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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작은아이는 수레에, 큰아이는 샛자전거에.
 작은아이는 수레에, 큰아이는 샛자전거에.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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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파람 부는 자전거

자전거를 달린다. 자전거를 달리고 싶으니 자전거를 달린다. 자전거를 달려 어디까지 갈까? 가고 싶은 데까지 간다. 멀리 갈 수 있고, 바다에 갈 수 있으며, 골짜기에 갈 수 있다. 지지난해에는 더러 읍내까지 자전거로 달렸으나, 지난해에는 읍내까지 자전거로 한 번도 안 갔고, 올해에도 읍내까지 자전거로 갈 생각이 없다. 왜 그러한가 하면, 읍내로 자전거를 타고 갔다가 돌아오는 길은 재미없기 때문이다. 자동차도 너무 많다. 서울 같은 도시에 대면, 이 시골에서는 '자동차가 없다'고 할 만하지만, 시골에 자동차가 매우 드문 만큼, 좁은 시골길에서 너무 우악스럽게 달린다. 게다가 아이가 함께 탄 자전거인데 생생 달리면서 빵빵거리는 자동차도 곧잘 스친다. 아이하고 함께 자전거를 달릴 적에는 되도록 시골 들길로만 달린다. 자동차는 안 다니는 논둑길로만 달리고 싶다.

우리도 자동차를 타야 할 적에는 탄다. 군내버스를 타고 시외버스를 탄다. 택시를 불러서 타기도 한다. 그러나, 타야 할 때가 아니면 굳이 탈 일이 없다. 자전거를 아이하고 천천히 달리면 바람내음이 온몸을 감싸면서 시원하다. 자전거를 아이들하고 함께 달리면 햇볕과 햇살과 햇빛이 골고루 스며들면서 따스하다.

자전거순이가 샛자전거에 앉아서 휘파람을 분다. 휘파람을 불고 싶다고 앙앙거리던 지가 아스라하다. 영화에서 휘파람을 잘 부는 아이를 본 뒤, 그러니까 다섯 해쯤 지난 일이지 싶은데, 그때부터 휘파람을 가르쳐 달라고 하던 큰아이인데, 거의 날마다 틈틈이 휘파람 불기를 하려고 입술을 오므리고 용을 쓴 끝에 올해부터 휘파람을 제법 잘 분다. 참말 스스로 하면 다 된다. 자전거도 스스로 타려고 해야 탈 수 있고, 휘파람도 스스로 불려고 해야 불 수 있다. 삶노래도 스스로 부르려고 해야 부른다. 사랑노래도 꿈노래도 스스로 가슴에 담아야 비로소 활짝 펼칠 수 있다. 자, 저 너른 하늘까지 신나게 달리자. 다만, 빨리 달리지는 않을 생각이야. 느긋하게 파란 바람 쐬면서 달리자.

샛자전거에 앉아 휘파람을 부는 자전거순이
 샛자전거에 앉아 휘파람을 부는 자전거순이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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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하늘이 눈부셔서 자전거를 달리는 날.
 파란 하늘이 눈부셔서 자전거를 달리는 날.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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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달리며 하늘 보는 맛은 남다르다.
 자전거를 달리며 하늘 보는 맛은 남다르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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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 걷는다

도서관에 들른 뒤 우체국으로 달린다. 오월이 한껏 무르익으니 가만히 서서 해를 바라보면 덥고, 나무그늘에 서면 시원하며, 자전거를 달리면 바람맛이 아아아 상큼하다. 어느덧 이런 철이 되었구나. 달력이 아니라 바람과 하늘을 보니 이렇게 철이 사뭇 바뀌는구나.

면소재지로 가는 길목인 호덕마을 앞을 지나가야 하는데, 이곳에서 한창 공사를 한다. 상수도 공사를 한다. 시골마을에 수돗물이 흐르도록 하겠다면서 벌이는 공사이다. 시골 할매와 할배는 이 공사를 모두 반기는 듯하다. 관청에서 자꾸 '지하수'는 나쁘다고 떠벌이고 '수돗물'이 몸에 좋다고 외치니까, 시골에서조차 이런 말을 곧이곧대로 듣는구나 싶다.

