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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1일, 연극배우 고(故) 김운하(본명 김창규)씨가 성북구의 한 평 남짓된 고시원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출동한 경찰이 발견했을 당시 김씨는 이미 사망한 지 5일 정도 지난 것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그 이튿날, 또 한 명의 배우가 세상을 떠났다. 그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레드카펫을 밟았을 정도로 영화계에서 인정받은 고(故) 판영진씨다. 판씨는 지인에게 자살을 암시하는 메시지를 남기고 자신의 차 안에서 쓸쓸하게 생을 마감했다.

그렇게 문화예술계에 안타까운 사망 소식이 하루 간격을 두고 전해졌다. 정확한 사망 원인은 제쳐놓고라도 각 영역에서 나름 인정받는 배우가 갑자기 생을 마감한 사실만으로도 충격이다. 이 두 배우의 공통점은 한 달에 몇십만 원에 못 미치는 극심한 생활고로 고통받았다는 사실이다. 유망한 예술인인 이들을 보호했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사회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이것이 새삼스러울 사건은 아니다. 지난 2011년 1월, 한국예술종합학교 영화과를 졸업한 재원으로 단편 영화 <격정 소나타>를 연출했던 고(故) 최고은씨는 자신의 자취방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웃집 문에 남긴 그녀의 마지막 쪽지가 가슴을 저리게 만든다. "그동안 너무 도움 많이 주셔서 감사합니다. 창피하지만 며칠째 아무것도 못 먹어서 남는 밥이랑 김치가 있으면 저희 집 문 좀 두들겨 주세요."

"예술인 복지법은 예술인의 직업적 지위와 권리를 법으로 보호하고, 복지지원을 통해 예술인의 창작활동을 증진시킬 목적으로 제정된 법이다." 

생활고로 사망한 최고은씨를 계기로 2011년 11월에 '예술인 복지법'이 제정됐다. 일명 '최고은 법'이라 불린다. 이 법에 따르면 예술인을 '예술 활동을 업으로 하여 국가를 문화적,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으로 풍요롭게 만드는 데 공헌하는 자로 창작, 실연, 기술지원 등의 활동을 증명할 수 있는 자'로 정의하고 있다.

문화예술 분야별로 일정 수준 이상의 자격 요건을 둠으로써 법의 테두리 안에서 보호를 받을 수 있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 이상의 실적을 달성하지 못하면 '예술인'이라는 규정에서 벗어나 정작 지원이 필요한 예술인이 배제되고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제2의 김운하, 판명진을 막기 위한 '예술인복지법' 개정안이 추진될 전망이다. 지난 20일, 새누리당 신성범 의원이 이같은 내용으로 '예술인복지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주요 내용은 문화예술 분야에서 용역 계약서가 서면으로 남지 않은 관행을 고려해, 당사자가 서명 또는 기명날인한 계약서를 주고받도록 의무화한다는 것이다.

이런 움직임이 본격적으로 진행된다는 사실만으로 상당히 고무적이다. 하지만 진정한 예술인 복지를 위한 것인가에 대한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는 것은 씁쓸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실질적인 현장 목소리와 법률계 전문가가 말하는 '예술인복지법에'에 관한 대담이 지난 16일 서울문화재단에서 열렸다. 이날 대담은 '예술인 복지법, 법과 현실의 괴리'라는 주제로 한국예술종합학교 이동연 교수의 사회로 진행됐으며, 서울연극협회 임선빈 사무국장, 예술인소셜유니온 나도원 공동위원장, 국민대학교 황승흠 교수가 참여했다. 다음은 대담을 정리한 것이다.

'죽음을 먹고 자랐으면서도...' 예술인보호법의 문제점

'예술인복지법, 법과 현실의 괴리' 대담에서 사회를 맡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이동연 교수
▲ 한국예술종합학교 이동연 교수 '예술인복지법, 법과 현실의 괴리' 대담에서 사회를 맡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이동연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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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연(아래 이) : 지난 6월 배우 김운하씨와 판영진씨의 사망 사건을 계기로 예술인 복지에 대한 현장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오늘은 예술인복지법이 과연 제 역할을 하고 있는지, 현장의 요구와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왜 이렇게 괴리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자 한다. 본격적인 대담에 앞서 세 분께서 오늘 주제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나누실지 간단하게 소개 부탁한다.

