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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천군 서면에 위치한 춘장대해수욕장의 앙증맞은(?) 상징물.
▲ 춘장대 해수욕장 서천군 서면에 위치한 춘장대해수욕장의 앙증맞은(?) 상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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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바쁘게 보낸 2015년 상반기였다. 워낙 일 중독이라 일에 파묻혀 정신없이 달려온 6개월이었다. 또 가뭄이 심할 뿐만 아니라, 푹푹 찌는 불볕더위로 인해 삶의 의욕마저 잃게 하는 한여름이다.

사실 7월 20일경 하계 계절시험까지 마쳐야 여름방학 분위기이지만, 한 주를 앞당겨 혼자서라도 대전 근교의 바닷가로 떠나고 싶었다. 워낙 국내외 여행을 즐기는 스타일이라 두 달에 한 번은 대전 근교로 떠난다고 대전에 내려올 때 굳게 결심했지만, 한 번도 실행하지 못했다. 이번 주말에는 무조건 떠날 것이라고 마음을 굳게 먹었다.

문제는 토요일 오후에 너무 피곤해서 길을 떠나지 못한 것이 화근이었다. 일찍 눈을 떠서 일요일 새벽에 짐을 챙겨 떠났다. 처음에는 자전거로 1박 2일로 떠날까도 생각했지만, 무리일 듯 생각되어 자가용의 핸들을 잡았다.

다가오는 태풍, 그럼에도 여행을 떠났다

몇 시간 동안 해변 모래밭을 뒤져서 조개를 찾아낸 천진난만한 모양의 아이들. 순진무구한 동심의 눈빛이 세상 어느 것보다도 아름다웠다.
▲ 해변의 아이들!!! 몇 시간 동안 해변 모래밭을 뒤져서 조개를 찾아낸 천진난만한 모양의 아이들. 순진무구한 동심의 눈빛이 세상 어느 것보다도 아름다웠다.
ⓒ 박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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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동안 부슬비가 내렸다. 인터넷을 보니 강수확률은 90%이고, 2~14밀리의 비가 서천, 서산지방에 온다는 기상예보였다. 하지만 서천여행 내내 거의 50~80밀리의 비가 강풍을 동반하여 내렸다. 제9호 태풍 찬홈이 가깝게 다가와서 우산을 펴자 부러질 정도였다.

작심하고 떠났으니 마음을 바꿀 수도 없었다. 내비게이션에 서천군 춘장대 해수욕장을 기재하니 대전의 유성에서 130km 정도의 거리로 약 2시간이 걸리는 것으로 표시되었다. 가는 길은 북대전 IC로 접어들어 호남고속도로에서 당진-공주고속도로 30번으로 갈아타고 가다가 다시 서천-공주고속도로 131번으로 연결되는 코스였다.

불후의 명곡에서 정동우가 부른 '빗물'(원래는 채은옥의 노래)을 듣다 보니 감성에 젖게 되었다. 차창에 부딪히는 빗물을 느끼다 보니 어느덧 오전 10시 30분쯤 춘장대 해수욕장에 도착해 있었다.

수 십 마리의 바닷가 물새들이 해변 모래밭에 앉아 조개 등 어패류 먹이를 찾다가 하늘을 향해 날아가고 있다. 태풍으로 인해 시꺼멓게 변해버린 잿빛 하늘이 음산함을 드러내고 있다.
▲ 바닷가 물새들 수 십 마리의 바닷가 물새들이 해변 모래밭에 앉아 조개 등 어패류 먹이를 찾다가 하늘을 향해 날아가고 있다. 태풍으로 인해 시꺼멓게 변해버린 잿빛 하늘이 음산함을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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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에 차를 세우며 앞의 전경을 바라보자 호젓한 해변이 울적한 심정을 자극했다. 카페에나 들어가서 낮술이나 풀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은 해변에서 조가비를 캐고 있었고, 나이가 지긋한 중년 팀은 조기 축구를 하고 있었다. 우산을 받쳐 들고 모래밭을 걷다 보니 먹구름이 잔뜩 낀 잿빛 하늘 아래 파도가 밀려들고 있었고 저 멀리 물새 떼 30~40마리가 무리를 지어서 모래 위에서 먹이를 찾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다가가서 무엇을 잡고 있는가를 물어보았더니 천진난만한 표정을 지으며 플라스틱 양동이에 한가득 들은 조개를 보여주었다. 1~2시간 동안 제법 많은 조개를 잡아서 흡족한 듯 웃음을 지어 보였다. 모래 위에는 게와 짱뚱어 들이 뚫어놓은 수많은 구멍과 조그만 모래언덕이 드나드는 바다물 살에 밀려가며 자리 잡고 있었다.

