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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꾼, 한국판 표지
 파수꾼, 한국판 표지
ⓒ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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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꾼'은 하퍼리의 소설로, 지금도 1년에 100만권씩 판매되고 있는 '앵무새 죽이기(원제:To kill a mocking bird)'의 모태가 되는 소설이다. '앵무새 죽이기'는 백인 여성을 강간했다고 모함받는 흑인을 변호하며 인종차별적 시선에 맞서는 주인공 스카웃의 아버지의 모습이 인상적인 소설이다.

'파수꾼'의 이야기는 '앵무새 죽이기'에서 20여년이 흐르고 아이었던 루이스(스카웃)가 방학을 맞아 뉴욕에서 고향인 메이콤으로 돌아오며 시작된다. 루이스의 과거 회상과 일상이 교차하며 훌쩍 흐른 20여 년 동안 있었던 오빠 젬의 죽음 등 비어있는 공백을 확인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루이스는 삼촌인 핀치 박사에게서 '색맹'이란 소리를 들을 정도로 인종차별에 대해 분명한 반대 입장을 취한다. 이는 루이스가 뉴욕에서 진보적인 사회분위기를 느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이런 성향의 기저에는 아버지 에티쿠스가 있다. 즉, 그녀의 인종차별에 대한 문제의식은 스스로 경험하며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아버지로부터 '심어진'것에 가깝다.

그렇기에 루이스의 인물은 조금은 이중적이기도 하다. '미스, 루이스'라며 흑인들이 자신을 높여 부르는 것에 대해서는 전혀 거부감을 느끼지 못하기도 하고, 아버지와의 말다툼 중에서 흑인이 열등하다는 것에 일부 동의하기도 한다.

-에티쿠스: "너도 우리의 니그로(흑인)인구가 뒤떨어져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 그렇지? 그건 인정해? 뒤떨어졌다는 말이 내포하는 모든 의미도 알고 있지, 그렇지?"
-루이스: "네"  (본문 中)

그녀는 인종차별에 대한 반대를 맹목적으로 '정의'라 생각하기에 인종이 아닌 경제적 계급의 차이는 인식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루이스의 어릴 적 친구이자, 루이스에게 줄기차게 구애를 하고 있는 헨리는 인종은 루이스와 마찬가지로 백인이지만, 밀가루 공장 집의 아들이며, 술을 즐기는 나태한 '인간 쓰레기'로 취급을 받는 인물이다. 지역 사회의 보편적인 이데올로기에 순응하고 협조하는 이유는 그가 악해서가 아니라 '살아남기'위해서 임을 놓치고 거세게 비난하며 상처를 주기도 한다.

'파수꾼'을 읽으며 가장 궁금했던 점은 아버지 에티쿠스의 성격이 '앵무새 죽이기'와 비교했을 때의 얼마나 달라졌는지였다. 결론적으로 그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그는 비록 낡은 구시대의 것이지만 나름의 신념을 가지고 있는 변호사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앵무새 죽이기'에서 무고한 흑인을 위해 지역사회의 비판을 무릅쓰고 변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루이스가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스스로 이상화된 아버지의 모습을 만들고 그 이상화된 정체성을 자신과 동일시했다는 것이다. 그런 자신과 아버지에 대한 믿음을 가진 루이스가 아버지가 인종분리 정책을 지지하는 집회에 나가 힘을 보태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자기를 부정당하는 것 같은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결국 삼촌 핀치 박사에 의해 자신을 이해하고, 아버지와 화해를 한다.

-에티쿠스:"너는 미안하게 생각할는지 몰라도 나는 네가 자랑스럽다."
-루이스:"네? 이해가 잘 안돼요. 저는 남자들이 이해가 안 돼요, 앞으로도 그럴거에요."
-에티쿠스:"응, 나는 물론 내 딸이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위해 물러서지 않았으면 했지. 가장 먼저 내게 맞섰으면 했어."  (본문 中)

에티쿠스가 상스러운 욕을 딸에게 들었어도 손찌검을 하지도, 길길이 화를 내지도 못한 것은 자신이 가진 모순을 어렴풋이나마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에티쿠스는 한 세대가 다른 새로운 시대로 넘어가는 교차점에 서 있는 인물이다. 시대의 흐름을 감지하고 아이들에게 인권의식을 심어주거나 불합리한 상황에 처한 흑인을 도와주는 등 개인적으로 많은 노력을 해왔지만, 수십 년에 걸쳐 켜켜이 쌓인 '편견'의 잔여물들을 걷어내지는 못한 것이다.

그런 아버지는 자신이 넘지 못한 시대적 한계를 딸 루이스가 극복해내고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가기를 염원했음을 느낄 수 있다.

'파수꾼'은 전작인 '앵무새 죽이기'보다는 훨씬 투박하다. 소설이라기보다는, 20세기 초의 미국사회를 엿보는 듯하다. 극적인 사건도 적고, '앵무새 죽이기'의 에티쿠스와 같은 일관적인 주인공도 없다. 가장 진보적인 성격의 주인공인 루이스의 인종차별에 대한 기준도 확고하지 않고, 자신이 가진 경제적, 사회적 특권을 인식하지 못하는 모습도 보인다.

하지만, 이런 날 것이기에 더욱 큰 의미가 있다. 이 작품이 씌어진지 60년이 지난 오늘날은 어떤가? 여전히, 편견은 남아있지만 그가 대통령일지라도 공적인 장소에서 흑인을 보고 니거(Nigger)라고 낮잡아 부르는 것은 사회적으로 큰 비난을 받는다. 소설 속에서 강조되는 남부인의 자부심의 상징인 남부기는 얼마 전 있었던 흑인교회의 참혹한 총격사건 이후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에서 사용 금지 법안이 발의되었다. 유력한 미국의 대선후보인 힐러리 클린턴도 최근 남부기의 퇴출을 강력히 주장했다.

이 소설이 지금 2015년에 발표된 것은 필연적일지도 모른다. 인류의 보편적 인권은 부분적으로 신장되었지만 아직도 사호의 보호가 필요한 이들은 많다. 가부장적 질서 아래에서 사회적 차별을 받는 여성, 합법적으로 결혼을 인정받지 못하는 동성애자 부부, 고향을 떠나 먼 이국 땅에서 제 값을 못 받는 노동자들..

'파수꾼'은 하나의 결과이며 앞으로 사회가 변할 수 있다는 희망적인 증거다. 아무리 핍박받고 힘들지라도, 그것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라면 언젠가는 이루어질 것임을 이 소설은 보여주고 있다.

나는 파수꾼이 필요하다.
손을 잡아 이끌어 주고 보이는 것을 공표해 주는,
이것을 말하지만 실제로는 저것을 의미한다고,
한쪽에는 이런 정의가 있고 다른 쪽에는 저런 정의가 있다고
말해주는 파수꾼이 나는 필요하다. (본문 中)

정의가 무엇인지 가르쳐 줄 파수꾼이 없더라도, 루이스처럼 그저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본래 역사란 불완전한 인간들의 치열한 고민들이 쌓여 부당한 것들을 고쳐나가는 것이 아닐까?


파수꾼

하퍼 리 지음, 공진호 옮김, 열린책들(2015)


태그:#소설, #파수꾼, #하퍼 리, #앵무새 죽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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