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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혁 PD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도 <지식채널 e>라는 프로그램 이름을 들으면 "아" 하고 탄성을 지를 법하다. 그만큼 <지식채널 e>는 시청자에게 신선한 충격과도 같은 코너였다. EBS를 통해 방송된 이 미니 다큐는 짧은 방송 시간 동안 채널을 바꾸다가도 시선을 고정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과거 <지식채널 e>를 만들던 김진혁 PD가 EBS를 퇴사한 이후 독립언론 <뉴스타파>에 합류했다. 지난 5월에 발간된 책 <5분 : 세상을 마주하는 시간>은 그가 <뉴스타파>에서 만든 '김진혁의 5minutes' 19편을 지면으로 옮겨 한 권의 책으로 엮은 것이다. 각 에피소드는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신드롬부터 쌍용차 해고노동자 관련 '노란봉투' 캠페인, 정부의 외압 의혹이 불거진 공영방송의 처참한 현실 등을 담았다.

19편의 미니 다큐를 책으로 엮다

김진혁PD의 미니 다큐 <5분(5minutes)> 중 '썩은 상자와 수평 폭력'편. 권력층이 아니라 개인을 향하는 '수평 폭력'을 다루고 있다.
 김진혁PD의 미니 다큐 <5분(5minutes)> 중 '썩은 상자와 수평 폭력'편. 권력층이 아니라 개인을 향하는 '수평 폭력'을 다루고 있다.
ⓒ 뉴스타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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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혁 PD가 보여주는 '5분'은 뜨겁고도 서늘한 시간이다. 때로는 한 장의 사진을 통해 실감나는 현장의 분위기를 전하고, 잠깐의 영상을 통해 씁쓸한 현실을 고스란히 스크린에 재현하기도 한다. 파편처럼 조각난 정보들을 압축해서 보여주는 짧은 영상은 날카롭고도 명쾌하다. 영상과 함께 화면에 오르내리는 자막은 간결하면서도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중 인상적인 '썩은 상자와 수평 폭력'편은 오늘날 한국 사회에 만연한 증오 범죄를 설명하는 단서가 된다. 1971년 스탠퍼드 대학에서 진행된 '교도소 실험'은 범죄 전과가 없는 청년들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충격적인 결과는 중산층 가정에서 자란 평범한 대학생들도 환경에 따라 얼마든지 극단적인 폭력을 실행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당시 실험은 2주 동안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순식간에 잔인하게 돌변한 실험 참가자들로 인해 5일 만에 중단됐다. 참가자들에게 무작위로 교도관과 죄수의 역할을 부여한 이후, 교도관이 된 학생들이 죄수 역을 맡은 학생들에게 거리낌없이 악랄한 행동을 했던 것이다.

<5분>의 해당 에피소드는 제2차 세계대전에 프랑스 군인으로 참전하여 '식민지' 출신 '흑인'으로 지독한 차별을 겪은 정신과 의사 프란츠 파농이 말한 '수평 폭력'의 개념을 풀어낸다. 이는 당시 프랑스의 지배를 받던 알제리 사람들이 서로를 향해 잔인한 행동을 하는 현실에서 착안한 개념이다.

"수평 폭력은 자신을 억압하는 근원을 향해 분노를 표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비슷하거나 나약해 보이는 사람에게 대신 분노를 드러내는 것이다." (본문 207쪽 중, 프란츠 파농의 말 인용)

미니 다큐는 지난해 세월호 참사 당시 유가족에게 쏟아졌던 폭력도 사례의 하나로 보여준다. 국가유공자의 부당한 대우를 국가에 항의하는 것이 아니라, 세월호 유가족의 보상이 문제라고 탓하던 상황. 생각해보면 의아한 부분이지만 세월호 참사 이후 일부 사람들은 이와 같은 감정적 반응에 동참했다.

그리고 다큐는 '수평 폭력'의 배경이 사회의 시스템과 경쟁으로 인한 스트레스와 불안이라고 지적한다. 권위주의적 체계에 짓눌리던 사람들이 분노하고, 쌓인 감정이 한계에 다다르자 개인이 서로에게 감정을 분출한다는 것. 마치 '썩은 상자가 썩은 사과를 만드는 이유가 되듯이' 구조적 원인으로 인해 사회 내에 수평 폭력이 만연한다는 분석이다.

EBS 퇴사한 그가 담은 '세상의 5분'

김진혁 PD의 <5분> 표지사진.
 김진혁 PD의 <5분> 표지사진.
ⓒ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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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혁 PD가 다큐멘터리로 언급한 소재들은 하나같이 예민한 사안을 건드렸다. 2008년 <지식채널 e>에서 방송한 '17년 후'는 광우병 파동을 주제로 한 내용이었다. 그후 다른 부서로 전보 발령을 받은 그는 <다큐프라임> '나는 독립유공자의 후손입니다('반민특위'편)'를 제작하던 도중 프로그램이 중단되는 일을 겪고 결국 퇴사한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방송영상과에서 강연을 하던 김진혁 PD를 <뉴스타파>에서 다시 다큐로 만날 수 있게 됐다. 그가 담은 세상의 5분을 보고 있자면, 조각난 퍼즐을 하나씩 맞추는 느낌도 든다. 책에 부록으로 들어있는 DVD로 영상을 차례로 보면, 한국 사회의 오늘날이 입체적으로 그려진다.

'공평하지 못한 세금의 결과'편, '부동산 불패 신화와 아이 안 낳는 나라'편에서는 세금 형평성과 주거·출산 등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문제들을 다뤘다. '가난한 이들은 왜 보수적이 되는가'편은 기존의 시스템에 적응하기도 벅찬 서민들이 변화를 거부하려는 이유를 분석한다.

'모독VS모독'편에서는 대통령을 향한 비판을 처벌하려는 흐름을 짚는다. 2014년 9월 16일, "국민을 대표하는 대통령에 대한 모독적인 발언이 그 도를 넘고 있다"고 대통령이 대통령 모독을 언급한다. 불과 이틀 만에 검찰은 '사이버상 허위사실 유포사범 엄정대응' 방침을 발표한다. 이에 김진혁 PD는 하워드 진의 말을 인용하면서 일침을 놓는다.

"내가 사랑하는 건 조국, 국민이지 어쩌다 권력을 잡게 된 정부가 아니다. 어떤 정부가 민주주의 원칙을 저버린다면 그 정부는 비애국적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사랑은 당신으로 하여금 당신의 정부에 반대할 것을 요구한다."

부담없이 짧은 시간에 볼 수 있는 영상으로 김진혁 PD는 묵직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음악과 영상, 재치있는 자막으로 조합된 <5분>으로 세상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그가 만들던 <지식채널e>가 그랬듯이, 미니 다큐 <5분>은 시사를 통해 생각을 연결하는 고리가 될 것이다. 24시간 하루 중에서, 단 5분으로도 충분히.

덧붙이는 글 | <5분>(김진혁 지음/ 문학동네/ 2015. 5. 22./ 1만 5500원)



5분 - 세상을 마주하는 시간

김진혁 지음, 문학동네(2015)


태그:#김진혁, #5분, #지식채널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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