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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향림옹기박물관의 '충청도 옹기와 옹기장' 전
 한향림옹기박물관의 '충청도 옹기와 옹기장'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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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필 작가의 '옹기제작 시연' 워크숍
 장영필 작가의 '옹기제작 시연' 워크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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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 짓는 일은 흙에 마음을 맞추는 작업 

지난 6월 26일부터 한향림옹기박물관에는 '충청도 옹기와 옹기장'전이 열리고 있습니다.  

전시회에 가면 충청남도 홍성군 갈산면에서 60년 가까이 작업하고 계신 '갈산토기'의 방충웅 옹기장(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38-1호)과 전수자인 방유준의 옹기들을 볼 수 있습니다. 충청도 옹기의 특색과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전시입니다.

방 옹기장께서 반세기가 넘는 동안 한자리에서 작업해오고 계신 작업장인 '갈산도기'의 위치를 지도에서 보면, 서해안고속도로 옆 29번국도변에 있습니다. 29번 국도는 전남 보성군 미력면에서 시작해 충남 서산시 대산읍에서 끝나는, 대한민국의 남북을 연결하는 전국 30개의 남북축 노선의 하나입니다. 남한의 서쪽으로 치우친 도로이지요.  

일반지도로 보면 갈산면이 상당히 내륙에 위치한 듯싶습니다. 하지만 위성지도로 보면, 서산A지구방조제로 물길을 막아 만든 간척지 때문에 그리되었음을 한눈에 알 수 있습니다. 애초에는 천수만의 바다에 닿아있던 곳이지요.

옹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흙과 불이 필수였습니다. 태토와 땔나무가 있는 곳이야 했으며 만들어진 후에는 운송이 쉬워야 했습니다. 그래서 뱃길은 아주 주요한 역할을 합니다. 갈산토기는 옹기토의 공급이 쉬웠고, 가마 온도를 올리는 소나무가 지천이었으며 육로뿐만 아니라 뱃길도 용이한 곳이었습니다. 이 일대는 요업장이 자리하기가 무난했던 곳이지요.

사실 지금은 이 모든 조건이 전제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질흙은 공장에서 공급받고, 나무의 벌채가 불가능해졌으며, 더는 뱃길을 이용할 이유도 없습니다. 그래도 그 자리에서 4대를 이어서 지역적 특색을 살리는 작업을 하고 있다는 것이 예삿일이 아닙니다.

독을 짓는 일. 그것은 무지막지한 육체적 노동을 감당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옹기를 두고 '소박해서 좋다'라고 하지만 그 소박함은 거칠고 투박한 일이 바탕이기 마련입니다. 방 옹기장께서는 전통방식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힘은 들지만, 손에 익은 그 방식이 편하다"는 것입니다.

헤이리 노을동산 중턱의 한향림옹기박물관
 헤이리 노을동산 중턱의 한향림옹기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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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방식의 공정은 모두 땀의 소산입니다.

먼저 흙을 가공합니다. 차진 흙을 쌓아놓고 물을 뿌린 후 덮어 기다리는 '침숙'과정을 거칩니다. 점성을 증가시키기 위한 이 일이 끝나면, 물에 넣어 체로 걸러 돌과 모래를 제거합니다. 그 흙물을 건조해 점토를 만듭니다.

그 점토를 작업 전에 '흙깎기'통해 다시 불순물을 제거하고 '흙다지기'를 통해 점토의 공기층을 제거합니다. 흙에 공기가 들어간다면 옹기의 기능을 할 수 없으므로 매우 중요한 작업입니다. 이 과정을 통해 점토를 길쭉하게 잘라 흙가래를 만듭니다.

이제 옹기성형을 할 차례입니다. 물레에 점토 덩어리를 놓고 방망이로 두드려 펴면서 옹기 밑바닥부터 만들기 시작합니다. 이어서 흙가래를 올려 몸체를 만들지요. 이 작업이 '태림질'입니다. 태림을 하면서 안쪽에 둥근 나무토막인 도개를 대고 바깥쪽은 넓적한 나무 주걱인 '수레'로 때려 두께를 조절하면서 성형을 해나갑니다.

태림질과 수레질이 끝나면 표면작업인 '근개질'로 들어갑니다. 날이 얇은 나뭇조각인 '근개'로 물레를 차면서 옹기 겉면을 매끈하게 정리합니다. 옹기의 아가리 끝 부분을 이루는 너부죽한 부분을 전이라고 합니다. 가죽에 물을 묻혀 가장자리를 돋워 '전 잡기'를 합니다. 이어서 띄줄을 넣거나 손잡이를 만듭니다. 손잡이는 항아리의 중앙인 배에 흙을 늘려서 붙입니다. 성형이 끝난 옹기는 그늘에서 말립니다.

