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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공항을 출발하여 일본 국내선까지 타고 먼 남쪽 섬 야쿠시마까지 간 것은 순전히 '조몬스기' 삼나무 때문입니다. 2년 전 우연한 기회에 인터넷 뉴스를 통해 조몬스기를 알게 된 후에 인터넷 검색도 해보고 다큐멘터리도 찾아보면서 짝사랑을 하고 있었답니다. 하지만 야쿠시마에 가도 아무때나 조몬스기를 보러 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해발 600여 미터 높이까지 차를 타고 가서도 왕복 10시간은 족히 걸어야 조몬스기를 보러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대부분 다음날 산행을 준비하기 전에 야쿠스기 자연관에 먼저 들르게 됩니다. 저희 일행도 오후 1시쯤  야쿠시마에 도착한 뒤 점심 식사를 마치고 곧장 야쿠스기 자연관에 들렀습니다.

야쿠스기 자연관이 있는 야쿠스기 랜드는 둘째 날 조몬스기를 보러가는 산행버스 출발지이기도 합니다. 아라카와 등산로를 통해 조몬스기를 보러가는 사람들은 일단 버스나 택시를 타고 야쿠스기 랜드에 들렀다가 산행버스를 바꿔타고 아라카와 등산로 입구까지 차로 이동하게 됩니다.

 야쿠스기랜드 전경
야쿠스기랜드 전경 ⓒ 이윤기

1989년에 개관한 '야쿠스기 자연관'은 조몬스기를 비롯한 야쿠시마 삼나무의 특징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전시해 놓았을 뿐만 아니라 무분별한 삼나무 벌목이 이루어지던 옛 모습을 함께 전시해 놓았습니다. 따라서 야쿠스기의 특징과 역사뿐만 아니라 야쿠스기 삼나무를 막부에 바치며 살았던 야쿠시마 사람들의 생활상도 엿볼 수 있는 곳입니다.

야쿠스기 자연관은 특이하게 입구에서 신발을 벗고 들어가도록 되어 있는데, 이곳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조몬스기의 부러진 가지입니다. 야쿠스기 자연관을 안내해주시는 직원분도 가장 먼저 이 부러진 가지부터 소개해주더군요. 아무래도 야쿠시마에 오는 많은 사람들이 조몬스기를 보고 오기 때문이지 싶습니다.

야쿠스기 자연관에 전시된 이 삼나무 가지는 2006년 겨울 야쿠시마 산속에 눈이 많이 내렸을 때 부러진 것입니다. 당시 조몬스기의 가지 위에 어른 키 만큼 높게 눈이 쌓였다고 합니다. 가지 위에 쌓인 눈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가지 하나가 부러졌는데, 이 부러진 나뭇 가지의 수령이 무려 1000년이나 된다고 합니다.

 수령 1000년이 넘었다는 조몬스기의 부러진 나뭇가지
수령 1000년이 넘었다는 조몬스기의 부러진 나뭇가지 ⓒ 이윤기

 수령 1000년이 넘은 조몬스기의 부러진 가지에는 '생명의 가지'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수령 1000년이 넘은 조몬스기의 부러진 가지에는 '생명의 가지'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 이윤기

이 나뭇가지에는 '생명의 가지'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데 전시관에 있는 부러진 가지의 길이가 5m, 무게는 1.2톤이나 된다고 합니다. 이 무거운 나뭇가지는 헬기를 이용해서 운반해 왔다더군요. 7200년을 살고 있다는 조몬스기, 단순 산식으로 추정해보면 조몬스기가 6200년쯤 살았을 때 이 가지가 줄기에서 뻗어나와 1000년 쯤 자란 후에 눈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부러진 셈입니다.

야쿠시마는 섬의 해안 쪽은 아열대 기후지만 섬의 주봉인 미노우라다케의 높이가 2000미터에 근접하기 때문에 겨울에는 눈이 많이 온다고 합니다. 야쿠시마에 가기 전에 봤던 배우 박용우가 나오는 다큐멘터리 영화 <시간의 숲>을 보면, 겨울 숲에 눈이 많이 쌓여 조몬스기를 보러가지 못하고 돌아오는 이야기가 나오더군요.

