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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중앙평원의 옛 도읍지 하르호린(хаpxopИн, Kharkhorin)에 들어서니 스투파가 담장을 이룬 라마불교 사원이 한눈에 들어온다. 불탑인 스투파 108개를 모두 연결한 담장이 에르덴 조 사원(Erdene Zuu)을 둘러싸고 있다. 나와 아내는 에르덴 조 사원의 4개의 큰 문 중 남문을 통해 사원 안으로 들어섰다.

108개의 스투파로 이루어져 있다.
▲ 에르덴 조 사원의 담장. 108개의 스투파로 이루어져 있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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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불교사원의 문이지만 마치 옛 왕궁의 육중한 성문과 똑같이 생겼다. 마치 옛 하르호린의 왕궁 안으로 들어가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우리나라 불교사원 같이 일주문이나 사천왕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성벽 같은 담이 불교사원을 둘러싸고 있으니 가람의 배치에서는 우리나라와 완전히 다른 이국적인 모습이다.

사원의 성문이 왕궁의 성문 같이 육중하게 생겼다.
▲ 에르덴 조 사원 남문. 사원의 성문이 왕궁의 성문 같이 육중하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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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덴 조 사원은 몽골의 옛 수도에 세운 몽골 최초의 라마불교 사원이다. 사원 주변으로는 붉은 장삼을 둘러쓴 스님들의 모습이 자주 눈에 띈다. 사원 안으로 들어서자 예상보다 아주 넓은 평지에 듬성듬성 들어선 사원 건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한때는 이 담장 안에 100여 개의 사찰건물과 300여 개의 게르(Ger)가 있었고, 무려 천 여 명의 승려가 거주했을 정도로 큰 사원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초지 위에 쓸쓸함만이 감돈다. 담장 내부의 면적은 당시 천여 명이 살았다는 것이 믿겨질 정도로 넓으나 이제는 그 안을 다 채우기도 버거울 정도로 빈 땅이 넓다.

티벳 불교의 영향으로 붉은 장삼을 입고 있다.
▲ 에르덴 조 사원의 스님. 티벳 불교의 영향으로 붉은 장삼을 입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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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원의 담장 역할을 하는 스투파가 진짜로 108개인지 한번 세어보았다. 네 변의 외벽 각 방향마다 23개씩 92개의 스투파가 서 있고 각 모서리를 보니 각각 2개씩 8개의 스투파가 있다. 그러면 외벽에 총 100개의 스투파가 있는 것이다. 스투파 수가 108개가 아니라 100개라고 자신 있게 씩 웃었더니 몽골 친구가 웃으면서 총 180개의 스투파 수가 맞다는 것이다. 그러면 나머지 8개의 스투파는 어디에 있냐고 물었더니 사원 안에 또 8개의 스투파가 서 있다고 한다.

그래서 실제로 사원 안을 이리저리 보니 사원 내부의 평지에 6개, 사원 전각 앞에 2개, 이렇게 합해서 총 108개의 스투파가 서 있었다. '108'이라는 숫자를 들으면 누구나 불교의 108번뇌를 상징한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짐작대로 108개의 스투파는 몽골에서도 108 번뇌를 상징하고 있었다. 어디에서 살건 인간의 번뇌 수는 이렇게 많은 모양이다.

인상적인 것은 사원의 108개 스투파 앞을 돌면서 스투파에 일일이 입맞춤을 하면서 소원을 비는 몽골 불교 신자들의 모습이다. 번뇌와의 입맞춤이라! 이곳에서는 번뇌와 키스하면서 번뇌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인간들의 몸부림이 강하게 느껴진다.

에르덴 조 사원의 불교 관련 유물을 전시한 박물관이다.
▲ 에르덴 조 사원 박물관. 에르덴 조 사원의 불교 관련 유물을 전시한 박물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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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관 입구에는 하르호린 주변의 유물이 사진으로 전시 중이다.
▲ 박물관 내부. 전시관 입구에는 하르호린 주변의 유물이 사진으로 전시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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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문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에르덴 조 박물관이다. 나는 박물관 안의 전시실 안으로 들어서다가 몽골 친구의 설명을 듣고 발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에르덴조 사원 박물관 안 진열장에 사람의 대퇴골이 진열되어 있었던 것이다. 누가 보아도 사람의 넓적다리뼈인 대퇴골 모습을 하고 있는 뼈이다. 안내문에도 사람의 대퇴골로 만든 종교 목적의 피리라고 되어 있다. 몽골친구가 나에게 설명을 해주었다.

"이건 18세 처녀의 대퇴골로 만든 강링(Ganlin)이라는 피리인데 불교행사에서 사원의 큰 스님들이 사용하던 악기지요. 이 뼈로 만든 피리는 악령을 몰아내는 영험한 힘이 있다고 믿었고 그래서 당시에는 비밀 장소에 보관했지요. 현재는 이용되고 있지 않지만 지금까지도 극심한 논란을 겪고 있습니다."

"왜 젊은 여자의 뼈로 피리를 만들었지요?"

"그건 여자인 악령이 남자의 대퇴골에는 반응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놀랍게도, 사람의 넓적다리뼈로 만든 피리이다.
▲ 강링. 놀랍게도, 사람의 넓적다리뼈로 만든 피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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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여자의 뼈로 만든 피리라는 이야기를 듣고 기겁을 한다. 엉덩이 관절과 무릎 관절을 이어주는 대퇴골은 사람 몸에서 가장 긴 뼈인데 뼈가 가장 길기 때문에 피리로 이용된 것 같다. 몽골 불교의 이러한 주술적인 면들은 티벳의 라마불교를 받아들인 영향 때문이다.

