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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은 강정마을 주민이 제주해군기지반대투쟁을 벌인 지 3000일째 되는 날이다. <오마이뉴스>는 강정마을 해군기지반대투쟁 3000일째와 함께 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차례로 싣는다. [편집자말]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투쟁 3000일째인 8월 3일, 문정현 신부는 제주해군기지 앞에서 변함없이 '평화미사'를 올렸다.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투쟁 3000일째인 8월 3일, 문정현 신부는 제주해군기지 앞에서 변함없이 '평화미사'를 올렸다.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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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마을은 대추리와 하나도 틀리지 않아. 아픈 곳이니까 온 거야. 몸이라도 함께 있어야지. 그게 우리의 신분이야. 가난하고 고통받고 빼앗기고 있는 사람들 곁에 있는 것…. 이게 성직자의 본분이야. 하늘이 주신 신분을 버리고 어디로 가겠어?"

지난 2011년 7월, 강정마을 중덕해안에서 만난 문정현 신부는 이렇게 말했었다. "몸이라도 함께 있겠다"던 그는 2015년 8월 지금까지 강정마을에 있다. 햇수로 5년 동안, 날짜로 약 1500일이 넘는 풍파의 세월을 강정마을 주민들과 함께 넘고 있는 것이다. 7일 오후 문정현 신부에게 강정마을 주민이 된 지 1500일이 넘는 소회를 물었다.

"내가 강정마을에 온 지 1500일이 넘었다고? 그렇게 오래됐다고 생각 못하고 살았는데... 그렇다고 해서 여길 떠날 수도 없는 일이잖아. 거짓과 사기, 폭력이 난무하는데 우리가 떠나버리면 그걸 용인하는 꼴이 되잖아. 강정마을에 처음 왔을 때 그 마음 그대로지, 거짓을 물리치는 그날까지 끝까지 있을 거야."

강정마을이 해군기지 반대투쟁을 벌인 지 3000일이 넘는 동안, 문 신부가 강정마을 주민으로 산 지 1500일이 넘는 동안 마을은 마을대로, 그는 그대로 많이 아팠다. 애초부터 무력을 지닌 군대와의 싸움이었다. 욕설과 빈정거림, 폭력이 난무했다. 아무리 성직자라지만 인내해서는 안 되는 모욕이 있다. 그의 1500일은 성전(聖戰)이라기보다 모욕과 치욕의 시비로부터 잘 견디고 버텨내는 것이었는지 모른다.

"강정마을이 측은해 죽겠어. 마을 분들이 운동권은 아니잖아. 하루하루 벌어서 먹고 살아야 하는 분들인데 거기다 대놓고 폭력이 난무하니까 부아가 치밀어. 그니까 어떡하겠어? 1500일이 아니라 1만5000일이 되더라도 함께 있어야지."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투쟁 3000일째인 8월 3일, 문정현 신부는 변함없이 제주해군기지 공사장 앞에서 '평화미사'를 올리며 "구럼비야 사랑해"라고 노래하고 있다.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투쟁 3000일째인 8월 3일, 문정현 신부는 변함없이 제주해군기지 공사장 앞에서 '평화미사'를 올리며 "구럼비야 사랑해"라고 노래하고 있다.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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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1일, 그는 가슴과 턱, 왼손에 큰 상처를 입었다. 강의하러 광주로 가야하는 날이었는데 시간이 좀 남아 산책을 하다가 농수로에 떨어져 병원에 실려 갔다. 그런데 그는 지금도 어떻게 농수로에 자신이 빠졌는지, 또 어떻게 나왔는지 전혀 모른다.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2년 4월엔 강정포구 방파제에서 경찰과 실랑이를 벌이다가 7미터 아래로 추락해 허리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어 한동안 병원 신세를 졌다. 아프고 힘겨운 날들의 연속이다.

"나도 죽겠어, 너무 힘들어 죽겠어. 몸도 아프고 하루하루 견뎌내기 힘들어. 몸져누울 것만 같은데 눈뜨고 일어나면 해군기지 공사장 앞으로 달려 나가. 항상 불안한 상태로 살아. 언제까지 내 육체가 견딜지 모르겠어. 자꾸 어지러워서 쓰러지고, 가슴이 미어터지려고 해. 이러다 죽을 거 같지만 난 강정을 떠나지 않을 거야."

강정마을에 전에 없던 건물이 하나 들어섰다. '성 프란치스꼬 평화센터'다. 문 신부는 절대 아니라고 했지만, '평화센터'는 문 신부가 살아낸 세월의 육화(肉化)다. 1976년 3월 1일 이른바 '명동성당 사건'으로 문 신부는 김대중 전 대통령, 문익환 목사 등과 함께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구속 기소돼 2년 6개월 실형을 살았다. 2013년 긴급조치 9호가 위헌이 되면서 그는 1억5000만 원의 형사보상금을 받았다. 그는 모든 돈을 평화센터를 세우는 종잣돈으로 내놓았다. 소식을 들은 강우일 주교가 5억 원의 성금을 보탰다.

"'성 프란치스꼬 평화센터'는 저 기라성 같은 죽음의 기지 해군기지에 맞서 왜소하지만 평화를 부르짖는 집이 될 거야. 강정을 오가는 많은 이들이 교육과 기도, 다양한 평화프로그램을 함께 하는 집이지. 센터 건물은 내 개인 재산이 아니야. 제주교구 법인 명의로 등재돼 있어. 우리는 사단법인을 만들어 평화프로그램을 운영할 거야. 오는 22일 발기인 총회를 하려고 준비하고 있어. 강정에, 여기 센터에 내 이름으로 된 건 아무것도 없어. 몸 하나 뉘일 방 한 칸이 있을 뿐이지. 그것도 어디야?"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투쟁 3000일째가 되던 3일, 그는 여느 날처럼 해군기지 공사장 정문 앞에서 '평화미사'를 올렸다. <강정의 평화>라는 짧은 노래를 부르는 동안 그의 몸은 은사시나무처럼 파르르 떨렸다. 지켜보는 것이 위태로울 정도였다. 그가 한 호흡, 한 호흡 끊어가며 짧은 강론을 했다.

"사람들이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투쟁 3000일의 의미를 묻습니다. 강정 3000일은 거짓과 폭력에 노출돼 있는 이들이 한자리에 모여 저항하는 날입니다. 용산과 세월호와 쌍용자동차와 밀양과 강정이 남이 아닙니다.

거짓이 참이 될 수 있습니까. 사기가 올바른 것이 될 수 있습니까. 진실만이 우리를 자유롭게 할 것입니다. 진실만이 온갖 폭력과 거짓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켜 춤을 출 수 있게 할 것입니다."

강정마을 해군기지반대투쟁 3000일째인 8월 3일, 문정현 신부가 평화미사를 마치고 참가자들과 함께 제주해군기지 공사장 정문 앞에서 평화의 말을 외치고 있다.
 강정마을 해군기지반대투쟁 3000일째인 8월 3일, 문정현 신부가 평화미사를 마치고 참가자들과 함께 제주해군기지 공사장 정문 앞에서 평화의 말을 외치고 있다.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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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ㅣ손병관 기자



태그:#문정현 신부, #강정마을, #제주해군기지, #천주교, #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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