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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과 양파를 바구니에 부어놓고 가셨다.
▲ 감동의 선물 마늘과 양파를 바구니에 부어놓고 가셨다.
ⓒ 김경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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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이 먹도록 오늘처럼 많은 칭찬을 받고, 수고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여기는 조금만 긍정적인 생각으로 아주 조금만 몸이 부지런하면 기분 좋은 칭찬을 원 없이 들을 수 있는 곳이다.

이장의 방송 소리에 눈을 뜨니 새벽 6시다. 방송 내용은, 마을 회관에서 점심을 하니 먹으러 오라는 것이다. 어떤 때, 왜 마을회관에서 밥을 하느냐고 남편에게 물었더니 가끔 동네 어르신 생신날이면 자녀들이 마을 회관에서 점심을 한 턱 내기도 하고, 군청에서 노인회 앞으로 나오는 금일봉으로 식사를 하기도 한단다. 음식을 만드는 노력 봉사는 부녀회에서 하고.

오늘 할 일이 무엇인지, 약속이 있는지 생각해봤다. 특별히 할 일도 약속도 없다. 귀촌하고 1년이 지났지만 동네 모임에는 갈 기회가 별로 없었다. 시골이라고는 하지만 농사짓는 사람도 있고 직장 다니는 사람도 있어서 아주 중차대한 일이 아니고서는 차 한 잔을 마시더라도 토요일에 사람들이 모인다. 일요일에는 각자의 종교 생활도 있고 해서.

나 역시 서울에 갈 때는 토요일 아침 차로 간다. 아이들이 직장에 다니니까 토요일에 올라가야만 휴일에 아이들 얼굴을 보고 밥 한 끼라도 같이 먹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공교롭게도 마을 모임에는 어쩌다가 참석을 하게 된다.

오늘 설거지는 내 차지라는 '직감'

남편은 선약이 있어서 외출을 한 고로, 작은 집 동서와 같이 가려고 작은 집에 가 봤더니 시동생이 나오면서 동서는 먼저 갔단다. 아마도 먼저 가서 부녀회장님을 도와서 점심 준비를 하나보다.

혼자 가기 뭣해서 엉거주춤 망설이는 나를 시동생이 이끌고 갔다. 마을회관에 도착하니 이미 점심상을 차리는 중이었다. 모두들 웃으며 반겨 주신다. 몇 가지 안 되는 반찬이지만 정갈하고 푸짐하게 담아서 내 놓는다. 나는 직감적으로 느낌이 왔다. 오늘 설거지는 내 차지라는 것이! 하지만 집을 나설 때부터 작정한 것이니까 기쁜 마음으로 손톱 밑에 낀 때를 빼 보리라 다짐하며 혼자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먹는 밥맛이 꿀맛이다.  

며칠 전, 서울에 다녀왔더니 뒤뜰 토방 장작더미 위에 마늘 여섯 묶음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마치 우렁각시가 몰래 놓고 간 것처럼 정갈하기도 하다. 한 집에서 이렇게 많은 양을 갖다놓지는 않았을 것 같다. 누가 갖다 놓았는지는 모르지만 일단 마을에 인심을 잃지 않았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마늘 몇 접에 무에 그리 심장까지 두근거릴 것 있느냐는 사람도 있겠지만 내게는 타지인 이 곳에서 그 누군가가 스스로 귀한 양념을 선물한 것이기에 가슴만 두근거리는 게 아니라 작은 흥분까지 일었다. 나는 남편을 소리쳐 불렀다.

올해는 마늘 값이 비싸다는데 저렇게 많은 마늘을 선물로 받았다.
▲ 마늘 올해는 마늘 값이 비싸다는데 저렇게 많은 마늘을 선물로 받았다.
ⓒ 김경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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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이것 좀 봐요, 누가 마늘을 여섯 접이나 갖다 놨어요."
"여섯 접이나? 에이 이건 여섯 접이 아니라 세 접이요."
"봐요, 여섯 접 맞잖아,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눈앞에 분명히 여섯 다발이 있는데 남편은 세 접이라고 했다. 하나 둘도 못 세느냐며 눈을 동그랗게 뜨는 내게 남편은 마늘은 다발로 묶을 때 50알씩 묶는다고 가르쳐 주면서 '누가 이렇게 많이 갖다 놨지?'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난봄 미국을 한 달간 다녀왔더니 앞 뒤 텃밭의 채소는 모조리 다 죽었고 풀만 무성했다. 근 열흘간을 풀 뽑고 청소하고 분주한데 지나가던 마을 사람들이 무심한 듯 그야말로 지나가는 말로 한마디씩 했었다.