조몬스기의 부러진 가지인 '생명의 가지'와 더불어 또 하나 인상 깊었던 전시품은 조몬스기 발견 당시의 사진이었습니다. 당시 신문 기사에 나왔던 조몬스기의 사진이 전시되어 있는데, 이 사진에는 조몬스기 옆에 사람이 서 있기 때문에 그 크기를 짐작 할 수 있겠더군요. 지금은 조몬스기를 보호하기 위하여 데크를 만들어 접근을 막아 놓았기 때문에 직접 조몬스기를 만져볼 수도 없고, 가까이 가서 사진을 찍을 수도 없습니다.

 조몬스기 발견 당시의 신문 기사에 실린 사진
조몬스기 발견 당시의 신문 기사에 실린 사진 ⓒ 이윤기

하지만 이곳 전시장에서는 '생명의 나무' 가지를 직접 손으로 만져 볼 수 있습니다. 또 전시장 벽면에는 실물 크기의 커다란 '조몬스기' 줄기 사진이 걸려있습니다. '성스러운 노인'의 얼굴에 패인 굵은 주름이 잘 드러나는 사진입니다. 이 줄기 앞에서 사진을 찍으면 마치 조몬스기 앞에 서서 사진을 찍은 것처럼 연출을 할 수도 있다고 하더군요.

야쿠시마는 일본 최대의 천연 삼나무 군락지입니다. 앞서 쓴 여행기에서 소개하였지만 야쿠시마에 있는 삼나무라고 해서 모두 '야쿠스기'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야쿠시마 삼나무 중에서도 수령 1000년이 넘은 나무들만 야쿠스기라고 부르고, 1000년이 못 된 삼나무들은 고(小)스기라고 합니다.

 조몬스기의 가지가 부러진 자리를 설명하고 있다
조몬스기의 가지가 부러진 자리를 설명하고 있다 ⓒ 이윤기

오랜 벌목으로 해발 1300여 미터에 이르는 깊은 숲에 있던 삼나무들까지 대부분 잘려 나갔지만, 지금도 야쿠시마 숲속에는 수령 1000년이 넘는 야쿠스기 2000그루가 자생하고 있다 하더군요. 한 마디로 이 숲에서는 1000년 이하 나이로는 이름도 못 내민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조몬스기를 비롯하여 대왕삼나무, 부부삼나무, 삼대삼나무, 기겐스기 등 수령 3000년이 넘은 삼나무들도 많이 있습니다.

야쿠스기 자연관은 단순히 눈으로 보고 말로 설명을 듣는 것뿐만 아니라 오감을 활용해서 야쿠시마 삼나무를 체험할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앞서 신발을 벗고 전시장에 들어간다고 하였는데, 이 전시장 바닥은 삼나무를 타일처럼 잘라서 깔아 놓았습니다. 발끝부터 삼나무의 촉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해놓은 것이지요.

 쌀 한 가마와 바꿀 수 있는 삼나무 판자의 양을 비교해 놓았다
쌀 한 가마와 바꿀 수 있는 삼나무 판자의 양을 비교해 놓았다 ⓒ 이윤기

삼나무의 나이테나 수령 그리고 굵은 야쿠스기 줄기를 잘라서 얼마나 많은 목재를 가공해낼 수 있는지, 또 그 목재의 값어치는 얼마나 되는지를  모두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도록 전시되어 있습니다.

예컨대 사진으로 보는 것처럼 굵은 삼나무 줄기를 자르면 나무판(평목) 2310매를 만들 수 있으며,  이 나무판은 쌀 1가마와 교환되었다는 것을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었습니다.

전시관에 실물로 전시해 놓은 거대한 삼나무 줄기를 잘라서 작은 판자로 만들어야 겨우 쌀 1가마와 바꿀 수 있었다고 하니, 에도 시대의 200년 이상 동안 수많은 야쿠스기가 잘려나갈 수 밖에 없었겠더군요. 아무튼 이런 사연을 안내문으로 적어 놓은 것이 아니라 일본어를 몰라도 그냥 딱 알아 볼 수 있도록 실제 가공된 나무를 전시해 놓았습니다.

오래된 실물 삼나무 줄기를 잘라 단면을 비교 전시해 놓은 것도 있었습니다. 단면을 잘라 전시해 놓은 야쿠스기는 지름이 제 키보다 조금 작은 172센티인데 수령은 자그마치 1660년이나 된다고 하더군요. 전시관 안내를 해주시는 분은 야쿠스기의 나이테와 일반 삼나무의 나이테를 비교할 수 있도록 보여주었습니다.

