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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좋아해?"

서울대공원 동물원장님께서는 위 물음을 어떤 의미로 받아들이십니까? 저는 이것을 반려견이 최근 출산을 했는데, 태어난 새끼들을 전부 기를 여력이 없어서 새 가정을 찾아주려는 어느 반려인의 물음으로 가정하겠습니다. 이런 경우 위 물음은 "강아지를 키울 의향이 있냐?"는 뜻이 되겠지요. 하지만 질문을 받은 상대방은 이런 사실을 전혀 모른 채 아래와 같이 대답합니다.

"그럼, 좋아하지!"

질문의 의도를 모르는 상태에서 대답했기에, 이 말은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할 것입니다. 하나는 "개를 귀여워하고 예뻐한다"는 통상적인 의미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보신탕을 좋아한다"는 뜻이겠지요. 동물원장님께서는 전자와 후자 중 어떤 의미로 응답한 사람에게 소중한 강아지를 보내시겠습니까? 

저는 서울에 살고 있는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이자, 동물보호시민단체 '케어'와 '동물을 위한 행동'을 지지하는 회원입니다. 지난 8월 19일, 이 두 시민단체는 서울대공원 동물원(아래 서울동물원)의 전시동물인 사슴과 흑염소 43마리가 식용으로 매각되는 현장을 급습했습니다. 

시민단체들은 이 사건에 항의하는 한편, 서울동물원이 동물들을 재매입하여 보호할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서울동물원은 긍정적인 답변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사건 발생일로부터 한참이 지난 4일, '케어'의 홈페이지에 서울동물원이 동물들의 재매입을 최종적으로 거부했다는 긴급공지가 올라왔습니다.

그간 시민단체의 공지와 관련 기사를 통해 이해한 바에 따르면, 서울동물원은 동물들이 도축농장에 매각된 줄 몰랐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합법적인 매각이었기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동물원의 동물들을 자식과 같이 잘 보살핀다고 주장했습니다. 

저는 동물보호단체의 회원이지만, 이 편지에서 동물에 대한 사랑이 아닌 '상식'에 호소하려고 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동물들을 굳이 모질게 대하지 않아도 된다는 상식, 가능하다면 그들에게 친절을 베풀어주자는 상식입니다.

'자식'을 공매로 넘기나요?

트럭에 실려 도축농장으로 가는 동물들의 사진. 흑염소들은 트럭에서 서로의 뿔에 받혀 상처를 입은데다가 농장에서 환경 변화로 인한 스트레스로 죽어가고 있다. 이미 6마리의 흑염소가 폐사했다고 한다.
 트럭에 실려 도축농장으로 가는 동물들의 사진. 흑염소들은 트럭에서 서로의 뿔에 받혀 상처를 입은데다가 농장에서 환경 변화로 인한 스트레스로 죽어가고 있다. 이미 6마리의 흑염소가 폐사했다고 한다.
ⓒ 동물을 위한 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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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 물건을 사고파는 온라인 사이트에는 간혹 개나 고양이가 '중고 상품'으로 올라옵니다. 이런 동물들을 보면 마음이 착잡합니다. 불특정 다수에게 상품으로 전시된 동물들이 그것들을 학대하거나 식용으로 삼는 이들에게 팔리지 않을 거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죠.

오늘날 우리는 집에서 기르는 동물을 '반려동물'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이런 동물을 못 기르게 됐다고 해서 아무에게나 팔아넘기고 나 몰라라 하는 건 도리가 아니라고 여깁니다. 평생 책임질 수 없다면, 나 대신 좋은 주인을 찾아주는 것이 '반려' 문화입니다. 서울대공원이 반려동물 입양센터를 운영하게 된 것도 이런 배경에서 비롯됐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동물원 동물들에게 갖는 태도 역시 이와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동물원의 토끼에서 토끼탕을, 염소에서 염소탕을 떠올리며 입맛을 다시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동물보호'는 동물원이 자신의 존재 이유로 내세우는 주요 가치가 아니던가요? 서울대공원 홈페이지에 공개된 동물원장님의 인사말에서 "동물들이 행복하고 행복한 동물을 보면서 관람객이 행복해지는 동물원"이 이상향으로 언급됐듯이 말입니다.

하지만 서울동물원은 '자식'같다는 동물들에게 '잉여'라는 반생명적인 낙인을 찍고 매각했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이 팔려간 곳은 도축농장이었습니다. 이것은 제가 동물원에 대해 그동안 기대했던 상식을 무참히 깨뜨리는 사건이었습니다.

그래도 저는 "도축농장으로 팔려간 줄 몰랐다"는 동물원의 주장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이 식용으로 전락하는 건 동물원도 원치 않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동물들이 당연히 동물원으로 돌아갈 거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동물원은 거부했습니다. 농장주마저도 그것들을 도축하지 않기로 한 상황에서 오히려 동물원 측이 재매입을 거절했다는 사실을 저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습니다.

