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말 개장을 앞둔 고척스카이돔 서울시는 고척돔(서남권돔구장)의 명칭을 '고척스카이돔'으로 이름 지었다.

▲ 10월 말 개장을 앞둔 고척스카이돔 서울시는 고척돔(서남권돔구장)의 명칭을 '고척스카이돔'으로 이름 지었다. ⓒ 전상봉


1965년 4월 9일, 세계 최초의 돔구장 애스트로돔이 완공됐다.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에 있는 애스트로돔은 고온다습한 기후와 모기떼의 습격에서 벗어나, 쾌적한 환경에서 야구 경기를 관람하기 위해 건설됐다. 3500만 달러가 투입된 애스트로돔은 야구는 물론 미식축구와 대형 공연을 열 수 있는 다목적 경기장이었다.

애스트로돔이 완공되자 이곳을 홈구장으로 사용하는 휴스턴 콜츠 포티파이브스(Houston Colts 45's)는 일약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권총 이름에서 유래한 콜츠 포티파이브스라는 팀명을 돔구장과 같은 애스트로스로 바꾼 것도 이때였다. 5만4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애스트로돔이 만들어지자 야구팬이 몰려들어 만원을 이루는 일이 잦았다. 미국프로풋볼(NFL) 휴스턴 오일러스의 홈구장이기도 했던 애스트로돔은 미식축구는 물론 무하마드 알리의 복싱경기와 팝의 황제 엘비스 프레슬리의 공연장이기도 했다.

일본 최초의 돔구장인 도쿄돔은 1988년 3월 18일 완공됐다. 계란을 닮아 빅 에그(Big Egg)라는 별명이 붙은 도쿄돔은 일본 야구의 심장이다. 장마철에도 프로야구를 관람할 수 있도록 350억 엔을 들여 건설한 도쿄돔은, 야구경기뿐만 아니라 다양한 이벤트를 열 수 있는 다목적 스타디움이다.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홈구장으로 사용하는 도쿄돔은 우리에게도 친숙하다. 야구팬이라면 요미우리 자이언츠 소속의 이승엽 선수가 이곳에서 장쾌한 홈런을 날리던 장면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도쿄돔은 가왕 조용필을 비롯하여 동방신기, 소녀시대, 카라 등 한류스타들이 공연한 장소이기도 하다.

선무당 오세훈, 첫 단추를 잘못 끼우다

돔구장 건설은 한국 야구계의 숙원이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한국의 돔구장은 야구인들의 기대와 열망 속에 계획되지 못하고 대권에 눈멀었던 어느 시장에 의해 추진되면서 애물단지가 되고 말았다.

민선 4기 서울시장 오세훈은 지난 2006년 7월 3일 취임식에서 '디자인 서울'을 선언한다. 디자인 서울은 서울이 세계적인 도시로 거듭나려면 도시 전체를 새롭게 디자인해야 한다는 오세훈 전 시장의 의지에서 비롯됐다. '맑고 매력 있는 세계도시 서울'을 내세우면서 추진된 디자인 서울은 한강과 남산과 도심 곳곳을 부수고 건설하는 막개발의 프로젝트였다.

2007년 12월 철거되기 직전의 동대문운동장 모습 동대문운동장(축구장)은 청계천 복원 공사가 시작되면서 풍물시장으로 사용되다 철거 직전에는 주차장으로 쓰였다.

▲ 2007년 12월 철거되기 직전의 동대문운동장 모습 동대문운동장(축구장)은 청계천 복원 공사가 시작되면서 풍물시장으로 사용되다 철거 직전에는 주차장으로 쓰였다. ⓒ 최인기


동대문야구장의 모습 동대문야구장에서 열린 마지막 경기는 2007년 10월 28일 전국대학야구대회 결승전이었다.

▲ 동대문야구장의 모습 동대문야구장에서 열린 마지막 경기는 2007년 10월 28일 전국대학야구대회 결승전이었다. ⓒ 최인기


고척돔의 탄생 비화는 2006년 8월 오세훈 전 시장이 '디자인 산업의 메카'로 동대문운동장을 지목하면서 시작된다. 그해 10월 오세훈 전 시장은 동대문운동장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2만 평 규모의 다목적 공원과 디자인 패션 콤플렉스를 짓겠다고 발표했다.

