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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원들에게 주짓수 기술 설명 중인 홍승철 관장
 관원들에게 주짓수 기술 설명 중인 홍승철 관장
ⓒ 박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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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카로운 눈빛에 숨소리가 배인다. 거친 호흡에 두꺼운 도복들이 뒹군다. 그 뒤에 원초적인 심장소리가 들린다. 사방엔 땀으로 범벅된 얼굴들이 가득하다. 본능적인 생존을 위한 북을 치는 듯한 호흡이 전이된다. 지쳐있어도 살아있는 눈빛으로 서로를 응시하고 있는 수련생들. 여기는 경기도 광주 위치한 주짓수 체육관이다.

이곳에서 수련하는 사람들의 나이 대는 다양하다, 10대부터 50대까지, 청소년, 청년, 중년 등 여러 계층이 섞여있다. 거칠고 위험한 운동이지만, 그래서인지 더욱 예의와 안전을 중시한다. 격렬한 스파링을 하는 모습은 상대마다 분위기와 호흡이 다르다.

최근 종합격투기 붐의 영향이 큰 것도 있지만, 나이 대를 떠나 사랑받는 걸 보면 스스로 운동을 즐기기 위해 나온 모습들이 확연히 드러난다. 이렇게 인기를 끄는 운동, 주짓수. 그 속엔 과연 어떤 비밀이 숨어 있을까?

사업실패 후 육교 위에서 망설이던 나를 잡아준 가족과 주짓수

"전에 사업하다가 전 재산을 날렸어요. 건축 관련 사업이었는데... 한동안 많이 힘들었습니다. 지금도 그때 육교 위에서 한없이 망설이던 순간들이 생각나네요. 그럴 때도 저에게 화한번 안내고, 저를 많이 위로해주고 챙겨주는 와이프와 아이들 때문에 기운을 냈습니다. 지금 체육관에서 이렇게 맘껏 운동하며, 아이들 가르치는 일이 제겐 너무도 즐겁고 행복합니다."

사업실패 및 삶의 여러 기로에 있을 때 고심 끝에 주짓수 체육관을 차렸다는 홍승철 관장. 그는 사업실패 후 여러 직종의 직업을 거치다 우연히 주짓수란 운동을 만나게 되었다. 원래 과거에 여러 종류의 운동을 했지만 이상하게 성인이 된 이후 이 운동의 매력에 푹 빠졌다고 했다.

처음엔 재미로 시간 가는 줄도, 힘든 줄도 몰랐다고. 그 후 그의 일과는 퇴근 후 왕복 2시간여를 넘는 거리를 다니며 이 운동을 배우게 되었다. 사업실패의 고통도 망각하게 한 이 운동에 격하게 빠져들었다. 결국 취미가 직업이 되버렸다.

때론 관원이 줄기도, 늘기도 하는 부침을 겪기도 했다. 성인들의 특성상 나이 대가 취업이나 대학진학을 앞둔 또래들이 많기 때문이다. 취업을 해서, 대학을 다니면서 운동과 멀어지게 되는 모습을 종종 보아왔다. 그래도 타 운동과는 다르게 다시 돌아오는 관원들이 더 많다고 말했다.

다행스럽게도 지금은 초등생 관원들이 많아 예전처럼 큰 기복은 없는 상황이 되었다. 운동을 좋아하면서도 삶에 치여 나오지 못하는 성인관원들을 보면 예전 생각이 난다는 그. 사는 게 바빠서 하고 싶은 운동을 하지 못하는 관원들을 보면 씁쓸한 감정은 어쩔 수 없는 듯 보였다.

내친 김에 다른 관원들의 이야기도 청했다. 주짓수에 중독 아닌 중독이 된 여러 나이 대의 성인들. 그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그들은 가감 없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현실의 삶을 걱정하는 미생들을 위로해주는 운동

체육관에서 스파링 중인 관원들
 체육관에서 스파링 중인 관원들
ⓒ 박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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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짓수 기술 중 하나인 트라이앵글 초크 시연 중인 관원들.
 주짓수 기술 중 하나인 트라이앵글 초크 시연 중인 관원들.
ⓒ 박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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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하루하루가 불안했어요. 지금 하는 일 계약이 3년 단위였는데. 올해부터 갑자기 일 년 단위 계약으로 바뀌어서 많이 불안하죠. 그래도 이렇게 체육관 나와서 몸을 뒹굴다 보면 다 잊게 되요. 이상하게 나이 들고 잊었던 자신감도 부쩍 생기는 것 같기도 하고."

