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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세월호 유가족입니다. 맹세컨대 저는 유가족이 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유가족이 되어야 할 이유도 없었습니다.

나의 죄가 있었다면 이 나라 같지도 않은 나라, 정부 같지도 않은 정부 밑에서 아이를 낳고 키웠던 것이고, 단원고등학교에서 제시한 수학여행 방법(세월호를 타고 제주도로 갔다가 비행기를 타고 귀가하는 방법)에 동의를 했었던 것이고, 수학 여행비를 지급했던 것이고, 아이의 손에 용돈을 쥐어 주며, 여행 가방을 들려주며, 수학여행을 조심해서 잘 갔다 오라고,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고 오라고 배웅을 했던 것밖에는 없습니다.

나는 초등학교 시절, 운동회 등 학교 중요행사가 끝나면 선생님 및 교우들과 함께 "대한민국 만세" 삼창을 하고 행사를 끝냈던 세대입니다. 군대에서 2년 3개월 동안 하루에도 수백 번씩 "충성"을 외쳤던 사람입니다. 아직까지 세금을 한 푼도 체납하지 않았고, 어떠한 범죄에도 연루되지 않은, 그 누구보다도 선량하게 살아왔던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정부 조직의 잘못된 시스템과 부실한 구조로 인하여 어쩔 수 없이 세월호 유가족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억울하고 원통하게, 저 세상의 별이 되어 버린 아들의 사인을 밝히기 위해 생업을 포기하고, 진상규명에 목숨을 걸고 있는 한심하고 불쌍한 애비가 되었습니다. 이 불쌍한 애비가, 아이의 죽음과 관련하여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도 하지 못하는 한심한 국민이 감히 대한민국 대통령께 세월호 사고와 관련하여 몇 가지 묻습니다.

세월호에 대한 반성은 모두 진심이었습니까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4월 17일 오후 전남 진도군 세월호 침몰 사고 피해자 가족들이 모여 있는 진도체육관을 찾아 피해 가족들의 요구사항에 답변을 마치고 체육관을 빠져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4월 17일 오후 전남 진도군 세월호 침몰 사고 피해자 가족들이 모여 있는 진도체육관을 찾아 피해 가족들의 요구사항에 답변을 마치고 체육관을 빠져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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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2014년 4월 17일 진도체육관에서 당신을 처음 봤습니다. 그 당시에는 적어도 이 나라 국정을 책임진 대통령이 이 사건을 교통정리 한다면 분명히 뭔가가 달라질 것이라 솔직히 많이 기대했습니다.

당신은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에 대하여 철저한 조사와 원인 규명으로 책임질 사람은 엄벌토록 할 것이며, 이 자리에서 한 약속이 지켜지지 않으면 여기 있는 사람들 다 물러나야 한다"라고 말했지요. 하지만 이 약속이 거짓으로 판명되는 데에는 단 하루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구조를 책임졌던 해경들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부모들의 그리고 국민들의 가슴은 새까맣게 타들어 가고 있는데 그들은 느긋했습니다.

헬기로 이동시킬 수 있었던 컴프레셔를 육상으로, 그것도 그 복잡한 팽목항 도로를 따라서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이동시켰습니다. 잠수사 잠수 시 탁한 시야와 강한 조류를 핑계 대며 어떻게든 구조를 지연시켰습니다. 목숨 걸고 잠수하겠다던 민간 잠수사의 잠수를 방해했습니다.

여전히 이른 아침이면 이런 뉴스를 볼 수 있었습니다. "잠수사 OOO명 투입, 헬기 OO기, 함정 OOO척, 조명탄 OOO발..." 당신의 약속사항 중 이행 되었다고 우리 유가족이 체감한 것은 "진도체육관에 설치된 대형 TV화면 2대" 이것이 전부였습니다. 우리는 분노했습니다. 당신의 진심을 알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청와대를 향하여 밤을 새워 걷고 또 걸었던 것입니다.

당시 "국가는, 대한민국의 해경은 적어도 골든타임 중에는 단 한 명의 마지막 죽음을 확인하는 순간까지, 생존자 발견 가능성에 대한 희망을 절대로 버리지는 않을 것이다. 당연히 생존자가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생존자 구출에 모든 힘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전복된 여객선 내에 생존자가 존재한 사례는 얼마 전 중국에서 발생한 여객선 침몰사고에서, 그리고 그 이전에도 몇 건의 사례가 있었으므로 분명히 과한 욕심은 아니며, 적어도 해경이 그리고 국가가 그 가능성을 배제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 할 것이다)"라고 나는 기대했습니다.

