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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가 29일 새벽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공무원연금법 개정안과 국회법 개정안이 통과된 후 피곤한 듯 얼굴을 감싸쥐고 있다.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가 29일 새벽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공무원연금법 개정안과 국회법 개정안이 통과된 후 피곤한 듯 얼굴을 감싸쥐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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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고립되고 있다.

여야가 지난달 29일 국회 본회의에서 공무원연금 개혁안과 함께 처리한 국회법 개정안 때문이다. 이 개정안은 "국회가 정부 시행령의 수정이나 변경을 요구하면 정부가 요구받은 사항을 처리하고 결과를 보고"토록 명시하고 있다. '모법(母法)'인 세월호 특별법의 입법 취지를 침해했다는 반발을 사고 있는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 같은 경우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였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은 이를 '삼권분립 위배'라고 규정하고 국회에 대한 최후의 견제수단인 거부권 행사를 검토하고 있다. '박심(박 대통령의 의중)'을 확인한 친박은 거듭 원내지도부를 향해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당청 갈등과 내홍이 겹쳐버린 셈이다.

공세 수위 높이는 청와대, '유승민 불신임' 표했나

청와대의 대응은 앞서 조윤선 전 청와대 정무수석의 사퇴를 부른 '국민연금 연계' 때와 같은 과정을 밟고 있다. 청와대는 당시 여야의 공무원연금 개혁협상 결과물을 놓고 '제동'을 걸고, 그에 대한 항의의 의미로 예정돼 있던 당정청 회동을 무기한 연기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김성우 청와대 홍보수석의 '삼권분립 위배' 브리핑 이후 지난 31일 예정됐던 당정청 회동을 연기했다.

다만, 대응 수위는 그때보다 강하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1일 오전 기자들과 만나, "여야는 국회법 개정안의 강제성 유무에 대한 입장부터 통일하라"라고 지적했다. 국회로 '공'을 넘긴 모양새지만 현 새누리당 원내지도부의 설명에 대한 불신을 표한 것이기도 하다. 앞서 유 원내대표는 지난달 29일 기자들과 만나, "(시행령 수정을) 강제할 규정이 (개정안에) 없다"라면서 "법률과 시행령 사이의 충돌 문제는 대법원이 판단할 문제다, 삼권분립에 아무 이상 없다"라고 주장했다.

박 대통령은 같은 날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면서 '거부권 행사' 가능성을 시사했다. 박 대통령은 "(국회법 개정안으로) 국정이 결과적으로 마비상태가 되고 정부는 무기력화될 것"이라며 "정부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다"라고 말했다. '거부권'을 직접 거론하지 않았지만 사실상 '수용 불가'라는 입장을 재천명한 셈이다.

문제는 '국민연금 연계' 논란 때와 달리 국회법 개정안은 이미 국회 본회의에서 표결을 거쳐 가결된 법안이라는 점이다. 청와대에서 아무리 국회 차원의 전면 재검토를 요구하더라도 현 상황을 무효화시키기 어렵다. 특히 야당은 박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시 향후 모든 여야 협상을 전면 중단하겠다는 입장이다.

즉, 유 원내대표가 청와대의 요구를 수용하더라도 상황을 반전시킬 묘수는 없는 셈이다. 특히 박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오히려 당에 대한 불신임을 표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어 당청 관계는 회복 불가능한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다.

'유승민 책임론' 점화시킨 친박, 집단행동 나설 듯

유 원내대표를 청와대보다 더 가혹하게 몰아붙이고 있는 쪽은 친박이다. 친박 좌장인 서청원 최고위원은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국회법 개정안 통과에) 당이 자성할 필요가 있다"라며 "원내지도부는 안이한 생각을 하지 말고 야당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면서 부작용과 오남용을 막을 수 있는 대책을 세워야 한다"라고 말했다.

특히 서 최고위원은 "공무원연금법을 처리하라고 했는데 국민연금까지 (연계하는 것으로) 밀렸고,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정부 시행령(을 수정 요구할 수 있는 국회법 개정안)까지 동의해줬다, 그래놓고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한다"라며 사실상 '유승민 책임론'을 제기했다.

이정현 최고위원 역시 "(국회법 개정안이) 국가 근간인 헌법질서를 훼손하는 문제라고 지적되고 있고 실체가 그런 식으로 드러나고 있다"라며 "이 문제에 대해 책임이 필요하다면 누군가의 책임 문제도 함께 생각할 수 있는 문제"라고 동의했다.

