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자전거마실을 나오는 길
 자전거마실을 나오는 길
ⓒ 최종규

관련사진보기


곁님이 자전거를 타겠다고 한다. 반갑다. 모처럼 넷이 함께 자전거를 달릴 수 있다. 네 사람이 자전거를 달릴 적에는, 곁님이 하얀 자전거롤 혼자 몰고, 나는 두 아이를 이끈다. 네 사람이 자전거를 달리는 만큼 물병을 하나 더 챙긴다.

어디로 갈까. 넷이 함께 어디로 갈까. 우리 네 사람은 자전거로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오늘은 우체국에 먼저 들러야 한다. 곁님 동생한테 옷을 두 상자 부치기로 한다. 우리 집 두 아이가 그동안 입은 옷을 신나게 다시 빨고 며칠 동안 땡볕에 새롭게 말려 놓았다. 곁님 동생이 낳은 아기한테 물려줄 옷을 두 상자 챙겼다. 우리 집 두 아이가 이제 못 입는 조그마한 옷을 다시 빨고 새롭게 말리는 동안 옛 생각이 아련하게 떠올랐다. 고작 예닐곱 해밖에 안 된 옛 생각이지만, 이 조그마한 옷을 꿰고 신나게 뛰고 달리고 웃고 노래하고 놀던 모습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오늘은 네 식구가 함께 자전거마실을 가는 날
 오늘은 네 식구가 함께 자전거마실을 가는 날
ⓒ 최종규

관련사진보기


나무 한 그루 없이 전봇대만 선 시골길
 나무 한 그루 없이 전봇대만 선 시골길
ⓒ 최종규

관련사진보기


옷을 물려주거나 물려받는 일이란 무엇인가. 그저 옷만 건네주거나 건네받지는 않는다고 느낀다. 옷에 얽힌 삶을 물려주고, 옷에 깃든 사랑을 물려주며, 옷에 스민 숱한 놀이와 이야기를 고스란히 물려준다.

작은아이가 앉은 수레에 옷 상자를 둘 끼워넣으니 작은아이 자리가 매우 좁다. 그래도 작은아이는 씩씩하게 "나 괜찮아" 하면서 웃는다. 어쩌면 작은아이는 '좁아진 자리'를 즐기는지 모른다.

자동차가 거의 안 다니는 시골길은 조용하다. 이런 시골길은 자전거를 타기에도 좋고, 걷기에도 좋다. 나무 그늘이 있거나 새가 노래할 수 있다면 훨씬 좋을 텐데, 아직 이 길에 나무를 심으려는 몸짓은 찾아볼 수 없다. 깊은 시골마을까지 수도물을 끌어들이겠다면서 공사를 벌이는 몸짓은 있고, 흙도랑을 시멘트도랑으로 바꾸겠다면서 공사를 벌이는 몸짓은 있다.

그렇지만 시골을 아름답게 가꾸려는 몸짓이나 시골사람이 시골을 더 넉넉하게 누리도록 북돋우려는 몸짓은 드물다. 나라에서는 '논농사를 줄이라'고도 하고 '쌀 수매를 줄이겠다'고도 하지만, 정작 이런 정책을 외치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생각조차 못하지 싶다. 나무가 자라서 그늘이 드리울 만한 자리(논 가장자리)를 나라에서 사들인 뒤, 시골버스가 다니는 시골길을 따라서 차곡차곡 나무를 심어서 가꾸는 정책은 언제쯤 나올 만한지 궁금하다.

여름 막바지 하늘에 하얀 구름이 어립니다.
 여름 막바지 하늘에 하얀 구름이 어립니다.
ⓒ 최종규

관련사진보기


논 가장자리를 2미터쯤 '나무가 자라는 자리'로 삼아서 열 해만 가꾸어도 나무 그늘이 짙푸르게 생긴다. 스무 해를 가꾸면 나무 그늘이 이어지는 길이 무척 아름답다. 서른 해를 보살피면 이제 이 '나무 그늘 길'은 '걷고 싶은 길'이라는 이름을 얻겠지.

시골은 시골 그대로 두어도 아름답지만, 곳곳에 나무노래가 흐르고 나무바람이 퍼질 수 있으면 훨씬 아름답다. 도시에서 사는 사람은 어떤 시골이든 찾아가고 싶을 수 있을 테지만, 한결 아름다운 시골이 있다면 한결 아름다운 시골로 찾아가고 싶으리라. '나무가 아름드리로 자란 마당이 있는 집'하고, '나무가 아름드리로 자라서 길마다 가득한 마을'로 가꾸면, 이러한 삶터는 아이들이 자라기에 아주 좋다.