"애 쓰네, 채소는 다 죽고 먹을 거이 하나도 읎제?
"예, 우째 요래 씨가 말랐는지 모르겠네요."
"긍게, 우선 우리 집에 치 뜯어다 머거."

감동 가득한 '우리' 동네

집으로 돌아오는데 떡까지 싸 주셨다
▲ 인심 집으로 돌아오는데 떡까지 싸 주셨다
ⓒ 김경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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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댁에서는 자기 집 대문 여는 방법까지 가르쳐 주면서 집 안 텃밭의 작물을 아무 때나 뜯어 먹으라고 했다. 감동이었다. 그 댁 주인에게 감동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남편에게도 감동했다. 지난해 여름에 우리 집 대문 여는 방법을 동네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던 남편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렇게, 이런 마음이 한 집 두 집 전파된다면 아마도 우리 동네는 우애 있고 평화로운 마을임이 틀림없을 테고 타 동네에도 모범이 되리라는 자부심이 들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동네 사람들에게 대문 여는 방법을 가르쳐 줄 바에는 뭐 하러 대문은 달았느냐고 못마땅해 하던 내 모습이 떠올라서 살짝 부끄럽기도 했다.

그 때는 동네 분들의 그 말씀이 인사로 하시는 줄 알고 '그러마'고 대답은 했지만 채소를 뜯으러 가지는 않았다. 아니, 안 간 게 아니라 못 갔다. 어르신들이 애써서 지은 농산물을 거저 갖다 먹기가 미안했고, 그렇다고 돈을 드리자니 마음을 무시하는 것 같기도 해서 몹시 애매했기 때문이다.

사람의 습관이라는 게 참 묘하다. 도회지에서 생활할 때는 김치나 밑반찬 외에는 생채소를 거의 안 먹어도 괜찮더니 시골에서 1년을 살고 나니 며칠만 채소를 안 먹어도 속이 더부룩하니 불편했다. 하여, 생채소를 사러 나서는 참인데 안평 할매가 상추랑 들깻잎을 한소쿠리 들고 오셨다.

"채소 좀 뜯어다 먹으라고 말로만 하면 안 올 것 같아서 조금 가지고 왔네."

정말 고마웠다. 이것은 시골 인심이기 이전에 '배려'였다. 이웃을 향한 배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이웃들이 채소를 갖다 주어서 이젠 우리 집에 채소가 날 때보다 더 많아졌다. 우리 부부가 다 못 먹을 정도로 많이 쌓인 채소를 앞에 놓고 우리는 행복했다.

오늘 마을회관에 밥을 먹으러 간 이유가 있다. 마을 사람들과 친해지고 싶어서기도 하지만 우리 집에 마늘을 갖다 놓으신 분과 채소를 주신 분들께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어서다. 밥상머리에서 나누는 대화야말로 진심 어리고 정감이 있기에.

다른 사람이 개수대를 차지하기 전에 먼저 숟가락을 놓고 얼른 개수대 앞으로 갔다. 스물다섯 명이 먹은 설거지감이 산처럼 쌓였다. 늦게 오신 분들이 하나씩 내 놓는 빈 그릇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집에서부터 작정하고 온 터라 설거지가 많기는 하지만 힘들지는 않았다. 아니, 돌아가면서 한마디씩 하는 '수고한다. 애 쓴다'는 인사말에 신이 나서 더 많이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떤 이는, "오메, 밥 그거 쪼까 먹고 일만 허벌나게 혀부요"라고 해서 모두 웃기도 했다.

설거지를 마치고 맛나게 커피 한 잔까지 마시고 집으로 돌아오려니까 떡 한 봉지를 챙겨 주신다. 자연스럽게 감사 인사도 전했겠다, 수고 했다는 칭찬도 들었겠다, 풀 뽑느라고 손톱 밑에 낀 때도 설거지 덕분에 말끔하게 뺐겠다, 이만하면 살 맛 나는 귀촌이 아닐까!


태그:#귀촌, #마을회관, #이장, #칭찬, #마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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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는 시원한 청량제, 겨울에는 따뜻한 화로가 되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쓴 책 : 김경내 산문집<덧칠하지 말자> 김경내 동시집<난리 날 만하더라고> 김경내 단편 동화집<별이 된 까치밥> e-mail : ok_0926@daum.net 글을 써야 숨을 쉬는 글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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