유 원내대표를 현 당청 갈등의 원인으로 지목하는 이도 있었다. 김태호 최고위원은 "유승민 원내대표 체제 출범 이후 청와대와 당의 갈등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라고 국회법 개정안 처리 과정에서 당청 간 조율이 부족했던 것이라고 질타했다. 이인제 최고위원은 "대통령은 명백히 우리 당 최고지도자"라며 "(대통령이) 당에 대해서는 특별한 지위가 없다고 잘못 생각하는 면이 있지 않나"라고 지적했다.

당 지도부 밖에서도 마찬가지다. '친박' 김태흠 새누리당 의원은 이날 YTN라디오 <출발 새아침>에 출연, "유 원내대표가 협상 과정에서 원칙까지 저버리면서 새정치민주연합의 '끼워 넣기'에 질질 끌려다니는, 이런 결과물에 동의할 수 없다"라며 "벌써부터 야당에서 모법에 상충되는 시행령 실태를 상임위별로 조사하라면서 전방위적으로 달려들지 않나, (유 원내대표가) 그런 빌미를 준 것"이라고 비판했다.

친박 의원들의 집단행동마저 가시화되는 상황이다. 친박 의원 모임인 '국가경쟁력강화포럼'은 오는 2일 오전 회동을 통해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입장을 정리할 예정이다. 이 자리에는 이번 국회법 개정안 논란을 '위헌'으로 규정한 제정부 법제처장이 직접 참석해 발표도 할 예정이다.

"국회법 개정안 협상 당시 청와대에 사전보고했는데..."

박근혜 대통령이 1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국회의 정부 시행령 수정에 대해 강력히 비판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1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국회의 정부 시행령 수정에 대해 강력히 비판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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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원내대표는 이 같은 상황에 정면으로 맞서고 있다. 그는 이날 최고위 이후 기자들과 만나, 당 일각의 '유승민 책임론'에 대해 "그럴 일이 오면 언제든지 (지겠다)"라고 말했다. 또 "여야가 국회법 개정안의 강제성 유무에 대한 입장부터 통일하라"는 청와대의 주문에 "저희 입장은 강제성이 없다는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자신으로 인해 당청 갈등이 빈번해졌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건전한 관계를 위한 진통이라고 생각한다"라며 "(국회법 개정안으로 인한 이번 당청 갈등을) 어떤 식으로든 결말을 봐야겠다"라고 말했다.

앞서도 유 원내대표는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시 재의결에 나서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오히려 조해진 원내수석부대표는 지난달 31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거부권을 행사하면) 청와대와 여당의 관계, 여당과 야당 관계도 어려운 국면을 맞을 우려가 있다"라고 경고 메시지를 내놓은 상황이다.

청와대와 친박이 무리한 공세를 펴고 있다는 인식도 있다. 새누리당의 한 관계자는 이날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간접적으로 확인한 바로는 당에서는 5월 28일 긴급최고위원회의 전과 우즈베크 대통령 내외 국빈 만찬 당시 청와대에 이를 보고했다"라며 "당시 최고위원회의에서 이인제 최고위원 등은 '국회법 개정안에 문제가 없다'는 취지로 동의했다"라고 밝혔다.

즉, 청와대나 친박에서 본회의 표결 전에는 반대 입장을 명확히 밝히지 않다가 본회의 처리 이후 태도를 바꿨다는 얘기다. 특히 이 관계자는 "이렇기 때문에 (국민연금 연계 방안으로) 5월 6일에 공무원연금 개혁안을 처리해야 했던 것"이라며 "당시 80~90% 당내 의원들이 찬성했는데 의총에서 표결 강행해서 했다면 (국회법 개정안 문제까지) 안 왔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 원내대표에게 협상 전권을 위임했던 김무성 대표는 상대적으로 뒤로 물러서 있는 모양새다. 김 대표는 이날 최고위 직후 기자들과 만나 "대통령이 그런 말씀(거부권 행사 시사)을 하셨다면 충분한 검토의 결과로 말씀하신 걸로 생각한다"라며 "대통령과 우리 당의 뜻이 다를 수가 없다"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유승민 책임론'에는 선을 긋고 있다. 김 대표는 이날 오후 기자들과 만나, '유승민 책임론'에 대한 질문을 받고 "그런 상황은 아니라고 본다"라고 말했다.

○ 편집ㅣ손병관 기자



태그:#유승민, #친박, #청와대, #박근혜, #국회법 개정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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