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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그냥 물이야... 아꾸아

대낮부터 시작된 우리의 술파티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대낮부터 시작된 우리의 술파티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 이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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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을 나눠 먹은 다음 날이었다. 우리가 시골 일요장에 다녀와 더위를 식힐 겸 풀장에 다녀오니 알베르또는 미처 샤워도 못한 남편을 붙잡고 다짜고짜 '아꾸아'를 먹자고 했다. 물론 '아꾸아'는 음성언어로, '먹자'는 의미는 행동언어로 전달했다. 남편은 샤워를 하러 가며 "알베르또가 물 한 잔 먹겠냐고 하는데 내 생각에는  술 한 잔 하자는 것 같아. 혹시 나 찾으면 샤워하고 온다 했다고 해." 남편의  추측은 맞았다.

74세의 실비아와 73세의 알베르또는 밝은 부부다. 자녀들도 모두 벨기에에서 자리를 잡고  살아간다고 했다. 알베르또의 직업은 운전기사이다. 무엇을  실고 다니는지는 모르겠지만  포루투칼, 스페인, 이탈리아 등 유럽  전  지역을 다닌다고 했다. 그리고 많은 사람을 만났을 테다. 알베르또는 프랑스인에 대해선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듯했고 스페인 사람에 대해 현란한 효과음과 표정, 몸짓으로 무한한 애정을 나타냈다. 그런  까닭에 그들이 번역기를 돌려가며 늦은 나이에 스페인어를 배우는 것인가 보다.

한국에선 술을 입에 대지 않는 편인 나다. 공식적으론 '몸에 알콜 분해 요소가 없어서'란 이유를 대나 실은 술에 약하다. 그리고 얼굴색이 급격히 검붉은색으로 변하는 것도 싫다. 어린 나이에 약간의 술을 먹고 몇 가지 큰 실수를 경험했던 나는 그대로 절주를 선언했다. 그런데 문제는 유럽에선 내가 술을 먹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하면 그런 얘기 처음 들었다는 뉘앙스다.

"에라이, 이  거짓말도 한국에서나 먹히나보다."

한국의 주도를 전파하는 리씨네 가장이다.
 한국의 주도를 전파하는 리씨네 가장이다.
ⓒ 이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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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음료나 물 마시듯 먹는 유럽인들은 술을 전혀 입에 대지 못한다는 나의 말에 '세상에나 전생에 무슨 죄를 많이 지었길래... 술도 못 마신담...'에 어울리는 표정을 한다. 그래서 해외에선 약간의 음주를 해보자고 마음 먹었다. 그때 실비아와 알베르또가 '아꾸아'를 먹자고 했던 것이다. 

1차는 진한 벨기에  전통주와 물을 섞은 술이었다. 술 자체는 누런 빛깔이지만 물을 섞으면 마치 막걸리처럼 색이 뽀얗게 변한다. 남편의 말론 터키 전통주와 비슷하단다. 여하튼 코를 먼저 자극하는 술은 여러모로 초짜 음주가의 입엔 매우 낯선 맛이었지만 색깔이 곱고 냄새가 신비롭고 은은했으며 맛이 깔끔하였다.

그녀가 컵을  헹구어 다시 가져올 때도 난 우리의 끝이 어떻게 되리라 예측하지  못했다. 그러나 헹궈진 컵엔 독일맥주와 스페인맥주가 따라졌다. 물론 이 타임에 실비아가 주섬주섬 무엇을 내오더니 저녁이 차려졌다. 그냥 평범한 그들의 식탁이었고 전기바베큐판에서 천천히 오랫동안 구워진 삼겹살의 비계가 돌처럼 딱딱했으나 올리브와 곁들여 먹으니 괜찮았다. 근래에 먹은 것 중 가장 신선하고 달콤한 토마토도 먹었다.

그때도 난 그게 끝인 줄 알았으나 또다른 상차림을 위해 식탁이 말끔이 정리된다. 이젠 나도 스스럼없이 케러반을 드나들며 그릇을 정리했다. 디저트로 아이스크림이 차려졌다. 그 후 3차로 와인을  먹고,  4차로 꼬냑을 먹었다. 꼬냑은  힘들었음으로 애주가를 격분시키는 그 액션, '다른 컵에 살짝 버리기'를 했다.

남편은 흑기사를 자처하며 가끔씩 내 몫까지 먹어, 실비아와 알베르또보다도 150% 이상을 먹어 눈이 슬슬 풀리고 있었다. 오늘 밤에 있을 유로컵 빅매치인 스페인과 프랑스의 경기관람을 기다리며 그는 그렇게 취해 갔다. 술의 종류가 바뀌고 술잔이 비워질 때마다 알베르또는 "아꾸아"를 외쳤다. "그냥 물이야, 마셔"와 비슷한 말인지 어떤지.

