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 4월 6일. 여름에 엄청 더워서 '대프리카'라는 별명이 있는 뜨거운 남쪽나라 대구에 있는 대구인권사무소에 발령을 받았다. 인권보호와 공익향상을 위해 지난 2011년 국가인권위원회에 들어왔다고 자부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주로 지원부서에서 근무하다 보니 실제 조사와 권리구제, 그리고 인권교육이 이루어지는 현장을 접할 기회가 적었다. 주말부부를 해야 한다는 가족에 대한 아쉬움과 그동안 꿈꿔왔던 인권이 실제 논의되고 움직이는 현장이라는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설렘이 교묘하게 중첩되어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였다.

누군가의 앞에 선다는 것은 그만큼 더 책임이 있다는 말

인권사무소에서는 조사, 교육, 상담, 협력 등 다양한 업무가 일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사람이 모든 것을 다 잘하면 가장 좋겠지만 그러기가 쉽지 않으니 '나의 적성, 사회적 요구' 등을 고려하여 인권교육을 특화해 보자는 잠정 결론을 내렸다. 

서당개도 삼년이면 풍월을 읊을 수 있다는데 사범대를 졸업하고 교육학회에서도 열심히 활동했으니 인권교육도 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도 이 분야에 힘을 쏟고자 하는 결정에 힘을 보탰다.

졸업 후에는 사교육의 메카 학원에서 생계를 유지해본 경험 덕분(?)에 '강의나 교육을 한다는 것' 자체에 별 부담은 없었다. 문제는 강의 내용, 즉 "인권"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성찰이었다. 다행히 사무소에서 나만을 위한 것은 아니지만 인권강사 보수교육과정을 진행해서 아주 큰 도움이 되었다. 

 "인권에 대한 무지를 강요하는 것이나
내버려두는 것 자체가 인권 침해이다.
교육은 인권과 자유의 머릿돌이다"
(UN 「인권, 새로운 약속」중에서)

교육 준비, 철저해야 한다

권리구제를 위한 조사업무와 상담 업무 등을 병행하면서 마주하게 되는 현장에 있다보니 "인권"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끊임없이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2개월 정도의 내공이 쌓이고 지난 6월 11일 드디어 그날이 잡혔다. 새내기 인권강사의 첫 인권교육의 날 말이다. 새내기 인권강사와 첫 인권을 나누실 분들은 뇌병변장애나 시각장애가 있는 당사자 분들이었다.

우선 장애인에 대한 모든 차별을 금지하고, 장애인의 완전한 사회참여를 통하여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실현하고자 하는 법, 그래서 장애인은 물론 비장애인도 꼭 알아야 하는 법인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이하 장애인차별금지법)의 내용으로 교육의 방향을 정한다.

다음으로는 내용을 구체화해야 하는데 아무래도 장애인인권 활동가나 장애인 관련 시설의 종사자가 아닌 장애인 당사자 분들이라 장애인차별금지법 상세한 설명(법의 전문을 살펴보는)보다는 일상생활 속에서 경험할 수 있는 사례를 중심으로 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장애인차별유형 설명하고, 그동안 국가인권위원회가 권고했던 사례를 통해 합리적인 이유 없이 장애인을 차별해선 안 된다는 법의 목적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내용이 정해지면, 이제는 어떻게 서로 교류할 것인가 하는 강의 형식을 결정할 차례다. 이때에는 뇌병변장애와 시각장애의 특성을 고려하여 교육 방식을 정하고, 교육을 위한 정당한 편의 제공을 고민해야 한다. 다행히 시각장애의 정도가 약해서 화면 속 내용을 흐릿하게나마 볼 수 있고 설명하면 다 알아 들을 수 있다고 한다. 시각적 영상보다는 글자로, 글자도 그 크기를 키우고, 내용은 최대한 이해하기 쉽게 정리하는 등 단순한 구조로 바꾸었다.

'교육자료 만들기'라는 큰 산을 넘으니 또 다른 난관이 다가왔다. 교육만 하면 맘이 급해서 인지 내공이 부족해서 인지 말이 빨라진다는 것이다. 이런 특징은 교육시간보다 항상 수업이 일찍 끝나는 장점(?)있지만 강사와 참여자간의 인권적 의사소통을 방해하는 요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교육 자료를 미리 인쇄하여 읽고 또 읽으면서 시간을 체크해 보고 발음을 수정해 가면서 혹시나 모를 교육 중 실수를 예방하기 위하여 머릿속으로 교육 중에 나올 수 있는 다양한 상황을 예행연습 해보기도 했다. 

