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안해 사랑해 고마워>에서 서정 역의 배우 성유리가 27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화 <미안해 사랑해 고마워>에서 서정 역의 배우 성유리가 27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핑클의 '요정'에서 배우 성유리로 나아가기까지 13년, 이 시간은 스스로에겐 의심과 인고의 때였다. <차형사>(2012) 이후 3년 만에 모처럼 상업영화 <미안해 사랑해 고마워>에 출연한 그는 최대한 편하고 자연스럽게 자신을 담아내려 했다.

영화 속에서 성유리가 맡은 역할은 가수에서 톱배우로 올라선 서정. 감정 표현에 무뚝뚝하지만 누구보다 정이 깊고 사람을 좋아하는 인물이다. 설정으로만 치면 실제 성유리가 밟아온 길과 가장 유사한 배역이기도 하다. 29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성유리는 "일상 속 내 모습을 최대한 끌어오려고 했다"고 말했다.

가수와 배우 사이

영화는 전형적인 신파로 볼 수 있다. 가족과 친구 등 곁에 있는 사람의 소중함을 돌아보자는 메시지가 강하게 읽힌다. 여러 이야기가 한 데 모인 옴니버스 구조 안에서 서정과 그의 매니저 태영(김성균 분)은 서로의 소중함을 확인하고 오해와 갈등을 풀어가는 식으로 관객에게 감동을 전한다. 

실제 연예인이니 누구보다 직업의 특수성을 이해했을 터. 성유리는 "감성이 예민한 사람이 연기를 잘 하잖나, 공감 가는 부분이 많았다"고 전했다.

"서정은 강해 보이지만 그만큼 상처도 쉽게 받기에 센 척하는 거다. 실제 난 센 척보다는 '쿨하게' 보이려는 면이 있는데 그런 점에서 쉽게 몰입할 수 있었다. 영화 제목처럼 평소엔 미안하다, 사랑한다, 고맙다는 말을 잘 못한다. 오글거리기도 하고 습관이 안 돼 있는 것 같다. 

지금 당장은 영화 현장에 함께 해주신 스태프 분들에게 감사하다는 말부터 하고 싶다. 촬영하느라 미처 그런 말을 못했는데 사랑받으며 무사히 끝냈다는 느낌이다. 촬영이 끝나고는 날 위한 이벤트도 해주신 분들이다. 펑펑 울었는데, 그분들에게 미안하고, 사랑하고, 고맙다."

 영화 <미안해 사랑해 고마워>에서 서정 역의 배우 성유리가 27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영화 <미안해 사랑해 고마워>에서 서정 역의 배우 성유리가 27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화 <미안해 사랑해 고마워>에서 서정 역의 배우 성유리가 27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가수 출신이지만 역할을 위해 성유리는 보컬 수업과 기타 수업을 따로 받으며 집중했다. 연출을 맡은 전윤수 감독이 굳이 잘 할 필요까진 없다고 했지만, 마치 신인처럼 매진했다. 이 사연을 전하던 그는 "핑클 때 이렇게 열심히 했다면 참 좋았을 텐데"라며 짐짓 웃어 보였다.

따지고 보면 연기도 그렇다. 2002년 SBS 드라마 <나쁜 여자들>로 배우 전향을 했지만, 시청률과 달리 연기력에 대한 비판을 들어야 했다. 성유리는 준비되지 않은 채 기회를 잡은 걸 인정하면서도 "비난과 '결국 연기를 포기할 거야' 같은 선입견이 오히려 내 안의 뭔가를 꿈틀거리게 한 것 같다"며 "대중이 생각하는 이상으로 날 증명하고 싶은 열망이 있었다"고 고백했다.

강박을 넘어서다

"사실 가수나 배우를 꿈꿔본 적이 없다. TV에 나오는 사람은 특별한 사람이라 생각하며 학창시절을 보내다 우연한 기회에 길거리 캐스팅이 됐잖나. 돌아보면 신기하다. 하다 보니 열정이 쌓였고, 꿈이 된 거지. 가수 활동 이후 연기를 한다고 했을 땐 조언을 구할 곳이 거의 없었다. 선배 배우들도 잘 몰랐고, 소속사 역시 다 가요 쪽에 특화가 돼서. 또 그때만 해도 가수가 배우를 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고, 그에 대한 시선도 곱지 않았다.

