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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어'와 '동물을 위한 행동'은 지난 8월 8일 광화문에서 북극곰 옷을 입고 통키의 고통을 체험하는 행사를 개최했다. 행사에 참여한 시민들에게는 폴라로이드로 찍은 기념사진이 선물로 증정됐다.
▲ "통키의 눈물을 닦아주세요" '케어'와 '동물을 위한 행동'은 지난 8월 8일 광화문에서 북극곰 옷을 입고 통키의 고통을 체험하는 행사를 개최했다. 행사에 참여한 시민들에게는 폴라로이드로 찍은 기념사진이 선물로 증정됐다.
ⓒ 조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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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보강 : 11일 오후 6시 8분]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한여름 오후, 북극곰을 연상시키는 두꺼운 털옷을 입고 서울 광화문 한복판에 나타난 사람이 있다. 행인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 위해 북극곰으로 분장하고 비 오듯 땀을 흘리며 돌아다닌 이런 행동이, 만약 본인이 자청한 것이 아니라면 '가혹하다'고 말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날씨는 무더웠다.

자신을 북극곰으로서 사람들에게 전시한 이날의 퍼포먼스는, 동물원에서 전시되느라 무더위를 견디는 우리나라 북극곰들의 고통을 알리기 위한 것이었다. 여름철 고통받는 동물은 보신탕으로 죽는 개들만이 아니다. 말복을 나흘 앞둔 지난 8일 오후 2시, 동물보호시민단체 '케어'와 '동물을 위한 행동'은 광화문에서 에버랜드 동물원의 북극곰 '통키'의 고통을 체험하는 행사를 했다.

생태에 맞지 않는 공간에 가두는 것 자체가 '학대'

에버랜드의 북극곰 '통키'
 에버랜드의 북극곰 '통키'
ⓒ 동물을 위한 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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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곰은 말 그대로 '북극에 사는 곰'이다. 북극곰은 추운 지방에서 살기에 적합한 신체 구조로 되어 있으며, 더위에 약한 동물이다. 북극곰은 기온이 영상 5도 이상이 되면 몸 곳곳에 녹조가 생겨 '녹색 곰'으로 변하는 이상 현상을 보인다. 여름이면 30도를 훌쩍 웃도는 한국의 기후가, 북극곰에게는 지나치게 더울 수밖에 없다.

또한, 북극곰은 지능이 높고, 지구 상에서 가장 광대한 영역을 돌아다니는 동물로 알려졌다. 따라서 비좁은 동물원에 갇혀 무료한 삶을 살면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된다. 평생 좁은 방에 갇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사는 것이 사람에게 상상하기 힘든 고통인 것과 마찬가지다.

지난 7월, 수족관에 갇혀 있던 돌고래 '복순이'와 '태산이'가 바다로 돌아가면서 우리나라에서 자연으로 복귀한 돌고래는 모두 다섯 마리가 되었다. 절대 쉽지 않은 작업이었음에도 돌고래들을 야생으로 돌려보낸 배경에는 '생태에 맞지 않는 공간에 가두는 것 자체가 동물에 대한 학대'라는 인식이 있었다.

'동물을 위한 행동'의 전채은 대표는 북극곰을 동물원 사육이 어려운 대표적인 동물 중 하나로 꼽는다. 시설이 아무리 좋아도, 동물원에서 북극곰의 자연스러운 생태를 재현하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부적합한 사육환경은 동물의 복지 문제를 야기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동물원 북극곰들은 머리를 흔들거나 동일한 구간을 왔다 갔다 하는 등 아무 목적도 없이 틀에 박힌 동작을 반복하는 '정형 행동'을 보인다. 정형 행동은 단조로운 환경에 가둬진 동물에게서 나타나는 정신질환의 일종으로, 원인으로는 무료함과 외로움, 스트레스, 자포자기 등이 있다.

그동안 '케어'와 '동물을 위한 행동'은 북극곰 통키에게 더 나은 환경을 제공할 것을 촉구하는 캠페인을 전개해왔다. 해외 동물보호단체들도 이러한 움직임에 동참했다. 지난 5월과 6월, 동물원 동물복지를 전문으로 다루는 본프리 재단(Born Free Foundation), 야생동물 보호기관인 주체크 캐나다(Zoocheck Canada), 전 세계 최대 동물보호단체인 페타(PETA)의 아시아 지부는 통키가 사는 환경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는 공식 서한을 보내왔다.

서한에 따르면, 동물원이 평균적으로 북극곰에게 제공하는 생활공간의 면적은 북극곰이 야생에서 돌아다니는 최소면적의 백만 분의 일에 지나지 않는다. 그 결과 동물원 북극곰들은 감금되어 사는 다른 동물들보다 훨씬 극심한 신체적·정신적 괴로움에 시달린다. 이런 점에서 통키의 집은 북극곰이 살기에 너무나 비좁은 공간이다.

서한에서는 통키의 집이 지닌 구조적인 문제도 지적됐다. 북극곰은 광활하고 탁 트인 극지방에서 진화한 동물이기 때문에, 통키의 집처럼 벽에 둘러싸여 시야가 가로막힌 공간은 적합하지 않다. 또한, 관람객이 위에서 통키를 내려다보는 현재의 '구덩이'식 구조는 시대에 뒤처진 것으로서 스트레스 요인이 될 수 있다.

게다가 통키가 사는 공간에는 온도를 낮춰주는 냉방장치, 야생의 북극곰이 발을 딛고 살아가는 지표면을 닮은 재질의 바닥, 무료함을 달래주는 다채로운 환경을 비롯하여 북극곰에게 필요한 요건들이 빠졌다고 서한에 언급됐다.

