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아르바이트에서 겪은 감정노동

대학생이 되어서 처음으로 정식 아르바이트를 했던 곳은 영화관이었다. 영화관의 팝콘 판매대에서 1년간 일을 했는데, 수업이 없는 날과 방학 때에 점심시간을 제외하고 한 번에 8시간 정도 일을 하였다. 처음에는 단순하게 용돈을 벌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했던 아르바이트가 나에겐 감정노동을 겪은 첫 직장이 되었다.

일하면서 힘들었던 점은 크게 네 가지였다. 첫 번째는 사장님께서 엄하셔서 작은 실수를 해도 크게 혼이 나는 바람에 일을 하는 내내 긴장 상태에 놓였던 것, 두 번째로 힘든 점은 마감 업무가 잦다는 것이었다. 심야영화가 있는 날에는 퇴근 시간에 대중교통이 끊겨서 담당 직원에게 택시비 명목의 교통비를 지원했다. 하지만 내가 살던 집은 영화관에서 도보로 15분 거리로 매우 가까우니 교통비 지원이 필요 없다고 사장님이 판단했다. 그래서 다른 직원보다 자주 마감 업무를 하고 새벽길을 걸어 퇴근했다.

세 번째는 인근 초중고 학생들이 단체관람을 할 때 종종 미리 알려주지 않아서 힘들었다. 영화 시작 전 10여 분 동안 혼자서 백여 명의 고객을 상대하는 등의 돌발상황이 생겼다. 그리고 네번째로, 최선을 다해서 일하는데도 가끔 표정이나 말투를 지적하는 손님들이 있었다. 그런 고객을 만나는 날에는 일하는 내내 힘이 나질 않았다.

네 가지 중 마지막 이유로 판매 아르바이트에 대해 가장 큰 회의를 느꼈다. 나도 사람인지라 몸 상태가 한결같이 좋을 수는 없다. 또한 근무지 밖에서는 마찬가지로 소비자다. 몸이 힘들어도 서비스나 상품을 정확하고 신속하게 제공하려고 노력하는데, 그런데도 싫은 소리를 들었을 때는 고객의 불평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런 속마음을 드러내면 돌아오는 것은 '남의 돈 벌기가 쉬운 줄 아느냐', '다 그렇게 참고 웃으면서 돈을 번다'는 주변의 대답뿐이었다.

감정노동자가 감정노동자를 만났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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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앨리 러셀 혹실드의 책 <감정 노동> 표지 사진.
ⓒ 이매진	관련사진보기

사회에서 선배들이 경험을 통해 조언을 알려주었다. '우리가 일할 때 감정적으로 자유로울 수 없다'는 말이었다. 누구든지 일을 하면 조직에 속하고 관계를 맺는다. 그 과정에서 조직에 속해있건 아니건 타인을 대할 때는 100% 본심을 드러낼 수는 없다.

상대방의 기분을 고려해서 일정한 외모와 표정을 유지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자신의 감정을 참는다거나 원하는 방향으로 표현하게끔 조절한다. 이 과정에서 감정적 스트레스가 발생한다. 표정 하나하나도 업무가 되며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는 것도 노동이 되는 것이다. 이를 미국의 사회학자 앨리 러셀 혹실드(Alie Russell Hochschild)는 '감정노동'이라고 정의하였다.

나는 첫 아르바이트에서 이러한 감정적 스트레스를 상사와의 관계, 구조상 문제, 그리고 고객과의 관계 등 여러 측면에서 겪었다. 감기에 걸린 날에도 종일 서서 일을 하고, 무거운 상품들을 나르는 등 몸 사리지 않고 잘 버텼는데도 "표정이 왜 그러느냐"는 말을 들은 적도 있다.

그 한마디에 사무치는 감정적 억울함이 피곤한 몸 위에 겹쳐지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그 순간 마음속에는 '다 그렇게 참고 웃으면서 돈을 번다'는 어른들의 충고가 떠올랐다. 당시에는 힘든 것을 숨기지 못한 내가 아직 미숙한 것이라고 자책을 하며 반성을 했다.

