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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 17일 오전 8시 56분]

게스트하우스에서 매주 수요일에 진행하는 오름 투어가 있는 날이다. 오늘은 나와 천안에서 왔다는 그녀, 딱 두 명의 게스트가 사장님을 따라나섰다. 우리 두 명 외에 이곳 게스트하우스에 묵고 있는 사람은 중년의 부부뿐이다. 게스트가 이렇게 적은 이유는 아직 성수기가 시작되지 않아서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메르스로 인해 예약이 줄었기 때문이란다.

차를 타고 가며 사장님은 제주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제주 게스트하우스 사장이 되려면 이 정도쯤은 알고 있어야 한다는 듯 설명이 막힘이 없다.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 4년 전에 제주로 내려와 게스트하우스를 시작했다는 사장님의 설명은 대체로 제주 신화와 제주 역사에 관해서였다. 공부를 아주 많이 한 듯, 우리의 시시콜콜한 질문에도 흔들림 없이 유쾌하게 답을 해주었다.

제주어에 대해서도 이날 많은 것을 알았다. 제주어는 추자도를 제외한 제주도 전역에서 쓰는 이른바 제주도 방언이다. 하지만 우리는 보통 '제주도 방언'이 아닌 '제주어'로 제주 말을 지칭한다. 사장님은 그 이유를 제주어가 하나의 언어로 갖는 의미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제주어가 지금은 거의 사멸 직전에 놓여있단다. 2011년, 유네스코가 지정하는 '소멸위기 언어' 5단계 중 4단계인 '아주 심각한 위기에 처한 언어'에 제주어가 등재되었다고 한다.

제주어에 대한 사장님의 설명은 계속 이어졌다. 그러다가 느닷없이 질문을 하나 던진다.

"제주어가 뒤끝이 짧은 이유가 뭔지 알아요? 예를 들면, '밥 먹었습니까?'가 '밥 먹었수꽈?'인 이유는?"

옆의 그녀가 순식간에 대답한다.

"바람?"
"네, 맞아요. 이따가 그 이유를 확실히 알게 해줄게요."

바람이 만든 제주어

먼저 도착한 곳은 '아부 오름'이었다. 이름이 참 재미있다. 이 이름을 접하고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나는 좀처럼 하지 못하는 그것, 말 그대로 '아부'였다. 오름에 이런 의미의 이름을 붙이진 않았을 것이 분명해 나는 사장님께 왜 이름이 '아부'냐고 물어봤다. 그러자 사장님은 역시나 척하고 대답을 해준다. '아부'는 제주어로 '아버지'란 뜻이란다.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을 거라고 말하며 사장님 먼저 앞장을 섰다. 우리도 그 뒤를 따라 부담 없이 발걸음을 뗐다. 정말 하나도 힘을 들이지 않고 오름 정상에 다다를 수 있었다. 아부 오름 정상에서 본 제주의 모습은 그야말로 절경이었다.

아부 오름 분화구와 그 뒤의 오름들.
 아부 오름 분화구와 그 뒤의 오름들.
ⓒ 황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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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엔 한 눈에 담을 수도 없을 만큼 거대한 제주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었다. 아부 오름 자체도 매력적이었지만 아부 오름을 사방에서 감싸고 있는 광활한 제주 모습은 할 말을 잃게 만들었다. 푸른 초원 위에 띄엄띄엄 솟아있는 오름들의 모습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멀리서 보니 오름은 마치 거인의 무덤처럼 보였다. 끝이 보이지 않는 지평선까지 무덤들은 죽 펼쳐져 있었다.

나는 이번이 여섯 번째 제주도 여행이다. 고등학교 수학여행에서 시작해 친구들, 가족들과 함께 제주를 여러 번 찾았었다. 그런데 오름 정상에 올라 절경을 바라보고 있자니, 나는 이제껏 내가 제주를 봤던 것이 맞았던가 싶었다. 이 모습을 보지 않고 제주를 봤다고 할 수 있을까. 그간 나는 너무 제주 바다에만 푹 빠져 있었던 건 아닐까. 제주의 속살은 바로 여기에 이렇게 있었는데.

