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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떠나기 전, 이슬람 국가라는 걸 빼면 말레이시아에 대한 지식은 딱 두 개였다. 고무와 주석이 많이 나는 나라라는 것과, 다양한 인종이 모여 사는 다문화 국가라는 것. 그런데, 고무와 주석 산지라는 건 박물관이나 찾아가야만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지만, 다문화 국가라는 건 공항에 내리는 순간 단박에 알 수 있다.

전시한 마네킹에서 보듯, 말레이시아는 '달라도 너무 다른' 사람들이 조화롭게 살아가는 나라다.
▲ 국립박물관 내부의 다문화 전시실 전시한 마네킹에서 보듯, 말레이시아는 '달라도 너무 다른' 사람들이 조화롭게 살아가는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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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백화점' 같은 말레이시아

희고 검은 피부 색깔에다 종교적인 복장까지 각양각색이니 그들이 한 나라 국민인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아마도 태어날 때부터 '단일 민족'이라는 말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온 우리의 편견일 테지만, 말레이시아에서는 캐리어나 배낭만 아니면 누가 주민이고 누가 관광객인지 가려내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말레이시아에 '아시아의 용광로'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이유를 알 것 같다.

가히 '종교 백화점'이라 할 만큼 다양한 종교 시설들이 산재해 있고, 각자 자신들의 종교와 고유한 삶의 방식에 따라 살아가고 있다. 입구에 화려한 힌두신상을 세워놓은 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점심때는 장사 잘 되게 해달라며 향을 피우고 있는 중국 식당에서, 저녁에는 술을 팔지 않는 무슬림 식당에서 끼니를 해결하는 게 다반사였다. 그 가게들이 서로 마주보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피부색과 복장뿐만 아니라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도 달랐다. 한 모스크를 찾아가는 전철 안에서 바로 옆에 앉아있던 중년의 무슬림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머리에 원통형 페즈를 쓰고 있던 그에게 모스크의 정확한 위치와 가는 방법을 물었더니, 영어에 서툰 그를 대신해 옆에 있던 사람들이 '통역'을 자청했다. 새까만 인도인도 있었고, 가방을 멘 앳된 여학생도 있었다.

무슨 구경거리라도 되는 듯 주위의 몇몇 승객들이 관심을 보이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재미있는 건 그들끼리 서로 다른 언어를 썼다는 점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중년의 무슬림과 여학생은 말레이어로, 인도인들끼리는 힌디어를, 물론 내게 말을 건넬 때는 또박또박 영어로 답변해 주었다. 그들 중 영어에 능숙한 이가 중간에서 다른 일행에게 설명을 해주는 식이었다.

많은 대화가 오갔지만, 그때까지 명쾌한 답변은 나오지 않았다. 이야기가 맴맴 돌더니 결국 다들 전철역에서 나가 택시를 타면 된다는 결론이었다. 그럴 거였다면 애초 묻지도 않았다. 허탈해하고 있던 바로 그때, 양복을 말끔히 차려입은 한 사람이 다가와 정확한 버스 번호와 택시요금을 일러주었다. 옆에 앉은 일행과 대화하는 걸 들으니 그는 중국인이었다. 전철의 객실 한 칸에서 무려 대여섯 개 언어를 동시에 들을 수 있었던 아주 색다른 경험이었다.

말레이시아의 공용어는 공식적으로 말레이어 하나지만, 말레이시아인 대부분은 영어에 익숙하다. 특히 젊은 세대 중 영어를 못하는 이를 외려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두루 통용되는 언어다. 일각에선 외국어 교육의 성공사례라며 치켜세우지만, 영어뿐만 아니라 아랍어, 중국어, 힌디어 등 다양한 언어에 노출될 기회가 많은 다문화 사회의 영향으로 보는 게 더 타당하지 싶다.

다만, 일상생활에서는 영어를 사용하지 않고, 각자 익숙한 '고유어'를 사용한다. 그러다 보니 버스나 전철 안에서도, 길을 걸을 때도 인종에 따라 다른 억양의 말들이 오케스트라의 하모니처럼 자연스럽게 들린다. 버스나 전철 안은 말할 것도 없고, 관광지의 입장권과 식당의 메뉴판, 심지어 거리 곳곳에 나붙은 광고물에 이르기까지 최소 서너 개의 언어가 병기돼 있다.

"이렇게 생김새도, 옷차림도, 종교도, 언어도 다 다른 사람들이 별 탈 없이 평화롭게 살아가는 게 정말 신기해. 우리 같으면 생각이 조금 달라도 '왕따'시키고, 심하면 서로 죽이고 그랬을 텐데 말이야. 박물관 같은 곳에 가면 그 이유를 찾아낼 수 있을까?"

아이는 말레이시아에선 낯선 게 너무 많다고 했다. 우선, 계율에 '목숨 건 듯한' 무슬림의 엄격한 일상에 놀랐고, 아무리 차가 막혀도 경적 한 번 울리지 않는 느긋한 도로 위 모습이 너무도 신기했단다. 또, 달라도 너무 다른 사람들이 이렇듯 조화롭게 살아가는 모습은 낯섦을 넘어 깨달음 같은 것이라고 표현했다. 사실 아빠인 나도 궁금했던 바다.

아이의 말대로, 말레이시아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국립 박물관에서 그 이유를 찾아보기로 했다. 규모로만 보면 기대에 크게 못 미쳤다. 전시된 유물이라 해봐야 수도 많지 않고 보잘 것도 없었다. 우리나라 지방 도시의 박물관보다도 작은 규모였다. 그나마 석기나 청동기 등 선사시대 유물을 빼면, 고대 말레이시아의 모습을 알려주는 자료는 거의 없다시피 했다.

