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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을 앞두고 증조할머니 집을 찾은 아이들이 코스모스 피어난 길에서 놀고 있다.
▲ 강원도 갑천 물골 추석을 앞두고 증조할머니 집을 찾은 아이들이 코스모스 피어난 길에서 놀고 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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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고향 잘 도착하셨는지요? 추석을 앞두고 찾은 강원도 갑천면 하대리 물골 할머니 댁에는 아들과 며느리, 손주에 증손주들까지 찾아왔네요. 산골에 아이들 웃음소리가 울려퍼지니 참 좋습니다. 새소리도 좋지만, 아이들의 깔깔거리는 맑은 웃음소리만 하려구요.

물골 이영자 할머니 댁 전경
▲ 물골 물골 이영자 할머니 댁 전경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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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는 증손주들이 노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시고, 오랜만에 찾은 아들과 며느리는 그간 손길이 가지 않은 일들을 하느라 분주합니다. 물골 할머니는 증손주도 보셨으니, 손주와 손주며느리들이 추석음식을 준비합니다.

할머니는 그냥 구경만 하셔도 됩니다. "맨날 오늘같기만 하면 좋겠구나!" 소리가 절로 나올 것 같습니다.

늙은오이를 손질하고 계신 할머니
▲ 물골 할머니 늙은오이를 손질하고 계신 할머니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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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옷은 단풍잎보다도 더 붉습니다. 저는 손님 격이지만, 그래도 자주 드나들다 보니 제가 노각 무침을 좋아하는 것을 아십니다. 추석 음식들만 해도 많은데, "서울 양반 오랜만에 왔으니 늙은오이를 잡아가겠네?"하시며 늙은오이를 손질하십니다.

소꿉놀이 중인 아이들
▲ 아이들 소꿉놀이 중인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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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마당에서 저마다 모여 소꿉놀이를 하고, 어른들은 추석 준비를 하고, 할머니는 구경을 합니다. 그냥 노는 모습만 보아도 좋습니다. 아직 손주를 보지 않은 나도 아이들이 소꿉놀이하는 것이 예뻐 보이는데, 늘 혼자 계시다 이런 모습을 보니 얼마나 좋으실까요.

"오랜만에 아이들 소리가 들리니 좋구나!"

농촌에서 아이들 소리는 텔레비전에서나 듣는다는 이야기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런데, 추석 때만큼은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울음소리가 생방으로 진행되는 셈입니다.

벼가 익어가고 있다. 이슬 속에 맺힌 황금나락
▲ 벼와 이슬 벼가 익어가고 있다. 이슬 속에 맺힌 황금나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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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을 앞둔 물골을 돌아봅니다. 할머니의 논에는 벼나락이 잘 익어 고개를 숙였습니다. 아침에 찾았더니 밤새 내린 이슬이 반짝입니다. 벼가 아주 잘 익었습니다. 조만간 추수를 해서 햅쌀로 맛난 밥을 차려 드시겠네요.

햇밤이 탐스럽게 익었다.
▲ 햇밤 햇밤이 탐스럽게 익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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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밤, 올해는 밤이 잘 되었다고 합니다. 밤나무 아래서 십여 분간 서성였더니만 양쪽 호주머니가 가득찹니다. 가을이 실감납니다.

산짐승들도 먹어야 하니 먹을 만큼만 줍자고 하면서도 벌레 먹지 않은 실한 밤이 보이면 나도 모르게 줍습니다. 생밤도 먹고, 삶아서도 먹었습니다. 밤을 먹자 비로소 가을을 먹은 듯합니다.

빨간 보리수가 달콤하게 익었다.
▲ 보리수 빨간 보리수가 달콤하게 익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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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에서 놀던 아이들에게 보리수를 따서 주니 "아이, 셔!"하며 뱉습니다. 씹다 보면 씨앗도 걸리니 먹기에 불편한가 봅니다. 요즘 아이들에게는 인기가 없는 보리수, 제가 그 아이들만할 때만 해도 없어서 못 먹었습니다.

어른들 눈에 띄면 남아나지 않았을 터인데, 물골 할머니 혼자 계시니 빨간 보리수가 가지마다 주렁주렁 열렸습니다. 아마 그 중 대부분은 까치밥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잘 익은 며느리배꼽의 보랏빛 빗깔이 곱다.
▲ 며느리배꼽 잘 익은 며느리배꼽의 보랏빛 빗깔이 곱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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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배꼽들이 제대로 익었습니다. 참으로 실합니다. 저 실한 열매 속에는 까만 씨앗이 들어 있습니다. 보기엔 참으로 맛나 보이는데 먹을 수 없다니... 안타까운 생각이 들 정도로 열매 색깔이 예쁩니다. 열매는 먹지 못하지만 이파리를 연할 때 따서 먹으면 신맛이 입안에 돕니다.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 아이들에게 산야에 있는 것의 구분법은 '먹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이었습니다.

이슬을 맞으며 밤을 지새운 잠자리
▲ 고추잠자리 이슬을 맞으며 밤을 지새운 잠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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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잠자리도 잘 익었는데, 어젯밤 이슬을 맞았습니다. 교묘하게 머리 부분만 이파리에 숨기고 잠을 잤는지 날개에만 이슬이 맺혔습니다. 아직은 아침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간이라, 모델이 되었음에도 날아가지 못하고 꼼짝 없이 앉아 있습니다.

산골에서 맞이하는 아침의 매력, 그것은 신선함을 느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볼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특히 가을 아침에 풀섶에 맺힌 이슬은 신선함을 넘어선 신비로움 그 자체입니다.

루드베키아로 불리는 원추천인국, 여름 내내 노랗게 피어나던 꽃의 꽃술.
▲ 원추천인국 루드베키아로 불리는 원추천인국, 여름 내내 노랗게 피어나던 꽃의 꽃술.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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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무엇일까요? 여름에 한창 피어나던 루드베키아(원추천인국)라는 노란 꽃을 기억하시나요? 작은 해바라기 같은 꽃이지요. 노란꽃 가운데 꽃몽우리가 원추처럼 볼록 튀어나와 있어서 '원추천인국'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구요.

꽃을 피우고, 씨앗을 맺은 후에 씨앗들까지도 다 날려 버렸습니다. 자기의 할 일을 다 마친 것이지요. 원추 모양을 닮은 그곳, 자기에게 주어진 모든 일들을 다 마치고 쉬고 있는 모습입니다.

추석을 하루 앞둔 물골, 그곳엔 이런저런 가을이 가득합니다. 모두가 신비스럽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신비 중에서도 가장 신비스러운 존재,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그 무엇보다도 아름답습니다.


태그:#추석, #물골, #한가위,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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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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