서울동물원은 그 동물들이 '잉여'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묻고 싶습니다. 애초에 잉여로 내쳐질 생명을 만든 이유는 무엇입니까? 합법적으로 공개 매각했으니 문제될 게 없다는 주장 역시 이해할 수 없습니다. 사슴과 흑염소를 식용·약용으로 쓰는 산업이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에서 합법성만을 거론하는 것은, 동물들이 동물원 밖에서 어찌되든 알 바 아니라는 말로밖에 여겨지지 않습니다. 동물원이 잉여로 매각한 사슴과 흑염소가 동물원 밖에서 제대로 보살핌을 받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주체크 캐나다, 본프리 재단을 비롯한 해외의 저명한 동물보호단체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이번 사건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습니다. 그들의 의견은 한결같았습니다. 동물의 복지를 소중히 여기고 책임감이 있는 동물원에서는 이번과 같은 사건이 허용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동물들을 불가피하게 외부로 처리할 수밖에 없다면, 좋은 새집을 찾아주도록 방침을 마련하라고 권고했습니다. 또한 잉여동물이 태어나지 않도록 번식을 통제하는 것은 동물원에서 전혀 새로울 것이 없는 기술이라고 했습니다.

돌고래 '제돌이'와 흑염소 '채은이'.. 무엇이 다른가요? 

지난 8월 19일, 서울대공원 동물원에 전시되던 동물들이 식용으로 매각되는 현장을 급습한 동물보호단체 '케어'와 '동물을 위한 행동'은 다음날 서울 시청 앞에서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지난 8월 19일, 서울대공원 동물원에 전시되던 동물들이 식용으로 매각되는 현장을 급습한 동물보호단체 '케어'와 '동물을 위한 행동'은 다음날 서울 시청 앞에서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 조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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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7월 아시아 최초로 돌고래 제돌이를 방류함으로써 동물의 복지와 생명의 존엄성에 대해서 성찰해 보는 계기를 제시하는 한편 우리나라의 국제적 위상을 한층 제고하였다고 생각합니다."

서울대공원 홈페이지에서 동물원장님의 인사말 일부를 옮긴 것입니다. 그간 동물복지를 지향하는 서울동물원을 응원해온 저로서는, '쇼'돌고래였던 제돌이를 바다로 돌려보낸 것이 서울동물원의 위상을 제고하기 위한 또 다른 '쇼'였을 거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습니다. 동물원의 변화를 진심으로 바라는 제게 그건 너무나 슬픈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자꾸만 의심이 드는 걸까요? 

동물보호단체 '케어'는 서울동물원에게 버림받은 사슴과 흑염소들을 농장으로부터 재매입하여 구출하기로 했습니다. 이는 수천만 원에 달하는 막대한 비용을 요하기에, '케어'는 대국민 성금운동에 돌입했습니다. 한국 최대의 동물원이 무책임하게 저지른 일을 가난한 시민단체가 해결하기에는 너무나 버거운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동물원이 버린 동물들을 구출하는 이러한 노력은 동물원 동물들에 대한 열악한 처우를 우리 사회에 알리는 의미 있는 일이 될 거라고 믿습니다.

첫 번째 후원자로서 흑염소 1마리의 구입 비용인 50만 원을 후원한 '케어'의 전채은 공동대표는 그 흑염소에게 자신의 이름을 딴 '채은'이라는 이름을 지어줬습니다. 서울동물원의 '스타' 돌고래 제돌이와 한낱 '잉여'에 불과한 흑염소 채은이. 이 두 동물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한다면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나겠지요. 그러나 저는 고통 앞에서 모든 동물은 평등하며, 생명의 가치는 모두 같다고 믿습니다. 

동물원장님께 묻겠습니다. 제돌이를 고향으로 돌려보낸 동물원과 사슴·흑염소를 내친 동물원, 진정 같은 동물원이 맞습니까? 저는 이번 사건을 통해 서울동물원이 생명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심각한 의문을 품게 됐습니다. 서울동물원에게 동물은 어떤 존재입니까?

더불어 동물원장님께 요청합니다. 끝까지 책임질 수 없다면, 애초에 태어나지 않게 해주십시오. 앞서 언급했듯이, 그것은 전혀 새로운 기술이 아닙니다. 동물원이 보호하지 못할 동물이라면 애초에 욕심 부리지 말아주십시오. 제발 생명에 대한 책임감을 가져주십시오. 

서울동물원은 43마리의 사슴과 흑염소들이 식용으로 팔린 사실을 알고 나서도 그것들을 내쳤습니다. 동물들을 두 번 죽인 셈입니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부모는 자식을 죽음으로 내몰지 않습니다. 서울동물원, 정말로 "나쁜" 동물원입니다.

<동물원 동물은 행복할까?>라는 책에 인용된 론 케이건(미국 디트로이트 동물원장)의 말로 이 편지를 마치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동물원은 우리 안의 자비심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창문입니다. 또한 인간이 함께 사는 다른 존재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돌아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 <동물원 동물은 행복할까?>(로브 레이들로 지음/ 박성실 옮김/ 책공장더불어 펴냄) 중에서

시민기자 조세형 올림

버려진 사슴과 흑염소를 도와주세요
서울동물원이 버린 사슴과 흑염소를 구출하기 위한 시민 행동에 동참해주십시오. 천 원이든 만 원이든 십시일반의 도움을 호소합니다. 커피 한 잔의 금액이 모여 버림받은 동물들의 삶을 바꿀 수 있습니다.

후원금 입금 계좌는 '케어'의 공지글(클릭)에 있습니다. 또는 전 세계 소셜펀딩 사이트인 '인디고고'(클릭)를 통해서도 후원하실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덧붙이는 글 | 기사 본문에 언급된 주체크 캐나다, 본프리 재단의 의견 전문은 ‘케어’의 연대단체인 ‘동물을 위한 행동’의 블로그에 공개되어 있습니다. http://afa.or.kr/220470349602 http://afa.or.kr/220467378908



태그:#서울대공원, #동물원, #식용 매각, #사슴, #흑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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