 1660년된 삼나무의 나이테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1660년된 삼나무의 나이테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 이윤기

한 눈에 딱 봐도 야쿠스기의 나이테는 일반 삼나무에 비하여 10배 이상 촘촘하게 박혀 있었습니다. 야쿠스기의 나이테가 일반 삼나무보다 10배 이상 촘촘한 까닭은 야쿠시마 섬 전체가 화강암으로 되어 있어 삼나무가 자라기에 척박한 땅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다른 삼나무에 비하여 성장속도가 훨씬 느린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나이테가 10배 이상 촘촘하다는 것은 다른 삼나무에 비하면 10배 이상 느리게 자란다는 것이고, 거꾸로 보면 느리게 자라기 때문에 나이테가 촘촘하고 그래서 단단하고 기름기가 많다는 것입니다. 막부에서 야쿠스기를 벌목하게 된 것도 단단하고 기름기 많은 야쿠시마 삼나무가 사찰의 지붕재료로 적합하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벌목을 하는 야쿠시마 사람들의 삶은 풍요롭지 못하였더군요. 이 전시관에는 오랜 옛날부터 사용되던 벌목도구들과 장비들 그리고 벌목 사업이 번창할 당시를 기록해 놓은 사진과 영상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영상과 사진을 보면 참으로 조악한 톱과 도끼를 가지고 목숨을 건 벌목 작업에 나섰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삼나무 벌목에 사용되던 톱과 도끼 등이 전시되어 있다
삼나무 벌목에 사용되던 톱과 도끼 등이 전시되어 있다 ⓒ 이윤기

해발 600~1200여 미터에 이르는 야쿠시마의 원시림으로 들어가서 둘레가 10~20미터, 높이 20미터를 전후하는 거대한 삼나무를 잘라내고 가공하고 운반하는 고된 노동을 했던 역사가 오롯이 새겨 있는 것입니다. 야쿠스기에 대한 목재 수요가 늘어날수록 목숨을 건 벌목 작업 역시 늘어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야쿠시마 사람들은 더 굵고 큰 나무를 찾아 숲속으로 들어갔고, 조몬시대부터 살아왔던 오래 된 삼나무들은 차례차례 잘려나가 목재가 되어 섬 밖으로 공출되었던 셈입니다. 따라서 삼나무 판자를 찾는 수요가 늘어날 수록 야쿠시마 사람들의 노동은 고달파졌고, 공급이 모자라 산 꼭대기까지 벌목 현장을 넓혀도 섬사람들의 삶이 나아지지도 않았더군요.

 여러 나무를 품고 사는 기겐스기
여러 나무를 품고 사는 기겐스기 ⓒ 이윤기

두 번째로 소개해 준 삼나무는 기겐스기입니다. 넓은 창으로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이 환히 내다보이는 창가에 있는 삼나무 탁자와 의자에 일행들이 앉을 수 있도록 한 다음 '기겐스기' 사진을 보여주었습니다. 기겐스기 역시 수령이 3000년 정도된 삼나무인데, 사진만 봐도 가장 눈에 띄는 '야쿠스기' 줄기와 가지 위에 다른 나무들이 뿌리를 내리고 함께 살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냥 근처에 있는 나무와 가지가 이어진 연리목 같은 것이 아니라 야쿠스기 줄기와 가지 위에 온전히 다른 나무가 뿌리를 내리고 삶을 기대고 함께 살아가고 있는 것을 사진으로 보여주더군요. 2박 3일 짧은 일정이었기 때문에 기겐스기를 실제로 보지는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야쿠시마 숲에 있는 야쿠스기들은 '기겐스기'처럼 전혀 다른 나무를 내 몸에 품고 사는 야쿠스기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전시장에는 기겐스기의 가지도 전시되어 있는데, 조몬스기 가지에 비해서는 크기도 작고 설명도 자세히 되어 있지는 않았습니다. 자료를 살펴보니 기겐스기가 있는 곳(해발 1230미터)까지는 자동차를 타고 갈 수 있다고 나와 있더군요. 기겐스기 역시 수령은 3000년, 줄기 둘레 8.1m, 높이는 19.5m나 된다고 합니다.