임선빈(아래 임) : 서울연극협회 사무국장을 맡고 있고 연출 및 극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올해로 19년째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데, 오늘 이 주제에서 현장에 관한 이야기를 하겠다.

나도원(아래 나) : 예술인들의 노동조합 '예술인소셜유니온'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다. 20대에 10년 정도 인디밴드에서 활동했고 이후 10여 년째 음악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한국의 젊은 예술인들의 현실에 대해 많은 문제의식을 갖고 있고, 특히 예술인복지법의 개정 운동을 2012년부터 하고 있다.

황승흠(아래 황) : 국민대학교 법과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법 중에서 문화 관련 법, 특히 문화산업을 주로 공부했다. 최근에 예술인복지법 개정법의 시행령을 정비하는 작업에 참여했다. 예술인복지법 중 지난해부터 시행된 '금지행위제도'라는 일종의 불공정행위에 대한 제재는 법학적으로 굉장히 복잡한 사항이다. 그 시행령 작업에 참여했고, 자문위원회인 문화예술공정위원회의 일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주로 제도적인 측면에서 예술인복지법의 문제점이나 개선 방안에 대해 도움말을 하겠다.

이 : 극작가 최고은씨의 죽음을 계기로 제정된 예술인복지법에 대해 현장에서 그간 많은 문제 제기를 해왔는데, 올해 또 연극배우 김운하씨가 안타깝게 사망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두 분 다 지병을 갖고 있었지만, 사망에까지 이른 배경에는 가난한 예술인의 처지가 분명히 작용했다. 연극계에서 벌어진 가슴 아픈 상황에 대해 현장에서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나?

임 : 이번 사건이 언론보도를 통해 크게 이슈화돼서 본격적인 논의가 다시 시작됐지만, 사실 연극계에서는 불과 두세 달 전에도 비슷한 사망 사건이 있었다. 고독사나 지병에 의한 사망은 아니지만, 지난해 초 현장 예술인으로 15년 이상 활동하던 연출가가 아르바이트를 하려고 이벤트 회사에 불려갔다가 리조트 붕괴 사고 때 사망했다. 일당 10만 원짜리 아르바이트였는데, 일용직으로 계약했기 때문에 보험 혜택도 못 받았다. 추정하기로 연간 최소 두세 건의 사망 또는 사고가 일어날 정도로 연극계는 생계의 위험에 노출된 복지 사각지대다. 사실 모든 죽음은 사회적 죽음이다. 예술계에서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겠다고 자각하고, 이를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다.

나 : 예술인복지법 자체가 '죽음을 먹고 자란 법'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예술인복지법의 초기 구상은 2007년부터 시작됐고 법안 발의도 2009년 무렵 시작됐는데, 이 법이 통과된 계기는 최고은씨 같은 젊은 예술인의 죽음이 있었다. 올해 긴급복지지원사업도 상반기에 교부금이 미지급되다가 두 명의 배우가 잇따라 죽은 후에야 집행되는 것을 보면 한국 사회에서 예술인 복지가 얼마나 열악한지 알 수 있다. 예술인복지법이 제정되기 전에도 2010년 곽지균 감독, 인디뮤지션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2011년에 영상활동가 이상현씨 같은 분들이 계속 목숨을 잃었고 그 뒤에야 통과되는 걸 보면서 많이 안타까웠다.

이 : 법이 죽음을 막을 수는 없겠지만, 예술인들이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서 법 제정에 일말의 책임 같은 것은 분명히 있다. 본격적으로 예술인복지법에 대해 논의를 하자. 내가 봐도 알맹이가 없고 두 예술가의 죽음의 대가가 이건가 싶을 정도로 너무 부실한 법인데, 무엇이 문제이고 어떤 점을 보완해야 할까?

나 : 우선 예술인복지법만 놓고 보면 애초의 취지가 많이 훼손됐다. 처음 제안된 법안 이후 2013년 개정안을 낼 때 포함했던 내용이 많이 삭제됐다. 특히 근로자 의제가 삭제됐다는 점이 중요하다. 고용보험 의무 조항, 국민건강보험 적용 특례, 예술인복지재단의 재정계획, 예술인복지기금, 노동조합 조직 권리, 표준계약서 의무 사용 등 예술인복지법의 취지에 해당하는 내용이 대부분 삭제됐다. 둘째는 수혜 대상의 범위가 매우 제한적이라는 문제가 있고, 셋째로는 재단의 독립성 문제, 그리고 재단의 예산 확보 방안이 명확하지 않다. 재단 대표가 문화체육관광부와의 문제 때문에 중도에 그만두는 일도 벌어졌고, 체계상의 한계도 명확하다고 생각한다.