동대문야구장 철거 계획이 발표되자 야구계는 크게 반발했다.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선수협)와 대한야구협회 등 야구 단체는 2006년 10월 25일 동대문야구장 철거를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닷새 뒤인 10월 30일에는 야구계뿐 아니라 김호 당시 대전 시티즌 감독, 이에리사 태릉선수촌장, 이형택 선수 등 체육인들이 '동대문운동장 보존을 위한 스포츠인 100인 선언'을 발표했다. 선언문에서 이들은 "동대문운동장은 건립 이후 야구, 축구, 육상, 수영 등 모든 경기가 열린 한국스포츠 발전의 산 증인"으로 "한국 스포츠 역사를 대변하는 동대문운동장을 철거할 수 없다"고 밝혔다.

2006년 12월 4일에는 이종범, 양준혁 등 선수협 소속의 프로야구 선수들이 피켓을 들고 촛불시위를 벌이도 했다. '동대문운동장은 근대 체육과 101년 한국야구의 성지이다'라는 성명서를 통해 이들은 "돈벌이를 위한 철거 계획을 철회하고 정부와 서울시는 역사 유적으로 동대문운동장을 보존할 것"을 촉구했다.

체육인들과 생계가 걸린 노점상들의 반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서울시는 2007년 12월 13일 동대문운동장 철거 공사를 시작했다. 서울시는 이날 새벽 굴착기를 동원, 공사 차량 진입을 위해 야구장 세움대 일부를 뜯어냈다. 며칠 후인 18일부터 본격적인 철거 공사가 시작됐다. 문화연대, 체육시민연대 등 시민단체들과 노점상들이 철거에 저항했으나 역부족이었다. 철거 공사는 해가 바뀐 2008년 2월 끝났다. 이로써 조선 시대 하도감이 있던 자리였고, 1926년 3월 경성운동장으로 문을 연이래 숱한 근현대사의 영욕을 함께한 기억과 역사도 사라지고 말았다.

동대문야구장 철거 반대 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서울시는 야구계 중진과 원로들이 중심이 된 동대문야구장비상대책위원회를 파트너로 정했다. 그리고 대체 구장 건설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비대위는 7개의 대체 야구장을 요구했고, 서울시는 이를 수용했다.

2007년 3월 19일,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당시 신상우 KBO 총재, 이내흔 대한야구협회장 등 야구계 대표들을 만나 서울 시내 6곳에 총 7면의 야구장을 2010년까지 단계적으로 건립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날 약속한 대체 야구장은 구의 정수장과 신월 정수장에 전국 야구대회가 가능한 구장을 건립하고, 난지 한강공원(2면)과 공릉 배수지, 잠실 유수지에 생활체육동호인들과 유소년을 위한 대체 야구장과 구로구 고척동에 2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아마추어 야구장을 짓는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대체 구장으로 지목된 부지에 대한 면밀한 타당성 검토와 민원 수렴이 없었다는 점이다. 구의 정수장의 경우 광진구청과 아무런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발표하여 주민들의 반발을 샀다. 그 결과 구의 야구장은 애초 약속과 달리 간이야구장으로 지어질 수밖에 없었다.

완공을 앞두고 있는 고척돔구장 서울시는 구일역에서 돔구장으로 이어지는 고척교 인도를 대폭 확장하여 접근성을 높였다.

▲ 완공을 앞두고 있는 고척돔구장 서울시는 구일역에서 돔구장으로 이어지는 고척교 인도를 대폭 확장하여 접근성을 높였다. ⓒ 전상봉


가장 큰 문제는 구로구 고척동에 63-3번지에 짓기로 한 2만석 규모의 야구장이었다. 2만 명 규모의 야구장을 짓기에는 부지가 좁고 입지 조건이 나빴다. 부지 앞을 지나는 경인로(서울 영등포에서 인천으로 이어지는 도로)는 차량정체를 빚기 일쑤였다. 또한, 주변에는 동양미래대학, 경인고등학교, 고산초등학교, 고원초등학교가 몰려 있었고, 아파트 단지가 밀집된 주거지역이었다. 이곳에 야구장이 건립될 경우 주민들의 반발과 민원이 예상되었다.