파도치는 모습에 한가로움을 느끼고 있을 때 느닷없이 SUV 차량 한 대가 모래밭을 헤치며 달려오고 있었다. 확성기로 태풍으로 인해 물살이 드세므로 바닷물 쪽으로 접근하지 말라는 경고방송을 하고 있었다.

'동백정'으로 차를 몰았다

  이층누각에서 서해 바다를 바라보면 더부룩한 머리를 한 총각처럼 바위섬이 헤엄을 치는 형국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 동백정 앞에서 인증샷. 이층누각에서 서해 바다를 바라보면 더부룩한 머리를 한 총각처럼 바위섬이 헤엄을 치는 형국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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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촬영을 위해 군거집단을 이루고 있는 갈매기 등 물새 쪽으로 다가가니 새들이 집단을 이루며 바다 위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대장관이었다. 사진에 비행하는 바닷새를 촬영하려고 했지만, 눈에 보이는 모습 그대로 담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마음에만 담아두기로 했다. 춘장대 해수욕장을 벗어나서 동백 숲이 있는 '동백정'으로 차를 몰았다.

천연기념물 제169호인 동백나무 숲은 충남 서천군 거면 마량리 서천 화력발전소 옆에 있다. 계단을 따라 800m를 걸어 한 바퀴를 돌면서 동백나무를 감상할 수 있게 배열되어 있다. 동백나무의 아름다움을 맛보려면 꽃의 계절인 4~5월에 찾아가야 할 것이다. 가로질러 올라가는 계단을 따라가면 마량당집이 반갑게 손님을 맞이한다.

마량당집 앞에는 동백나무 숲이 조성된 연유에 대한 설명이 되어 있다. 500여 년 전 이 마을 사람들이 뗏목을 타고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으러 나갔는데, 자주 파도에 휩쓸려 고기잡이배가 돌아오지 않게 되었다.

500년 전 남편과 자식을 잃은 한 노파가 앞바다에서 용이 승천하는 것을 보고 제사를 지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 풍어제로 승화되어 지금까지 전승되고 있다. 풍어제와 연관된 마량당집.
▲ 마량당집 500년 전 남편과 자식을 잃은 한 노파가 앞바다에서 용이 승천하는 것을 보고 제사를 지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 풍어제로 승화되어 지금까지 전승되고 있다. 풍어제와 연관된 마량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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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자식을 잃은 한 노파가 앞바다에서 용이 승천하는 것을 보고 제사를 지내야겠다고 생각했다. 백발노인의 현몽으로 얻은 선황 다섯 분과 동백나무 씨앗을 얻어 선황은 신당에 모시고, 동백나무 씨앗은 주변에 심어서 85주가 조성되었다. 매년 정월 초하룻날 당에 올라 제사를 지내온 것이 지금까지 전승되는데, 그 후부터 고기잡이에서 화를 입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마량당집을 둘러보고 해송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는 길을 따라 걸어 올라가면 고풍스러운 자태를 지니고 있는 동백정이 마치 팔을 펴서 객들을 품에 안으려는 듯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바다를 향해 옷맵시를 가다듬는 여인네의 모양을 한 해송 몇 그루가 호위하는 가운데 동백정은 이 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자신의 몸에서 드러낸다.