이 과정에 기존의 예술계가 갖고 있는 낙후된 인식도 많이 작용하고 있다. 예술인복지법 개정안을 냈을 때 병합심사가 이뤄졌는데 그때 예술계에 있는 전문위원이 '계약서 제출 요구는 자유로운 예술 활동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면서 반대했다. 표준계약서 작성 의무화에 대해서도 '표준계약서 사용을 강제하는 것은 자유로운 예술 활동 저해 및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비판적 소지가 있으며, 계약 당사자 간 다양한 형태를 반영하지 못할 우려가 있다'며 제동을 걸게 된다.

임 : 예술인복지재단 사업이 복지법과 시행령의 근간을 이루는 예술인 기초생활에 관한 내용을 다루기보다는 마치 지역 문화재단들의 과업을 실행해야 하는 단체인 것처럼 진행되는 게 현장 예술인 입장에서는 매우 난감하고 이해가 잘 안 된다. 실행 기관이 자체적으로 제도화가 돼 있지 않기 때문에 자의적으로 해석해서 생겨나는 문제인데, 사업에 대한 정확한 가이드라인도 반드시 마련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황 : 헌법에서 특별하게 언급하는 직업군이 농민, 근로자, 예술가, 과학자다. 헌법이 이런 직업의 사람들(의 권리)을 특별히 보장하고, 이것을 국가 원리로 보는 거라고 해석하자 법학자들이 굉장히 반발했다. 직업으로서의 예술가 개념을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그런 배경이 있다. 이런 법들이 나온 20세기 초반 독일에서는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예술을 했다. 어떤 분은 예술가를 보호하는 법률은 저작권법으로 충분하다고 한다.

20세기 후반 들어서 이미 전 세계적으로 직업으로서의 예술가들이 생기고, 그걸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생계 자체를 보장해주는, 그러니까 예술가에게 오히려 근로자와 다른 특별한 지위가 헌법에 있다는 얘기를 했는데 이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걸 보면서 굉장히 놀랐다. 이런 것들이 입법할 때 자꾸 부딪히는 영역이다. 예술인에 대한 정의가 취약하다 보니까 (생계보장 등의) 직접 지원이 이뤄지지 않는다. 영화법에서 시사점을 얻을 수 있는데 영화근로자라는 새로운 개념을 영화법에 도입하고, 노동법이 보장하는 노동조합은 결성할 수 없지만, 영화근로자조합이란 걸 결성할 수 있도록 했다.

문화예술계에서 '길드'라고 하는 것을 제도화했다고 본다. 물론 노동법 차원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걸로 협의하고 단체협약과 비슷한 계약을 맺을 수 있도록 한다. 노동법과 유사하지만 다른 길을 밟고 있다는 시사점이 있다고 봐서 예술인을 위한 독특한 제도 개발을 해나가는 것도 대안 중 하나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재원 확보보다 중요한 것은 '철학과 가치'

예술인소셜유니온 나도원 공동위원장
▲ 나도원 예술인소셜유니온 나도원 공동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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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극협회 임선빈 사무국장
▲ 임선빈 서울연극협회 임선빈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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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 법의 목적과 정의를 시행하는 조항들이 이렇게 빈약해 보이는 이유가 뭘까?

나 : 예술인복지법을 가지고 예술인의 복지 문제를 다 해결할 수는 없다고 본다. 복지 문제의 큰 틀을 보면 '복지법', '지원제도', '문화산업 구조 개편'이라는 세 가지 사안이 있고, 그중 오늘은 예술인복지법에 대해 얘기하는 거다. 예술인의 근로자 의제가 중요한 이유는 예술인을 특수한 대상으로 보고 특수한 시혜를 바라는 게 아니라, 보편적인 사회보장체계에 포섭하기 위함이다.

이런 것들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데에는 비정규직 등 한국의 불안정한 노동문제가 직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과거의 장인이라든지 특수한 능력을 갖춘 예술인보다는 '문화 산업에 종사하는' '예술적 산물의 생산과 유통에 종사하는 자'라는 개념으로 접근할 때 예술인 개념이 성립된다고 보며, 그런 점에서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도 기술 스태프처럼 구성된 것이다.