아부 오름 분화구, 핸드폰 카메라로는 전체 모습을 담을 수 없었다.
 아부 오름 분화구, 핸드폰 카메라로는 전체 모습을 담을 수 없었다.
ⓒ 황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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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끝으로 향했던 시선을 다시 눈앞으로 가지고 왔다. 그리곤 아부 오름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누가 굳이 말해 주지 않아도 나는 아부 오름 중앙의 움푹 팬 공간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분화구였다. 입이 떡 벌어질 만큼 깊고 넓은 분화구.

오름 분화구의 모습은 생경했다. 기생화산의 분화구라면 왠지 거친 바위가 죽 늘어서 있어야 할 것 같았지만, 아부 오름의 분화구는 마치 숲 속을 연상시켰다. 맨 중앙에 두꺼운 반지 모양으로 나무들이 빽빽이 세워져 있는 모습에 특히 눈이 갔다. 나는 사장님에게 혹시 분화구 아래로 내려갈 수 있는지 물었다. 사장님은 내려갈 수는 있지만 자기도 내려가 본 적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내게 내려가 보려느냐고 묻는다. 그 제안에 순간 '땡겼다.'

두꺼운 반지 모양의 나무를 뚫고 들어가 분화구 속 정중앙에 잠시라도 앉아있고 싶었다. 그럼, 어떤 기분이 들까. 상상도 할 수 없는 기분이 들 것 같았다. 하지만 흔들리던 것도 잠시, 나는 금세 평소의 소심한 나로 되돌아왔다. 저기까지 가려면 어떻게 내려가야 하고, 또 위험하진 않을지 걱정이 됐다. 소심해진 마음이 얼굴에 드러났던 걸까. 나를 보고 있던 사장님은 내겐 묻지도 않고 두말도 없이 다시 앞장을 서기 시작했다.

부드러운 곡선이 유독 아름다운 용눈이 오름. 용이 누워 있는 모습 같기도 하다.
 부드러운 곡선이 유독 아름다운 용눈이 오름. 용이 누워 있는 모습 같기도 하다.
ⓒ 황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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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눈이 오름을 사랑했던 작가, 김영갑

두 번째로 도착한 곳은 용눈이 오름이었다. 마치 용이 누워있는 모습과 같다고 해서 용눈이라 이름 붙여졌다고 한다. 사장님은 오름을 오르며 혹시 김영갑 사진작가를 아느냐고 물었다. 우리 둘은 모른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김영갑 작가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김영갑 작가는 제주에서 태어나진 않았지만 제주에서 죽었다고 했다. 궁핍한 살림살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제주 방방곡곡의 모습을 사진에 담아 제주도민도 모르던 제주의 풍경을 알린 작가였단다. 그 김영갑 작가가 유독 좋아한 오름이 바로 이 용눈이 오름이었다는 것이다. 작가는 용눈이 오름을 오르고 또 올랐단다. 그럴 때마다 매번 또다시 오름의 매력에 빠져들었다고 한다.

제주에서 돌아온 뒤 나는 김영갑 작가에 대해 더 알고 싶었다. 그래서 그의 책 <그 섬에 내가 있었네>를 읽었다. 작가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선이 부드럽고 볼륨이 풍만한 오름들은 늘 나를 유혹한다. 유혹에 빠진 나는 이곳을 떠날 수 없다. 달 밝은 밤에도, 폭설이 내려도, 초원으로 오름으로 내달린다. 그럴 때면 나는 오르가슴을 느낀다. 행복감에 가쁜 숨을 몰아쉬며 살아 있음에 감사한다. -<그 섬에 내가 있었네> 중에서

작가는 오르가슴이라는 격렬한 찬사를 오름에 보냈다. 오름의 푸른 아름다움은 작가에게 환희 그 이상으로 다가간 듯했다. 작가는 오름에서 우리가 보지 못한 그 무엇을 보았던 것이 분명했다. 그건 어쩌면 생의 이유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오름이 보여주는 생의 이유는 작가에게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알려줬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작가는 이렇게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 절정의 기쁨을 느낄 때마다 나는 다짐한다. 죽는 날까지 자연을 떠돌아다니리라. 홀로 초원에 묻혀 살아가리라. 끼닛거리가 없으면 없는 대로, 외로우면 외로운 대로 살아가리라. 모두를 망각하고 초원으로 바다로 흘러가리라. -<그 섬에 내가 있었네> 중에서

완만한 경사의 오름을 15분 정도 오르니 어느새 정상에 섰다. 그러자 거센 바람이 사정없이 우리에게 인사를 건넨다. 제주에 온 것을 환영한다고. 오름에 오른 것을 환영한다고. 환영 인사에 맞춰 우리도 서로에게 우리의 기분을 털어놓는다. '너무 좋다!', '바람이 너무 세!', '여기 진짜 환상이다!'