늘 느끼는데, 시골에서조차 도시처럼 수돗물을 마신다면, 도시에서 살던 사람이 시골로 와서 살고 싶을까 궁금하다. 도시를 떠나려는 사람은 손수 흙을 일굴 뿐 아니라, 싱그러운 바람과 맑은 물과 고운 볕과 넓은 하늘과 푸른 숲을 누리려는 마음이라고 본다. 아닐까? 도시에서 애써 시골로 가서 살려고 하는데, 맑은 물이 아니라 수돗물을 마셔야 한다면 즐거울까? 수돗물을 마셔야 하는 곳으로 '귀촌'이나 '귀농'을 하고픈 도시사람은 얼마나 있을까?

작은아이는 자전거수레가 자장노래 듣는 곳이기도 하다.
 작은아이는 자전거수레가 자장노래 듣는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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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체국에 닿아서 자전거를 내린다.
 우체국에 닿아서 자전거를 내린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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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작은아이가 잠든다. 바람 따라 길바닥에서 데굴데굴 구르는 빈 쌀푸대를 하나 줍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버지가 숨을 몰아쉬면서 땀을 흘릴 즈음, 큰아이가 "나, 자전거에서 내릴래, 걷고 싶어" 하고 말한다. 참말 걷고 싶은 마음일까, 아니면 아버지를 아껴 주려는 마음일까. 아무튼, 자전거를 세워서 걷기로 한다. 자전거순이에서 걷기순이로 바뀐 큰아이는 들길을 노래하면서 총총총 달린다. 하하하 웃으면서 춤을 춘다. 큰아이가 보여주는 멋진 '걸음춤'을 기쁘게 바라보면서 자전거를 끈다.

그런데 말이야, 우리 걷기순이야, 아버지가 자전거를 끌어도 이 긴 자전거를 영차영차 끌어야 한단다. 자전거를 달려도 이 긴 자전거를 영차영차 달리지. 그러니까, 네가 참말 스스로 걸으면서 들바람을 쐬고 싶으면 그저 그 마음 그대로 기쁘게 걸으렴. 네 아버지는 자전거를 달리든 걷든 모두 즐거우니까.

아버지가 힘들어서 안 된다며, 샛자전거에서 내린 뒤 논둑길을 달리는 큰아이.
 아버지가 힘들어서 안 된다며, 샛자전거에서 내린 뒤 논둑길을 달리는 큰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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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마실을 하며 면소재지 어귀에서 만난 국수나무 꽃잔치.
 자전거마실을 하며 면소재지 어귀에서 만난 국수나무 꽃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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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선 곳

자동차가 거의 안 다니는 시골길이니 큰길로 다녀도 나쁘지 않다. 그러나 자동차가 거의 안 다니는 시골길인 터라, 어쩌다가 지나가는 자동차가 대단히 거칠다. 길에 다른 자동차가 없으니, 웬만한 자동차는 무시무시하게 내달리기 일쑤이다. 곧은길이건 굽이길이건 빠르기를 줄이지 않고 달리면서 건너편 찻길로 넘어가는 자동차가 아주 많다. 자전거를 길섶에 붙여서 달리다가도 큰길로 접어든 뒤 이런 자동차를 만나면 갑갑하다. 이들은 길섶에 붙어서 달리는 자전거를 살피지 않기 일쑤이고, 길섶을 걷는 사람도 살피지 않기 마련이다.

시골길을 달릴 적에 되도록 큰길로 나오지 않는다. 시골마을이지만, 큰길에는 나무도 없고 길섶도 좁으니, 자전거를 달리거나 걷는 즐거움을 누리기 어렵다. 요즈음 관광지마다 '걷는 길'을 새로 마련한다면서 애쓰는데, '걸을 만한 길'은 길그림에 금을 죽 그어서 이곳은 문화이고 저곳은 예술이고 그곳은 벽그림이고 꾸미기에 생기지 않는다. 꽃내음과 풀내음이 흐르면서 나무그늘이 있는 데가 걸을 만한 길이다. 걷다가 풀숲에 앉아서 다리를 쉬면서 풀벌레 노랫소리를 듣고 나뭇잎이 살랑거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데가 걸을 만한 길이다.