비록 전날 전원구조라는 잘못된 보도를 하긴 했지만,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구조는 못했지만, 최소 대한민국이 그 정도 가치관이 형성되어 있는 나라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지나치게 순진한 생각이었습니다. 도대체 움직일 줄 모르는 해경과 오로지 침묵만 할 줄 아는 대통령... 이것이 이 사건을 전부 경험한 내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이었습니다.

지난해 5월 16일, 19일 약속 아직도 유효합니까?

당신은 2014년 5월 16일 이른 새벽에 유가족 대표들에게 연락하여 긴급 면담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당시는 세월호 참사와 관련하여 부실구조, 무능한 구조, 사전 계획한 조문 쇼 진행 등으로 인하여, 당신의 입장에서 본다면 국민감정이 최악이던 시기였습니다. 그리고 6월 4일 지방 자치단체장 선거를 앞둔 시점이기도 했습니다. 여당의 수도권 후보들의 전패가 예상되는 최악의 위기 상황이었습니다. 분위기 전환용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신은 우리에게 이렇게 굳게 약속을 했습니다.

"특별법은 만들어야 하고, 특검도 해야 한다. 무엇보다 진상 규명에 유족 여러분의 여한이 없도록 하는 것, 거기에서부터 깊은 상처가 치유되기 시작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갖고 있다... 각계 의견을 폭넓게 수렴했지만, (참사 현장을) 오랫동안 지켜보신 유가족 여러분의 의견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철저한 진상규명과 특별법 제정을 약속하고 언론에 홍보했습니다. 심지어 눈물을 흘리는 유가족에게 "언제든 다시 만나겠다"는 약속까지 하면서, 그들의 손을 잡고 어깨를 끌어안으면서 위로의 말을 건네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정확히 3일 뒤 대국민 담화문을 통해 "이번 사고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최종 책임은 대통령인 저에게 있습니다, 그 고귀한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대한민국이 다시 태어나는 계기로 반드시 만들겠습니다. (중략) 이번 사고와 관련해서는 국가가 먼저 피해자들에게 신속하게 보상을 하고, 사고 책임자에게 구상권을 행사하는 특별법안을 정부입법으로 즉각 국회에 제출하도록 하겠습니다"라고 국민과 유가족을 상대로 발표를 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5월 16일 오후 세월호 참사 유가족 대표들을 청와대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5월 16일 오후 세월호 참사 유가족 대표들을 청와대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다.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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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1년이 훨씬 더 지났습니다. 위 약속 중에서 지켜진 것이 과연 몇 가지나 될까요? 정부 입법이 있었습니까? 정부 입법은 3권 분립에 위배된다며 입장을 바꾸었습니다. 대통령이 노골적으로 제정을 방해한 특별법과 시행령은 누더기 입법이 되어 버렸습니다. 세월호특별조사위원회(아래 특조위)에는 함량 미달의, 일베의 게시물을 퍼다 나른 사람이 위원으로 추천됐고, 예산안을 볼모로 지금도 출범을 강력하게 방해하고 있습니다.

다시 만나겠다는 약속은 헌신짝처럼 버렸고, 국회에서 얼굴을 맞대었는데도, 애써 외면했습니다. 또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열일곱 청춘들의, 아직 피워보지도 못한 꽃봉오리들의 희생에 대한 민사 배상은 어떻게 처리했습니까? 국민들에게 부모들이 마치 돈방석에라도 앉은 것처럼, 마치 돈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홍보하여, 많은 국민들로부터 부모들을 이간시켜 부모들의 가슴을 더욱 더 아프게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반성입니까? "이번 사고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최종 책임을 지는 대통령의 모습"이 분명히 맞습니까? 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적어도 대한민국 대통령은 건설적이고 창조적인 새로운 아이템을 창출해 내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최소 자신의 발언에 대한 책임은 반드시 져야 한다고... 선거 공약도 아닌, 본인의 대통령직 업무 수행 중에 행한 발언에 대해서도 책임지지 않는다면 누가 이 나라 이 정부를 믿겠느냐고, 한 가문의 종손도 시골 작은 마을의 촌장도 자신이 약속한 말에 대해서 책임지지 않으면 가문과 촌의 구성원으로부터 불신을 받게 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 아니냐고.