 삼나무 벌목이 한창이던 시절의 모습이 전시되어 있다
삼나무 벌목이 한창이던 시절의 모습이 전시되어 있다 ⓒ 이윤기

이 전시관에는 이름난 야쿠스기들도 전시되어 있지만, 벌목 시대에 사람이 살았던 모습들, 벌목 도구들, 벌목 작업 현장을 소개하는 영상과 사진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오늘날 조몬스기를 보러가는 철길은 벌목이 한창이었던 시절에는 삼나무를 실어내리는 열차가 운행하던 곳입니다.

영상을 자세히 살펴보니 산을 올라갈 때는 기관차가 화물칸을 달고 올라가지만, 산에서 나무를 싣고 내려올 때는 기관차를 떼버리고 화물칸 한 칸에 삼나무 한 그루씩을 싣고 따로따로 내려오더군요. 내려올 때는 동력 기관차 없이 밧줄로 브레이크를 걸어서 속도를 조절하며 내려오는 방식이었습니다.

전시장 한 켠에는 야쿠시마 전체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표현해놓은 모형이 있었습니다. 섬 전체가 거대한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산이라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겠더군요. 아울러 해발 0미터에서 2000미터에 가까운 고도 차이도 쉽게 알아 볼 수 있었습니다. 고도 차이가 많이 나는 만큼 다양한 종류의 풀과 나무들이 자라는 생태계의 보고이기도 하다더군요.

 야쿠시마 자연사진 전시회 수상 작품 사진
야쿠시마 자연사진 전시회 수상 작품 사진 ⓒ 이윤기

1층 전시장 한 켠에는 '야쿠시마 자연 사진 전시'도 하고 있었는데, 정말이지 실물보다 더 아름답고 신비로운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여기 전시된 사진들을 보면 사진을 일컬어 '빛의 예술'이라고 부르는 까닭을 단 번에 알아챌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제 맘에 쏙 드는 사진도 두 장이 있었는데, 한 장은 이끼 가득한 숲 나뭇가지 사이로 햇살이 비치는 사진이고 다른 한 장은 계곡 물 속에 사슴이 서 있는 사진입니다. 두 번째 사진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에니메이션 <월령공주>에 나오는 장면과 흡사하더군요. 그래서 더 느낌이 좋았는지도 모릅니다.

2박3일의 짧고 촉박한 일정이라 야쿠스기 자연관에서 오랜 시간 찬찬히 둘러볼 수는 없었습니다. 여행은 세 가지 조건은 건강, 돈, 시간이라고 하는데, 어찌어찌 시간을 만들어 야쿠시마까지 가긴 갔지만 주어진 시간이 2박3일뿐이니 여전히 시간에 쫓겨 여유를 부릴 수가  없더군요. 아쉬운 발걸음을 뒤로 하고 야쿠스기 자연관을 나와 자동차로 섬을 한 바퀴 돌았습니다.

제 경험으로 야쿠시마에서 각각 제 이름을 가진 유명한 삼나무들을 모두 둘러보려면 2박3일 일정으로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조몬스기까지 갔다오고 자투리 시간에 야쿠스기 자연관을 둘러보고, 자동차로 섬을 한 바퀴 도는 정도만으로 2박3일이 꽉 채워지기 때문입니다. 특히 원령공주의 숲으로 이름난 시라타니운수 계곡과 이름난 폭포들까지 모두 둘러보려면 야쿠시마에서만 1주일쯤은 보내야 할 것 같더군요.

하지만 아무리 일정이 짧아도 야쿠시마까지 조몬스기를 보러 갔다면, 야쿠스기 자연관에 들러 조몬스기 만나기 전에 알아두면 좋은 사전 지식을 쌓고, 야쿠시마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일정이 될 것 같습니다.

○ 편집ㅣ홍현진 기자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제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야쿠스기#야쿠시마#조몬스기#삼나무#야쿠스기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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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YMCA 사무총장으로 일하며 대안교육, 주민자치, 시민운동, 소비자운동, 자연의학, 공동체 운동에 관심 많음.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활동하며 2월 22일상(2007), 뉴스게릴라상(2008)수상, 시민기자 명예의 숲 으뜸상(2009. 10), 시민기자 명예의 숲 오름상(2013..2)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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