그런데도 마땅한 부지가 없자 서울시는 이곳에 대체 구장을 짓기로 했다. 2006년 12월 20일 체육시설용지매입계획(시장방침 제554호)을 확정한 서울시는 토지 보상비 600억 원 중 200억 원을 구로구에 지급하는 등 발 빠르게 움직였다.

2007년 7월, 서울시는 야외구장으로 설계된 고척동 야구장 건립 계획을 수립했다. 이 계획안에는 2만 석 규모의 야외야구장과 구로디지털문화센터, 가족공원 건립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구로디지털문화센터 등의 부대시설은 부지가 좁아 건립되지 못했다) 당시 서울시는 2008년 1월 공사를 시작해 2010년 3월에 완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당시 서울시 관계자는 "고척동 새 구장은 기존 동대문운동장을 능가하는, 국제적이면서 주민들을 위한 다목적 구장일 될 것"이라는 사탕발림의 말로 시민들을 현혹했다.

세금 먹는 하마가 된 고척돔

고척돔 앞 야구공을 형상화한 조형물 고척돔이 완공을 앞두고 있다. 고척돔 입구에 야구공을 본 뜬 조형물이 놓여 있다.

▲ 고척돔 앞 야구공을 형상화한 조형물 고척돔이 완공을 앞두고 있다. 고척돔 입구에 야구공을 본 뜬 조형물이 놓여 있다. ⓒ 전상봉


이즈음 우려됐던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야구장 건설에 따른 소음과 교통난을 우려하는 민원이 제기된 것이다. 민원이 제기되자 서울시는 하프 돔구장으로 설계를 변경했다. 고척동 야구장 건립계획을 수립한 지 불과 한 달 만인 2007년 8월, 서울시는 느닷없이 "야구계의 요청으로 고척동 야구장을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하프 돔(Half Dome) 형태로 짓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서울시는 고척동 부지의 문제점을 솔직하게 밝히지 않고 시민들에게 "내야 관중석 대부분을 지붕으로 덮어 경기 중 비가 내려도 경기가 멈추지 않고, 관중 역시 비를 맞지 않고 선수들의 플레이를 보도록 배려할 계획"이라고 문제를 호도했다.

하프 돔으로 설계된 고척동 야구장 조감도 2008년 8월 서울시는 소음과 불빛 등에 따른 민원을 우려하여 야외구장을 하프 돔으로 설계 변경했다.

▲ 하프 돔으로 설계된 고척동 야구장 조감도 2008년 8월 서울시는 소음과 불빛 등에 따른 민원을 우려하여 야외구장을 하프 돔으로 설계 변경했다. ⓒ 서울시


2008년 5월 서울시는 하프 돔으로 설계를 변경하여 공사 입찰 공고를 냈으나 참여하는 회사가 없었다. 이유는 435억 원으로 책정된 공사비가 너무 적었기 때문이다. 2008년 9월 서울시는 공사비를 529억 원으로 증액하여 입찰 공고를 다시 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현대산업개발(주) 컨소시엄이 시공사로 선정됐다.

이 무렵 베이징올림픽에 출전한 한국 야구대표팀이 금메달을 획득(2008년 8월 23일)한 데 이어 2009년 3월에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야구대표팀의 선전에 돔구장을 건설해야 한다는 여론이 부상했다. 이 같은 여론에 편승한 일부 지자체(안산시, 성남시)는 프로야구 연고구단이 없는데도 돔구장을 짓겠다는 허황한 청사진을 그렸다.

분위기에 편승하기는 서울시도 마찬가지였다. 2009년 4월 15일 서울시는 돌연 "기존 하프돔 예산 529억 원에 300~400억 원을 추가해 돔구장으로 변경해 지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하프 돔이 완전 돔으로 바뀌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은 당시 양대웅 구로구청장과 당시 한나라당 소속 국회의원 강승규 대한야구협회장이었다. 양대웅 구청장은 당시 <스포츠조선>과의 인터뷰에서 돔구장으로 설계가 변경된 과정을 이렇게 설명한 바 있다.

