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심야식당> 포스터

영화 <심야식당> 포스터 ⓒ 영화사 진진


동명 만화를 드라마로 옮겨 큰 사랑을 받은 <심야식당>이 극장판으로 국내 팬을 찾았다.

쿨하면서도 인정많은 마스터(코바야시 카오루 분)의 뛰어난 요리솜씨 덕분에 항상 문전성시인 '심야식당'에 누군가가 의문의 납골함을 놓고가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언제나 그랬듯이 심야식당에는 마스터에게서 자신만의 특별한 음식을 찾는 손님의 사연이 이어진다.

시즌3까지 이어진 에피소드 중에서 극장판으로 추린 <심야식당>은 최소한의 이야기로 오늘날 일본의 현실을 돌아보고자 한다. 한때 돈 많은 노인의 세컨드였던 여자에게 푹 빠진 초식남과 돈이 없어 길거리를 전전하다가 우연히 마스터의 일을 도와주게 된 젊은 여성의 사연까지. 마치 연애, 결혼, 출산에 이어 인간관계, 주택 구입까지 포기했다는 한국의 오포세대를 보는 것 같은 씁쓸한 이야기가 이어지던 <심야식당>은 2010년대 일본사회를 규정하는 대재앙 '도호쿠 대지진'과 직면한다.

힘겹게 하루하루를 이어나가는 청년들의 녹록지 않은 삶에 이어 쓰나미로 아내를 잃은 슬픔을 미모의 자원봉사자에게 기대어 극복하고 싶은 중년 남성의 애잔한 희망 고문으로 바라본 일본은 '희망이 사라진 곳'이다. 도호쿠 대지진이 일어나기 전부터 경제 성장 둔화, 극심한 취업난으로 골머리를 앓던 일본은 2011년 3월 11일 이후 모든 것이 바뀌었고, 도호쿠에서 시작된 아픔은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

한동안 일본 전역을 절망과 고통에 빠트렸던 도호쿠 대지진은 이후 제작된 수많은 대중문화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이다. 상당수의 영화, 애니메이션이 대재앙으로 깊은 시름에 빠진 일본 사회를 위로하면서 힘든 시기를 딛고 상처를 극복하자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제시했다. 그간 마스터의 정성이 듬뿍 담긴 음식으로 외로운 사람들을 위로하던 <심야식당>도 이 물결에 합류, 도호쿠 대지진으로 사랑하는 모든 것을 잃어야 했던 주민들에게 <심야식당>만의 방식으로 작지만 큰 힘이 되고자 한다.

 영화 <심야식당> 한 장면

영화 <심야식당> 한 장면 ⓒ 영화사 진진


마스터는 고민이 가득한 얼굴로 식당 문을 두드리는 손님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만, 이를 직접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그가 손님들에게 해주는 최고의 서비스는 아무런 말없이 손님이 원하는 음식을 뚝딱 만들어주는 것. 대신 손님이 음식을 먹으며 스스로 상처를 치유하게 하고, 아무리 희망이 사라졌다고 한들 그럼에도 씩씩하게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을 안겨준다. 그리고 매일같이 식당에 들르는 단골손님들이 친근한 말동무가 되어주니 심야식당에 오는 것만으로도 세간에 지친 심신을 위로받을 수 있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고 세상의 모든 걱정과 근심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심야식당> 시리즈와 함께 음식 치유 드라마로 각광 받은 <고독한 미식가>의 명대사처럼 누구에게도 방해되지 않고, 먹고 싶은 것을 자신에게 주는 포상이야말로 현대인들에게 평등하게 주어진 최고의 치유 행위일지도 모른다.

과거 일본 드라마와 영화에서 등장하는 요리와 먹는 장면을 보며 위안으로 삼았던 한국 시청자들은 이제 TV만 켜면 물밀듯이 쏟아지는 수많은 '푸드 포르노'의 홍수에 살고 있다. 한때 음식 치유 드라마가 큰 인기를 끌던 일본이 그랬듯이 어쩌면 '오포세대'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진 2015년 한국 사회가 유독 '먹방'과 '요리'에 열광하는 것도 누군가 맛있게 먹는 것을 바라봄으로써 상식과 원칙이 사라진 시대, 극한 생존경쟁에서 받은 상처를 잠시나마 치유하고자 하는 일종의 몸부림은 아닐까.

도쿄 번화가 뒷골목을 지키며 오랜 시간 일본인의 따뜻한 벗이 되어주었던 심야식당. 일본뿐만 아니라 오늘날 한국에서도 절실히 필요한 이 식당은 특유의 가족적인 분위기로 수많은 사람의 말 못할 사연을 나누며 활발히 영업 중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권진경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neodol.tistory.com), 미디어스에 게재되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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