당신은 검찰의 수사결과와 감사원의 감사결과를 믿지 않으십니까? 검찰의 수사결과를 감사원의 감사 결과를 보면 특별한 내용이 없는데, 왜 그렇게 과민하게 반응하시나요. 앞서 밝혔듯 철저한 사고원인 규명과 책임자 처벌 등은 4월 17일 진도 체육관을 방문하여, 그리고 5월 16일 유가족을 청와대에 초청하여 당신 스스로 한 약속입니다.

위 두 기관의 수사결과와 감사결과를 살펴보면, 대통령 당신이 연루되어 있다는 대목은 단 한 곳도(언론에서 이야기하는 '사라진 7시간' 제외) 찾을 수 없는데 (시행령 개정과 관련하여) 여당 원내대표를 도려내면서까지 특조위의 활동을 방해하여 얻을 수 있는 이익이 과연 무엇인가요.

잘못된 구조 시스템을 개혁하고 부실구조에 대한 책임자를 처벌하고, 명쾌하게 사고원인을 규명함과 동시에 안전한 사회를 건설하기만 한다면, 이 모두가 당신의 업적으로 기록되어 오히려 지지율은 급상승할 것이고, 이 나라 역사에 가장 훌륭한 대통령으로 기록될 것이 분명한데도 말입니다.

세월호 유가족은 이 나라 국민이 맞습니까?

세월호 광화문 농성 1년이 되는 지난 7월 11일 오후 서울 광화문 세월호 농성장에서 '광화문 세월호광장 1년, 다시만나는 약속들' 집회가 열리고 있다.
 세월호 광화문 농성 1년이 되는 지난 7월 11일 오후 서울 광화문 세월호 농성장에서 '광화문 세월호광장 1년, 다시만나는 약속들' 집회가 열리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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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명랑했던 아이가, 아주 건강했던 아이가 수학여행을 간다고 웃으며 집을 나갔다가 죽어서 돌아왔습니다. 아직 돌아오지 못한 가족들도 있습니다. 국가는 사고의 원인을 조사했고 그 결과를 발표했지만 객관성을 상실했습니다.

진정 이 나라가 정상적이고 객관적인 철학과 도덕을 보유한 국가였다면, 수사 지휘부를 교체해서라도 국민과 유가족들로부터 신뢰받는 수사 결과를 발표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곳곳에 의혹과 의문이 남아 있고 그것을 믿지 못하였기에 특별법을 제정하고 '특조위'를 설립하여 진상 규명을 하려 했던 것입니다.

제대로 된 국정 최고 책임자라면, 이 사태에 대하여 오히려 부끄러워해야 정상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그렇지 못합니다. 철저한 진상규명을 소망하고, 사고원인을 밝히자는 특별법을 제정하고,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것이, 그리고 안전한 사회를 만들자는 외침들이 대통령으로부터 외면당하고 많은 국민들로부터 비난 받아도 싼 범죄행위입니까?

하루아침에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를 잃었습니다. 나의 생명과 동격인 존재를 잃었습니다. 삶의 희망이자, 기둥이고 동지였던, 아니 앞으로 내가 살아야 할 삶의 전부를 잃었습니다. 이별의 말도 못 건넸습니다. 왜 죽었는지 이유도 모릅니다. 가해자도 모릅니다. 그런데 모든 것을 가슴에 묻고 가만히 있으라고 합니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답니다.

자식 덕분에 평생 만져보지 못할 돈을 만져 보았으면 성당에 가서 아이들의 명복이나 조용히 빌라고 합니다. 당신도 여기에 동의하시나요? 당신의 가족이 우리와 똑같은 상황에 빠졌다면 과연 가슴에 묻고 성당에 가서 조용히 명복이나 빌 수 있을까요? 제발 "예"라고 답해 주세요. 당신이 할 수 있다면 나도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당신께 이렇게 묻습니다. 이 사건은 죽은 사람과 그 가족들만의 잘못이며, 그들이 평생 지고가야 할 업보 맞습니까? 우리는 진정한 대한민국 국민이 맞습니까? 당신은 취임식에서 선서한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맞습니까?

○ 편집ㅣ최유진 기자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세월호 사고로 목숨을 잃은 고 박수현군의 아버지입니다.



태그:#세월호, #조사특위,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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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평범한 회사원 입니다. 생각이 뚜렷하고요. 무척 객관적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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