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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금요일마다 참석하는 모임이 있다. 글 한 편을 1시간여 동안 소리 내 읽은 후, 자신의 생각을 서로 이야기하는 독서모임이다. 여섯 명이 모이는 조촐한 독서모임이지만 내겐 아주 소중하다. 주변에 책을 읽는 또래가 거의 없을 뿐더러, 주변 또래와 나누는 대화라곤 시시콜콜한 잡담이나 막막한 현실에 대한 한탄 외엔 없기 때문이다.

문학·철학·역사·과학 등 인간을 묻는 질문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특별한 모임이 아니고서야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대신 연예인의 열애설, 정치인의 스캔들 등 가십거리만 넘쳐난다. 사회에 진지함은 사라지고 이제 가벼움만 남았다. 한 소설가는 존재의 가벼움을 참을 수 없는 것이라 표현했지만, 이제는 존재의 무거움을 참을 수 없는 시대다.

존재의 가벼움을 참을 수 없는 나는 항상 인간에 대한 진지한 대화에 고프다. 그래서인지 나는 담론이 풍성한 유럽을 동경한다. 최근 유럽의 살롱, 클럽, 카페 등을 다룬 <담론의 탄생>이란 책을 읽고 난 이후 유럽을 향한 동경은 더욱 강해졌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의 주인공처럼 그때의 유럽으로 가보고 싶은 마음에 몸이 달았다. 

담론이 탄생하려면

<담론의 탄생>, 책표지
 <담론의 탄생>, 책표지
ⓒ 한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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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는 매년 '바칼로레아'란 중등교육 졸업인증시험이자 대학입학자격시험을 치른다. 프랑스 시민이라면 누구나 바칼로레아에 관심을 갖는다. 물론 한국의 대학수학능력시험과는 다른 차원의 관심이다. 하나는 바칼로레아에서 던진 질문에 대한 관심이라면, 다른 하나는 시험 하나로 인생의 당락이 좌우된다는 걱정에 가깝다.

바칼로레아에서 던진 질문은 정답이 없다. 다음은 2015년 바칼로레아 철학과목에서 출제된 문제 중 인문계열 문제다.

모든 살아있는 존재에 대한 존중은 도덕적 의무인가? 나는 과거의 내가 만들어온 나의 결과물인가?

바칼로레아는 수험생뿐만 아니라 프랑스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진다. 프랑스 시민들은 삼삼오오 모여 서로의 의견을 교류한다.

아름다운 풍경이다. <담론의 탄생>은 이러한 풍경의 기원을 유럽의 살롱, 클럽, 카페 문화에서 찾는다. 살롱, 클럽은 각각 프랑스와 영국에서 출발했고, 카페는 전 유럽에서 성행했다.

"살롱은 출생과 신분, 종파나 정치 이데올로기를 달리하는 다양한 사람이 만나는 자리였다. 그러면서도 세련된 취미와 예절, 새로운 역사를 향한 비전을 하나로 묶은 지성과 교양의 문예공화국을 형성했다. 살롱 문화는 날로 확산되어 '상황에 따라' 자유자재인 프랑스적 삶의 양식, 문화의 양식으로 뿌리를 내렸다. 그 밑바닥에 기쁨으로서의 이야기문화, 담론문화가 자리 잡았다."(본문 81쪽)

살롱과 클럽은 초기에 귀족가문 출신의 부유한 사람들이나 출입할 수 있는 곳이었다. 과거 책을 읽고 담론을 풀어놓는 일은 돈과 여유가 있지 않는 이상 힘든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18세기 계몽주의와 특히 1789년 혁명이 표방한 '인민주권'의 세례를 받으면서"(본문 12쪽) 이러한 문화는 모든 시민으로 확산될 수 있었다. 유럽의 담론문화는 여기서부터 비롯된 것이다.

침묵은 정말 금일까

"찻잔을 놓는 자리로 '넓은 곳은 마땅찮다'거나 다석에 7~8명이 넘으면 '잡스럽다'거나 하는 이유로 기피하고 위계질서와 침묵을 미덕으로 내세운 유교 전통사회에서 카페 문화 같은 다관·다정문화를 어떻게 바랄 수 있었을까."(본문 21쪽)

한국에서도 과거 이야기문화, 담론문화라 불릴 만 한 것이 있었다. <담론의 탄생>은 대표적으로 선비 사대부의 사랑(舍廊) 문화를 예로 든다. 하지만 한계는 명백하다. "가부장적 체제를 반영하여 방주인을 따라 문벌과 학통, 정파를 함께하며 비슷한 신분에 비슷한 생각으로 이해관계를 공유한 사람들의 모임(본문 112쪽)"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도 통용되는 '침묵은 금이다'라는 속담, 위계질서를 강조한 유교문화, 상명하복을 강요한 병영문화 등 다양한 문화적 기제가 한국에 이야기 문화, 담론 문화가 정착할 수 있는 토대를 막고 있다. 대학 강의에서 조차 질문하는 이를 오히려 신기하게 바라보는 학생들이 단적인 예다. 받아들이는 것에 익숙한 사람이 자신의 의견을 말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과거를 탓하느니 현재를 바꾸자

역사를 알고 반성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지만, 과거를 탓하는 것만큼 쓸모없는 일은 없다. 선대에 이야기 문화, 담론 문화를 조성해놓지 못했다면 우리라도 이러한 문화가 들어설 토대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최근 인문학 열풍이 불면서 이야기문화, 담론문화 조성을 위한 여러 움직임이 일고 있다. 수유너머, 다중지성의정원, 숭례문학당, 땡땡책협동조합 등 여러 모임이 만들어져 운영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독서를 위해 의기투합한 여러 소모임도 방방곡곡 생겨나는 것으로 안다. 내가 참석하고 있는 모임도 여기에 포함될 테다.

"만남이란 이야기를 나누는 것, 담론의 자리다. 우리는 저마다 '나의 말'을 간직하고 있다. 그러나 좋은 만남이란 내 말에 앞서 마주해 있는 사람, '그의 말'에 귀 기울이는 자리다. 공자는 셋이 모이면 스승이 한 분 있게 마련이라고 하셨으며 사르트르는 말을 나눔으로써 나와 우리 모두는 '세계를 발견하고 창조한다'고 하셨다."(본문 11쪽)

내가 참석하는, 겨우 여섯이 모인 모임에서 어떤 거대한 일은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꾸준히 책을 읽고 의견을 나누다보면 작은 일이나마 이뤄낼 수 있는 힘은 생기지 않을까. 우리가 서로 말을 나누기 시작한다면 세계를 발견하고 창조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사르트르가 한 말이 진실이라고 믿는다.

덧붙이는 글 | <담론의 탄생>(이광주 씀/ 한길사/ 2015. 4/ 정가 17,000원)

이 기사는 본 기자의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담론의 탄생 - 유럽의 살롱과 클럽과 카페 그 자유로운 풍경

이광주 지음, 한길사(2015)


태그:#담론문화, #인문학 열풍, #독서모임, #살롱, 클럽,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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