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협녀, 칼의 기억>에서 홍이 역의 배우 김고은이 10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화 <협녀, 칼의 기억>에서 홍이 역의 배우 김고은이 10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영화 <은교>(2012)로 데뷔한 김고은은 이후 여러 작품(<네버다이버터플라이>(2013), 몬스터(2014), 차이나타운(2015) 등)에 등장했지만, 시간 순서를 따지면 <협녀, 칼의 비밀>(이하 <협녀>)이 두 번째다. 촬영과 개봉이 밀리며 결국 3년이 지난 올해 8월 13일 관객과 만나게 됐지만, 이미 2012년 해당 시나리오를 두고 김고은이 출연을 결정했기 때문이다.

노 소설가의 사랑을 받던 한 소녀(<은교>)와 자신과 어머니를 버린 사내에 대한 복수를 꿈꾸는 검객(<협녀>) 사이의 간극이 커 보였다. 어떤 이유로 칼을 들게 됐을까.

지난 11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고은의 답변은 간결했다.

"한국에도 무협이 나오는구나 싶었다. 신난다!"

"신난다!"... 약 10년간 중국에 살았던 김고은

 영화 <협녀, 칼의 기억>의 한 장면.

영화 <협녀, 칼의 기억>의 한 장면. ⓒ 롯데엔터테인먼트


김고은은 4세부터 14세 때까지 중국 베이징시에서 가족과 함께 살았다. 무협의 본류가 있는 곳인 만큼 <협녀> 역시 그에겐 낯설지 않은 장르물이었고, 오히려 한국 관객들이 이 영화를 생소해 할 수도 있다는 주변 사람들 말에 더 놀라는 눈치였다. 왕가위 감독의 <동사서독>이나 이안 감독의 <와호장룡> 등을 섭렵하며 어린 시절을 보낸 김고은은 "'협'이라는 단어 하나로 설명할 수 있는 간결함이 이 장르의 매력"이라며 제법 명쾌하게 답했다.

다만 단순히 '보는 것'과 '하는 것'의 차이는 컸다. 관객이 아닌 영화의 일부로 녹아들어가야 했을 때 김고은은 자신의 한계를 경험했다. 영화에서 그가 맡은 역할은 고아로 자라 양모 월소(전도연 분) 손에서 자란 홍이다. 사랑하는 여인을 버리고, 나라의 기강을 바로 잡는다는 대의마저 저버리고 욕망을 좇은 아버지 유백(이병헌 분)에 대한 복수를 꿈꾸는 인물이다. 무술과 함께 인물의 심리까지 세밀하게 표현해야 한다는 과제가 김고은에게 주어졌다.

"아무래도 중국 무협 액션과 나의 액션을 비교하게 되더라. 그것 때문에 처음에 힘들었다. 중국 배우들은 어릴 때부터 무술이 생활이 된 사람들이다. 초등학교마다 무술부가 있고, 다양한 대가들이 있다. 눈으로 보던 게 몸으로 표현이 안 돼서 마음이 힘들었는데 무술감독님이 '화려한 검술을 보이려 하지 말고 한 동작을 하더라도 감정이 느껴지게 하자'고 하셨다. 그때부터 연기에 집중하자고 마음먹었다.

근데 체력적으로 힘든 와중에 감정 표현까지 하자니 더 힘들었다. 게다가 전도연 선배랑 같이 대사를 주고받는데 홍이의 감정이 안 올라와서 마음이 너덜너덜 해졌다. 접시 물에 코 박고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전도연 선배가 내 감정이 오를 때까지 많이 기다려주셨다. 검술 대결 장면에서 내 칼에 손을 다치기도 했는데 끝까지 그걸 숨기면서 호흡을 맞춰주셨다. 병헌 선배는 내 감정이 올라왔다는 걸 알고 스태프들을 종용해 '지금 빨리 촬영하라'고 말해주시기도 했다. 여러 모로 현장에서 배려를 많이 받았다."

