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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레네 산맥의 산기슭에 위치한 작고 예쁜 마을 '생 장 피드 포르 (St. Jean Pied de Port)'. 프랑스에 속한 마을이지만 스페인 국경과 인접하고 있어 스페인 산티아고로 순례길을 떠나는 이들의 출발 도시가 되고 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유럽 각지에서 산티아고로 향하는 순례길은 모두 아홉 개가 있는데 그중 순례자들에게 가장 인기가 있는 프랑스 길의 출발 도시가 바로 생 장 피드 포르다. 스페인 북서쪽에 위치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la)까지 걷는 800km에 달하는 순례길의 시작점인 것이다.

이곳은 니베 강이 도시를 아름답게 가로지르며 순례자들의 마음을 평온하게 이끄는 도시다. 그러나 대부분의 순례자들은 도시 구경은 잠시 뒤로 미루고 뤼 드 라 시타델(Rue de la Citadelle) 9번지에 있는 순례자 사무실을 먼저 찾는다.

산티아고 순례길 걸으며 꼭 받아야 하는 '스탬프'

니베 강이 흐르는 피레네 산맥의 작고 예쁜 마을이며, 산티아고로 가는 9개의 길 중 프랑스 길의 시작 도시다.
▲ 생 장 피드 포르(St. Jean Pied de Port) 니베 강이 흐르는 피레네 산맥의 작고 예쁜 마을이며, 산티아고로 가는 9개의 길 중 프랑스 길의 시작 도시다.
ⓒ 박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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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자 여권을 발급하고 날씨와 숙소 등 순례길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한다.
▲ 순례자 사무실 순례자 여권을 발급하고 날씨와 숙소 등 순례길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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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를 향한 길, 카미노(Camino)를 걷기 위해서는 순례자 사무실에서 순례자 여권인 '크레덴시알 델 페레그리노(Credencial del Peregrivo)'를 발급받는 게 첫 순서다.

크레덴시알을 지닌 순례자는 카미노를 걷는 동안 자유롭게 공립과 사립 알베르게(Albergue, 저렴한 순례자 숙소)를 이용할 수 있으며, 레스토랑에서 제공하는 정찬인 순례자 메뉴를 부담없는 가격으로 즐길 수 있다.

또한 순례길 중에 있는 대성당과 박물관 등의 입장료도 할인받을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순례자 여권에 자신이 머문 알베르게나 지나온 카미노의 성당, 바 등에서 스탬프인 '세요(Sello)'를 받아서 자신이 걸어온 여정을 증명해야만 산티아고에 도착해서 순례자 증명서를 받을 수 있다.

이 순례자 여권에 자신이 머문 숙소나 지나온 카미노의 성당, 바 등에서 스탬프인 '세요'를 받아서 자신이 걸어온 여정을 증명해야만 산티아고에 도착해서 순례자 증명서를 받을 수 있다.
▲ 순례자 여권((Credencial del Peregrivo) 이 순례자 여권에 자신이 머문 숙소나 지나온 카미노의 성당, 바 등에서 스탬프인 '세요'를 받아서 자신이 걸어온 여정을 증명해야만 산티아고에 도착해서 순례자 증명서를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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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자임을 나타내기 위해 가방에 달고 순례길을 떠난다.
▲ 순례자의 상징 가리비 순례자임을 나타내기 위해 가방에 달고 순례길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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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자 여권을 발급받을 때 순례자 사무소에 있는 자원봉사자에게서 여정에 있는 모든 사립 공립 알베르게의 정보도 함께 받을 수 있으며, 기상변화에 따른 루트 폐쇄 등의 세세한 정보까지 얻을 수 있다.

순례자 여권을 만드는 비용은 1인당 2유로. 그리고 순례자 사무실에서는 순례자의 표식인 '가리비 껍데기'도 구할 수 있는데, 본인이 내고 싶은 만큼의 돈을 기부하고 마음에 드는 가리비를 고르면 된다.

그런데 스페인에 가톨릭을 전파한 야고보 성인의 유해가 모셔진 산티아고까지 걷는, 중세 순례자의 길을 나는 지금 왜 걸으려 하는가.

순례길에 서는 모두가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을 나도, 남편도 했다. 우리 부부가 순례길을 걷기 불과 2년 전에 가톨릭 신자가 된 이유는 아니었다. 물론 영혼의 건강을 찾고픈 마음이 간절했고, 내 나이가 만으로 마흔이 되는 시점에 뭔가 특별한 한 가지를 해내고 싶다는 욕심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 부부의 더 솔직하고 현실적인 이유는 여행을 좋아하고 특히 '걷는 여행'을 좋아하는데, 그런 여행에 최적화된 곳이 '산티아고 순례길'이었다.