중년의 한 남성관원. 중년의 나이에도 위태로운 삶을 살아가야 하는 현실. 그도 또래의 사람들처럼 본인도 서서히 자신감을 잃고 있었다. 하지만, 이 운동을 시작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조금씩 자신감과 활력이 생겼다. 자신도 어느덧 이 운동의 매력에 푹 빠졌다. 나이가 있음에도 젊은이들과 어울려 뒹굴고 난 후 하루의 무거운 짐이 털어지는 느낌. 그것은 중년의 그에겐 색다른 경험이라고 했다. 

"원래 저희 집은 꽤 잘 사는 부자였는데 갑자기 아버지 사업이 쓰러졌어요. 지금은 동생과 저. 둘만 살고 있는데. 어머니가 많이 아프셔서 마음이 많이 무겁습니다. 이제 성인이 된지 얼마 되지도 않은 상태여서 사실 막막해요. 그래도 체육관에서 운동하는 시간에는 다 잊어요."

이제 갓 성인이 된 한 남성관원. 그는 자신의 현실이 얼마나 막막한지 알고 있는 듯 했다. 그가 성인이 되어 마주한 현실은 감당키 힘든 당황스런 상황이었다. 그런 그에게 손을 내민 이 운동. 그도 이 운동으로 인해 체육관에 와 있는 동안은 모든 걱정을 잊게 된다며 씩 웃어보였다.

"지금 보건소에서 근무하고 있어요. 이제 시간이 지나면 인턴, 레지던트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좀 걱정되기도 해요.(웃음). 또 새로운 곳으로 가서 적응하는 게 기대 반, 걱정 반이죠. 환경이 바뀌어도 주짓수는 계속할 생각인데. 시간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요. 유도를 꾸준히 하기도 했지만, 주짓수도 참 이상한 매력이 있는 운동이에요."

"직장생활을 해나가는게 불안 불안해요. 현재 직장이 안정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니까요. 제 또래 친구들 다 그래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한게 사실이에요. 제 나이 또래가 모두 하는 고민 아닐까요?"

자신들 모두 주짓수에 푹 빠져있다고 밝힌 젊은 관원들. 그들은 한결같이 각자 강도는 다르지만, 자신들의 미래에 대해 걱정하고 있었다. 불경기에 시달려서 인지, 그들의 미래가 너무 눈부셔서 아름다운 것이 아님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저 현실에 휘둘릴지도 모르는 자신들의 부침을 예견하는 듯 했다. 일상의 무거운 현실들이 그들 앞에 마주하는 순간, 청년들인 그들도 당황스럽다고 했다. 미래가 걱정되고, 힘든 건 자신들만의 이야기는 아니라며 자신들이 헤쳐나가야 할 현실임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들 모두 한창 놀고 싶을 나이임에도, 어떻게든 시간을 쪼개서 운동을 빼먹지 않으려 했다. 주짓수의 특성상 부상의 위험을 우려하자 "때론 다치기도 하고 그런 게 운동이고, 인생 아니겠어요?"라고 오히려 웃으며 쿨하게 대답하는 젊은이들.

위태로운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흘리는 땀의 의미

운동 마지막 단체 사진 촬영중인 관원들. 나이대가 다양한 수련생들이 보인다.
 운동 마지막 단체 사진 촬영중인 관원들. 나이대가 다양한 수련생들이 보인다.
ⓒ 박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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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관장부터 관원들 한 명, 한 명. 모두 이 불안한 시대의 위태로운 하루하루를 보내며 그들은 이미 현실의 벽을 수없이 마주한 듯했다. 그들의 사연과 이야기를 듣다보니 이 운동이 누군가와 싸우기 위해 육체를 단련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무거움에 치인 자신의 내면을 스스로 단련하고 위안 받기 위한 듯한 운동처럼 보였다.

도장을 나오는 길. 이날 따라 유독 그들 도복을 적신 땀의 색이 다르게 보였다. 고민 많은 나이에 위태로운 현실을 살아가는 그들. 그들은 이날도 평소와 다름없이 체육관을 구르며, 자신의 얼굴과 자신의 도복을 적시고 있었다.

그저 호신을 위해, 건강을 위해 운동하는 곳으로 보였던 체육관. 자세히 살펴보니 그 안에 존재하는 땀의 색상이 다른 듯 했다. 누군가를 증오하고 이겨내기 위한 땀이 아닌, 가슴 속에서 올라오는 다른 색의 땀들이 이곳에 존재하고 있는 듯했다.

그날 저녁 어쩌면, '그들이 도복에 흘렸던 땀들은 힘겨운 삶에 치인 자신의 가슴 속에 담겼던 눈물은 아닐까'란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들이 흘린 땀은 그날도 그들의 얼굴과 그들의 도복을 흥건히 적시고 있었다.


태그:#주짓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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