하지만 우리는 상대의 말을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 바람이 그만큼 셌다. 다만 우리는 서로의 표정을 보며 내가 느끼고 있는 것을 상대방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을 뿐이다.

그렇게 계속 오름과 바람을 느끼고 있는데 사장님이 귓가로 다가와 소리소리를 지른다. 대충,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 제주어가 뒤끝이 짧은 이유를 이제 알겠느냐는 말일 테지. 바람이 너무 세서 말을 길게 할 수가 없어 짧아졌다는 것일 테지. 그래서 '밥 먹었습니까?'가 '밥 먹었수꽈?'가 되었다는 것일 테지. 하지만 난 이날 오름 위에서만큼은 이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바람의 세기 때문에 제주어가 짧아진 거라면 제주어는 아예 사라졌어야 할 것 같았다. 난 이날 '밥' 소리조차도 들을 수 없었으니까.

용눈이 오름 분화구
 용눈이 오름 분화구
ⓒ 황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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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눈이 오름의 분화구는 아부 오름과는 달리 쉽게 들어갈 수 있을 듯 보였다. 우선 정상을 한 바퀴 돈 후 한번 내려가 보기로 했다.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들은 푸르고 푸르렀다. 바람에 따라 푸름은 휘어지고 또 휘어졌다. 걷고 있으니 반바지를 입은 다리에 푸름이 찰싹찰싹 말을 걸어 오고 있는 듯했다. 우리는 이렇게 계속 살아가는 중이라고. 어쩌면 버티는 중인지도 모른다고.

용눈이 오름 분화구 속에서
 용눈이 오름 분화구 속에서
ⓒ 황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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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름에서 들은 생의 소리  

휘어지고 휘어지며, 버티고 버티며. 푸른 모든 것들은 용눈이 오름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도 거친 생의 현장으로 이끄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 속으로 깊이 들어가 푸름이 만드는 생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았다. 생의 소리는, 바람 소리와 같았다. 휘이이익. 휘이이익. 모든 것을 압도하는 소리. 나는 그 속에서 바람이 분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생도, 그런 것이리라. 살아있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는 것이리라.

한껏 분위기에 취해 있는데 그만 내려갈 시간이 됐다. 나와 천안에서 온 그녀는 아쉬운 표정을 지었지만, 그래도 무언가 가득 담고 가는 듯한 기분이 들어 마음만은 뿌듯했다. 이날 이후로 제주 여행 내내 용눈이 오름은 나와 함께 했다. 언제든 생각이 날 때면 눈을 감고 그 날의 바람과 푸름을 생각했다.

나는 분명 언젠가 다시 한 번 용눈이 오름을 찾아갈 것이다. 그럴 수 있는 이유는, 오름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언제나 마음이 내키면 다시 찾아갈 수 있다는 것. 사람에겐 이런 식으로 다가갈 수 없다. 그래서 우리에겐 자연이 필요한 건지도 모른다. 자연은 언제나 우리를 받아주기 때문이다. 김영갑 작가도 그래서 자연에서 살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마음이 평온할 때면 나는 그 들판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 지냅니다.
마음이 불편해져야 그 들판을 생각합니다.
그래도 들판은 즐거운 축제의 무대를 어김없이 펼쳐줍니다.
들판이 펼쳐놓는 축제의 무대를 즐기다 보면 다시 기운이 납니다.
그런 들판으로부터 받기만 할 뿐, 나는 단 한 번도
되돌려주지 않습니다. 들판은 그런 나를 나무라지 않습니다.
대신 언제나 나에게 세상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려줍니다.
나의 모습은 들판으로 나오기 전까지와는 달리 달라져 있습니다.
들판을 만나고 오는 날에는 잠자리가 편안합니다.
-<그 섬에 내가 있었네> 중에서

덧붙이는 글 | 2015년 5월 26일부터 6월 24일까지, 30일간의 제주 여행 연재글입니다.

개인블로그에도 중복게재합니다.



태그:#제주여행, #아부 오름, #용눈이 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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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처음 킥복싱>, <매일 읽겠습니다>를 썼습니다. www.instagram.com/cliann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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