오~~ 잘 피웠어, 짝짝짝

실비아를 따라 침을 발라가며 제법 잘 말았다.
 실비아를 따라 침을 발라가며 제법 잘 말았다.
ⓒ 이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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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땐 나도 담배 좀 피웠었다. 그러나 엄마가 오는 소리에 담배를 이불 틈으로 숨겨 화재가 발생할 뻔한 사건 이후로 담배를 피우지 않게 되었다. 그때 난 5살이었다. 실비아와 알베르또의 탁자엔 입담배를 만드는 자그마한 기계가 있었다. 흡연가는 아니지만 호기심은 만땅인 남편이 호기심을 나타내자 친절한 실비아는 시범을 보인 후 남편에게 건넨다.

남편은 뻐끔뻐끔. 흡연하는 자태가 낯설지만 완전 그럴 듯해서 "뭐야, 왜 폼 잡고 그래?" 그러자 남편 왈 " 사람들은 나한테 폼 잡냐 그러는데 나는 이게 자연스러운 자세야. 그냥 멋있을 뿐이지." 와~~~ 어쩜 언행일치를 이루는 실천가이나 나쁜 남자 냄새가 폴폴 난다. 어쩌다 내가 이 나쁜 남자에게 걸려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지... 푸헐.

그런데 실비아는 나에게도 한대 권한다. 한국인은 흡연을 많이 안 한다 했음에도. 아까 대낮에 책을 읽고 있는 내게 다가와 자신의 자전거에 잠긴 열쇠를 따주며 이곳을 한 바퀴 달리고 오라고 한다. 그래서 웃어른께 순종하는 동방예의지국 출신답게 어쩔 수 없이 우리 구역 식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책을 덮고 자전거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나로 하여금 이 아름다운 스페인의 바람과 햇살을 충분히 누리며 바캉스를 보내길 바라는 그녀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졌기에 난 그녀의 바람대로 동네를 신나게 돌았다. 실비아의 흐뭇한 눈빛이 나를 따라오는 게 보였다. 그런데 이번엔 나로 하여금 흡연의 즐거움을 알려주고 싶어 하신다. 직접 말아서 건네주며 라이터를 주신다.

고향 친구 중 흡연을 좀 일찍 시작한 애가 있었다. 그애에게 전해 듣기론 담배는 속담배와 겉담배가 있는데 속담배를 피는 것이 진정한 흡연이요, 진정한 랄라리로 인정받는 지름길이라 했다. 겉담배는 어설픈 양아치들이 하는 흡연 방법이랬다. 여하튼 나는 양아치들이 택하는 겉담배에 도전했다.

'안 되는데... 전세계에서 금연운동을 가장 열심히 벌이고 있는 대한민국 보건복지부가 보면 안 되는데...'

5살에 담배를 끊은 후 30년만에 다시 피웠다.
 5살에 담배를 끊은 후 30년만에 다시 피웠다.
ⓒ 이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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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으로 깊이 빨아들이지 않았기에 맛이랄 건 없고 입안에 도는 감촉은 나무를 태울 때 나는 연기의 냄새와 따스함과 비슷했다. 문제는 실비아가 사진을 찍겠다고 디카를 찾으시는데 한참, 찾고 나선 디카에 오류가 나 고치는데 또 한참, 여하튼 난 모델처럼 각을 잡고 실비아에게 찍히길 기다리는 사이 담배는 거의 다 탔다. 연기 뿜는 걸 가르치곤 잘 뿜었다라고 등을 토닥여 주며 칭찬해주던 실비아와 그건 콜롬비아 담배라며 간간이 웃겨 주던 알베르또.

도저히 내가 이 자리에서 헤어날 순간을 잡지 못하는 사이 내 사랑하는 아이들은 저녁밥도 온전히 얻어먹지 못하고 마냥 신 난다고 돌아다닌다. 그때 스페인과 프랑스의 축구 경기가 시작되고 있어 잠시 혼란한 틈을 타 난 아이들의 저녁과 취침을 핑계 삼아 텐트로 돌아왔다. 물론 실비아는 아이들을 재우고 올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했으나 난 남편에게 잘 테니 알아서 둘러대라 말하곤 작정하고 잠을 청했다.

"어우~ 남들은 신나서 먹는 술과 구름과자가 난 왜 이렇게 힘들지?"

○ 편집ㅣ최유진 기자

덧붙이는 글 | 2012년 맞벌이 엄마, 아빠, 5살, 7살 두 딸은 직장과 유치원을 쉬었습니다. 그리고 쉼(태국), 사랑(터키), 도전(유럽캠핑)을 주제로 5개월간 여행하였습니다. 본 여행 에세이는 그 중 도전을 주제로 한 유럽캠핑에 관한 글입니다.



태그:#리씨네 여행기, #유럽캠핑, #스페인, #피게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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