교육하러 가는 날

6월 11일 날이 밝았다. 이제 큰 숨을 한 번 쉬고 서서히 출발한다. 강의는 오후 2시인데, 12시 40분에 강의 현장에 도착했다. 너무 일찍인가? 일단 허기진 속을 달래고자 근처 음식점을 찾았다. 혹시나 긴장해서 탈이 나지 않을까 싶어 편히 먹을 수 있는 분식집을 찾았으나 쉽지가 않다. 더운 날씨에 약간의 땀이 배기 시작한다. 결국 부드러운 음식인 떡국을 시키고도 반이나 남겼다. 입 냄새 난다고 싫어하실까봐 교육장소로 가기 전에 화장실에서 양치를 한다. 이런 저런 상황으로 시간을 보냈지만 교육장에는 10분이나 먼저 도착했다.

새내기 인권강사의 첫 인권교실에서 자칭 날라리가 주신 귀한 수세미와 함께 오늘을 기념하다. 2015. 6. 11.
 새내기 인권강사의 첫 인권교실에서 자칭 날라리가 주신 귀한 수세미와 함께 오늘을 기념하다. 2015. 6. 11.
ⓒ 대구인권시민기자단

관련사진보기


아직 오늘 주인공 분들은 오고 계시는 중이었다. 너무 긴장한 탓인지 온 몸이 떨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불쑥 자신을 '날라리'라고 소개하는 한 시각장애인분이 자신이 만들었다면서 노란 봉투에 곱게 포장한 설거지용 수세미 2개 주었다. 알록달록한 모양에 손잡이까지 있어 모양도 예뻤지만 그것을 정성스레 준비한 마음이 더 따뜻했다. 그래서 인지 생애 첫 인권교육을 앞두고 긴장했던 나의 마음도 스스륵 다 풀려버렸다.

맘이 포근해지니 입도 풀리기 시작한다. 능숙하지 못했던 인권교육이나 장애인차별금지법 등에서 쓰이는 단어가 입에서 술술 나온다. 다행히 반응은 좋은 것 같다. 연신 고개를 끄덕여 주시고 위원회 권고 사례를 얘기할 때는 '자신들도 그런 거 당하면 진짜 분하다'고 공감도 해주신다. 교육 시작할 때 흐르던 등의 식은땀은 이제 열정적인 교육에 의한 땀으로 바뀌었다.

쉬는 시간에도 생활에서 느꼈던 불편한 시선과 몰라서 요구하지 못했던 정당한 편의에 대한 질문은 끝이 없으셨다. 장애인이니 불쌍하다는 불편한 시선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하는 동등한 구성원이라는 사실을 인정받고 또 그렇게 대우 받는 것, 그것이 그분이 원하는 단 하나의 소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권교육은 공동체에서 함께 살기 위한 것

인권교육은 인권에 대한 교육뿐만 아니라 인권을 위한 교육이고 더 나아가 인권을 통한 교육을 지향한다는 측면에서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다른 교육과는 구별될 것이다. 그런데 혹자는 인권 또는 인권교육이 권리만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니 개인주의로 흘러서 사람들이 책임과 의무에 소홀하게 되어 오히려 공동체를 파괴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인권교육에서는 인권을 이해하고 지식을 습득하여 자기권리만을 주장하라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권교육은 타인의 인권보호와 증진을 위한 실천력 강화를 통하여 인권을 존중하는 공동체를 만드는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다.

첫 인권교육을 나눈 새내기 인권강사의 앞길에 무엇이 있을지는 아무도 모를 것이다. 하지만 처음의 설렘과 초심의 각오를 잊지 않는다면 더욱 괜찮은(?) 인권교육 강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기자 주> 인권에 대한 교육(Education about human rights, 인권의 의미와 역사, 인권의 기준과 원칙 등 지식을 전달하는 것), 인권을 위한 교육(Education for human rights, 나와 타인의인권을 존중하고 보호할 수 있는, 그런 실천을 목적으로 하는 것), 인권을 통한 교육(Education through human rights, 교육자와 학습자가 서로의 권리를 존중할 수 있는 환경, 학습자의 동등한 참여를 의미함)은 인권교육을 구성하는 개념으로 이해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인권위와 함께 하는 시민기자단이 꾸려가는 '별별인권이야기'는 일상생활 속 인권이야기로 소통하고 연대하기 위한 공간입니다. 글쓴이 김종길님은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사무소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태그:#인권교육, #장애인인권, #장애인차별금지법 , #인권강사, #인권
댓글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사무소와 함께 차별없는 인권공동체 실현을 위하여 '별별 인권이야기'를 전하는 시민기자단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