외국에는 이런 사례가 많다. 독일은 1981년에 예술가 사회보험법을 제정했다. 그리고 1998년에 예술인 사회보험제도의 근거를 만든다. 즉 건강상의 연금보험을 예술인 50%, 연방정부 20%, 그리고 문화산업 기업이 30%를 분담해서 함께 제도를 만들었다. 프랑스의 '앵테르미탕'은 비정규직 예술인을 위한 실업보험 제도이고, 이탈리아에는 특별사회보장제도가 있다. 캐나다에는 예술가 지위법, 네덜란드에는 최저생활보장제도가 있다.

룩셈부르크는 문화사회기금을 통해 예술 활동을 하면서 최저소득에 미달하는 이들에게 생계를 지원한다. 하지만 한국은 정부의 정책 기조와 문화산업 구조의 대기업 편중, 예술 개념에 대한 인식 부재 등이 맞물려 난항을 겪는 듯하다.

임 : 김운하씨 사망사건으로 일반 시민들도 큰 관심을 갖게 됐는데, 대다수의 시민은 예술 활동을 사적 취미 활동으로 보기 때문에 자신이 좋아서 선택한 장르 안에서의 결과물을 왜 국가가, 사회가 책임져야 하느냐는 부정적인 반응도 꽤 많다고 한다. 물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고 본다. 하지만 그 문제를 되짚어볼 때 예술가에 대한, 직업군에 대한 정확한 법률적 해석이 인식 개선에 최우선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 같다.

이 : 예술인복지법의 핵심이 예술가의 사회보장이라고 한다면 어떤 것들이 개정 내용에 들어가야 할까?

임 : 예술가는 특별한 생애주기를 갖고 있다. 신진에 해당하는 생애주기와 신진에서 좀 더 안정적인 주기로 넘어가는 중간, 그리고 소위 원로 또는 장년에 해당하는 시기. 이렇게 일반적으로 청년, 중년, 장년 개념으로 접근할 수 있는데 이보다 5단계 정도로 세분화한 생애주기 구분이 필요하다. 유럽의 경우 예술대학을 졸업한 1년 차부터 직업군으로 인정하는 것에 견주어보는 거다. 지금은 본인이 예술인인지를 증빙 절차를 통해 하고 있는데, 조금 일반화해서 생애주기별로 나눠 적용한다면 특정 제도적 사업이나 예술가 사회보장에 해당하는 내용들도 차등해서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황 : 예술인 복지란 결국 예술인 개개인에 대한 복지로 정의가 명확해져야 한다. 그러면 이제 기본적으로 '예술인이 누구인가'라는 게 관건인데, 현재 우리 법이 취하고 있는 예술인의 기준은 작품 활동 중심이다. '예술 활동이 증명돼야 하는 자'라고 되어 있다. 소득이 있고 없고에 관계없이 거기에 종사하고 있다면 그 직업인으로 보는데, 왜 유독 예술인은 예술 활동이라는 결과물만 갖고 정의를 내릴까.

사실 예술 활동의 많은 부분은 결과물을 준비하는 과정이고, 심지어 어떤 작품에 참여하지 않는 휴지기조차 그걸 준비하는 단계다. 이 역시 종사의 개념으로 볼 수 있는데… 다시 말해서 결과물 중심이 아니라 종사라는 개념 중심으로 이 직업군을 정의하는 게 법적으로 먼저 보장돼야 한다.

재원 확보 문제의 경우 철저하게 국가 지원에 의존하고 있지만, 앞서 독일 제도를 설명하면서 사회구성원들이 재원을 분산해서 부담하는 것을 참고할 만하다. 예를 들어 예술인복지법이 문화예술법과 달리 현재로써는 기부금 모집법의 예외 적용 대상이 아니다. 자발적으로 기탁하는 기부금의 접수는 할 수 있지만, 모집 활동은 할 수 없다. 당장 국가 재원이 필요한 일은 아니지만, 민간 자원을 예술인 복지로 동원할 수 있는 채널을 더 많이 열어야 할 것 같다.

이 : 저는 예술인복지법에 들어가야 할 건 너무 명확하다고 본다. 연금 문제와 4대 보험, 그리고 실업급여. 이 세 가지가 필수적인 것 아닌가. 그런데 사람들은 대부분 재원 문제를 얘기한다. 그러나 재원보다 중요한 게 철학이고 가치 아닐까.

