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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3살 된 나를 안고 계신 아버지는 29세였다. 오늘처럼 늙고 병들 줄 알고 계셨을까.
 1963년. 3살 된 나를 안고 계신 아버지는 29세였다. 오늘처럼 늙고 병들 줄 알고 계셨을까.
ⓒ 김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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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서 아버님 아직 정신 있으실 때 자식들 다녀가라고 하네요. 고령이신데다 폐렴이 심해서 어떻게 되실지 모르겠다고..."

요양병원에 계시던 아버지가 심한 기침을 하시고 식사도 잘 못하신다는 말은 들었지만 그러다 좋아지시려니 했다. 그런데 갑자기 종합병원으로 옮겨야 할 만큼 증상이 심해졌다고 한다. 폐렴이 급격히 진행되어 위중한 상태가 되셨다는 것이다. 눈앞이 깜깜했다. 지난 달 뵙고 왔을 때만 해도 식사도 잘하시고 잘 걷고 웃고 하셨는데 갑자기 위중하다니...

"의사가 오시지 말래요. 병원에서 메르스 때문에 서울에서 온 보호자 면회는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네요. 아버님한테도 좋지 않다고요."

다시 걸려온 올케의 전화. 딸들이 사는 지역이 서울이라 메르스 감염을 우려해 면회를 오지 않길 바란다는 거였다. 병원 측의 우려는 이해되지만 메르스도 아닌 폐렴으로 입원 중인 아버지가 위중한 상태고 더구나 언제 돌아가시지도 모른다는데 어떻게 아버지를 보러가지 않을 수 있을까. 남편과 나는 엄마를 모시고 아버지가 입원하신 부산 병원으로 향했다.

"니 아버지가 일 년이면 한두 번 심하게 기침을 해. 예전에도 그랬잖아. 늙은 호박에 장어를 넣고 푹 고아드리면 기침도 덜하고 여름을 잘 나는데... 기침한 지 한 달도 넘었다는데 병원 밥 먹고 그걸 이겨낼 수 있겠니. 노인네가 곡기를 끊으시면 금방 돌아가시는 거야... 아무래도 내가 집으로 모시고 와야겠다."

마침 메르스가 기승을 부리던 시기라 가족들의 면회는 일절 금지였고 기침이 심하셔서 식사는 전혀 못하시고 링거로 버티고 계신다는 아버지의 상태를 전해 들었을 뿐이었다. 한 달 넘게 지속되는 기침에 체중은 20kg이나 줄고 신장과 심장 등 다른 장기에도 문제가 생겼다. 수없이 죽을 고비를 넘기며 살아오신 강인한 체력의 아버지이지만 여든 둘의 고령에 노인들에게 치명적인 폐렴까지 왔으니 두려운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아버지 요양병원 가신 지 6개월 됐지? 이제 모시고 와야겠다. 나도 이제 어느 정도 건강해졌고 병원에 더 두는 건 아버지에게 죄스러워서 안 될 것 같다. 아버지 모셔오면 내가 잘 해드려서 예전처럼 건강하게 해드릴 수 있어. 마누라 밥이 먹고 싶어서 저런지도 몰라."

여든 둘의 아버지는 올해로 8년째 치매를 앓고 계신다. 다행히 조기 검진과 치료를 통해 치매의 진행을 늦추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길을 잃어 버리는 일은 다반사고 대소변처리부터 먹는 것, 입는 것, 잠자는 것, 고집 부리기, 욕하기, 화내기 등등 문제행동은 조금씩 늘어가는 상황이었다.

55년 함께 산 노부부, 6개월의 생이별

백년해로, 검은머리 파뿌리 되게 살아오셨으나 아버지가 치매에 걸리셨다.
 백년해로, 검은머리 파뿌리 되게 살아오셨으나 아버지가 치매에 걸리셨다.
ⓒ 김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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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버지의 곁에는 늘 엄마가 있었다. 자식들 다 출가 시키고 한가한 노년을 보낼 무렵 찾아온 아버지의 치매는 엄마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었다. 하지만 엄마는 미우나 고우나 의지하고 살아온 남편 곁을 묵묵히 지켰다.

"니들은 걱정 마라. 아버지는 내가 책임질 거야. 자식들한테 부담 주고 싶지 않아. 내가 그 정도는 할 수 있어. 니들 할아버지, 할머니 병수발도 내가 했는데 남편 뒷바라지 당연히 해야지."

다행히도 엄마는 씩씩했다. 엄마의 삶은 늘 그랬다. 누구나 피하고 싶어 하는 책임과 짐을 스스로 지고 가는 그런 삶의 연속이었다. 자식들은 노년에 또 다시 큰 짐을 안게 된 엄마를 안쓰럽고 측은하게 생각했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엄마가 있어 아버지에 대한 걱정을 내려놓을 수 있음에 감사했다.

8년을 잘 버티던 엄마가 쓰러진 건 올 초였다. 아버지의 치매 증상이 점점 더 심해져 곁에서 돌보던 엄마도 건강을 잃게 된 것이다. 엄마는 쓰러진 후에도 아내의 보살핌을 받지 못해 증상이 심해지는 아버지를 더 걱정했다.

