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비단잉어나 금붕어는 변종 물고기라고 합니다
 비단잉어나 금붕어는 변종 물고기라고 합니다
ⓒ 임윤수

관련사진보기


필자가 어렸을 때만 해도 이맘때가 되면 커다란 강이 있는 고향 마을에서는 천렵(川獵)이라는 걸 했습니다. 봄부터 시작한 농사일로 온몸이 노곤하게 지쳐있을 때, 적당한 날을 받아 동네 사람들 모두가 물가로 나가 하루쯤 먹고 즐기는 걸 천렵이라고 했습니다.

모이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애들 한둘쯤을 들어갈 수 있는 커다란 솥단지가 두세 개씩은 걸렸으니 먹는 음식도 참 푸짐했습니다. 밥을 짓고 있는 무쇠솥에서는 누룽지 익어가는 냄새가 뽀얀 김으로 피어올랐습니다. 국을 끓이고 있는 양은솥에서는 고기 몇 점이 펄펄 끓고 있는 물줄기를 타고 숨었다 보이기를 반복하는 게 마치 숨바꼭질을 하는 듯 보였습니다.

지나고 보니 천렵을 나와 있는 모든 사람이 바위틈에 숨어 있는 물고기처럼 꼭꼭 숨어 있는 행복을 찾던 술래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숨바꼭질하듯 숨었다 보이기를 반복하고 있는 몇 점의 고기를 기다리고 있던 배고픈 농부들 마음처럼요.

천렵 음식 중 빠지지 않는 하나가 사람들이 노는 물에서 물고기를 잡아 만드는 음식들이었습니다. 물고기가 많이 잡히는 날에는 튀기기도 하고 구워 먹기도 하지만 대개의 경우는 쏘가리나 빠가사리(동자개) 등을 넣고 얼큰하게 끓인 매운탕이거나 어죽입니다.

일제 강점기 때였대요. 일본 사람 한 명이 동자개를 잡았는데 '빠가빠가!'하고 소리를 낸 거예요. '빠가'는 일본 말로 '멍청이'란 뜻이거든요. 일본 사람은 기분이 나빴나 봐요. 그때부터 동자개 이름이 '빠가사리'가 됐다는 거예요. 지금도 동자개보다 빠가사리라고 부르는 사람이 더 많아요. -<처음 만나는 물고기 사전> 44쪽

그때만 해도 쏘가리, 꺽지, 빠가사리, 꾸구리 같은 물고기들이 참 흔했습니다. 발목만 둥둥 걷어 올리고 송사리 떼를 쫓으며 놀던 게 엊그제 같은데 요즘은 눈을 씻고 찾아도 점차 보기 힘들어진 물고기들이 한둘 아닙니다.

23종 물고기 <처음 만나는 물고기 사전>

<처음 만나는 물고기 사전> (글 이상권 · 그림 김미정 / 펴낸곳 한권의 책 / 2015년 6월 17일 / 값 1만 4,000원)
 <처음 만나는 물고기 사전> (글 이상권 · 그림 김미정 / 펴낸곳 한권의 책 / 2015년 6월 17일 / 값 1만 4,000원)
ⓒ 한권의책

관련사진보기

<처음 만나는 물고기 사전>에서는 23종의 물고기를 그림과 곁들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물고기 중에는 '송사리'처럼 동요에 등장하는 물고기, '쉬리'처럼 영화에 등장하는 물고기도 있지만 생태파괴의 주범으로 취급되다 이제는 전설로 남게 된 '배스' 같은 물고기도 있습니다.

23종 물고기, 가시고기, 각시붕어, 강준치, 꺽지, 꾸구리, 동자개, 드렁허리, 말뚝망둥이, 메기, 미꾸라지, 배스, 뱀장어, 버들치, 붕어, 빙어, 산천어, 송사리, 쉬리, 쏘가리, 연어, 열목어, 잉어, 피라미 한 종 한 종의 특성과 생태환경 등을 구연동화를 시연하듯 설명하고 있어 재미있게 읽으며 쉽게 익힐 수 있습니다.

인면수심(人面獸心, 모습은 사람이지만 짐승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 말을 듣는 사람 처지에서는 참을 수 없는 모독이 되겠지만 '개만도 못한 인간'이라는 말을 듣는 사람도 없지 않습니다.

가시고기들은 자식들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친다고 합니다. 암컷은 알을 낳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죽는다고 합니다. 암컷들이 죽으면 그때부터는 수컷들이 알을 지킨다고 합니다. 가시고기는 알에서 한 달 정도 후에 새끼로 태어납니다.

수컷들은 알에서 새끼들이 나오기까지 한 달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고 지킵니다. 알에서 태어난 새끼들이 힘차게 바다를 행해 떠날 때까지 지켜보던 수컷 가시고기는 결국 죽게 된다고 합니다. 미물이라고 하는 고기들 세계지만 사람들을 부끄럽게 할 만큼 거룩하고 위대한 사랑입니다.

간혹 끔찍한 소식들도 들려옵니다. 자식을 버리고, 자식을 학대하고, 심지어 자식을 죽이기까지 했다는 잔인한 소식도 들려옵니다. 이토록 잔인하고 자식에 대한 정이 없는 사람이라면 차라리 '가시고기만도 못한 인간'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입니다.

꼭꼭 숨어있는 붕어 귀

붕어와 잉어는 입만 큰게 아니라 몸속에 있어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귀도 아주 밝다고 합니다.
 붕어와 잉어는 입만 큰게 아니라 몸속에 있어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귀도 아주 밝다고 합니다.
ⓒ 임윤수

관련사진보기


물고기도 귀가 있답니다. 사람처럼 몸 바깥으로 나와 있지 않고 머리 양쪽 피부 속에 귀가 숨어 있습니다. 그리고 땅 위 동물만큼이나 귀가 밝아요. 특히 잉어랑 붕어의 귀는 몸속에 있는 부레하고 연결되어 있어서, 작은 소리도 확대하여 크게 들을 수 있대요. 그러니 잉어랑 붕어를 만나려면 살금살금 조심해야 해요. -<처음 만나는 물고기 사전> 92쪽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붕어와 잉어도 귀가 있다고 합니다. 빙어는 원래 바다에 살던 물고기로 멸치와 사실상 형제라고 할 수 있답니다. 수컷 산천어는 암컷 송어와 사랑에 빠지고, 쉬리는 한반도에서만 볼 수 있는 물고기랍니다.

책에서는 23종 물고기의 생태계만 익히고 특징에 대해서만 알게 되는 게 아닙니다. 고기들이 살아가며 적응해 나가는 모습에서 삶의 지혜까지도 엿보게 됩니다. 책을 읽는 재미는 송사리 떼를 쫓던 순수함이고, 고기들의 삶에서 깨우칠 수 있는 지혜는 물고기와 인간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자연의 섭리를 새기게 되는 자연 관찰의 기회가 될 거라 기대됩니다.

덧붙이는 글 | <처음 만나는 물고기 사전> (글 이상권 · 그림 김미정 / 펴낸곳 한권의 책 / 2015년 6월 17일 / 1만 4000원)



처음 만나는 물고기 사전

이상권 지음, 김미정 그림, 한권의책(2015)


태그:#처음 만나는 물고기 사전, #이상권, #김미정, #한권의책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