순례자들의 숙소 알베르게.
 순례자들의 숙소 알베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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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 장 피드 포르에서 만난 자전거 순례자 부부.
 생 장 피드 포르에서 만난 자전거 순례자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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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마음이란 게 참 희안하다. 순례자 여권을 만들기 전이랑 후랑 이렇게 마음이 달라지다니. 순례자 여권을 만들고 가방에 순례자 표식인 가리비 껍데기까지 달고 길을 나서니, 마을이 온통 순례자를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만 보인다.

순례자 숙소인 알베르게의 정면을 장식한 배낭과 조롱박과 등산화도 예사로 보이지 않고, 양쪽에 짐을 주렁주렁 달고 갓 순례길을 떠나려는 자전거 순례자에게선 벌써 동질감이 느껴진다. 그러고 보니, 길을 지나는 사람들도 생 장 피드포르 주민들 보다 순례자들이 훨씬 많은 듯하다.

순례자 여권도 지닌 어엿한 순례자가 됐으니, 마을의 아담한 성당에서 기도를 드리는 것도 빠뜨리지 않는다. 남편과 내가 찾은 성당은 어쩌면 생 장 피드 포르에서 가장 찾기 쉬운 성당일 거란 생각이 드는데, 순례자들이 북적대는 시타델 거리와 니베 강이 맞닿은 곳에 있는 '노트르담 성당'이다.

우리가 '생 장 피드 포르 마을'에서 2박한 이유

노트르담 성당.
 노트르담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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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길을 걷기에 앞서 조용히 마음을 가다듬기 좋다.
▲ 노트르담 성당 내부 순례길을 걷기에 앞서 조용히 마음을 가다듬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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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세기 고딕 양식의 건축을 볼 수 있는 성당이라는데, 순례를 앞두고 있어서 그런지 건축물 감상 보다는 순례길을 지켜달라는 기도가 앞선다. 자그마한 중세풍 성당인데다, 북적이는 거리와 달리 고요함이 내부를 감싸고 있어 순례 전에 조용히 마음을 정리하기에 참 좋은 곳이었다.

이곳에 오기까지 몸을 준비하고 갖가지 물건을 준비하고 순례자 여권까지 준비했다면, 이 성당에 들어서면서는 마지막 남은, '마음'을 준비하게 됐달까.

대부분의 순례자들은 생 장 피드 포르에서 1박을 하거나 무박으로 순례자 여권만 만들고 길을 떠난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이곳에서 2박을 했다. 앞으로의 순례는 길 것이고, 시작부터 바빠서는 안 될 일이라 생각해서다. 그리고 하나 더 이유를 붙이자면, 우리 부부는 생 장 피드 포르란 마을을 두루 살펴보는 것부터가 순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마을이 단순히 출발점이 돼서, 이곳을 떠나는 것부터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의 길이를 잰 808km를 걷는 것이 순례라고 생각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우리는 생 장 피드 포르를 비롯해서 808km를 걷는 내내 들르게 될 숱한 크고 작은 마을 속에 깃든 사람들의 삶과 신의 섭리와 역사의 깊이와 세월의 내음을 두루 보는 것 또한 순례라고 생각했다.

생 장 피드 포르 시청.
 생 장 피드 포르 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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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월요일 생 장 피드 포르 시청 앞 광장에는 커다란 장이 선다.
 매주 월요일 생 장 피드 포르 시청 앞 광장에는 커다란 장이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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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마음으로 온종일 마을을 돌아다니다 보니 알게 됐다. 사진에 보이는 저 소박한 시청(Hotel de Ville) 주변으로 매주 월요일이면 큰 장이 선다는 걸. 우리 나라 시골에 5일장, 7일장이 서는 것처럼 피레네 산골 마을인 생 장 피드 포르에도 온갖 물건을 파는 북적북적한 7일장이 서는 것이다. 시청 주변에 장이 선다고 하지만 광장을 비롯해 골목 구석구석에 좌판이 펼쳐져 마을 전체가 장날 분위기로 흥겹다.

장터에서 가장 인기 있는 건 역시 먹을 거리지만, 옷을 비롯한 각종 생활용품에 클래식카까지…. '있어야 할 건 다 있고 없을 건 또 없는' 확실한 유럽의 시골 장터다!