20대의 대부분을 나에 대한 의구심으로 보냈다. '내 길이 맞을까' 전전긍긍했다. 그런데 어떤 직업군이든 다들 이런 고민을 하시더라. 계속 가야 하는 건지, 멈춰야 하는 건지. 연기하는 사람도 비슷하다. 다만 어떤 분들은 작품이 없을 땐 실컷 쉴 수 있다고 좋지 않냐고들 하시는데 다음 작품은 과연 할 수 있을까 고민이 더 크다. 쉬는 게 쉬는 게 아닌 거다."

이런 불안함을 성유리는 선배와 동료를 통해 극복해 왔다. 인생 선배로 꼽는 전인화나 최근엔 이번 영화에서 함께 호흡을 맞춘 지진희의 말로 위로를 얻었단다. 성유리는 "오래 작품을 쉬어서 불안하다고 말씀드렸더니 (지진희) 선배가 '어제를 지난 만큼 넌 성장하고 있어, 배우는 살아가는 것 자체가 공부'라고 해 주셨다"며 "좀 더 날 내려놓고 감사할 수 있게 됐다"고 전했다.

사실 성유리 자체가 가수 후배들에게는 든든한 존재이기도 하다. 연기를 병행하는 여러 아이돌 그룹 멤버들이 종종 그에게 상담을 청하기도 한단다. 성유리는 "이젠 가수라도 연기와 외국어까지 배우는데 그런 시스템이 부럽기도 하면서도 경쟁이 그만큼 치열하다는 의미라 안타까움도 든다"고 말했다.

"예전엔 내가 단순히 도태되는 건 아닌지만 생각했는데 돌아보니 함께 활동했던 친구 중 음악을 그만 둔 이들이 더 많더라. 이젠 같은 영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친구들이 큰 힘이 된다. 우리 핑클 멤버들도 그렇고, (정)려원 언니도 그렇고!"

성유리의 힐링법

 영화 <미안해 사랑해 고마워>에서 서정 역의 배우 성유리가 27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화 <미안해 사랑해 고마워>에서 서정 역의 배우 성유리가 27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과거 여러 인터뷰를 보면 성유리를 수식하는 단어 중 유독 '숫기 없는'이 눈에 띈다. 그만큼 자신을 드러내기를 꺼렸다는 의미. 그는 "말실수에 대한 강박도 있었고, 내 얘길 하는 데 익숙하지 않았다"며 "이젠 자연스럽게 변했다"고 고백했다. 성유리를 스타덤에 오르게 했지만 동시에 연기력 논란으로 창피한 기억일 수 있는 SBS 드라마 <천년지애>(2003)의 주인공 부여주 이야기에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부담스러운 얘기였는데 처음으로 드라마 주인공을 하게 한 작품이고, 많은 걸 배운 작품이라 감사할 따름"이라고 스스럼없어 했다. 

"사실 평소에도 내 얘길 주변에 잘 안한다. 그래서 오히려 인터뷰 때 내 얘길 대놓고 할 수 있어서 좋기도 하다. 대화하는 것만으로도 치유가 된다는 걸 잘 몰랐다. 다들 살기 힘든데 굳이 내 힘든 얘길 남에게 해야 하나 싶기도 했고. 어느 순간 상대가 해결책을 주지 않아도 내 얘길 하는 것만으로 속이 시원해질 때가 있더라. 겉으로 완벽해 보이는 분들도 고민이 다 있고,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여기에 더해 글쓰기는 성유리에겐 중요한 취미 중 하나다. 틈틈이 글을 써온 만큼 갖고 있는 작품도 몇 개 있다. 현재 방영 중인 MBC 드라마와 이름이 같은 <그녀는 예뻤다>를 비롯해 <맥아더 아저씨>, 명성황후 시절 궁중 무희인 리진에 대한 이야기를 각색한 글도 있다. "밤에 밖에 나가서 노는 성격도 아니고 감성적이 되다 보니 써왔던 것들"이라고 수줍은 듯 그가 말했다. 기회가 된다면 성유리 '작가'의 영화가 나올 수도 있는 일이다.

일단 당장의 성유리는 더 다양한 작품으로 대중과 만나길 원한다. "정말 소처럼 일할 수 있다"며 다짐하는 그에게 응원의 마음을 보탠다.

성유리 미안해 사랑해 고마워 김성균 지진희 김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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