티벳 라마불교에서 제물로 바쳐진 18세 처녀의 왼쪽 넓적다리뼈로 피리를 만든 것에서 유래한 이 피리는 몽골에서는 자연사한 18세 여자의 시신에서 빼낸 뼈라고 많이 알려져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 인골 피리가 몽골에 도입된 후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입적한 남자 승려의 시신에서 뼈를 빼내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사원 내 불교 의식에서 강링이 연주되는 모습이다.
▲ 강링 연주. 사원 내 불교 의식에서 강링이 연주되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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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뼈를 보면서 순간 충격에 빠졌다. 아무리 주술적인 신비주의가 심한 라마불교라지만 살생을 금지하고 생명을 중시하는 불교에서 사람의 뼈로 피리를 만들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이 박물관 안에 전시된 불교용품들도 주술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것들이 많다. 이는 제물을 바치고 악마를 쫓는 주술을 가지고 있던 티벳의 토착종교가 불교와 결합하면서 생긴 독특한 관습들이 몽골에 전해진 결과들일 것이다.

불교의식에 사용되는 옷에는 해골 장식물이 주렁주렁 달려 있다.
▲ 불교의식 복장. 불교의식에 사용되는 옷에는 해골 장식물이 주렁주렁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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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사원 안의 박물관이지만 자비로운 미소로 중생을 내려다보는 부처님이 계시지는 않다. 전시관 안의 탈은 짙고 푸른 얼굴에 이마 위에는 눈이 한 개 더 그려져 있다. 불교의식에 사용되는 옷에는 온갖 장신구들이 치렁치렁 매달려 있는데 그 중에는 작은 해골도 달려 있다.

이 험상궂은 푸른 얼굴은 우리나라 사찰의 사천왕문 안에서 사찰에 들어오는 중생들을 노려보는 사천왕상(四天王像)과 같은 존재이다. 해골 옷을 입고 푸른 탈을 쓴 채로 진행되는 불교의식은 불교의 가르침을 전파하는 데에 해가 되는 사악한 존재를 물리치기 위한 것이다. 게다가 이 푸른 탈을 쓰고 하는 의식은 사찰 안에 들어온 중생들의 마음 한 구석에 있는 악한 마음을 억누르기 위해서도 거행되었을 것이다.  

사람의 두개골로 몸체를 만든 작은 북이다.
▲ 가튠. 사람의 두개골로 몸체를 만든 작은 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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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사원 박물관의 기이함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전시장 안에는 몸통이 허리같이 잘록하게 들어가 있고 몸통의 양쪽에는 가죽을 씌워 놓은 요고(腰鼓)형의 작은 타악기가 있다. 몸통 중간 한쪽 끝에는 작은 구(球)를 끈으로 연결한 채가 달려 있고, 한 손으로 이 채를 흔들어서 소리를 낸다고 한다. 그런데 이 타악기를 보고 몽골 친구가 믿어지지 않는 이야기를 또 한다.

이 타악기가 사람의 두개골로 장식해 만든 타악기라는 것이다. 소리를 내는 가죽 면을 받치고 있는 타원형 몸통이 사람의 두개골로 만든 것이라는 것이다. 정말로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람의 해골 2개를 합쳐서 작은 북의 몸체를 만든 것이다. 몽골 친구의 말에 아내는 다시 한 번 기겁을 했다.

나는 유리 너머에 있는 이 작은 인골 악기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사람 두개골을 어떻게 악기로 만들었는지 계속 눈이 갔다. 이 악기는 티벳 밀교(密敎)의 전통음악에서 사용되던 '가튠'이라는 악기인데, 과거 인도에서 사용되던 다마루(damaru)라는 악기에서 유래한 악기이다. 티벳 라마교에서도 열반한 라마승 두개골로 만든 악기를 가지고 의식을 행하니, 티벳불교를 받아들인 몽골 불교의 이 악기가 두개골로 만들었다는 사실이 거짓말은 아닐 것이다.

왜 이렇게 사람들의 시신을 가지고 악기를 만들었을까? 불교에서 사람의 인체는 신도들이 부처가 되는 데에 도움을 준다고 믿기 때문인가? 아니면 사람의 인체가 불교의 수행을 방해하는 물체가 된다고 생각한 것인가? 인체를 구성하는 물질도 우주의 한 물질이기 때문에 인체를 바라보는 시각을 굳이 무시하기 위한 것인가?

초록 대지와 푸른 하늘을 배경 삼아 사원이 들어서 있다.
▲ 에르덴 조 사원 내부. 초록 대지와 푸른 하늘을 배경 삼아 사원이 들어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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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대제국 옛 도읍지의 역사와 이야기들을 만나러 온 나는 에르덴 조 사원 박물관에서 일견 혐오스러울 수 있는 유물들을 만나면서 혼란에 빠졌다. 티벳 밀교의 비밀스런 종교의식의 한가운데로 들어선 것 같은 느낌. 이곳이 몽골인지 티벳인지 헷갈렸다. 박물관 밖으로 나오자 몽골의 초록 대지와 푸른 하늘이 다시 나를 반기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에만 송고합니다. 제 블로그인 http://blog.naver.com/prowriter에 지금까지의 추억이 담긴 여행기 약 500 편이 있습니다.



태그:#몽골, #몽골여행, #하르호린, #에르덴 조 사원, #몽골 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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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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