이 단체들은 일정한 구간을 반복적으로 왔다 갔다 하는 통키의 정형화된 행동을 부적합한 환경에 기인한 이상 행동으로 보면서, 북극곰은 동물원에서 사라져야 하는 종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그리고 에버랜드에게 통키의 복지를 개선하는 방안을 이른 시일 내에 마련할 것, 그리고 전시되는 북극곰의 숫자를 더는 늘리지 말 것을 여름 내내 권고했다.

이에 대한 응답으로 에버랜드는 통키의 집에 에어컨을 설치하고, 수질개선을 위해 실외 전시장의 배관을 바꾸고,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한 행동 풍부화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통키가 사는 환경을 근본적으로 개선하려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 8일, 통키를 위해 다시 한 번 거리로 나선 이유이다.

에버랜드가 진정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기업이라면

'동물을 위한 행동'의 전채은 대표가 지난 6월 25일 광화문에서 통키의 사육환경 개선과 동물원법 국회통과를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털옷 곳곳에 물들어 있는 녹색은 북극곰의 몸에 생긴 녹조를 의미한다.
 '동물을 위한 행동'의 전채은 대표가 지난 6월 25일 광화문에서 통키의 사육환경 개선과 동물원법 국회통과를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털옷 곳곳에 물들어 있는 녹색은 북극곰의 몸에 생긴 녹조를 의미한다.
ⓒ 조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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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채은 대표는 "통키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지금보다 넓은 생활공간"이라고 강조하면서, 북극곰사 옆에 있는 동물공연 시설을 없애고 남는 공간으로 통키의 집을 확장하는 것을 제안했다. 동물공연은 동물복지에 반하는 것으로 인식되어 전 세계적으로 퇴출 당하는 추세다. 에버랜드가 진정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기업이라면, 동물공연을 그만두고 동물의 복지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점에서 내 생각도 전채은 대표와 다르지 않다.

영장류학자이자 생명 다양성 재단의 사무국장인 김산하 박사는 <경향신문>에 실린 기사에서 동물원 동물을 기존과 전혀 다른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노동계층"으로 분류했다. 그는 동물원이라는 일터에서 죽지 않고 살아있는 상태로 전시되어야만 하는 동물들의 업무에 "존재노동"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같은 기사에서 옮긴 아래의 글은 우리가 동물원이라는 공간을 어떤 눈으로 바라봐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의 실마리를 제공하리라 생각한다.

"동물이 가두어져 산다는 것은, 동물이 자연에서 절대로 만나지 않고, 진화적으로 전혀 준비가 안 되어 있는 그런 종류의 고통이다. 잡아먹히면서 몸이 뜯기는 고통, 산불이나 용암에 몸이 타는 고통, 질병의 고통, 물에 빠지거나 질식하는 고통, 모두 자연계에 원래부터 존재하며, 지구 역사상 모든 동물이 겪어왔다.

그러나 한 공간에 가두어진 채 먹이는 계속 주어져 죽지 못하게 만드는 고통, 이것은 전혀 새로운 것이다. 그래서 동물을 가둬 키우는 모든 행위는 실로 미안한 일이다. 그러니 이왕 키울 거면 잘해줘야 한다. 이것은 우리의 당연한 사명이요 의무라고, 야생학교는 명심한다."  - <경향신문> "[김산하의 야생학교] 동물 노동자의 '인권'" 중에서

지난 10일과 11일, 에버랜드 측은 "통키는 국내(마산)에서 태어난 개체"라며 "국내에서 20년 동안 생활해 왔기 때문에 국내 기후에 익숙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또한 "현재 동굴형태로 되어 있는 (통키의) 집은 냉방시설을 갖춰 18도의 온도를 유지하고 있다"며, 이는 "실제 서식지(캐나다 마니토바)의 여름 평균 기온이 섭씨 20도까지 올라가는 것을 감안하면 오히려 낮은 수준"이라고 반박했다.

에버랜드 관계자는 이어 "사육시설의 구조는 외부와 집 실내를 원하는 대로 드나들 수 있는 구조"라면서 "(통키는 활동시간 중) 평균 30% 정도 집 내부에서, 70%는 외부에 스스로 나와서 생활하고 있다"고 전했다. 녹조 논란과 관련해서도 "온도가 상승하면 풀 벽면에 물이끼가 끼는 현상은 현재 수류조절로 대부분이 해결된 상황"이라며 "수질검사 결과도 상당히 양호"하다고 주장했다.

동물단체의 시설 개선 요구에 대해서 이 관계자는 "북극곰의 사육시설을 대대적으로 리뉴얼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소요되는데, 현재 통키의 나이가 많아 고민이 크다"며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면서 행동 풍부화 프로그램도 더욱 확대해, (통키의) 복지 향상을 위해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이라고 밝혔다.

에버랜드가 모쪼록 우리나라 최고의 동물원이라는 명성에 걸맞은 조치를 취하기를 바란다.

☞ 북극곰 '통키'에 대한 '주체크 캐나다' 동물원 전문가의 공식서한 전문
☞ 북극곰 '통키'에 대한 '본프리 재단' 동물원 전문가의 공식서한 전문
☞ 북극곰 '통키'에 대한 '페타' 아시아의 공식 서한 전문

○ 편집ㅣ곽우신 기자



태그:#북극곰, #에버랜드, #동물복지, #여름, #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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