심히 듣고, 정확히 쓰겠습니다. Mainly interested in stories of women, politics, media, and people with small voice. Let's find ho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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