그리고 생 장 피드 포르를 다니다 보면 바스크(Basque) 모자를 쓴 어르신들을 자주 마주치게 되는데(사실 순례자 사무소의 자원봉사자 아저씨도 바스크 모자를 쓰고 있었다), 이 마을에서 시작해 순례길을 걷는 일정 기간 동안엔 이 바스크 모자를 자주 보게 된다. 표지판에도 바스크어가 꼭 병기되어 있다.

왜? 바스크 지방이니까.

생 장 피드 포르에서는 바스크 모자를 쓴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생 장 피드 포르에서는 바스크 모자를 쓴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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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에서 만난 어르신들이 웃음으로 포즈를 취해주셨다. 어르신들 다수가 바스크 모자를 쓰고 있다.
 식당에서 만난 어르신들이 웃음으로 포즈를 취해주셨다. 어르신들 다수가 바스크 모자를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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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이 하느님이기 전에, 바위는 바위였고 바스크인들은 바스크인이었다"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바스크인들의 기원은 오래고 멀다. 세계에서 가장 오랜 기원을 지닌 민족이라고 한다. 바스크 지방은 '피레네 산맥 서부의 프랑스와 스페인에 걸쳐 있는 자긍심 강한 고대 문명사회'라고 책에는 설명이 돼 있다.

그런데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면서 만나게 되는 '바스크'는 할아버지들의 독특한 모자이며, 공식적으로 프랑스어나 스페인어와 꼭 함께 병기돼 있는 그들만의 언어이며, '당신은 프랑스 혹은 스페인에 온 것이 아니라 바스크에 와 있다'라는 낙서이며, '도대체 이건 뭐지?' 싶을 정도로 강한 자신감과 자긍심이었다.

경상남도 '지방'에 사는 내가 나의 '지방'에 대해 한 번도 가져보지 못했던 강력한 기운, 그들만의 긍적적 유대, 나쁘지 않은 고집, 그런 것들에 대한 부러움이 생겼다.

생 장 피드 포르를 그냥 순례의 출발지로만 여기지 말고 좀 더 여유있게 머무를 것을 추천하는 이유는 이렇게 마을도 두루 둘러보고 유럽의 장터도 구경하고 바스크 문화를 느껴보라는 것도 있지만, 결국엔 순례를 위한 마지막 점검을 좀 더 차분히 해보라는 이유에서다.

이곳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향한 프랑스 길의 첫 출발 도시인 만큼, 순례자를 위한 시설과 물품들은 그 어느 도시들 보다 잘 갖춰져 있으니 빠뜨린 물건은 없는지 꼼꼼히 따져 보고 출발하자.

순례자 지팡이들.
 순례자 지팡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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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에 필요한 온갖 물건을 파는 상점.
 순례에 필요한 온갖 물건을 파는 상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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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부도 한국에서 오랜 기간 준비를 한다고 했는데, 현지 기온과 날씨에 관해서는 한국에서의 생각과 많이 달랐다. 우리가 순례를 시작한 날짜가 4월 30일이고 6월 초까지 순례가 예정돼 있어 고어텍스 점퍼 정도면 춥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우비도 따로 있었기 때문에 비오는 날에도 방한에는 걱정이 없을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현지의 날씨는 생각과 전혀 달랐다. 넘어야 할 피레네 산맥에는 눈이 쌓여 대부분의 순례자가 가는 루트인 오리송으로 가는 길이 폐쇄될 정도였고, 날씨는 초겨울처럼 쌀쌀했다. 때문에 우리 부부는 생 장 피드 포르의 순례용품점에서 내피를 하나씩 사서 입었는데, 순례가 끝나고 런던에서 일주일을 보낼 때까지 정말 잘 입었다.

모든 여행은 한 발을 성큼 내딛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그 어떤 여행이라도 계획 중이라면, '필요한 것들이 모두 준비되면 떠나리라' 같은 마음은 버렸으면 좋겠다. 일단 한 발, 내딛고 나면 그 다음은 내 필요에 따라 얻어지는 것이니까. 그리고 산티아고 순례를 계획 중이라면 일단 생 장 피드 포르로 한 걸음 내딛으면 된다. 필요한 건 모두 거기 있으니까. 마음을 준비하는 방법까지.



태그:#산티아고 순례, #카미노, #생 장 피드 포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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