말레이 전통 가옥을 형상화한 건물로, 말레이시아의 역사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주위에 고층 빌딩이 즐비해 더욱 규모가 작아 보인다.
▲ 국립박물관의 모습 말레이 전통 가옥을 형상화한 건물로, 말레이시아의 역사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주위에 고층 빌딩이 즐비해 더욱 규모가 작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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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 역사, 박물관에 가면 알 수 있을까

말레이시아는 스리위자야(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지역) 왕자가 건너와 1402년 건국한 믈라카 왕국을 역사의 시작으로 보고 있다. 그때까지가 선사시대는 아닐 테고, 우리로 치면 조선이 건국되기 전의 역사가 누락돼 있는 셈이다. 그로부터 한 세기 남짓이 지난 1511년 포르투갈이 침략한 이래 20세기 초반까지 수백 년 동안 식민의 역사로 점철되니, 사실상 말레이시아는 제국주의 시대 역사와 궤를 같이 한다.

박물관에는 다문화적 성격을 보여주는 전시실이 유독 많았다. 19세기 영국에 의해 고무 플랜테이션 농업이 행해지고 주석 광산이 개발되면서부터 중국인과 인도인 등이 대거 이주하게 됐고, 말레이시아는 시나브로 다문화 사회로 변모했다. 같은 식민지의 피지배층으로 제국주의와 대항하면서, 경쟁보다는 협력을, 갈등보다는 공존을 택하게 된 것이다. 이슬람 국가이면서도 다른 종교에 대해 관용적인 것도 이러한 역사를 공유하기 때문 아닐까.

쿠알라룸푸르는 곳곳이 공사중이었다. 그곳마다 일하는 이들 대부분은, 물론 인도계 노동자들이었다.
▲ 건축 공사장에서 일하는 인부들 쿠알라룸푸르는 곳곳이 공사중이었다. 그곳마다 일하는 이들 대부분은, 물론 인도계 노동자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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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한 지 10여 년이 지난 1969년 원주민인 말레이인과 중국계 이주민 사이에 유혈충돌이 빚어지기도 했지만, 그 이유는 종교나 문화, 인종의 차이가 아니라 둘의 경제적인 격차에 의해 비롯된 것이었다. 사건 직후, 소외된 말레이인들을 제도적으로 보호하고 우대하는 '부미푸트라 정책'이 시행되어 오늘에 이른다. 사실 '법'이라기보다는 '관용'에 가까운 제도다.

"여보, 이렇듯 다양한 말레이시아인들의 평화로운 삶이 과연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까? 과거 빈부 격차가 인종 간 갈등을 일으켰듯, 머지않아 더 큰 충돌이 빚어지지 않을까 걱정돼. 식당과 카페, 쇼핑센터 등 말레이시아 그 어디를 가든 마치 공식처럼 중국계 사장과 말레이계 지배인, 그리고 새까만 피부의 인도계 종업원으로 나뉘어져 일하고 있었어.

이른 아침이나 늦은 밤 모노레일이나 지하철을 타면 승객 대부분이 출퇴근하는 인도계 노동자들이었고, 하나같이 피곤에 절어 졸고 있는 모습이었지. 인터넷이나 TV 광고에선 늘 서로 다른 피부색의 어린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해맑게 웃으며 손잡고 뛰어놀고 있지만, 여태껏 여행하면서 공교롭게도 까만 피부의 인도계 아이가 교복 입고 등교하는 모습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섣부르지만, 말레이시아가 지금처럼 마냥 평화롭지는 않을 것 같아."

아내의 말을 듣노라니, 매일 아침 숙소를 나설 때 맨 먼저 보게 되는 풍경이 떠올랐다. 늘 공원에서 밤을 보낸 초췌한 모습의 노숙자들이 두툼한 폐지더미를 침대 삼아 잠들어 있었다. 아이들은 그곳을 지날 때마다 발걸음이 빨라졌고, 귀가 시간이 늦은 경우에는 부러 먼 길을 돌아오기도 했다.

종착역에 닿은 전철 내부를 청소하는 이들은 모두 인도계 노동자들이었다. 근래 들어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들어온 이주 노동자의 비율이 크게 늘었다고 한다.
▲ 전철 내부의 청소 노동자들 종착역에 닿은 전철 내부를 청소하는 이들은 모두 인도계 노동자들이었다. 근래 들어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들어온 이주 노동자의 비율이 크게 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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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이 자리한 곳은 쿠알라룸푸르의 '명동'인 부킷빈탕 근처, 아랍인의 거리 입구다. 세계 어느 나라건 노숙자들은 있기 마련이니 특별할 건 없다지만, 피부색으로 보아 노숙자들은 하나같이 인도계이거나 아랍계였다. 많은 노숙자들의 거처가 돼버린 공원은 세계 유수의 기업들이 현란한 광고를 뽐내는 고층 빌딩 숲에 에워싸여 있다. 언뜻 그로테스크한 풍경이다.

매일 아침 모노레일 역을 가자면 이곳을 지나가야 했다. 늘 십수 명의 노숙자들이 그늘 아래 폐지 더미를 깔고 잠을 자고 있었다. 도심 한복판에 자리한 아랍인 거리는 고층 빌딩 숲에 포위돼 있었다.
▲ 아랍인 거리 공원의 노숙자들 매일 아침 모노레일 역을 가자면 이곳을 지나가야 했다. 늘 십수 명의 노숙자들이 그늘 아래 폐지 더미를 깔고 잠을 자고 있었다. 도심 한복판에 자리한 아랍인 거리는 고층 빌딩 숲에 포위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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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ㅣ장지혜 기자



태그:#가족여행기, #베트남, #말레이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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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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