다음은 잿물을 만듭니다. 유약입니다. 잿물은 나무와 짚, 풀과 콩깍지 등을 태운 재를 물에 풀어 약토와 섞어 '잿물 거르기'를 통해 완성합니다. 건조된 옹기의 상하를 잡고 잿물에 담가 유약을 바르는 '잿물 치기'가 이어집니다. 손가락으로 문양을 만들어 넣는 '문양 넣기'로 끝냅니다.

'가마재임'은 구울 옹기를 가마 안에 쌓는 작업입니다. 불기운이 잘 통하도록 재어야 합니다. 이제 황토를 가마 입구를 봉하고, 불을 때는 '소성'으로 이어집니다. 피움불, 중불, 큰불, 창불 등의 순서로 불을 만난 흙은 화학적인 반응을 통해 비로소 쓰임이 가능한 옹기로 태어납니다.

이 우악한 모든 과정을 감내한 옹기의 쓰임이 밀려서, 이제는 김장철이 되어도 대목이 아닙니다. 김치냉장고 등 생활 용기들과 식생활의 급격한 변화에 따른 결과입니다.

방 옹기장께서는 옹기작업을 '흙에 마음을 맞추는 작업'이라고 말합니다. 흙과 마음이 통하기 위해서는 묵묵한 세월일 텐데 이제 그 세월을 견딜만한 젊은이를 찾기가 어려워졌습니다.

"천한 직업이 이제 예술가 대접을 받습니다. 그렇지만 이 일을 이어갈 사람이 없습니다."

먹고사는 일보다는 어떻게 편하게 사는 것이 중해진 때에 땀과 흙과의 동고동락을 선뜻 내켜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방충웅 옹기장은 말합니다.

"항아리는 말을 않지만 통한다."

세월을 이겨야 통하고 통해야 해낼 수 있는 일이 이 일입니다.

옹기 르네상스의 도래에 불을 지피는 부부 

옹기의 르네상스 도래를 위해 앞장서고 있는 한향림관장
 옹기의 르네상스 도래를 위해 앞장서고 있는 한향림관장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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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날, 한향림옹기박물관을 방문하신 제종길안산시장님 부부. 제시장님께서는 특히 생태와 문화예술을 통한 도시생활여건 개선에 관심이 많습니다.
 휴일날, 한향림옹기박물관을 방문하신 제종길안산시장님 부부. 제시장님께서는 특히 생태와 문화예술을 통한 도시생활여건 개선에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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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전통방식으로 만들어진 옹기는 공기가 통하는 특성을 보이게 됩니다. 그 숨구멍을 통해 노폐물을 밖으로 내보내지요. 장독 표면에 하얀 소금기가 서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미생물의 활동에 가장 이상적인, 발효하는 용기로서 기능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마트에서 조달하는 현재의 식생활문화에서 간장·고추장·된장·김장김치 등 발효식품을 위해 아파트에 옹기를 들이는 사람들은 이제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도 '옹기의 르네상스'를 부르짖고 있는 분이 있습니다. 향림옹기박물관의 한향림관장님은 한량림세라믹뮤지엄의 이사장이신 남편, 이정호 컬렉터와 함께 수십 년 근대 도기인 이 옹기의 수집에 열중했습니다.

1960년대 이후 주거형태가 아파트나 연립 등의 공동주택으로 바뀌고 음식문화가 서구화되면서 우리 조상들의 삶의 철학과 과학이 고스란히 반영된 근대 도기가 순식간에 버려지고 전통방식으로 독을 짓는 옹장들이 돌아가시면서 명맥이 끓길 지경에 주목하고 이 일에 나서게 되었습니다.

현재 헤이리 노을동산 아래에 번듯한 현대식 박물관을 짓고 수 십 년 전국을 누비며 수집한 팔도의 옹기들을 정연하게 전시하고 있습니다.

한향림 관장님은 이 박물관을 바탕으로 절기마다 전국의 옹기 장인들을 초대하여 기획전시를 합니다. 장인들의 정신을 북돋우고 있으며 세미나와 워크숍을 통해 옹기의 기술이 전승되어 우리의 전통 문화유산이 명맥을 이어갈 수 있도록 앞장서고 있습니다.

전통의 계승과 더불어 옹기 장인들과의 협업으로 옹기의 기능을 연구하고 그 기술을 체계적으로 정리합니다. 디자인을 개발하고 새로운 옹기의 쓰임을 찾아내는 작업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물을 책으로 발간하여 모든 사람과 공유하는 일 또한 게을리하지 않습니다.