무협 장르라는 틀 안에서 전도연은 <협녀>를 "지독한 멜로"로 이해했던 반면, 김고은은 "한 아이의 성장기"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캐릭터에 국한할 말이 아닌 김고은에게도 해당하는 말이었다.

촬영 준비와 후반 작업까지 약 1년간 온 몸에 통증을 달고 살았던 김고은은 "아직 인생을 길게 산 건 아니지만 분명 <협녀>는 지금까지 살면서 느껴보지 못했던 최고 수위의 고통을 준 작품"이라면서 "영화 이후 많이 자란 걸 느낀다. 도중에 포기하고 싶기도 했는데 끝까지 해냈고, 그만큼 배우라는 직업을 내가 진짜 좋아한다는 걸 느끼게 해줬다"고 말했다.

"마음이 너덜너덜 해졌다... 접시 물에 코 박고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영화 <협녀, 칼의 기억>에서 홍이 역의 배우 김고은이 10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연기에 강한 애정을 보이는 것과 반대로 실생활에서 김고은은 '좋은 게 좋은 것' 주의다. 스스로도 "공부에도 욕심이 없었고, 뭔가 강하게 원하는 것 없이 사는 성격"이라 할 정도다. 그러면서도 김고은은 "연기만큼은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다"며 제법 다부진 표정을 지었다. 작품 선택 역시 "특별한 목적의식 없이 이야기가 납득이 되고 공감이 가면 한다"는 간단명료한 자기 기준을 따를 뿐이다. 

김고은이 배우를 꿈꾸게 된 두 가지 계기가 있다. 하나가 <밀양>(2007)에 출연했던 전도연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고등학생 때 접했던 <우리읍네>라는 연극이었다. 내로라하는 신인과 새로운 스타들이 명멸하는 중에도 꾸준히 자기 연기를 보이는 전도연의 발자취를 김고은은 따르고 싶어 했다.

그리고 같은 작품에서 만나게 됐다. 이에 김고은은 "운이 너무도 크다는 말 외엔 설명할 수 없다"고 심경을 전했다.

"운이죠. 운. 어린 나이(당시 20세)에 <은교>를 만나 데뷔한 것도 운이고요. 제가 지금보다 다섯 살만 더 많았어 봐요. 전도연 선배의 딸로 나오기 힘들었을 걸요. 의도하지 않았는데 좋은 선배들을 많이 만나왔어요. 영화 <차이나타운>(2015) 때도 김혜수 선배가 흔쾌히 출연하실 줄 몰랐죠. <협녀>에서도 이병헌 선배와 이경영 선배가 합류할지 전혀 몰랐고요. 더 배우고 채워야할 게 많은데 선배들을 보며 힘을 얻을 수 있었어요."

그의 말대로 분명 더 성장해야 하고 채워 넣어야 할 게 많다. 다만 단순히 운이라고 눙칠 수는 없는 무언가가 김고은에겐 있다. 계원예술고등학교 입학시험 때 인순이의 '하늘이여 제발'을 부르다 감정에 복받쳐 완창하지 못했지만 합격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입시 땐 뮤지컬 <아이다> 삽입곡 '마이 스트롱기스트 슈트'(my strongest suit)을 부르다 역시 도중에 끊겼지만 최종 합격했다.

'본능적 연기'라는 수식어를 김고은에게 붙일 수 있을 것 같다. 무협 장르를 두고 "이야기를 질질 끌지 않고 툭 던지는 그런 무심함이 매력"이라고 설명하던 김고은에게 그 문장 그대로 돌려주고 싶다. 이제 20대 중반으로 들어서는 그는 카메라 앞에서 자신을 툭 내던지고 있다.

  영화 <협녀, 칼의 기억>에서 홍이 역의 배우 김고은이 10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협녀> 인터뷰 ①] 전도연 "결국 난 사랑 없인 살 수 없는 사람"

○ 편집ㅣ이현진 기자


김고은 협녀, 칼의 기억 전도연 이경영 이병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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