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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킷리스트
▲ 공연장 버킷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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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셔츠를 입고
▲ 미수습자 부모님이 주신 티셔츠를 입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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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사진
▲ 정인이. 아버지가 가지고 있는 하나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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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이 책상
▲ 사진이 별로 없는 정인이 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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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본과 뱃지
▲ 준비했어요 리본과 뱃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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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킷리스트
▲ 동협이 핸드폰 버킷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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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납시다
▲ 포스터 만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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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가 일어난지 1년 98일째 되는 날이다. 광화문 노란리본공작소에서 노란리본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노란리본이 필요한 곳은 어디든 나누고 세월호 참사를 알리고자 현장으로 나와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런 의미에서 <열일곱살의 버킷리스트>공연장과 함께 하게 됐는데 처음에는 점점 멀어져 가고 잊혀져가는 건 아닐까 걱정이 앞서기도 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공연장에서 사람들에게 일일이 손에 쥐어 주고 가방에 직접 달아주며 "세월호를 잊지말아주세요."라고 하면 오히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말을 들으면서 작은 희망을 느낀다. 내가 만든 건 작은 노란리본 하나지만 한 사람 한 사람,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되어 노란리본은 국민의 힘이라는 기적을 바란다.

- 열일곱살의 버킷리스트 기획진 이희정

공연이 이제 내일이다. 최종점검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노란 리본'이다. 처음에는 광화문 리본 공작소나 시민들이 노란 리본을 기증했고 그것으로 나눔을 했는데 지금은 스텝진들이 갹출해서 핀버튼이나 뱃지등 각종 '노란리본 아이템'들을 가지고 오기도 한다.

한번은 미수습자를 위한 공연 '434일동안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요.' 했을 때는 부모님들이 티셔츠를 한 꾸러미 가져와서 스텝진에게 나누어주었다. 스텝들은 등판에 아직 우리가 찾지 못한 아홉명의 이름이 써진 티셔츠를 입고 공연장을 지켰다.

무대에 올라주는 뮤지션들이 오면 각 봉투에 포장한 노란 리본을 선물로 준다. 이미 기타 가방이나 겉옷에 리본을 달고 오는 출연진들이 대부분이지만 무대에 올라갈 때면 봉투에 있는 리본을 달고 무대에 올라간다.

노란리본의 의미는 끝까지 잊지 않고 기다린다는 뜻이다. 현장에서 노란리본을 받아 드는 손길에서 힘내라는 응원의 마음을 느끼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작은 노란리본마저도 머뭇거리면서 주고 받아야하는 이 현실이 답답하기도 하다. 언젠가는 노란리본의 물결이 함께 넘실거리는 거리를 보고 싶고 함께 모두 웃으며 안녕 하는 그 날이 꼭 왔으면 좋겠다.

 -열일곱 살의 버킷리스트 기획진 신요섭

한동안 한가했던 카톡 단체방이 요 며칠 떠들썩하다. 각자의 위치에서 준비한 것들 확인하고 모자란 것 없는 지 어디에서 구해올지 이야기 하다가. '내일 비 오지 말라고 내가 말했는 데 눈치 없이 오지는 않겠지?' 이런 농담도 오간다. '방학이라서 생존 친구들도 온다는 데 이렇게 하는 게 나을까. 아니면 저렇게 하는 게 나을까?' 하는 긴장된 의논까지.

특히 이번 공연은 대관이 쉽지 않아 금요일 저녁으로 정했고 회사다니는 스텝들은 늦게 참여할 수 있다. 낮부터 시간이 되는 몇몇이 분주할 듯 하다. 리허설은 낮 12시 부터니까.

인터뷰 하기로 한 정인아빠가 갑자기 하지 않겠다는 연락이 와서 비상이 걸렸다. 정인아빠는 안산 분향소에 주로 있어서 서울에 있는 스텝진들과 친하지 않다. 하지만 이번이 아니면 정인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날이 많지 않을 것 같아서 전화를 했다.

"아이 사진이 없어요. 한 장밖에. 아이가 중학교 1학년때부터 사진찍는 것을 싫어해서 한 장도 없어요. 그런데 무슨 인터뷰를 합니까."
"아버지. 그러면 아이 이야기를 해주세요. 정인이가 어떻게 생겼죠?"
"정인이? 키는 178에 이쁘게 생겼죠. 그래서 커서 모델이 된다고 했고요. 제가 혼자 키워서 아이 메이커 하나도 못사줬고. 신발도 만날 단화만 신겼는데. 수학여행은 꼭 운동화 신고 가고 싶다고 해서. 제가 처음으로 운동화를 사줬어요. 9만원 주고. 정인이가 4월 20일 113번으로 나왔을 때 그 신발 한짝을 신고 있더라고요. 제가 해줬다고 할 수 있는 것은 그것 밖에 없어요."

안산 분향소 앞 유가족 대기실 컨테이너에 있던 아버지는 5분만 통화하기로 해놓고 이런 저런 이야기 하다가 시간이 20분이 훌쩍 넘어버린다. 20분짜리 인터뷰를 받아서 듣고 스크립트를 만들고 영상에 넣어서 자막까지 처리하고 나면 2분짜리 영상에 세 명이 달려들어도 2시간은 족히 걸린다.

영상준비하는 작가들도 본업을 하면서 새벽에 만나서 준비하기를 며칠. 하지만 대충 할 수도 없다. 인터뷰 녹음을 듣는 영상팀은 한마디 편집하는 것도 죄스럽기만 하다.

내일을 상상해본다. 매번 우리는 공연이 끝나고 나면 촉촉한 눈으로 서로 하이파이브를 하면서 웃었다. 한 달을 막막하게 지내다가 이 하루만큼은 깊은 따뜻함이 있는 날이니까. 우리 자신도 잘 모르던 아이들을 만나 다시 한 번 다짐할 수 있는 고마운 날이었다며.

올해 10회 공연한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녔으니 이제 내일이 지나면 다섯 번, 즉 절반이 남는다. 12월이면 단원고등학교 2014년 2학년 1반부터 10반 아이들의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이야기는 끝이 없겠지만 적어도 이 공연이 마무리가 되면 아이들과 선생님을 만나서 반가웠다고 당신들을 이야기함으로써 다시 시작할 용기가 생겼다고 이야기 할 수 있지 않을까.


태그:#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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