한향림 관장님은 자신도 전국의 대학과 지자체 등을 순회하면서 강연과 교육으로 옹기의 르네상스 도래에 대한 희망의 불씨를 지피고 있습니다.

지난 7월 10일에는 한혜선 박사님과 허진규 옹기장을 모시고 '조선 시대 도기의 제작 구조상의 특징과 다양한 용도' 및 '한국옹기의 어제와 오늘_경상도 지역을 중심으로'라는 학술 세미나를 열었습니다. 지난 20일에는 장영필 작가를 모셔서 옹기제작 시연 워크숍을 박물관 뒤뜰에서 열었습니다.

사실, 이 모든 일은 '시루에 물 퍼붓기'입니다. 12년 넘게 박물관은 적자운영입니다. 헤이리 노을동산 중턱의 뛰어난 자연환경에 자리 잡은 박물관에서, 체계적인 정리로 선보이는 전시물에도 불구하고 평일에는 찾는 이가 많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은은한 전통보다 화려한 현대에 더 관심이 있는 듯싶습니다.

하지만 한향림 관장님과 이정호 이사장님은 구멍 뚫린 시루에 물 붓기를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시루에 물이 채워지지는 않더라도 그 물은 아래로 흘러 우리나라의 척박한 문화풍토를 촉촉하게 적혀줄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 박물관의 운영은, 저희 부부에게 사명이지 사업이 아닙니다."

이정호 이사장님의 이런 고집을 지키기 위해 워크숍이 진행되는 어제에도 현장에 없었습니다. 시루에 부를 물을 긷는 일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한향림 관장님은 옹기 제작 시연이 끝나고 새로 지은 옹기에 참석자들이 서명을 남기도록 요청했습니다. 제게도 나무조각도가 주어졌습니다. '전통, 오래된 미래'라고 적었습니다. 전통은 폐기해야 할 낡은 것이 아니라 미래의 희망을 무진장 퍼낼 수 있는 보고이기 때문입니다.

전시장의 한편에 '느린 옹기 우체통'이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옹기장이 점토를 반죽하고 옹기를 완성하기까지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릴까요? 속도의 편리함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디지털 시대에 기다림은 잊은 지 오래입니다. 옹기장인의 정성과 시간이 깃든 '충청도 옹기와 옹기장전'을 감상한 뒤, 어느덧 닮아가는 옹기장(아버지)과 전수자(아들)의 옹기 이야기처럼 여러분만의 따뜻한 사연을 엽서에 담아 보내보세요. *엽서는 '충청도 옹기와 옹기장전'이 끝나는 2015년 10월 4일 이후 일괄 발송됩니다."

저도 소줏고리 옹기사진이 들어있는 엽서 한 장을 뽑아들었습니다.  

그리고 병원에서 시어머니를 간병하고 있는, 20일 너머 대면하지 못한 아내에게 짧은 다짐을 적었습니다.

"사랑하는 당신에게,

노을동산이 이제 노랗게 물들기 시작합니다. 문득 우리의 계절도 가을인 듯 싶어요. 하지만 이 가을이, 인생의 우리 가을이 익어가는듯 싶어 싫지가 않습니다.

가을, 모든 색들이 각자의 개성을 버리지 않아도 모두 어울리니 모든 이가 매혹되는 만산홍엽의 가을산이 되듯 우리도 그렇게 익어갑시다.

사랑하오.

2015. 9. 19.
가을의 초입에 노을동산에서"

고집 센 장인과 마음을 섞으며 만들어진 옹기 속에서 장이 익어 가듯이, 우리의 인생도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숙성되어갔으면 싶습니다. 

흙이 불을 만나 이렇게 생명을 살리는 숨 쉬는 옹기가 되듯, 우리 부부도 사랑과 시련이 마침내 평화가 되는 삶이여야겠다는 다짐을 노을동산 자락의 한향림옹기박물관에서 해봅니다.

한향림옹기박물관의 '충청도 옹기와 옹기장'展
 한향림옹기박물관의 '충청도 옹기와 옹기장'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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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 전시
- 전 시 명 : 충청도 옹기와 옹기장전
- 전시 기간 : 2015년 6월 26일(금) ~ 10월 4일(일)
- 참여 작가 : 충청도 방충웅 옹기장, 전수자 방유준

이 기사는 이안수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 <모티프원의 블로그>(www.travelog.co.kr)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한향림옹기박물관, #충청도 옹기와 옹기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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