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암살>의 배우 이정재가 14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화 <암살>의 배우 이정재가 14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곧 개봉할 <암살>을 두고 이정재는 "철저하게 외로웠고, 그만큼 더 뻔뻔해야 했다"고 말했다. 하정우, 전지현, 조진웅 등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한꺼번에 붙었다. 이들이 함께 1930년대로 돌아가 항일 무장 투쟁을 벌인다. 그중에서도 이정재가 맡은 염석진은 이들을 한곳에 모아 '작전'을 실행케 하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경무국 대장이다.

이야기에서 그는 곧 이야기 전체라고 해도 무리가 없다. 직책 때문만은 아니다. 동포들을 불러 모으면서도 속을 알 수 없는 행동 덕에 팽팽한 긴장감이 든다. "그 시대에도 이런저런 사람들이 있었지요"라는 이정재의 말에서 묘한 기운이 느껴졌다. 최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그와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나눴다.

염석진에 대한 물음...독립 운동가인가 살고자 했던 자연인인가

<암살>이 역사적 사건을 다루긴 하지만 등장하는 이들은 모두 가상의 인물이다. 그렇기에 일본 제국의 두 거물을 제거하는 임무를 수행할 캐릭터는 충분히 사실적이어야 했고, 동시에 극적이어야 했다.

연출을 맡은 최동훈 감독의 구두 제안에 선뜻 하겠다는 의사를 전했지만 시나리오를 본 뒤 이정재는 "사실 난감했다"고 고백했다. "왜 하필 염석진이지? 난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생각부터 들었단다. 시대의 절망에 찌든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체중을 15kg 정도 뺐고, 목소리 톤을 바꾸기 위해 매일 발성을 연습했다. 하지만 물리적인 노력 말고 그가 정작 집중해야 했던 건 염석진 그 자체로 살아갈 수 있는지였다.

 영화 <암살>의 배우 이정재가 14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배우 이정재. ⓒ 이정민


"시나리오를 읽고 그 자리에서 30분 동안 아무것도 못 하고 멍 때렸다. '정말 좋은 영화가 나올 거 같은데 난 염석진이구나. 어떡하지' 그랬다. 당대엔 독립 운동가와 함께 동포를 팔아먹은 사람도 있었을 거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사람도 있었을 거다. 그런데 이 모든 게 우리의 모습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염석진 역시 실존 인물 중 하나라는 생각이었지.

영화에 김구 선생이 나오지 않나. 그분은 온 국민이 다 아는 위인인데 연기하신 김홍파 선생님도 어떻게 연기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시더라. 준비를 진짜 많이 하셨다. 틀니로 이를 강조하거나 턱선을 늘어뜨린다거나. 나 역시 마치 염석진이 김구만큼 대한민국 사람이 다 아는 인물인 것 같았다. 그래서 내 식대로 느끼는 대로만 할 수는 없었다."

책임감보다 더 큰 무게감이 이정재를 괴롭혔다. 스스로 1930년대에 태어났으면 어떤 선택을 했을지 묻기도 했다. 이정재는 "염석진처럼 (위기 상황에서) 목숨을 구걸했을지 또 다른 선택을 했을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영화를 위해서 염석진은 대중의 상식보다 더 나빠질 필요가 있었다"고 말했다. 주요 참고자료는 지상파 3사 및 외주제작사의 다큐멘터리를 비롯한 각종 문헌이었다. 이정재는 여기에 밀정, 스파이에 관한 사료를 보며 염석진을 채워 갔다.

 영화 <암살>의 배우 이정재가 14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화 <암살>의 배우 이정재가 14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영화 <암살>의 배우 이정재가 14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배우 이정재. ⓒ 이정민


이정재의 비약..."다양한 변신? 아직 총알은 많이 남았다"

약 5개월간 염석진으로 살고 난 후 이정재는 공허함에 한동안 힘들어했다. 촬영 현장에서도 자주 마련됐던 술자리까지 빠지면서 스스로를 고립시킬 만큼 애착을 가졌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공허함을 공유할 사람이 없어서 최동훈 감독님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신념이 강했던 인물이 외부의 폭행에 어떻게 무너지는지 표현하는 과정에서 윤리적인 갈등도 느꼈다.

이정재의 캐스팅에 대해 최동훈 감독은 "이정재씨는 뭘 숨겨놓긴 했는데 그걸 아직까지 제대로 안 보여준 배우 같다"고 표현했다. 이 말을 전하니 이정재는 크게 웃으며 "안 보인 게 아닌 못 보여준 것"이라며 "아직 총알이 많이 남았다"고 응수했다. 2000년대 이후 그가 보인 작품이 증거다. <시월애>(2000), <선물>(2001) 등 로맨스에 강점을 보였던 그는 <태풍>(2005)과 <빅매치>(2014)로 거친 액션을 선보였다. 그 중간에 <도둑들>(2012) 같은 재기발랄한 캐릭터의 작품이 있었다. 

 영화 <암살>의 배우 이정재가 14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배우 이정재. ⓒ 이정민


"여러 작품을 통틀어 <암살>이 가장 어려운 작품 중 하나"였다고 그가 진지하게 털어놨다. 누구도 강요하지 않은, 본인에 대한 '절박함' 때문이었다. 

"어느 배우나 마찬가지겠지만 전환점이 되는 캐릭터가 있다. 내게도 그런 캐릭터가 몇 개 있었고, 그게 지금까지 일할 수 있게 한 동력이라면 <암살>의 염석진은 아마도 앞으로의 내가 연기하게 될 동력일 것이다. 흥행? 물론 중요하다. 이 작품만 해도 한국과 중국인 스태프 400명이 달려 있다. 특히 한국인 스태프는 다들 독립운동을 하는 기분으로 촬영에 임했다. 중국 상해와 한국 이곳저곳을 오가며 감히 해낼 수 없는 것을 해냈다. 촬영이 끝난 쫑파티 때 분위기가 술렁거렸다. 대부분 울었다.

사실 영화를 찍을 땐 어떻게 하면 더 멋있을지, 어찌하면 더 생생하게 전달할지 고민하는데 <암살>은 지금 시대에 왜 만들어져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부터 시작했다. 영화를 보고 다양한 의미를 찾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나 역시 앞으로 연기하면서 어떤 색깔이 입혀질지 잘 모르겠지만 이 작품을 통해 다른 색을 입을 수 있다면 참 행복할 것 같다."

과거를 살았던 여러 독립운동가의 일대기를 통해 관객은 어떤 질문을 던질까. "선한지 악한지 알 수 없는 염석진의 모습도 결국 당신의 일부"라고 이정재가 말했다. 암살 작전을 펼치는 다양한 인물은 박제돼 있지 않고, 각각의 거울이 돼 지금을 비출 것만 같았다. 적어도 그러한 영화의 힘을 위해 이정재는 헌신했다.

  영화 <암살>의 배우 이정재가 14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배우 이정재. ⓒ 이정민



○ 편집ㅣ이언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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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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