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배구에 비상등이 켜졌다. '16년 만의 올림픽 무대'를 꿈꾸는 남자배구의 세계 예선전 참가마저 불투명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남녀배구가 올림픽 본선에 진출하는 길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월드컵 대회다. 월드컵에서 1위나 2위를 할 경우 올림픽 본선에 직행한다. 여자배구 월드컵은 8월 22일 일본에서 열린다. 남자배구 월드컵은 9월 8일 역시 일본에서 열린다. 우리나라 남자배구는 세계 랭킹에서 밀려 월드컵에 출전하지 못한다. 반면 여자배구는 출전한다.

월드컵에서 올림픽 본선 출전권을 획득하지 못할 경우, 내년 5월 일본에서 열리는 '올림픽 세계 예선전'이 마지막 기회다. 그러나 세계 예선전도 아무나 나가는 게 아니다. 국제배구연명(FIVB) 세계 랭킹에서 아시아 국가 중 3위(일본 제외) 안에 들어야 한다. 세계 랭킹은 최근 5개 국제대회(올림픽·세계선수권·월드컵·월드리그·대륙별선수권)의 랭킹 점수를 합산해서 순위를 매긴다.

따라서 남자배구에겐 오는 31일부터 이란에서 열리는 아시아선수권 대회가 매우 중요해졌다. 올림픽 세계 예선전 진출 여부를 결정짓는 마지막 대회이기 때문이다.

아시아 국가의 남자배구 세계 랭킹과 점수를 보면, 이란과 호주가 1~2위로 멀찌감치 앞서 있다. 일본은 개최국이기 때문에 자동으로 출전한다. 결국 한국과 중국이 마지막 남은 아시아 3위 자리를 놓고 치열하게 경합 중이다.

한국은 이미 결과가 결정된 4개 국제대회의 최근 랭킹 점수 합산에서 중국보다 6점 정도 앞서 있다. 그러나 이 차이는 아시아선수권 대회 결과에 따라 얼마든지 뒤바뀔 수 있다.

아시아선수권 랭킹 1위에는 30점, 2위 26점, 3위 22점, 4위 18점, 5위 14점, 6위 10점, 7~8위 5점, 9~10위 3점이 부여된다. 따라서 한국은 중국보다 순위가 낮더라도 한 단계 아래 순위여야 한다. 예컨대 중국이 1위면 한국은 2위를, 중국이 3위면 한국는 4위를 해야만 한다. 그러나 '중국 1위-한국 3위'처럼 2단계 아래 순위가 되면 세계 랭킹 총점이 역전이 된다. 이렇게 되면 올림픽 세계 예선전 출전권을 중국에 넘겨주고, 본선 진출의 꿈도 사라지게 된다.

중국과 마지막 승부 '살얼음판'... 문용관 "잠이 안 온다"

이런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설상가상으로 악재가 쏟아졌다. 남자배구 대표팀의 핵심 공격수들이 대거 부상으로 빠지게 됐다. 에이스인 전광인, 송명근이 부상으로 출전을 못한다. 전광인은 무릎 부상으로 재활 중이다. 8월 말이나 정상적으로 훈련을 할 수 있을 전망이다. 다행히 어깨 등 상체는 이전보다 더 좋아졌다. 송명근은 KOVO컵 때 허리 염좌 부상으로 전치 6주가 나왔다. 후간판 탈출 같은 척추에 큰 이상은 없지만, 휴식과 치료가 필요하다. 주전 세터였던 한선수는 군 복무 중이다.

한국은 전혀 의도하지 않은 상황에서 강제로 1.5군이 출전하는 격이 됐다. 문용관 남자배구 국가대표 감독은 21일 기자와 한 전화통화에서 "밤에 잠이 안 온다"고 하소연했다. 문 감독은 "중국과 6점 정도밖에 차이가 안 나는 상황을 선수들에게 주지시키겠다"며 "중국보다 무조건 앞서야 한다"고 결연한 의지를 보였다.

문 감독은 지난 21일 아시아선수권에 출전할 대표팀 12명의 명단을 최종 확정했다. 레프트에 최홍석(28·192cm·우리카드), 곽승석(28·190cm·대한항공), 송희채(24·190cm·OK저축은행)를 선발했다. 라이트는 서재덕(27·194cm·한국전력)과 문성민(30·198cm·현대캐피탈)이 맡는다. 센터는 신영석(30·198cm·국군체육부대), 최민호(28·195cm·현대캐피탈), 지태환(30·200cm·삼성화재)이 책임진다.

세터는 이민규(24·194cm·OK저축은행)와 KOVO컵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보인 권영민(36·190cm·KB손해보험)이 새로 합류했다. 훈련 기간이 짧은 만큼, 안정적이고 국제경기 경험이 풍부한 권영민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리베로는 정민수(25·178cm·우리카드)와 오재성(24·175cm·한국전력)이 계속 맡는다.

결국 KOVO컵 최우수선수(MVP)인 최홍석의 활약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 문 감독은 부상에서 복귀한 문성민에게도 희망을 걸고 있다. 문 감독은 현대캐피탈 최태웅 감독에게 감사를 표했다. "문성민을 국가대표에 보내주기 위해 KOVO컵도 출전시키지 않으면서 몸 관리를 잘 해줬다. 80~90% 정도까지 올라 온 것 같다"고 말했다.