"기공식을 앞두고 시공업체인 현대산업개발 설계팀에 문의한 결과 공사 방식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약 400억 원의 추가 비용이면 완전 돔구장 건설이 가능하다는 의외의 답변을 들었다. 눈이 번쩍 띄었다. 3월 27일 서울시와 그와 관련한 내용을 담아 서울시에 공문을 발송했고, 4월 12일 오세훈 서울시장께 전화를 드렸다. 마침 한국 야구 대표팀이 WBC에서 준우승을 차지해 분위기가 고조되던 차라, 시장님도 흔쾌히 (완전 돔구장 안을) 받아들이셨다." - <스포츠조선> 2009년 7월 19일 "고척하프돔, 완전 돔구장으로 전환시킨 양대웅 구로구청장" 중에서

2009년 4월 16일 고척동 야구장 기공식이 열렸다. 오세훈 전 시장은 기공식에서 고척동 야구장을 완전 돔으로 짓겠다고 선언하면서 "고척동 야구장이 돔으로 건립되는 건 모든 국민이 야구계에 주는 큰 선물"이라고 선심 쓰듯 발표했다. 돔구장을 왜 지어야 하는지, 누가 사용할 것인지, 입지는 타당한지 등의 이유는 없었다.

처음 야외구장에서 하프 돔으로, 하프 돔에서 완전 돔으로 야구장이 설계 변경되면서 건설비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2007년 야외구장으로 계획했을 때의 건설비는 435억 원이었다. 2008년 하프 돔으로 설계 변경되면서 건설비는 529억 원으로 늘었다. 2009년 8월 13일 하프돔이 완전 돔으로 설계 변경(시장방침 제376호)되자 건설비는 929억 원으로 증액됐다.

2010년 7월 돔구장 내 수익시설과 친환경에너지 절약건축물로 추진하면서 건설비는 1277억 원으로 불어났다. 2011년 돔구장을 공연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음향시설이 추가되면서 건설비는 1406억 원이 되었다. 여기에 교통난 해소와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부대시설 공사가 더해지면서 건설비는 2012년 2023억 원, 2013년 2031억 원, 2014년 2421억 원으로 계속 증가하여 최종 2713억 원이 투입되었다. 처음 책정했던 435억 원보다 무려 6배가 넘는 2713억 원이 투입된 고척돔은 한마디로 세금 먹는 하마가 된 것이다.

공사 기간도 고무줄처럼 늘어났다. 2007년 서울시는 고척동에 야구장을 2009년까지 완공한다고 발표했다. 2008년 9월 현대산업개발이 시공사로 선정될 당시 완공 날짜는 2010년 9월이었다. 기공식이 열린 2009년 4월에는 2011년 9월 완공을 자신했으나 완전 돔으로 설계 변경되면서 2013년 12월로 완공일이 늦춰졌다. 서울시는 2014년이 되자 2015년 2월 완공한다고 공언했지만, 완공일은 그보다 8개월이 연기된 2015년 10월 말로 예정되어 있다.

시장 잘못 뽑은 후과가 너무도 크다

마무리 공사가 한창인 고척돔 내부 고척돔구장이 7년에 가까운 공사를 마무리하고 오는 10월 말 개장할 계획이다.

▲ 마무리 공사가 한창인 고척돔 내부 고척돔구장이 7년에 가까운 공사를 마무리하고 오는 10월 말 개장할 계획이다. ⓒ 전상봉


고척돔 내부 모습  18,092명을 수용하는 고척돔은 부지가 좁아 1, 3루쪽엔 관람석이 없다.

▲ 고척돔 내부 모습 18,092명을 수용하는 고척돔은 부지가 좁아 1, 3루쪽엔 관람석이 없다. ⓒ 전상봉


2013년 초 월간 <SPACE(스페이스)>와 <동아일보>는 건축전문가 100명을 대상으로 현대건축 최고와 최악을 선정한 바 있다. 조사 결과 최악의 건물 5위 안에 오세훈 전 시장이 추진한 건물이 3개나 포함되었다. 서울시 신청사(1위), 세빛둥둥섬(4위), 동대문디자인플라자(5위)다. 세빛둥둥섬과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는 오세훈 전 시장의 역점 사업인 한강르네상스와 디자인 서울을 상징한다. 조사를 진행한 월간 <SPACE>는 이 건축물에 대해 다음과 같은 촌평을 덧붙였다(2013년 3월호 39쪽).