나 : 하지만 기획재정부와 고용노동부에서 반대하는 상황이다.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라 하면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 근로를 제공하는 자. 그렇게 되어 있는데 예술인까지 포함할 경우 재정 문제가 심각하다고 보는 듯하다.

예술인복지법은 세 가지를 고려해야 한다. 첫째, 근로자 의제를 반영하지 못하면 4대 보험 적용이 힘들다. 둘째, 예술인복지법이 처음 만들어질 때 '예술인복지재단법'이라고 재단 설립에 대한 내용만 있는데 예술인복지재단 재설정 문제가 필요하다. 의사결정이 투명하고 공개적이어야 하고, 기구의 독립성을 보장하도록 바꿔야 한다. 셋째, 재정 문제인데, 예술인복지법 5조 2항을 보면 '재단은 「기부금품의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 제5조 제2항 본문에도 불구하고 자발적으로 기탁되는 금품을 재단의 운영 및 제10조에 따른 사업을 지원하기 위하여 접수할 수 있다'라고 나와 있지만, 자발적으로 복지재단에 돈을 내는 사람은 얼마 없을 것이다. 그럼 재정 문제는 별도의 법을 만들어 일정한 이윤율 이상을 내는 중대형 문화산업 기업을 통해서 예술인 복지기금을 마련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든다.

황 : 재원 문제를 걱정하기에 앞서 먼저 해결할 문제가 있다. 재원 문제를 해결하는 건 문화부와 관련되고, 그들이 기재부와 얘기하면서 해결되는 건데 현재 전수조사가 되든 샘플 조사가 되든 예술인에 대한 명확한 정의에 따라 정확한 수가 나와야 한다. 활동 중심의 정의가 아니라 종사자 개념을 무엇으로 할 것인지 조작적 정의를 임의적인 정의로 하나 만들고, 그 조작적 정의에 따라 정확히 몇 명이라는 게 나와야 한다. 현재 몇 가지 실태조사를 부분적으로 한 적은 있는데 국가 통계로 인정되기는 어려운 것들이다. 설문지보다는 면접으로 전수조사를 해야 한다.

우리 보험 체계가 3자 부담이다. 본인 부담, 국가 부담, 기업 부담이라는 3자 체계에서 어떻게 할 수 있느냐가 문제인데, 이게 사회보험이라 한다면, 왜 예술가 개인은 부담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기업에 해당하는 단체들이 과연 부담할 수 있느냐는 것과 같은 비판이 항상 반응으로 나왔다. 액수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보험 체계의 근간이 흔들린다는 얘기가 비판의 근거인 것 같다.

그래서 나는 관객이 상당 부분 이 부분을 부담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문화예술계는 영화를 제외한 분야에서 상당히 많은 재원을 잃어버린 상태라서 국가에만 의존하다 보니 오히려 축소된다. 예술가들이 어려워지면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건 예술의 결과를 향유하는 국민이다. 좋은 예술을 볼 수 없고 점점 더 상업화된 예술만 판을 치게 되고, 결국 국민의 정신이 피폐해지고 중요한 국가 자원을 상실하게 된다. 국민의 복지, 행복이 예술가 지원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본다면 저는 그런 재원 분산 방법도 마련하는 것이 방법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한국형 앵테르미탕' 제도가 필요해

국민대학교 법학과 황승흠 교수, 예술인복지재단 금지행위 심사자문위원회 위원
▲ 황승흠 국민대학교 법학과 황승흠 교수, 예술인복지재단 금지행위 심사자문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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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 창작준비금사업(긴급복지지원사업) 110억 원이 통과돼 집행하기로 돼 있고 안도 마련돼 있는데 김운하씨가 사망하기 전까지는 집행이 안 됐다. 기재부에서 교부금조차 내려오지 않은 상황이라 복지재단 입장에서는 재단 책임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만약에 김운하씨 일이 안 벌어졌으면 아마 지금 시점에서도 사업이 진행되지 않았으리라 예상되는데 어떤 문제 때문에 집행이 늦어진 것인지 진단해달라.

임 : 예술인복지법에도 보면 문체부에 1년에 한 번씩 사업 계획을 보고하고 제출하게 돼 있는데 이 기금을 어떻게 쓸 것인지와, 예술인 복지의 의의에 대한 명시 없이 무조건 기금 요청이 먼저 이뤄졌다. 비슷비슷한 기금들이 이름만 바뀌어서 형식이나 내용은 현장에 맞게 수정되거나 재고민되는 것 없이 되다 보니 기재부에서도 트집을 잡을 만한 근거는 있었다.

