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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세월 한결같이 마을 이웃과 함께해온 미용실
▲ 미용 일도, 사람 만나기도 좋아서 날마다 문을 열어놓으시는 태양미용실 이종금 아주머니 40년 세월 한결같이 마을 이웃과 함께해온 미용실
ⓒ 고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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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홍천군 서석면에는 30~40년씩 자리를 지켜온 터줏대감 같은 이발소, 미용실, 전파사, 방앗간 등을 찾기 쉽다. 특히 전통 장터 옆 태양미용실은 동네 할머니들과 청춘 시절부터 같이 나이 들어온 미용실이자, 머리 하러 가는 게 부담스럽지 않은 익숙한 미용실이다.

머리를 하지 않더라도 언제든 들어가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다. 이웃들에게 항상 열려 있는 마을 사랑방같은 곳이다. 그곳에 젊은 남성이 불쑥 미용실로 들어가니, 낯설어하는 분위기였다. 그래도 사람 사는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마실 나온 사람들 사이에 끼었다.

서석면 사랑방 '태양미용실', 젊은 남자가 들어갔더니...

40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 머리를 만지고, 한 사람 한 사람 수많은 사연들을 주고 받았을 것이다.
▲ 40년 세월 한결같이 마을 이웃과 함께해온 태양미용실 40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 머리를 만지고, 한 사람 한 사람 수많은 사연들을 주고 받았을 것이다.
ⓒ 고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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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하는 의자에는 할머니 손님이 앉아있었다. 또 다른 주민 두 명도 자리를 잡고 주인 아주머니와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안을 둘러보았다. 미용실에 흔하게 있는 소파도 없다. 의자 몇 개와 평상에 장판을 깔아놓은 게 전부였다.

어디에 앉아야 할지 머쓱했지만 바꿔 생각하면, 아무데나 차지해도 되는 분위기였다. 머리를 감는 곳은 손님의 고개를 앞으로 숙여 대야에 담그는 식으로 되어 있다. 아무리 시골 미용실이지만 이래서 장사가 잘 될까 싶었다. 도시에서 기계적으로 해주는 서비스에 길들여진 사람의 편견이었다.

태양미용실에서 머리 한 번 할라치면 아침 일찍부터 와야 많이 기다리지 않는다고 입소문이 나 있다. 옆에 앉은 손님들에게 조심스레 사실인지 물어봤다.

"성격이 원체 찬찬해가지고, 맨지고 또 맨지고 하면서, 머리를 아주 잘해요."

태양미용실에서 '불파마'를 할 때부터 봐왔다는 풍암리 할머니부터 곁에 있던 다른 손님들까지 주인의 솜씨가 좋다며 칭찬일색이다. 40년간 거의 쉼 없이 일을 해온 장인의 손, 미용 솜씨야 두말할 것도 없겠다.

미용실을 운영하는 이종금씨는 올해로 일흔다섯, 뱀띠라고 한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깜짝 놀라 "네?"라고 되물었다. 그는 종일 선 채로 사람들을 맞이한다. 여기 앉으라고 자리를 안내하고, 이거 드셔보시라며 먹을 걸 건넨다. 안부도 묻는다. 그런데도 힘든 내색 한 번 없었다. 당연히 50대 혹은 60대가 아닐까 짐작했다.

이씨는 20대에 강릉에서 미용 기술을 배우고, 1970년대부터 남편과 함께 서석면에 터를 잡았다. 풍암리에서만 40년간 일했다고 한다. 할머니라 불러야 할지, 아주머니라 불러야 할지 난감했다. 그래도 미용실과 어울리는 '아주머님'이라 부르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아주머님 손이 좀 이상하다. 쭉 편 뒤 팔부터 내려오면서 계속 주무른다. 어딘지 모르게 불편해 보였다. 일흔이 넘도록 쌩쌩하게 동네 할머니들의 머리를 손질했는데, 어느덧 40년간 이 일을 해온 터라 손이 고장났다고 했다. 파마를 하려면 왼손에 힘을 주어 머리를 말아야 하는데, 오래하다 보니 손에 무리가 간 것이다. 올 봄에는 3개월 정도 치료에 집중하면서 일을 쉬기도 했다.