세 가족 정도의 한 무리의 관광객들이 밀물처럼 왔다가 빠져나갔다. 다시 조용해진 이층누각에서 바다를 바라보면 더부룩한 머리를 한 총각처럼 바위섬이 헤엄을 치는 형국으로 서 있다. 바위섬에서도 해송이 자라고 있어 총각의 머리 형태 같다고 비유를 한 것이다. 동백정에서 바라보는 서해의 풍광은 불그스름한 낙조 때 더욱 아름답게 느껴진다.

태풍으로 포구에 발이 묶인 배들

마량진은 아펜젤러목사의 순교지이기도 하다. 배재학당을 설립한 미국 감리회 해외선교부의 아펜젤러목사는 1902년 목포에서 열리는 성서번역자회의에 참석하러 가던 중 군산앞바다인 마량진에서 그가 탄 배가 일본상선과 충돌하여 익사하였다.
▲ 아펜젤러목사 동상과 추모비 마량진은 아펜젤러목사의 순교지이기도 하다. 배재학당을 설립한 미국 감리회 해외선교부의 아펜젤러목사는 1902년 목포에서 열리는 성서번역자회의에 참석하러 가던 중 군산앞바다인 마량진에서 그가 탄 배가 일본상선과 충돌하여 익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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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나무 숲에서 마량포구를 향해 가는 길목에서 '한국 최초 성경 전래지'라는 돌 표석이 눈길을 끌었다. 1816년 영국 정부가 중국에 파견하는 암 헐스트 사절을 태운 알세스트 호와 리라 호의 함장 맥스웰과 바실홀의 두 해군 대령이 한국의 서해안 일대를 탐사하라는 훈령을 본국 정부로부터 받고 각기 자신의 군함을 통솔하여 한국에 내항하여 서해안 일대를 시찰하고 해도를 작성했다.

그리고 9월 5일 비인항 마량진 앞 갈곶에 들렀을 때 마량진 첨사 조대복에게 우리나라 최초로 성경을 전달하게 되었다. 최초 성경 전래지라는 돌 표석 옆에는 이곳 마량진 앞바다에서 순직한 아펜젤러 목사의 동상과 그를 애도하는 비문이 나란히 서 있다. 배재학당을 설립한 미국 감리회 해외 선교부의 아펜제러 목사는 1902년 목포에서 열리는 성서번역자회의에 참석하러 가던 중 군산 앞바다인 마량진에서 그가 탄 배가 일본 상선과 충돌하여 익사하였다.

마량포구는 태풍의 영향으로 폭풍우가 심했다. 포구에 발이 묶인 수십 척의 고기잡이배들이 멈춰 서있고, 서천 서부수협 마량위판장도 배의 출입이 없으므로 썰렁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다만 방파제 근처의 노란색의 예쁜 등대만이 하늘의 노여움이 멈춰 서기를 기다리면서 무표정한 모습으로 웃고 서 있었다.

한동안 바다를 정면으로 볼 수 있는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엄청난 풍속의 바람에 의해 풍랑이 거세게 몰아치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다보았다. 자연의 위력 앞에서 인간의 무기력함을 다시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귀가 먹먹해졌다.

 마량포구에는 제9호 태풍 찬홈의 영향으로 풍랑이 심하게 일어 고기잡이배들의 발목이 묶여 있다. 다만 방파제 근처의 노란색의 예쁜 등대만이 하늘의 노여움이 멈춰서기를 기다리면서 무표정한 모습으로 웃고 서있었다.
▲ 마량포구 마량포구에는 제9호 태풍 찬홈의 영향으로 풍랑이 심하게 일어 고기잡이배들의 발목이 묶여 있다. 다만 방파제 근처의 노란색의 예쁜 등대만이 하늘의 노여움이 멈춰서기를 기다리면서 무표정한 모습으로 웃고 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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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태풍 찬홈의 위력을 목격하고, 자연의 힘 앞에서 인간의 무력함을 다시 한번 깨닫다.



태그:#동백나무 숲, #춘장대해수욕장, #마량포구, #서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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