문성민이 정상적인 공격력을 보여준다면 대표팀에게는 천군만마가 될 수 있다. 라이트와 레프트 모두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란과 일본은 1.5군을 파견할 것 같다는 얘기도 들린다. 이번 아시아선수권 대회는 스포츠 전문 채널인 MBC SPORTS+가 중계할 예정이다.

여자배구 월드컵 최종 엔트리, '신예 유망주' 대거 합류

여자배구도 올림픽 본선 1차 관문인 월드컵 준비에 돌입했다. 여자배구도 크고 작은 부상자들이 많아 사정이 녹록지 않다. 이정철 국가대표 감독은 지난 21일 월드컵 최종 엔트리 12명을 확정해 각 구단에 통보했다.

레프트는 김연경(28·192cm·페네르바체), 이재영(20·179cm·흥국생명), 이소영(22·176cm·GS칼텍스), 박정아(23·185cm·IBK기업은행), 채선아(24·175cm·IBK기업은행)가 최종 선발됐다.

이소영은 KOVO컵에서 발목을 삐는 부상을 입었지만, 3주 정도면 정상 훈련이 가능할 전망이다. 이정철 감독은 21일 전화통화에서 "이소영은 꼭 필요한 선수다, 월드컵은 세계적인 강팀들과 11경기를 해야 하는 강행군이다"라며 "김연경, 이재영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렵다"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이소영이 우리 팀(IBK기업은행)과 경기에서 부상을 입었는데도, 제가 이선구 감독께 이소영의 상태를 묻고 국가대표 합류를 당부하자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셨다"라고 감사를 표했다.

라이트는 황연주(30·177cm·현대건설)가 포함됐다. 센터는 김희진(25·186cm·IBK기업은행), 양효진(27·191cm·현대건설), 김수지(29·186cm·흥국생명)가 맡는다. KOVO컵에서 라이트로 뛰면서 MVP를 수상한 김희진은 상대 팀과 경기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라이트로 변경하겠다는 게 이 감독의 복안이다. 박정아도 라이트로 투입할 수 있다. 황연주가 부상과 체력 문제로 전 경기를 소화하기 어려운 점도 감안한 것이다.

세터와 리베로는 고민 끝에 세대교체형 선수들을 선택했다. 세터는 신예 유망주인 이다영(20·179cm·현대건설)과 조송화(23·177cm·흥국생명)가 맡는다. 리베로는 나현정(26·163cm·GS칼텍스)이 단독으로 선발됐다.

이 감독은 주전 세터인 이효희(36)가 고질적인 무릎 부상으로 출전이 어렵다는 도로공사 구단의 요청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대신 차세대 유망주들에게 큰 무대 경험을 쌓게 하고 본격적으로 키우기로 했다. 이다영은 허리 디스크로 재활 중이다. 담당 의사에 따르면, 디스크는 완치가 어렵기 때문에 본인이 의지가 있으면 경기는 뛸 수 있는 상태라고 한다. 최근 KOVO컵에서도 기대 이상의 활약을 보였다.

리베로는 남지연(33)과 임명옥(30)이 체력적으로 부담이 크기 때문에 젊은 나현정을 낙점했다. 대신 수비형 레프트인 채선아를 간간이 후위 레프트와 교체 투입해 리베로의 부담을 줄여줄 계획이다. 이날 선발된 12명의 국가대표 선수는 8월 2일 진천선수촌에 모여 본격적인 훈련에 들어간다.

'중국 순위'도 중요 변수... 한국 저력도 만만치 않아

이번 월드컵 대회는 올림픽 본선 티켓 2장이 걸려 있다. 한국이 1위나 2위를 할 경우 세계 예선전을 거치지 않고 본선에 직행한다. 하지만 미국, 러시아, 세르비아, 중국, 일본 등 세계 강호들과 경쟁에서 2위 안에 들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변수가 있다. 중국이다. 중국은 월드컵 우승을 노릴 정도로 세계 최정상급 전력을 갖추고 있다. 중국이 2위 안에 들 경우 올림픽 세계 예선전에 출전하지 않는다. 대신 카자흐스탄이 참여하게 된다. 한국은 세계 예선전에서 일본, 태국, 카자흐스탄과의 순위 경쟁에서 앞서면 올림픽 본선 진출권을 획득하게 된다. 또한 전체 8개 참가국가 중 4위를 해도 본선 진출권을 획득한다. 올림픽으로 가는 길이 한결 수월해진다.

현재 여자배구 아시아 국가의 세계 랭킹은 중국, 일본, 한국이 각각 3위, 4위, 10위다. 아시아권이 세계적으로도 초강세다. 한국은 아시아 4위 태국, 5위 카자흐스탄과 랭킹 점수에서 큰 격차로 앞서 있다. 세계 예전선 진출권은 이미 확보된 상태다.

무엇보다 한국 여자배구의 저력도 만만치 않다. 세계 최고의 공격수인 김연경이 건재하고, 국내 선수들의 면면도 기량과 경기력이 좋은 편이다.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4강에 올랐고, 지난해 그랑프리 대회에서 러시아, 세르비아 등 세계적인 강호들을 격파한 경험도 있다. 여자배구는 준비만 잘하면 충분히 좋은 성적을 기대해볼 수 있다.

올림픽 진출의 사활이 걸린 국제대회를 잇따라 앞두고 있는 한국 배구. 과연 어떤 결과를 거머쥘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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