태양미용실 문이 닫혀 있는 동안 못내 아쉬워하던 할머니들은 "다시 문 열었어? 머리도 말어?"며 미용실이 전처럼 운영된다는 소식에 반가운 기색을 드러냈다. 아주머님은 파마를 해달라고 오는 손님들이 끊이지 않아 지금도 일을 하는 틈틈이 치료를 계속하고 있다고 한다.

40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 머리를 만지고, 한 사람 한 사람 수많은 사연들을 주고 받았을 것이다.
▲ 40년 세월 한결같이 마을 이웃과 함께해온 태양미용실 40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 머리를 만지고, 한 사람 한 사람 수많은 사연들을 주고 받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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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집에만 있는 것보다 미용실 나와서 일하는 게 좋아요. 사람들이 찾아오고 저도 사람 만나는 게 너무 좋으니까 이 일을 계속하는 거예요. 그래서 나이보다 젊어 보이는 거 같아요. 이 일 말고 다른 일도 좀 해보고 싶다는 생각? 지금까지 그런 생각, 이 일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 없어요. 할 수 있을 때까지 계속 할 거예요."

자신이 하는 일이 40년 동안 한결같이 좋을 수 있을까? 생각해보니 그렇다. 머릿결을 고정하는 왼손, 가위질하는 오른손, 이 손으로 40년간 수많은 사람의 머리를 만졌을 것이다. 그뿐이랴! 이곳을 찾은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속 고민이나, 가정, 일터, 자녀 키우는 이야기 등 소소한 일상, 수많은 사연을 주고받았을 것이다. 서석면뿐만 아니라 내면에서도, 내촌면에서도 이곳을 찾아 머리도 하고 이야기도 나눈다.

"서석면 사람들의 변화를 다 보셨겠네요"라고 묻자, "내가 신부 화장해준 사람들, 지금 애 낳고 손주까지 봤어"라고 답한다. 이래 봬도 태양미용실은 신부 화장도 했다. 지금은 결혼식 하러 다들 홍천군이나 큰 도시로 나가지만, 예전에는 동네에서 신부 화장을 받고 결혼식을 많이 올렸다고 했다. 태양미용실 맞은편에 있는 현대철물점이 예전에는 사진관 겸 결혼식장을 운영했던 '현대칼라'였다. 마을 안에서 모든 게 해결되었다. 그렇게 결혼한 이들이 애 낳고 손주까지 봤으니, 정말 서석면과 함께해온 미용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많은 사람이 드나드는 동네 미용실은 남의 험담을 하거나 엉뚱한 소문이 흘러나오는 진원지가 되기도 한다.그런데 강원도 홍천군 서석면의 태양미용실을 보면서 얼마나 관계에 정성을 쏟아야 좋은 이웃을 사귈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많은 사람이 드나드는 동네 미용실은 남의 험담을 하거나 엉뚱한 소문이 흘러나오는 진원지가 되기도 한다.그런데 강원도 홍천군 서석면의 태양미용실을 보면서 얼마나 관계에 정성을 쏟아야 좋은 이웃을 사귈 수 있다는 걸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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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용실 문 일부러 열어두고 외출하는 이유

"태양미용실 문이 닫혀 있으면 얼마나 답답한지 몰라."

서석면 상가 이웃들 중엔 이곳을 하루도 빠짐없이 찾는 주민이 많다. 그래서 이종금 아주머님은 미용 일을 하지 않는 날도 그냥 문을 열어 놓는다. 오고 싶을 때 편하게 들러서 이야기 나누다 가라는 배려다. 마을 분들에겐 이곳이 사랑방과도 같은 곳이구나! 새삼 다시 보게 된다.

어느 날은 미용실에 들어서니, 주인 아주머님 없이 다른 주민들만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중 한 주민이 아주머님의 행방을 알려줬다. 오늘 검산 2리에 있는 절 '서봉사'에 갔다고 했다. 미용실 문을 열어 둔 채로.

"주인 아주머님 어디 가셨어요?"라고 물었더니 편하게 앉아 있던 한 할머니가 "어서 들어와, 주인 없어도 우리가 주인이여"라고 답한다. 머리 하려고 들어서려는 손님들에게도, 주인 지금 볼일 있어 나갔다고 얘기해준다.