"그래도 내가 챙겨 드려야 하는데... 그럼 지금은 나도 너무 아프고 아버지 건강도 많이 나빠지셨으니 잠시 병원 신세를 지고 좋아지면 다시 모셔오는 걸로 하자."

그렇게 시작된 노부부의 생이별은 6개월이 넘어가고 있었다. 그동안 엄마의 건강은 조금씩 좋아져 집으로 돌아오셨지만 요양병원에 계신 아버지를 모셔오지는 않았다. 환자를 돌볼 만한 건강 상태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영문을 모르는 아버지는 마치 아기가 엄마를 찾듯 요양병원에서도 하루 종일 엄마만 찾았다.

"니 엄마가 많이 아픈 거니? 그래 엄마는 어디가 아픈 거니? 근데 엄마는 왜 아픈 거니?"

문병을 간 자식들에게도 아버지는 계속 엄마 안부를 물었다. 치매인 탓에 같은 질문을 수없이 반복하는 것도 있지만 아버지는 진심으로 아내를 걱정하고 있었다.

55년을 함께 산 노부부가 처음으로 떨어져 산 지 6개월. 드디어 두 분이 다시 한집에 살게 되었다. 다행히도 아버지는 고비를 넘기고 퇴원했고 엄마는 아버지를 요양병원으로 돌려보내는 대신 집으로 모시고 왔다.

"얼마를 더 사시든 이제는 내가 모시고 있으련다. 내가 정 죽겠으면 그때 다시 생각해 보자. 내가 아버지 밥을 얼마나 더 해 드릴 수 있겠니. 세상에. 노인네 봐라. 병원에서 한 달 넘게 밥한 술 뜨지 않으셨다더니 집에 와서 몇 끼 잘 해드리니 벌써 저렇게 기력을 찾지 않니. 그래도 마누라 밥이 최고인 거야. 돌아가셔도 집에서 돌아가시게 하려고 모시고 왔는데 이제는 나보다 더 펄펄하시다."

요양병원을 찾아간 손주를 반갑게 맞으신 할아버지
 요양병원을 찾아간 손주를 반갑게 맞으신 할아버지
ⓒ 김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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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오신 지 두 달. 아버지의 건강을 날로 좋아지셔서 스스로 걸어서 화장실을 다닐 수 있게 되셨다. 하지만 엄마는 아버지 수발이 무리가 되셨는지 예전으로 돌아간 듯 시름시름 앓기 시작한다. 당뇨와 고혈압, 협심증, 우울증, 말초신경장애에 심지어 경미한 파킨스 증상까지 있어 한 주먹씩 약을 먹지 않으면 하루도 살기 힘든 상황이다. 하지만 아직은 몸을 움직여 남편에게 뭐라도 해 줄 수 있다며 요양원이나 요양병원 이야기는 꺼내지도 못하게 하신다.

자식이 보기엔 아버지와 헤어져 지낸 지난 6개월이 엄마에게 큰 선물이고 휴식이며 위안일 줄 알았는데 엄마 입장에서는 몸은 편했고 아픈 것도 좋아졌지만 마음은 늘 힘들었던 시기였나 보다.

얼마 전에는 아버지께 드릴 약을 손에 들고 있다가 당신 입에 털어 넣어 버리는 일이 있었다. 엄마도 점차 총기가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어제는 아버지를 모시고 집밖 공원에 나갔다가 아버지를 잃어 버려 한바탕 소동이 나기도 했다. 집으로 돌아오신 지 두 달. 엄마의 삶은 급속하게 예전으로 돌아가고 있다. 자식 입장에서는 엄마가 또 쓰러지시면 어쩌나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서울 토박이인 아버지는 원래 서울이 집이었다. 요양병원에 입원하신 후 아버지의 집은 부산이 되었다. 요양등급을 새로 받기 위해 주소를 요양병원이 있는 부산으로 옮겼기 때문이다. 몸이 아픈 이후 엄마는 딸들 집 근처로 이사를 오셨고 이제는 아버지의 집도 분당이 되었다.

요즘 나는 분당에서 가까운 용인, 구리 쪽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을 찾아보고 있는 중이다. 엄마는 아직은 아니라고 하시지만 언젠가는 아니 어쩌면 좀 더 가까운 날에 아버지의 집을 옮겨야 할 상황이 올 것 같아 미리 준비하는 것이다. 정말 이 방법밖에 없는 것일까. 왜 이렇게 마음이 편치 않은 것일까. 

○ 편집ㅣ장지혜 기자



태그:#치매, #노인요양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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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아줌마가 앞치마를 입고 주방에서 바라 본 '오늘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한 손엔 뒤집게를 한 손엔 마우스를. 도마위에 올려진 오늘의 '사는 이야기'를 아줌마 솜씨로 조리고 튀기고 볶아서 들려주는 아줌마 시민기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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