그리고 현장에서 듣기로는 '퍼주기식 지원'이기 때문에 기재부에서는 돈을 줄 수 없다고 묶어둔다는 내용이었고, 예술인복지재단은 "우리도 난감하다"는 태도였다. 그런데 사실 예술인복지재단은 도시락 싸들고 쫓아다녀야 했다. 그래서 이건 예술인복지재단의 직무 유기고, 중간에 있는 문체부 역시 직무 유기를 했다고 생각한다. 전형적인 핑퐁 게임이다. 복지재단은 기재부로, 기재부는 복지재단으로, 다시 복지재단은 현장으로 왔다 갔다 하다 생긴 문제이기 때문에 진단에 앞서 이는 복지재단이 비판받아야 한다.

: 예술인복지법이 제정되고 개정이 이루어질 때 예술인복지재단과 예술정책과가 함께 만든 TF팀에 참여했는데, 본인이 느낀 건 복지에 대한 개념이 서로 다 다르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복지를 일한 만큼 되돌려 받는 지원으로 생각하고, 어떤 사람은 준 만큼 콘텐츠를 뽑아내야 한다는 투자의 개념으로 본다. 협·단체장들과 기존 문화부 관료들에게 이 두 가지가 혼재하다 보니 예술인복지재단이 처음에 적은 사업비를 가지고 사업을 계획하고 프로그래밍할 때 이것들이 다 뒤섞여 있었다.

황 : 예술인복지재단이 꼭 예술전문가로 채워져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분들은 예술인을 대표해서 예산 당국과 협의하고, 그들을 설득해낼 수 있는 사업을 만들어내고 예술인의 수요를 발견해 이를 행정 언어로 번역할 수 있는 전문가로 구성돼야 한다. '설정된 예산이 어떻게 7개월 동안 묶어두게 만드느냐'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예술인복지재단 '현장'의 문제다.

실제로 예술 당국과 오랫동안 협의해온 다른 분야를 보면 일반 공공기관에 전문가들이 상당히 많다. 숫자 전문가들을 포함해서 어떻게든 예산 당국을 설득할 수 있는 경제적인 접근을 하는 사람들, 예술가들의 복잡한 요구를 잘 받아 정리해서 보고서로 쓸 수 있는 사람들이 복지재단에 많이 포진하고 있어야 이런 문제가 해결되고, 현장 예술가보다 앞서서 사업을 만드는 게 필요하다. 이 정도 감이면 어느 정도 예산을 만들어낼 수 있을 텐데, 꼭 이렇게 신문 기사 몇 개가 나야만 예산 당국을 움직일 수 있다면 이건 한계가 매우 크다. 아까 '죽음을 먹고 자란 법'이라는 가슴 미어지는 표현을 하셨는데 정책이 이렇게 가서는 안 된다. 필연적인 논리에 의해 진행돼야 지속 가능한 예산 확보가 가능하다.

임 : 1년 전쯤 공연예술계 표준계약서에 대한 오차 수정 등을 위한 대대적인 조사가 있었다. 일대일(1:1) 면담 전수조사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협・단체로 협력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서울연극협회가 관리하는 연극인 약 3500명에게 한 달 동안 문자메시지와 이메일 등을 통해 표준계약서에 대한 기초설문조사에 답변해달라는 연락을 했다.

그런데 3500명 회원 중에 50명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래서 개별적으로 설문조사 회수율이 떨어지는 이유를 알아봤더니 설문 내용 자체가 현장과 너무 동떨어져 있기 때문에 답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객관적 조항이든 주관적 조항이든 현재 연극인들의 실태와 계약서 안에 넣으려는 조항, 액수와 같은 숫자가 하나도 맞지 않기 때문에 체크를 할 수 없어서 회신을 못했다는 답변이 태반이었다. 결국, 표준계약서 부분도 현장과는 너무 동떨어진 계약서이고, 그렇기 때문에 표준계약서의 현장성도 제고돼야 한다.

나 : 긴급복지사업은 예술인이 가장 관심이 많은 사업이라 단시간에 접수가 완료됐다. 하지만 사실 신청하는 예술인들은 자존감에 상처를 많이 입는다. 자신이 가난하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과정이니까. 사업 자체를 재설계할 필요가 있다. 한국형 앵테르미탕 제도, 즉 긴급복지사업이 시작된 계기가 고용보험을 적은 금액으로 일정하게 기능하게 하려는 것이지 않나. 고용보험으로는 예술인들을 포괄할 수 없기 때문에 고용보험에 준하는 방식으로 하겠다는 거였는데, 이 틀을 통해 일정 기간 종사했다는 것이 증명되면 실업급여를 지급하는 방향으로 재설계해야 한다.