이어 청량리에 사는 한 할머니가 들어왔다. "면에서 일 다보고, 어디 가서 쉴 데가 없어 일로 왔다"고 말했다. 주인이 가게를 비워놔도 이렇게 찾아와 자리 지켜주는 이웃들이 많다. 서석소방서나 서석의원에서 점심을 차려주는 일을 하는 주민들에게도 이곳은  꼭 거쳐 가는 정거장이다. 편히 쉴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드디어 볼 일을 마친 주인 아주머님이 미용실로 돌아왔다. 절에서 떡과 과일을 싸줬다며 오자마자 풀어 앉아있던 주민들에게 내놓는다.

인정 많은 주인 아주머님에게 직접 수확한 오이며 브로콜리를 한 꾸러미씩 슬그머니 주고 가는 이웃들도 있다. 주민들은 그를 '봉사'도 많이 하는 좋은 사람이라고 했다. 대체 어떤 봉사를 하는 건지 궁금했다. 주민들에게 물었다.

"혹시 어떤 분들께는 머리 하는 비용도 깎아주시나요?"
"어이구, 여기 다른 미용실과도 다 좋게 지내는데, 제 맘대로 깎아주고 그러지 않아요. 비용은 다 똑같이 받아요."

그럼 대체 무슨 봉사일까?

태양미용실과 함께해온 주민들은 세월 속에서 하나둘 노인이 됐다. 고령에 거동 불편한 주민들도 머리카락은 계속 자란다. 그를 수발하는 사람들에게는 머리카락을 관리해주는 것도 일이다.

거동이 불편해 누워있는 사람의 머리카락을 자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주민들의 고충을 전해들은 이종금씨는 직접 집에 방문해 머리카락을 잘라주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는 "이쪽으로 돌리고 저쪽으로 돌려가면서 자르고, 다른 사람에게 기댄 상태에서 머리카락을 자르기도한다"고 설명했다. 이씨의 이야기를 듣던 손님 한 분이 말을 보탠다.

"남자들은 또 수염이 왜 그렇게 잘 자라는지, 내가 수염 깎아주면서 이 수염이 다 돈이면 좋겠다고 그랬어!"

날이면 날마다 태양미용실에 들르는 마을 이웃들과 함께
▲ 40년 세월 한결같이 마을 이웃과 함께해온 태양미용실 날이면 날마다 태양미용실에 들르는 마을 이웃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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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금씨는 마을에서 숱한 세월을 보냈다. 때문에 이 세월을 함께 보낸 노인들의 사정을 잘 이해한다. 태양미용실은 갈수록 고령화되는 농촌 마을에서 꼭 필요한 일을 묵묵히 맡고 있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노인들도 머리카락은 계속 자란다. 때로는 하얗게 센 머리카락을 염색으로 가리고, 꼬불꼬불 말고 싶기도 할 거다. 마을 노인들 사이에서 이씨가 몸이 아픈지, 태양미용실이 다시 문을 열었는지가 화제가 되는 건 다 이유가 있었다.

태양미용실은 최첨단 유행을 자랑하는 미용 세계에서 정해진 의자에 앉아 차가운 계산이 오가는 곳이 아니다. 오래되고 낡은 풍경 속에서 주민들이 편하게 앉아 맛있는 것이 있으면 나누어 먹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공간이다. 때로는 진심 어린 충고도 오간다. 그렇게 일상을 함께 나누는 사랑방, 가을 해처럼 따뜻함이 묻어나는 공간이 바로 이곳 '태양미용실'이다.

동네 미용실은 많은 사람이 드나들고 많은 말이 오가는 탓에, 자칫하면 남의 험담이나 엉뚱한 소문의 흘러나오는 진원지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태양미용실 아주머님을 만나면서, 관계에 얼마나 정성을 쏟느냐가 좋은 이웃들을 오래 사귈 수 있는 비결이 아닌가 생각했다. 따뜻한 사랑방을 함께 만들어가는 이웃들 품에서 농촌 마을이 더욱 따뜻해지기를 소망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아름다운마을신문(http://admaeul.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태그:#태양미용실, #강원도 홍천군 서석면, #아름다운마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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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홍천군 서석면에 살고 있습니다. 마을에서 일어나는 작고 소소한 일들, '밝은누리'가 움틀 수 있도록 생명평화를 묵묵히 이루는 이들의 값진 삶을 기사로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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