'참는 것'을 강요하는 감정노동은 여러 분야의 노동 현장에 만연해 있다. 우리는 서비스업 및 판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감정노동자'라고 부른다. 간호사, 간병인, 고객 서비스직, 사회복지사, 보육교사 등의 직종이 여기 속한다. 이와 같은 직업은 감정의 조절능력이 곧 이익이나 업무수행 능력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해당 직종의 노동자는 표정이나 목소리의 조절능력이 중요하다고 교육 받는다. 진심으로 우러난 행동으로 느껴지게끔 하는 여러 기술을 배우기도 한다. 하지만 회사의 이미지와 소비자가 원하는 감정을 중심으로 한 직원 교육에서 정작 노동자들의 감정은 소외된다.

감정노동자는 감정을 억누르곤 한다. 갈 곳을 잃은 감정을 다른 서비스 및 판매 종사자들에게 풀기도 한다. 감정노동자를 괴롭히는 악성 고객 중 몇몇은 피해자와 마찬가지로 감정노동자일 수 있다. 나의 팝콘 판매 아르바이트 시절 가장 많이 들었던 불만 사항의 서두도 "내가 해봐서 아는데"와 "나도 장사하는데"였다. 감정노동자가 다른 감정노동자의 천적이 되는 순간이었다.

직·간접적인 방법으로 소비자에게 서비스와 재화를 제공하는 회사에서는, 소비자와 이윤중심의 시각에서 서비스 관련 업무 노동자를 바라본다. 그 결과 노동자의 인권보다는 소비자를 향한 조건 없는 친절을 강요한다. 이런 교육방침을 약점 삼아 고객이 악성 민원인으로 돌변하는 순간, '사회'라는 공동체에 금이 가는 악영향도 피할 수 없다.

확대되는 서비스업, 늘어나는 감정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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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2014 서비스 및 판매종사자 변화 추이 (단위 : 천 명) 출처 : 통계청, 경제활동 인구조사 2005~2014 (8월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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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은 지난 10년간 취업자 기준으로 서비스 및 판매 종사자 수의 변화를 나타낸 것이다. 두 직업의 종사자 수 모두 2010년을 기점으로 증가하고 있다. 해당 직업의 종사자 수가 증가한다는 것은 감정노동에 시달리는 노동자들도 늘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서비스업의 확대와 함께 감정 노동은 늘어났지만, 스트레스에 대한 인식은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과중한 감정노동의 결과는 단적으로는 업무 관련 스트레스로 나타난다. 장기적으로는 개인의 영역에 악영향을 미치고, 사회를 이루는 근간인 가족 구성원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동자는 곧 소비자인 동시에 가족의 구성원이기 때문이다.

나도 직접 노동시장에 뛰어들어 보기 전에는 생산자와 소비자, 가계와 기업 등의 연결고리를 체감하지 못했었다. 아르바이트 경험 외에도 여러 일을 해본 이후에야 깨달았다. 노동자의 인권이나 인격이 보호받고 안정감을 느끼는 노동환경이 갖춰져야, 비로소 친절하고 편안한 서비스를 자연스럽게 구현할 수 있다는 것을.

소비의 시대라고 일컬어지는 최근의 환경은 서비스업의 경쟁을 심화시켰다. 노동자들의 감정은 그 사이에서 생산을 위한 도구가 되어버렸다. 근무에 자연스러운 환경보다는 소비자와 이윤에 포인트를 맞춘 교육으로 억압적인 친절을 만들어 냈다.

보호가 취약한 노동환경에서의 감정노동은 스트레스를 쉽게 불러온다. 이는 소비자와 노동자, 노동자와 가정, 가정과 사회의 연결고리가 끊어지지 않는 한 모두에게 큰 상처를 입힐 것이다. 그래서 과도하지 않은 수준의 서비스에 대한 사회적 단위의 이해와 실질적인 개선이 필요하다. 노동자와 서비스를 받는 고객 모두 상호가 편할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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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도하지 않은 수준의 서비스에 대한 사회적 단위의 이해와 실질적인 개선이 필요하다. 노동자와 서비스를 받는 고객 모두 상호가 편할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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