논둑길로 에돌아서 면소재지를 다녀온다. 마을과 면소재지를 잇는 자리는 큰길이다. 논둑길 가운데 아스팔트를 깐 곳도 있다. 이런 곳을 지날 때면 쓸쓸하구나 하는 느낌이 드는데, 오늘은 때죽나무에 핀 고운 꽃을 보고, 논둑 한쪽에서 노랑괴불주머니꽃을 잔뜩 본다. 꽃내음이 물씬 퍼지는 곳에서 자전거를 한동안 세운다. 오월에 흐드러지는 꽃내음을 넉넉히 들이마신다. 나무가 자라는 곳이 늘어날 수 있기를 빈다. 우리가 서는 곳이 나무가 우거지는 자리가 되고, 우리가 사는 곳이 나무내음과 나무노래로 넘실거리는 보금자리가 되기를 꿈꾼다.

큰길은 조금만 달리고, 언제나 논둑길로 달린다.
 큰길은 조금만 달리고, 언제나 논둑길로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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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거울로 노래순이를 바라보기.
 뒷거울로 노래순이를 바라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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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로 접어들면 금계국이 활짝 피어 우리를 반긴다.
 유월로 접어들면 금계국이 활짝 피어 우리를 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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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치마 입고 달리는 길

꽃순이가 꽃치마를 입고 자전거를 달리겠단다. 이 꽃치마는 '기모노'라고 하는 일본옷인데, 일본에서는 저희 겨레 옷에 꽃무늬를 참 큼지막하게 새겨 넣기도 한다. 그래서 이런 치마는 '꽃치마'라고 해도 되지 싶다. 모든 기모노가 꽃치마는 아닐 테지만, 꽃무늬 치마가 많은 기모노가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여름 시골길은 시원하다. 맞바람일 적에는 더 시원하고, 등바람일 적에는 덜 시원하다. 햇볕이 쨍쨍 내리쬐더라도 발판을 알맞게 구르면 땀이 흐르지 않는다. 힘을 많이 내어 빨리 달리려고 하면 땀이 흐르지만, 느긋하게 산들바람을 쐬면서 자전거를 달리려고 할 적에는 그야말로 느긋하면서 시원하다.

먼 길을 걷는다고 해서 꼭 땀이 흐르지 않는다. 알맞다 싶은 빠르기보다 더 빠르게 걸으려고 하면 땀이 흐르기 마련이요, 짐을 무겁게 짊어질 적에도 땀이 흐르기 마련이다. 홀가분한 차림으로 가볍게 걸으면 한여름에도 땀이 흐를 일은 드물다.

노란괴불주머니가 무리지어 핀 논둑길을 달린다.
 노란괴불주머니가 무리지어 핀 논둑길을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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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서 벗어나 면소재지로 접어드는 길목에 금계국이라는 샛노란 꽃이 가득 피었다. 여름이로구나. 큰아이가 저 노란 꽃은 이름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그래서 큰아이한테 "무슨 꽃일까? 저 샛노랗게 예쁜 꽃은 무슨 꽃일까? 벼리가 스스로 이름을 붙여 주면 꽃이 좋아할 텐데" 하고 말한다. 이럴 때에 여덟살 큰아이는 아직 '노란꽃!'이라고만 말하는데, 조금 더 생각을 쏟아서 꽃을 바라보고 숲을 마주한다면 꼭 알맞춤한 새 이름을 지을 수 있으리라 본다.

놀이터에서 땡볕을 쬐면서 실컷 논 뒤 집으로 돌아온다. 집으로 돌아온 아이들은 손발을 씻기고 낮잠을 재운다.

꽃치마 자전거순이
 꽃치마 자전거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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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군내버스 꽁무니를 좇으며 달린다.
 시골 군내버스 꽁무니를 좇으며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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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자전거를 타고, 마을 할배와 할매는 경운기를 타고.
 우리는 자전거를 타고, 마을 할배와 할매는 경운기를 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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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오면, 큰아이가 얼른 달려가서 대문을 활짝 열어 준다.
 집으로 돌아오면, 큰아이가 얼른 달려가서 대문을 활짝 열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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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글쓴이 누리사랑방(http://blog.naver.com/hbooklove)에도 함께 올립니다.



태그:#시골자전거, #삶노래, #자전거마실, #자전거, #시골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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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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