"서울시청사 : 기술적 성취와 공간적 이상에 사로잡혀 기능을 무시함. 도시적 장소와 완성도에 대해 무심한 비상식적 과정의 결과."

"동대문디자인플라자 : 건축가 이전에 이런 도시적, 역사적 맥락을 가진 사이트에 이런 해괴한 건축물을 뽑은 발주처와 심사위원을 욕하고 싶다. 천문학적 돈을 쏟아 부어 어디에 써야 좋을지도 모르는 물건을 하나 도심 한복판에 덜렁 얹어 놓은 꼴이다."

"세빛둥둥섬 : 정치와 연루된 안 좋은 대표적인 건축물. 물은 건축가들에게 상상력을 자극하는 대지이다. 반포대교와 잠수교, 올림픽대로를 지날 때마다 한강 위에 떠 있는 이 건축이 우리나라 건축 디자인 수준을 말하는 것 같아 너무 불편하다."

최악의 건물을 짓는 데 서울시는 천문학적인 예산을 쏟아 부었다. 서울시 신청사를 짓는데 2999억 원, DDP에 4840억 원, 세빛둥둥섬에 1390억 원(이중 서울시 산하 SH공사 128억 원 출자, 239억 원 대출보증)을 쏟아 부었다. 그리고 이제 오세훈 전 시장이 추진한 네 번째 '최악의 건축물' 고척돔이 10월 말 개장을 앞두고 있다.

고척돔과 DDP는 오세훈 전 시장이 낳은 예산 낭비의 이란성 쌍둥이다. 두 건축물을 짓는 데 투입된 예산을 합치면 무려 7553억 원(동대문디자인플라자 4840억 원 + 고척돔 2713억 원)에 이른다. 어쩌면 예산 낭비보다 더 쓰라리고 아픈 것은 동대문운동장이라는 장소와 역사가 파괴되면서 그곳에 얽혀 있는 기억과 추억도 함께 철거되었다는 사실이다.

장소와 역사를 파괴하고 천문학적인 혈세를 투입하여 지은 건물이라면 시민들이 즐겨 찾는 장소여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다. DDP는 개장한 지 1년 6개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시민들의 삶에선 이질적인 건물이다.

완공을 앞둔 고척돔구장도 애물단지이기는 마찬가지다. 연간 80~100억 원으로 추산되는 유지비를 어떻게 조달할 것인가는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서울시는 이 때문에 애초 아마추어 야구장으로 계획되었던 고척돔에 프로야구단인 넥센을 유치하기 위해 협상 중이다. 넥센이 고척돔을 홈구장으로 사용하더라도 문제는 끝이 아니다.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고척돔 앞을 지나는 경인로에 배가되는 교통난을 시민들은 감내해야만 한다.

고척돔이라는 또 하나의 애물단지를 서울시민들에게 남겨놓은 오세훈 전 시장은 2011년 8월 무상급식 찬반투표가 성립되지 않자 시장직을 내던지고 사퇴했다. 장소와 역사를 파괴하고, 예산 낭비와 사회적 갈등을 부추긴 그에게 책임을 물을 방법은 없다. 고척돔과 DDP와 세빛둥둥섬과 서울시 신청사를 어떻게 쓸 것인가는 오로지 시민들의 몫이다.

대권이라는 그릇된 야망에 눈이 먼 시장 한 명 잘못 뽑은 후과가 너무도 크다.

(이 기사는 네이버 스포츠에 연재되고 있는 "[박동희의 야구탐사] 고척돔 '선물인가 재앙인가' 1편"을 참조했습니다.)

○ 편집ㅣ곽우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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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전상봉 시민기자는 서울시민연대 대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칼라밍(www.columning.kr)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고척돔 동대문운동장 오세훈 서울시 선수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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