이 : 이제 논의를 마무리 지어야 할 것 같다. 예술인복지가 정상화하기 위해서는 어떤 식의 보완과 생각이 필요할지 정리해 달라.

나 : 첫째, 신진 예술인, 젊은 예술인, 그리고 기존의 협・단체에 포함되지 않은 많은 예술인을 보호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신진 예술인에 주목했던 원래 취지를 살릴 필요가 있다. 둘째, 예술인복지법 개정을 통해 예술인복지재단 재설정부터 해야 한다. 예술인복지재단이 독립성을 갖고 예술계의 의견을 풍부하게 수용하면서 전문적인 정책 논의 기구로 서지 않으면 계속 이런 식의 땜질식 복지밖에 할 수 없다. 셋째, 기존의 단체뿐 아니라 소외됐던 예술인, 젊은 예술인들이 당사자 운동을 해서 조직화하고, 자신의 요구를 정확히 전달하는 방식이 매우 중요하다. 이 세 가지가 맞물리는 것이 예술인복지법 개정안 2차 운동이 되지 않을까.

임 : 예술인복지법이 재디자인될 때 예술인의 특수한 생애주기를 더욱 디테일하게 나눠서 생애주기별 접근이 필요할 것 같고, 예술인 자격을 갖추는 것에 대해 전면적으로 재검토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예를 들어 예술대학을 졸업하고 업계에 종사한 경력으로 충분히 자격이 주어진다면 예술대학에 대한 재접근이라는 낙수효과까지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결국 예술인 복지는 보편적 인식 안에서 기본적인 사회적 안전망으로 작용해야 한다.

황 : 궁극적으로는 제도가 무엇을 해결할 수는 없다. 제도는 촉매제 정도의 역할을 하는 게 진정한 위치라고 보고, 그렇다면 결국 예술인들이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데 그 많은 부분이 조직화의 문제로 수렴된다. 조직화가 이뤄지면 그 조직이 갖는 교섭력으로 많은 부분을 해결해내야지, 역량이 안 돼 있는 상태에서 제도로서 꾸려지는 효과란 거의 제 역할을 못하고 제도는 왜곡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더욱 중요한 게 예술인들의 힘을 모으는 부분의 제도화라고 본다. 둘째는 문제가 생겼을 때 해결하는 여러 제도 중에 이른바 '금지행위제도'라는 게 있다. 시행된 지 1년 정도 됐는데 예술가에 대한 사례금은 근로자의 임금에 준하는 지위를 갖는 것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그런 부분은 제도로 강제할 수 있다. 근로자 의제를 도입하면 노동법에서 보장하는 내용을 다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부분적인 해결이 이뤄져야 하는데 그중 하나가 예술인에 대한 사례금을 정의하고, 이 부분이 미지급될 경우에 법적 조치가 따르는 등 명쾌하게 정립됐으면 좋겠다.

이 : 예술인복지 정책이 제대로 정립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실태조사가 제대로 돼야 한다는 것과 사회보장 중심의 예술인복지법 재개정이 필요하다는 점, 복지재단의 역할이 지금보다는 훨씬 더 강화돼야 한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도 복지의 개선을 위해 예술인 당사자들의 조직화가 필요하다는 점, 마지막으로 재원 조성과 관련해 정부에만 의존하지 않는 구체적인 다각화 방향을 모색해야겠다는 것 등이 오늘 대담의 주된 이슈다. 이러한 논의들이 제기된 만큼 관련 기관들에서 구체적으로 고민하는 별도의 자리가 마련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덧붙이는 글 | 본 대담은 문화예술 시사 월간지 <문화+서울> 8월호의 '진실 혹은 대담' 코너에 동시 게재됩니다. www.sfac.or.kr/munhwaplusseoul



태그:#진실혹은대담, #예술인복지법, #문화+서울, #최고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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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빼고 문화만 씁니다." 20년 넘게 문화예술계에 몸담고 있으며, 문화예술 종합시사지 '문화+서울' 편집장과 한겨레신문에 예술가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는 '사람in예술' 코너에 글을 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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