시골 흙도랑을 시멘트도랑으로 바꾸는 공사는 꾸준히 벌입니다.
 시골 흙도랑을 시멘트도랑으로 바꾸는 공사는 꾸준히 벌입니다.
ⓒ 최종규

관련사진보기


흙도랑이 사라지면 미꾸라지도 가재도 모두 사라지고, 다슬기도 반딧불이도 사라집니다.
 흙도랑이 사라지면 미꾸라지도 가재도 모두 사라지고, 다슬기도 반딧불이도 사라집니다.
ⓒ 최종규

관련사진보기


네 사람이 자전거를 달린다. 네 사람은 느긋하게 자전거를 달린다. 빨리 달려야 할 까닭이 없다. 빨리 달린다고 해서 더 먼 길을 다닐 만하지 않다. 빨리 달리고 싶다면 버스나 자동차를 타면 된다. 자전거를 달리는 까닭은 빨리 더 멀리 가고 싶기 때문이 아니다. 자전거를 달릴 적에는 '철마다 다른 바람'을 온몸으로 맞아들이면서 구슬땀을 흘리는 기쁨을 누린다.

두 다리하고 두 바퀴로 이 땅을 천천히 밟으면서 이웃을 돌아볼 수 있으니 자전거를 달린다. 쨍쨍 내리쬐는 여름볕을 누리면서 시원한 바람을 쐴 수 있으니 자전거를 달린다.

높은 하늘을 등에 이면서 들길을 달립니다.
 높은 하늘을 등에 이면서 들길을 달립니다.
ⓒ 최종규

관련사진보기


낮에도 밤에도 아침에도 저녁에도 개구리 노랫소리가 사라진 논배미에는 왜가리나 해오라기도 내려앉지 않습니다. 잠자리와 나비도 날지 않으니 제비도 먹이를 찾을 수 없겠지요.
 낮에도 밤에도 아침에도 저녁에도 개구리 노랫소리가 사라진 논배미에는 왜가리나 해오라기도 내려앉지 않습니다. 잠자리와 나비도 날지 않으니 제비도 먹이를 찾을 수 없겠지요.
ⓒ 최종규

관련사진보기


제비는 모두 어디로 갔을까. 왜가리나 해오라기는 왜 논에 좀처럼 내려앉지 못할까. 아직 여름인데 왜 논개구리는 울지 않을까. 잠자리와 나비는 이 시골길에서 왜 춤추지 않을까. 수수께끼 아닌 수수께끼를 헤아려 본다. 논마다 농약을 엄청나게 뿌려댔기에 제비도 참새도 멧비둘기도 까치도 까마귀도 그림자조차 안 보인다. 왜가리나 해오라기가 논에 내려앉아 보았자 개구리 그림자를 찾아볼 길이 없다. 농약이 흐르는 논물에서 노래하던 개구리는 배를 까뒤집고 숨을 거둔다. 잠자리와 나비는 농약바람을 맞고 비실거리다가 길바닥에 떨어져 숨을 거둔다.

앞으로 시골이 달라질 수 있을까? 달라져야 한다. 앞으로 시골에서 아이들이 나고 자라도록 하려면 시골이 달라져야 한다. 그냥 시골이 아니라, 농약바람이 부는 시골이 아니라, 싱그러운 바람과 함께 온갖 새가 춤추고 개구리가 노래할 수 있는 시골이어야 한다. 나무가 커다란 가지를 살랑살랑 흔들면서 짙푸른 그늘을 선물할 수 있는 시골이어야 한다.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을 등에 이고 집으로 달린다. 이 들길이 아름다운 들길로 이어질 수 있기를 바라면서 집으로 돌아온다.

천천히 천천히 자전거를 달리면서 여름바람을 쐽니다.
 천천히 천천히 자전거를 달리면서 여름바람을 쐽니다.
ⓒ 최종규

관련사진보기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글쓴이 누리사랑방(http://blog.naver.com/hbooklove)에도 함께 올립니다.



태그:#시골자전거, #자전거여행, #자전거, #시골노래, #삶노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